어느 586이 풀어본 22 수능 영어 34번. (내가 586임에 감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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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학년도 수능 영어 34번을 풀면서>
-내가 586인 것에 감사하는 이유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입시 관계자여서가 아닙니다. 입시는 향후 20년쯤 뒤 우리 사회를 이끌 인재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학과 물리학이 발전하지 못하면 진정한 나라 발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문명의 혜택은 대부분 물리학의 발전 덕분인데, 근대 물리학은 수학의 발전 없이는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물리학자들이 그런다지요? “물리학자는 수학자를 경배하고, 수학자는 오직 신을 경배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재를 의대가 블랙홀처럼 흡인하는 현 상황을 저는 우려합니다.
하여튼 대입에 관심이 많기에, 수능도 유심히 살피는 편입니다. 잘 아시듯, 해마다 수능을 마치면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받고 이에 대해 답변하는데, 올해 수능에서 가장 문제 제기가 많았던 것은 영어 34번 빈칸 추론 문제였습니다.
다들 그 문제를 아시겠지만, 그래도 아래에 첨부합니다.
이 문제는 최대 3분, 아주 많이 시간을 준다더라도 4분 안에 풀어야 했을 겁니다. 이 문제가 3점짜리 어려운 문제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 등장하는 ’historical representation’이 무슨 의미인지 3분 내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representation이라면 철학이나 미학에서 쓰는 ‘표상’이라는 의미와, 법이나 정치에서 쓰는 ‘대리’를 주된 의미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략 문맥 흐름은 이해할 수 있어서 정답을 작성했는데, 보기 좋게 틀렸더군요. 정답을 확인하면서도 여전히 ’historical representation’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여, 이 문제의 출전을 찾아보았고, F.R. Ankersmit(1945~)라는 네델란드 그로닝겐대학 교수(전공은 지성사 혹은 역사철학)의 ‘Historical representation’이라는 저서 서문에 실린 문장 일부를 발췌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아쉬운 것은, 수능에 등장한 지문은 그의 저서 16~17쪽 중 어느 단락의 일부를, 그것도 중간 부분을 뭉텅 떼어낸 것이었습니다. 그 문장의 단락 시작 부분을 보고서야 ‘Historical representatio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수능 지문 문장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단락 시작 부분을 보십시오.
It follows that determinacy and complete precision can never really be achieved in historical writing-a disappointing conclusion, for some of us. But one can instead take a more sanguine and above all more realistic view of this fact by interpreting the foregoing argument as a demonstration that indeterminacy and lack of precision are the indispensable prerequisites of historical writing. And once again, the contrast with the sciences here is striking.
이런 문장 다음에 수능 지문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명확히 이해됐습니다. 쉽게 말해 저자는 ‘역사 서술은 명확성과 정밀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과학 서술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Historical representation’ 역시 ‘역사 서술’이 되는 것이고요. 이 단락에서, 저자는 ‘historical writing’이라는 표현을 먼저 쓴 뒤 ‘Historical representation’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런 맥락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이, 문장 어느 단락의 중간 부분을 뭉텅 떼어냈음에도 3분 안에 문제를 풀고 그것을 맞히기까지 하는 대한민국 고3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인 것인가요?
명색, 관악캠퍼스 사학과를 나와 기자 생활을 20년 하면서 역사서를 두 권 낸 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을 단 3분 정도에 이해해서 풀어내는 대한민국 수능 수험생들에게 제가 경의를 표하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더불어, 제가 ‘운이 억세게 좋은’ 586임을 다시금 감사했습니다. 제가 요즘 태어났다면 수능 국어와 영어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을 겁니다.
추신== 이 문제의 정답은 복수로 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한 교육과정평가원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이상 없음'
추신 2== 22 수능 국어 4~9번 문제(헤겔 변증법 지문)를 보면서 저는 솔직히 쌍욕을 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아래에 적었습니다. 시간 되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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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선생님 대단하세요이번에 수능 치셨나요? 그렇다면 존경합니다.
멋지십니다
제가 멋진 건가요, 아니면 맥락도 상실한 저런 x같은 문제를 3분 안에 풀어내는 대한민국 수능 수험생들이 멋진 것인가요? 저는 후자에 한 표.
정답:2 정답률:31%
저는 3번을 골랐습니다. questioning이라는 단어가 '명사'로 기능할 때의 의미를 명확히 모르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Historical representation’ 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지문의 의미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저 문제를 맞힌 31%에 달하는 수험생에게 다시금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