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믿지 (✧⁺⸜( •⌄• )⸝⁺✧) [977360]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1-11-20 18:34:22
조회수 10,836

강태중 교수님, 고교학점제+수능 폐지는 안 됩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40725125

2022학년도 대수능이 끝났습니다. 여유가 생긴 만큼 저는 한때 제가 원했던 교육학과 관련 서적 독서 계획을 다시 잡고 있는 중입니다. 저도 제 생각을 자잘한 지식을 바탕으로나마 읊어보려 합니다. 


현재 기조대로 수능이 폐지되고 고교학점제로 돌아선다면, 2030년이면 교육 계층 간 불평등이 극에 달해서 정부에 강하게 압력이 들어가는 수준까지 갈 것입니다. 물론 저 따위 일개 수험생의 의견을 교수님이야 다 고려하고 계시겠지만, 수능도 이렇게 내신 것을 보면 그냥 본인의 의견을 중심에 둔 채 국가 하나를 실험군으로 삼으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경쟁의 하단에 있는 사람들은 수능이 사라진 후 고교학점제가 현실화된다면 상위 계층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수능은 그동안 빈곤층이든 중산층이든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게 하여 열매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수능을 단순 문제풀이라고 비판받게 한 주체가 누구입니까? 그게 사교육인가요? 비판형, 추론형, 해석 영역의 범위를 줄이고, 대학 입시의 방식을 한없이 복잡하게 만든 사립 대학 지위 강화는 누구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사교육은 정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괴물에 불과합니다. 사교육을 향해 제아무리 잽을 날려도 사교육의 힘은 구밀복검의 원리로 음지에서 점점 강해집니다. 이미 공교육의 몰락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잖습니까.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바랄 것이 아니라 '질 나쁜 공교육' 없는 세상을 바랄 지경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강백의 [파수꾼]에서처럼 촌장이 만든 가상의 위험 요소인 이리 떼를 허수아비로 두고 허공에 잽을 날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사교육을 억제하면 할수록 조국 전 서울대학교 교수의 사건과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처럼 음지에서 빈틈을 노리는 "진짜" 이리 떼가 늘어날 것입니다. 촌장은 진짜 이리 떼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나요? 촌장은 그저 선동할 수만 있었지, 실제 이리 떼를 막을 능력은 없었을 것입니다. 음지에서의 불법 행위들을 잡아낼 수 없다면, 인재 자원이 전부인 이 대한민국의 교육계 수장들 중 한 분이신 교수님은 철저한 실력주의와 서열제를 고집해주셨으면 합니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추첨으로 뽑는 것이 더 정당하다는 것, 동의합니다. 1점 차이로 목표 대학을 못 가 재수하는 인력 낭비, 인정합니다. 저부터가 그런 인물인데요. 


하지만 이는 실력이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 2차적 촉매로써 그 기제가 작동해야 합니다. 예컨대 상위권과 최상위권의 구별이 1차적으로 이루어진 뒤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해 수능에서 이를 실험하신 것 같다는 생각인데, 최상위권의 학습 유인을 없애는 side effect를 불러올 것이 자명합니다. 추첨 문제가 사교육을 해결할 것이란 가설은 안타깝게도, 틀렸습니다. 


진짜 문제는 수능의 괴이한 범위 축소와, 세종 대왕님도 감히 손대지 못할 사립 대학들의 지위 아닌가요? 사립 대학들의 힘이 너무 강하고, 정부에서 이에 대한 규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스스로 아실 겁니다. 명문이든 아니든 사립 대학들의 지위가 너무 높습니다. 이 문제는 모든 사회 문제의 1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요? 단순히 서울대학교가 서울에 있다고 해서 인구가 모두 서울로 모이는 건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만 봐도 그러한 명제가 옳지 않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 그래프는 빈곤의 대물림 그래프입니다. 에스테르 뒤플로의 이론이죠. 피케티의 경주 이론 스키마와 혼합해 해석해보겠습니다. 서열제를 고집하면 최하위권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대신 중위권부터는 확실히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합니다. 평준화를 고집하면 최하위권과 중위권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가능성을 볼 수 있지만 상위권부터의 학습 유인이 사라져 고급 인력의 부재가 우려됩니다.


두 정책을 섞어 사용하신다면 이상적인 정책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지 않나요? 왜 한 쪽을 확실히 없애는 방향의 포퓰리즘을 추구하시는 겁니까. 이대로라면 나라는 공유지의 비극을 피하지 못한 채 빚 폭탄을 떠안게 됩니다. 누가 이 나라의 자본을 벌어오나요? 질 높은 교육의 전파를 통한 엘리트층 아닌가요? 교육 정책의 이점을 강화하고, 문제점을 강하게 잡았더라면 국민들이 이 정도로 교육부에 실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5년간, 수능 폐지 전까지 그 어떤 정책을 급조해 전파해도 목표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미 희망의 횃불은 꺼졌습니다. 교육 선진국으로 미국, 핀란드, 싱가포르를 지정하고 따라가겠다니...한국은 한국만의 교육 과정이 있지 않나요? 선진국들만을 따라가면 성공한다는 공식은 상업계에서나 통하죠.


좋습니다. 수험생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고, '기하와 벡터'의 범위 제외 투표를 고작 몇몇 시민들의 손으로 정하는 정부에 굴복하시겠다면 수능을 폐지하실 건 자명해보입니다. 그럼 정부가 수능 이후의 교육 지도로 야심차게 제시한 고교학점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모든 학교가 고교학점제를 통한 교육을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큰 2028학년도.


경제적 상위층과 경제적 하위층, 그리고 지역 간 격차는 더더욱 커질 뿐입니다. 솔직히 말해 아직 구체적인 대입 계획은 정부 관련 사이트를 작년부터 아무리 뒤져봐도 로드맵 한 덩어리가 전부입니다. 구체적으로 교육부의 인물이 주요 국립대들과 사립 대학들의 입장을 정리한 영상이나 설명문이 있다면 제발 밝혀주십시오. 



제 의문은 이것입니다.


1. 겉만 번지르르한 "선택의 존중"


실상 교육 내용의 양이 줄어든 것엔 일부 교원들의 입김이 있지 않은가? 교원들 간 업무량에 주효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선택이 늘어나니 수업의 질은 더욱 떨어질 것인데, 이미 공교육의 질이 평균적으로 매우 나쁘다는 것을 학생 세대도 알아챘다. 사교육 인강 체계가 더 낫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데, 하물며 온라인-오프라인 학교별 수업을 진행하면 목표한 선택의 다양화는 커녕 학생들이 학습을 스스로 진행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이전 세대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하는 세대였는데 다음 세대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세대가 될까 두렵다.


2. 그래서 가정의 경제권이 걸린 대입 계획은 구체적으로 틀이 잡혀 있는가? 아니라면 2050 탄소 중립 선언처럼 실속 없는 선언일 뿐인가?


탄소 중립 선언은 현 정부가 제시한 가장 큰 선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죠. 작은 정부는 기업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계시지만 이젠 비열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식으로 유로 국가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나요. 이건 다른 이슈이니 넘어가도록 하고, 고교학점제-대입 연동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답이 있나요? 답을 제시 못할 정부를 욕하는 게 아닙니다. 말부터 지르고 보는 정부와, 그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교육 정책들을 쥐어짜내고 있을 교육행정 5급 공무원들의 역량 낭비가 아쉬운 겁니다. 


3. 교육 평준화는 곧 하향 평준화와 같다는 수험생들의 의견이 많습니다.


특목고와 자사고 등이 사라짐으로 인해 인재들이 하향 평준화되는 것은 분명한 문제입니다. 경쟁의 벽이 더욱 높아져 중위권 층이 중도 포기하는 비율이 늘어날 것입니다. 하물며 경쟁 하위 계층에서 과연 이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현재 수능의 사교육은 분명한 차악입니다. 하지만 수능 폐지 이후 고교학점제 70% 이상을 운영한다면 차악을 넘어 최악의 사교육 카르텔이 형성될 것입니다. 정부를 쥐어 흔드는 시민 단체들이 사교육을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매년 50만 명씩 유입되는 수험생들 모두를 10년 간 실험군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계층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수능이 본격적으로 폐지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교수님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하기엔 아직 대한민국의 국민 수준이 경제 소득 수준에 비례하여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경제 상위 계층의 지식 대물림이 교수님의 이론이 현실이 되는 한 세대 동안 가속화되는 결과만 낳을 것이고, 안 그래도 심각한 저출산 문제도 수면 위로 들어날 것입니다. 차악을 택했을 때도 이미 저출산 문제는 심각합니다. 저출산이 수능 때문인가요? 정부의 정책이 일관적이지 않고 여러 사회 문제들을 시장 논리에 방치한 채 겉만 포장하는 정책들이 서민들을 전혀 돕지 못하고 있는 건 고려하지 못하시는지. 교육도 그 거대한 기둥의 겉입니다. 개정의 자그마한 시작인 만큼, 교수님의 생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야 합니다.


글이 상당히 두서 없습니다. 제가 읽으면서도 상당히 정신 없습니다. 훨씬 정교하게 쓸 수 있겠지만 그건 제 옆에 관련 서적들이 없는 관계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어차피 모아보기 밴이라서 몇 명 안 볼지도...모르지만 전 제가 충분히 이성적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 이 글을 보실 일은 없겠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급진적이어야 할 부분에선 보수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할 부분에선 너무나 급진적입니다. 교수님께서 엘리트층에 올라가기까지의 세월이 지금과 비교해서 수험생들의 불안 요소가 어떻게 다른지를 고려해주십시오. 수험생들도 사교육비가 충분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도 고교학점제와 수능 폐지에 부정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려 했는데 부담은 더 늘어난 시점에 수능 폐지를 생각하신다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으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세대에 포함되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든 의견 받습니다. 제 의견이 틀렸다는 판단이 들면 가차없이 수정하겠습니다. 마음껏 때려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