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씨 [1057707] · MS 2021 · 쪽지

2021-11-20 17:47:51
조회수 681

"죽었어예? 성적이 벌써 총살당했다 이 말이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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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흐느낀다. 눈물과 콧물이 섞여 마구 쏟아진다. 이모부의 손이 나의 들먹이는 등을 잔잔하게 두들겨 준다. 내 손을 더욱 힘있게 쥔다.


"옯붕아" 이모부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나의 눈물 젖은 눈에 이모부의 침통한 표정이 흔들린다. 이모부는 뿌드득 이빨을 간다. 그러더니 무엇인가 결심한 듯 빠르게 말한다.


"가자. 니 성적표 보여주꾸마"



느릅나무 밑, 거기에 가마니에 덮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모부가 걸음을 멈춘다. 성적표 밑으로 망해버린 국어 점수가 삐어져 나와 있다. 그러나 앞자리 수부터 6으로 덮여 있다. 나는 숨을 멈추고 이모부의 허리를 꼭 잡는다. 온몸이 어들어들 떨린다.


"이거다. 이게 니 수능 점수다. 똑똑히 보았제. 앞으로는 절대 명문대를 찾아서는 안 된다. 알겠제"


이모부는 말한다. 그리고는 내 손을 놓고 성적표를 휠쩍 뒤집는다.


아, 나는 볼 수 있었다.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나는 나의 처참한 성적을. 반쯤은 피에 가려 있고 나머지 부분은 하얗게 바래 버린 찌그러진 얼굴, 죽은 나의 성적은 한국사 1등급만을 부릅뜨고 있었다. 국어는 퉁퉁 부어 있고, 수학 성적은 커다랗게 벌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되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내 성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만 같았다. 낡아빠진 성적표 뒤로 보이는 9평 성적, 나는 10월에 그 성적을 받고 얼마나 재롱을 떨었던가! 그런데 이제 나의 성적은 그 무서운 고@속 빨간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축 늘어진 사탐 점수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제2외국어, 성적표는 분명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다.


"죽다니, 저렇게 죽고 말다니!"





나는 흐느낀다.



이모부가 내 팔을 잡는다.



나는 사납게 뿌리친다.



그리고 내닫기 시작한다.



나의 눈에는 이모부도, 실모를 자랑하던 기만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수능은 거짓부렁이야. 거짓말만 하다 죽고 말았어. 아니야, 아니야. 죽지 않았어.



거짓말처럼 죽은 체하고 있을 따름이야.



나는 헐떡거리며 집과 반대인 재수학원 쪽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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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인상깊어서 퍼왔습니다.

웃기지만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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