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위악 [728914]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21-11-18 15:54:05
조회수 2,344

기성 세대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22학년도 수능 국어 지문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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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세대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

-22학년도 수능 국어 문제를 보면서...


우선, 다음 지문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정립-반정립-종합.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변증법에 따라 철학적 논증을 수행한 인물로는 단연 헤겔이

거명된다. 변증법은 대등한 위상을 지니는 세 범주의 병렬이

아니라, 대립적인 두 범주가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가는

수렴적 상향성을 구조적 특징으로 한다. 헤겔에게서 변증법은

논증의 방식임을 넘어, 논증 대상 자체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즉 세계의 근원적 질서인 ‘이념’의 내적 구조도, 이념이

시ㆍ공간적 현실로서 드러나는 방식도 변증법적이기에, 이념과

현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이 두 차원의 원리를 밝히는

철학적 논증도 변증법적 체계성을 ⓐ 지녀야 한다.

헤겔은 미학도 철저히 변증법적으로 구성된 체계 안에서 다루

고자 한다. 그에게서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종교, 철학과 마찬

가지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절대정신은 절대적 진리인

‘이념’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을 ⓑ가리킨다. 예술ㆍ종교ㆍ

철학은 절대적 진리를 동일한 내용으로 하며, 다만 인식 형식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절대정신의 세 형태에 각각 대응하는

형식은 직관ㆍ표상ㆍ사유 이다. ‘직관’은 주어진 물질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지성이고, ‘표상’은 물질적 대상의 유무와

무관하게 내면에서 심상을 떠올리는 지성이며, ‘사유’는 대상을

개념을 통해 파악하는 순수한 논리적 지성이다. 이에 세 형태는

각각 ‘직관하는 절대정신’, ‘표상하는 절대정신’, ‘사유하는 절대

정신’으로 규정된다. 헤겔에 따르면 직관의 외면성과 표상의

내면성은 사유에서 종합되고, 이에 맞춰 예술의 객관성과 종교의

주관성은 철학에서 종합된다.

형식 간의 차이로 인해 내용의 인식 수준에는 중대한 차이가

발생한다.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의 내용인 절대적 진리는 본질적

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예술은 직관

하고 종교는 표상하며 철학은 사유하기에, 이 세 형태 간에는

단계적 등급이 매겨진다. 즉 예술은 초보 단계의, 종교는 성장

단계의, 철학은 완숙 단계의 절대정신이다. 이에 따라 ㉡ 예술종교-철학 순의 진행에서 명실상부한 절대정신은 최고의 지성에

의거하는 것, 즉 철학뿐이며, 예술이 절대정신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지성이 미발달된 머나먼 과거로 한정

된다.

(나)

변증법의 매력은 ‘종합’에 있다. 종합의 범주는 두 대립적 범주

중 하나의 일방적 승리로 ⓒ 끝나도 안 되고, 두 범주의 고유한

본질적 규정이 소멸되는 중화 상태로 나타나도 안 된다. 종합은

양자의 본질적 규정이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 질적으로 고양된

최상의 범주가 생성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헤겔이 강조한 변증법의 탁월성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기에

변증법의 원칙에 최적화된 엄밀하고도 정합적인 학문 체계를

조탁하는 것이 바로 그의 철학적 기획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가 내놓은 성과물들은 과연 그 기획을 어떤 흠결도 없이

완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미학에 관한 한 ‘그렇다’는

답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성의 형식을 직관-표상-사유 순으로

구성하고 이에 맞춰 절대정신을 예술-종교-철학 순으로 편성한

전략은 외관상으로는 변증법 모델에 따른 전형적 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 내용을 ⓓ 보면 직관으로부터 사유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외면성이 점차 지워지고 내면성이 점증적으로

강화ㆍ완성되고 있음이, 예술로부터 철학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객관성이 점차 지워지고 주관성이 점증적으로 강화ㆍ완성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날 뿐, 진정한 변증법적 종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관의 외면성 및 예술의 객관성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감각적 지각성인데, 이러한 핵심 요소가 그가 말하는 종합의

단계에서는 완전히 소거되고 만다.

변증법에 충실하려면 헤겔은 철학에서 성취된 완전한 주관성이

재객관화되는 단계의 절대정신을 추가했어야 할 것이다. 예술은

‘철학 이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이다. 실제로 많은

예술 작품은 ‘사유’를 매개로 해서만 설명되지 않는가. 게다가 이는

누구보다도 풍부한 예술적 체험을 한 헤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방법과 철학 체계 간의 이러한 불일치는

더욱 아쉬움을 준다.

==============================


이 글은 2022학년도 국어 4~9번 문제 풀이를 위한 지문입니다.


저는 이 지문을 보면서 정말로 씁쓸했습니다. 


‘수능 문제를 이렇게 어렵게 내야 하느냐’에 대한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기존 권력’이, 그리고 ‘기성세대’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를 보는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 특히 인문대나 사회대에서는 독일 철학자 헤겔(1770~1831)을 모르면 안 됐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이나, 그 변증법을 역사관으로 발전시킨 사적 유물론은 마치 ‘사고에서의 바이블’ 같은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대, 그리고 사회주라라는 ‘합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고, 그를 위해 철학의 한 방법론인 변증법은 절대적인 방법론으로 인식됐습니다. 최소한 서울대 인문대와 사회대에서는 그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병아리 때 쫒기면 장닭이 돼도 쫒긴다’고 하죠?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설령 당시 좌파가 우파가 되고(물론 그 반대 경우도 있겠지요.) 사회주의적 이념을 버렸다손 처도, 순백의 20대 때 배운 것을 나이 들어서도 버리기가 쉽지 않지요. 기실, 아는 게 그것 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고요. 


지금은 2021년입니다. 헤겔의 말했던 ‘절대정신’ 같은 것을 여전히 믿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입니다. 19세기 이후 급속히 발전한 물리학을 바탕으로, 인간은 빅뱅 이후 탄생한 원소의 화합물이며, 육체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정신’도 결국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작용의 결과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한데 여전히 18세기~19세기 전반 때의 ‘절대정신’을 이야기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요? 도대체 ‘절대정신’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 것인가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밝혀낸 이후, 그것의 여파로 양자역학이 탄생했습니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지식이 극미의 세계에서는 무용한 것임을 숱하게 드러냅니다. ‘더블 슬릿 실험’을 통해, 전자는 우리가 관측할 때와 관측하지 않을 때 그 움직임이 다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생명의 진화 역시 ‘합목적’이라는 것은 아예 없습니다. 우연에 의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것 중 생명력이 강한 것이 살아남으며 진화한 것이지, 진화에 어떤 방향성이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6500만 년 전 공룡의 멸종이 ‘진화의 합리적 단계’를 거치면서 있을 수밖에 없던 사건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절대정신을 이야기하자고요? 도대체 21세기 중엽을 이끌어갈 10대 후반의 젊은이들에게 아래와 같은 지문을 읽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에게서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종교,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절대정신은 절대적 진리인 ‘이념’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을 가리킨다.”(22학년도 국어 수능 지문 중에서.)


‘절대 진리’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세계에서, 결국은 한쪽으로는 사회주의 탄생에,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나치 탄생에 영향을 준 헤겔 철학(‘절대정신’을 그리도 강조하니, 헤겔 철학은 결국 역사 해석도 ‘절대’니 ‘합목적적 방향’ 등으로 갈 수밖에요. 그것이 종착점 중 하나가 현실적으로 (국가) 사회주의가 된 것이고요!)을 읽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요?


헤겔 철학이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철학사를 전공할 사람에게 헤겔은 여전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근현대 철학을 공부할 사람이라면 헤겔은 반드시 공부하고 넘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수능은 대한민국에서 대부분 젊은이가 통과의례로 거치는 시험입니다. 그 사람이 미래를 이끌어갈 ‘지적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테스트하는 시험입니다. 그중 국어 시험은 그 사람의 ‘문해력’ 혹은 ‘언어능력’을 보는 시험이고요. 그런 시험에서 굳이 ‘철 지난’ 철학 지문을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요? 


그보다는 현실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지문을 채택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극미를 다루는 양자역학과 거시 세계의 관계, 그리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극미와 거시의 관계, A.I.와 인류의 미래 등 우리가 지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지적하는 지문도 숱할 겁니다. 그런데도 수능에서 ‘철 지난’, 게다가 현실적으로 맞지도 않는 이론을 들이민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국어 문제를 낸 사람들의 전공이 문과일 겁니다. 배운 게 ‘문과 쪽’이니, 문제도 그쪽으로 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요즘 수능 국어 지문은 예전과 달리, 과학 쪽 문제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세상의 지적 흐름을 생각한다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고 저는 봅니다.

 

게다가 문제 낸 분들의 나잇대 역시 40대나 50대가 주를 이룰 겁니다. 그들이 소위 인문학을 배울 때 헤겔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배웠을 테지요. 그러니 철 지난 ‘절대정신’ 운운하는 글이 2022학년도 수능에 국어 지문으로 등장한 겁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수능에 이런 지문이 나오면, 내년부터 국어 자습서 지문에 헤겔 등의 철학 지문이 많이 나올 것이며, 국어 강사들 역시 “22학년도 수능에 이런 지문이 나왔다”며 이와 유사한 지문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철이 한참 지난’ 철학의 흐름을 ‘지적으로는 순백의 상태’인 10대 후반 학생들이 받아들이면서, 체화하게 될 것입니다. 출제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과정을 통해 기성세대는 뒷 세대에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터이고요. 그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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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히또애플민또 · 462930 · 21/11/18 17:22 · MS 2013

    요즘 입시판 빨리탈출하고 하고싶은공부하는게 답이라고생각합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18 17:41 · MS 2017 (수정됨)

    맞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초수에 임용 통과하소서. 기원합니다.

  • 성남고 조경민 · 875628 · 21/11/19 14:41 · MS 2019

    헤겔 철학이 물론 한계가 뚜렷하지만 20세기까지의 인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고, 교양이 있는 성인이라면 그 대강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의 사람이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주의의 개념과 그 역사를 아예 모르는 것 또한 문제인 것처럼요. 헤겔 철학은 어찌 되었든 인문학을 공부하면 한 번은 마주할 과거의 거두고, 올바른 교육은 그런 내용이 구닥다리라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용의 개략을 알고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게끔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해당 지문의 (나) 내용은 그러한 비판적 독해 방식으로 이루어져, 문제에서도 헤겔 철학을 학생이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저는 출제 내용에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19 15:02 · MS 2017

    글쎄요, 저는 생각이 조경민 선생님과 완전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나)의 내용을 근거로 지문에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헤겔 철학을 근거로 한 사고'일 뿐이 아닐지요. 저는 헤겔 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정신이나 이념이 과연 21세기에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신(superstition)에 대한 비판을 '과학'으로 하는 것과 '미신 내적 사고'로 비판하는 것이 과연 같을지요.

    수능 국어 지문에서 예를 들어 "20세기 전반기까지 헤겔 철학의 영향은 소비에트나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성립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독일 관념철학의 영향 아래 성립된 소비에트 혹은 사회주의의 현실적 몰락은(소비에트가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관을 지니고 있다고 사적 유물론이 유물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죠? 사적 유물론은 철저한 관념론의 후예일 뿐입니다.) 절대정신이니 이념이니 하는 관념적 철학의 몰락을 현실로 표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면 이는 조금 맥락이 다릅니다.

    한데 이 지문이 과연 이런 맥락에서 성립한 지문이었는지요?

    그래서 제가 '철학사적 측면'에서 헤겔을 알 필요는 있지만, 미래를 이끌 차세대의 지적 테스트를 위한 시험에서 헤겔이 등장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이냐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조경민 선생님의 말씀 대로라면, '어떤 연금술사에 대한 비판을 연금술적 관점에서 비판한 것' 역시 국어 지문에 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연금술 역시 근대 화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한데 과연 그런 식의 지문이 등장할 수 있을까요?

  • 성남고 조경민 · 875628 · 21/11/19 15:14 · MS 2019

    철학은 보통 사용할 개념과 정의를 제시하고, 그를 바탕으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서 논증합니다. 헤겔의 역순으로 칸트, 스피노자, 데카르트,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지금 회자되는 철학자들이 했던 작업이 이런 것이고요. 그런데 이전의 철학 체계를 비판하는 작업은, 그 철학의 체계 내부에 모순이 있음을 밝혀내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가령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의 경우, 그 지식과 상충하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에 반박되지만, 과거의 철학적 지식, 특히 형이상학은 '그 지식 내부의 모순'이 논증됨으로써 반박되었죠. 이런 과정 자체가 상당히 논리적이기에, 이를 공부하는 이들의 사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의 분석철학, 과학철학, 인식론 등의 분야에서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과학과 마찬가지로 비판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2022예비시행의 동일론 지문, 2022 9월 모의평가 자유의지 지문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서술되었고요. 가령 연금술에서 주장하던 사실과 논리가 있는데, 그것이 내부적으로 모순이 있음이 밝혀진다면 연금술을 비판할 충분한 논거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연금술은 과학적 '사실'로도 반박이 가능하지만요...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19 15:20 · MS 2017

    논리 자체를 말씀하신다면, 연금술 역시 당대의 시각으로는 충분히 논리적입니다. 한데 지금은 21세기입니다. 특정 연금술을 연금술 내부의 논리로 비판하는 글을 지금 모든 이들이 교양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제 이야기는 그것입니다.

    스피노자니 아리스토텔레스니 모두 당대의 천재들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에서, 수능이라는 사실상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이들의 지적 테스트에 지문으로 등장시킬 필요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등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성이 있고, 요즘 시각으로 지식과 교양으로 손색이 없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문에 그 논리나 이야기의 뒤떨어짐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왔어야 하고요. 한데 저 지문에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이념'에 대한 비판이 있나요? 헤겔의 미학론이 아니라, 그의 철학의 중심이 되는 절대정신이나 이념에 대한 비판 말입니다.

    논리력을 기르려면 음악으로 기를 수도 있고, 체육으로 기를 수도 있습니다. 축구의 전술도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21세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헤겔의 절대정신을 논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절대정신이 무엇인지, 우리 여기서 한 번 논해야 하나요?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19 15:22 · MS 2017

    아마 선생님이 쓰신 글에 대한 저의 두번째 댓글을 보지 않고 댓글을 다신 듯 합니다. 시간을 보면... 선생님이 다신 댓글에 올린 저의 두번째 댓글을 보십시오.
    선생님이 여기서 제기하신 문제에 대한 제 비판이 이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19 15:03 · MS 2017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19 15:09 · MS 2017 (수정됨)

    국어 시험은 결국 문해력 그리고 언어력에 대한 평가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평가는, 미래를 이끌 세대가 적절한 교양과 지식을 '글과 말을 통해 갖춰가고 있는가'에 근거해야 한다고 봅니다. 21세기에 절대정신과 헤겔식의 '이념'을 이야기하는 게,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헤겔의 미학론과 철학론에 모순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인지요.

    지문을 보니 해당 지문은 어떤 미학자의 글을 옮겨서 축약한 것으로 보이는데... 저는 저런 식의 이야기는 철학사 전공자나 미학사 전공자라면 몰라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는 들려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지문을 낼 것이라면, 광신적 종교를 지지하는 지문도 나올 수 있고, '기독계 세계에서 파문(excommunication)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아무런 비판도 없는 상태로 말입니다.

    더 나아가, 저런 식의 지문이 등장함으로써 앞으로 21세기 중반을 이끌 미래세대가 이제는 현실적으로 통용되지 못하는 헤겔 철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 슬프기까지 합니다.

    인문학 전공자인 제가 대부분의 소위 인문학자들을 혐오에 가깝게 싫어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스티븐 호킹이 '그랜드 디자인'이라는 책의 서문에 쓴 이야기를 하며 글 맺습니다.

    "중세까지 지식의 담지자는 철학자들이었다. 근대 이후 그것은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에게 넘어왔다. 철학자들은 물리학 등 근대 과학을 너무 모른다."

  • 4taeng · 388422 · 21/11/24 20:56 · MS 2011

    이런 좋은글에 댓글이 많이 없다니... 잘 읽고 갑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1/24 21:15 · MS 2017

    안타까워서 썼습니다.

  • pelar · 794098 · 21/12/01 09:49 · MS 2017

    이런식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잘 읽었습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01 10:38 · MS 2017

    뭐 제 생각이 100% 옳으려고요. 다만 586인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서 586이 추하게 느껴지는 것이고요. anachronist가 많은 세대라는 점에서요...

  • 롤리짠 · 1093373 · 21/12/16 21:23 · MS 2021

    철학이 첨단 기술가치를 지향하는 미래사회에 당장의 도구적 가치는 지니지 못한다는 것. 나아가 헤겔의 절대정신과 같은 관념론이 오늘날 현실성에 부합하지 않고있고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점 또한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근본적으로 참과 거짓 내지 옳고 그름 등을 따져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알아내는 학문으로서 논리성을 추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선철들의 사유와 논증을 학습한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04 · MS 2017

    정성스런 반론 감사합니다. 님의 글을 축자적으로 반박합니다.
    위에 조경민이라는 분도 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결국 같은 맥락으로 반박하는 게 아쉽기는 합니다.

    ============================================
    님의 말씀===철학이 첨단 기술가치를 지향하는 미래사회에 당장의 도구적 가치는 지니지 못한다는 것. 나아가 헤겔의 절대정신과 같은 관념론이 오늘날 현실성에 부합하지 않고있고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점 또한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반박=== 제가 쓴 글에서, ‘당장의 도구적 가치’에 대해 제가 이야기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도구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판 뉴튼의 재림이라고 옥스브리지에서 불렸던 수학자 고트프레이 헤롤드 하디(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을 발굴했던 분입니다.)는 말년에 쓴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수학이 어떤 유용성을 갖는가에 대해 나 역시 숱하게 고민했다. 수학은 유용성으로 따졌을 때 별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수학이 쓸모가 없나요? 물론 하디 역시 수학이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왜 “물리학자는 수학자를 경배하고, 수학자는 오직 신만을 경배한다”고 이야기를 할까요? 그 어떤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학의 정신’에 대해 찬양하는 겁니다. 수학의 유용성이 아니라!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옳고 그름입니다. 유용성이 아니고!

    *이 댓글에 대한 반박이 1000자가 넘는다는 이유로 잘리네요. 해서 글을 뒷편으로 이어붙입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04 · MS 2017 (수정됨)

    본 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님이 지적한 바, ‘절대정신이나 이념 등을 강조하는 헤겔류의 관념론이 오늘날 현실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가 비판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적시해주시겠습니까? 어떤 문장에서 그렇게 제가 이야기를 했나요?

    저는 유용성에는 혹은 현실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옳고 그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며, 그것이 기실 근대 과학정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을 때, 더 정확히 말한다면 옳고 그름을 증명할 수 없을 때에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물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탤런트 김태희가 예쁜가, 송혜교가 예쁜가 등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고, 따질 필요조차 없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 글을 비판하시는 것은 좋은데, 제 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먼저 정확히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비판의 출발점은 사실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라고 저는 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한 바는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이나 이념이 과연 ‘사실인가, 아닌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정신이나 이념이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로 인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됐다면, 이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글을 모든 국민이 배울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본문과 댓글 등에서도 썼지만 일례로, 연옥에 대한 중세 철학자들의 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지문이 수능에 등장할 필요가 있을까요?(뒤로 이어짐)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06 · MS 2017

    님의 글==다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근본적으로 참과 거짓 내지 옳고 그름 등을 따져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알아내는 학문으로서 논리성을 추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선철들의 사유와 논증을 학습한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반박== 예, 바로 저 역시 이 점을 말하는 겁니다.

    님이 하신 말씀처럼, 절대정신과 이념이 과연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인가요? 절대정신과 헤겔 식의 ‘이념’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한데 만약 ‘실재’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혹은 사실인 양’ 받아들인 것이라면, 우리가 그런 내용을 왜 배워야 하나요? 본 글과 앞의 댓글에서도 말했지만, 21세기를 이끌 세대가 ‘중세에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들을 파문했던 교황의 권고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요?

    수능 지문에서 ‘헤겔의 관념론’에 대한 ‘진정한 비판’이 있었다면 오케이입니다. 한데, 저 글의 필자는 미학자로서(필자는 저와 같은 84학번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보입니다. 역시...) 헤겔의 관념론 중 ‘미학을 철학 단계에서 가장 아래로 치는 사유 방식’에 대해 비판한 것입니다. 저 지문에서 절대정신이나 이념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이 보이나요? 보인다면, 어디서 보이는지 적시해주시겠습니까?

    선철들의 사유와 논증을 학습한다? 좋지요! 그럼 현재 지식 단계에서 비판적으로 학습해야지요. 19세기 이후 물리학 발전은 결국, 인간의 정신 역시 신경화학물질의 작용 결과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이 이야기, 도대체 몇 번을 해야 하는지요!) 이를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집을 통해 ‘집대성’합니다. dna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리크가 ‘슈뢰딩거 키즈’의 대표주자였지요. 한데, 21세기를 이끌 대한민국의 10대 후반의, 그것도 ‘지적으로는 아직 백지 상태나 다름 없는’ 청춘들이 여전히 절대정신과 이념을 배워야하나요? 실재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이것이 철학적 사유의 방식인가요?

  • 롤리짠 · 1093373 · 21/12/16 21:23 · MS 2021

    또한, 학문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것 같습니다. 고대에서 중세까지만해도 자연과학이 발달되지도 않았거니와 철학이라는 학문의 의미가 당대 여타 모든 학문을 망라해 지칭하던 것이기도 했지요. (가령, 이런 이유로 서울대 백종현 교수님은 강연에서도 철학의 의미를 근대이전과 이후로 구분시키시더군요.) 그러나 중세이후, 특히나 근대이후에 와서는 철학에서 과학이 분과 되었으며 새로운 영역으로 발돋움 하면서 철학은 형이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학문으로서 자리잡게 되었죠. 따라서, 앞서 말씀하신대로 물리학이나 근현대적 과학이론을 철학자들이 담지하고 있다면 그로써 견문을 넓힐 수는 있겠으나 오늘날에 있어 그것이 철학자들의 역할이 아니게 되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현실의 흐름이라는 말씀에 부합하려면 현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인 신기술 즉, 첨단과학이 부합할 것이고 그래서 안타깝게도 인문대학생들의 취업률이 저조하죠. 이는 현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향방이 갈리는 문제다보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금 시기상조인 것이지 과학이나 (헤겔의 관념론을 포함해)철학이나 다른 모든학문도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유용성이 없다 할 순 없겠습니다.

    뿐만아니라, 당대 철학자 쇼펜하우어 또한 헤겔철학의 그러한 점들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었죠. 그러나 말씀하셨듯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수험생들의 전인적인 능력을 검토하기 위한 바이지 주객합일적 절대정신이라는 이론을 당장 도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것이죠. 또한, 이 이론이 유용하지 않다고 해서 또 학문이 옛것이라고 해서 현재 수험생들이 (언급하셨듯)“현실적으로 통용되지 못하는” 구태학문을 답습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수험생은 헤겔의 사상을 바탕으로한 지문에 입각에 자신의 문해력, 독해력, 추리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해서, 이러한 헤겔의 사유와 논증을 출제하는 것이 기성세대가 권력을 유지하려한다고 보기에는 비약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수능에서는 철학, 경제,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다분화하여 출제하고 있어 그것이 권력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말씀에 어폐가 있지않나 합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19 · MS 2017 (수정됨)

    님의 글=== 또한, 학문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것 같습니다. 고대에서 중세까지만해도 자연과학이 발달되지도 않았거니와 철학이라는 학문의 의미가 당대 여타 모든 학문을 망라해 지칭하던 것이기도 했지요. (가령, 이런 이유로 서울대 백종현 교수님은 강연에서도 철학의 의미를 근대이전과 이후로 구분시키시더군요.) 그러나 중세이후, 특히나 근대이후에 와서는 철학에서 과학이 분과 되었으며 새로운 영역으로 발돋움 하면서 철학은 형이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학문으로서 자리잡게 되었죠. 따라서, 앞서 말씀하신대로 물리학이나 근현대적 과학이론을 철학자들이 담지하고 있다면 그로써 견문을 넓힐 수는 있겠으나 오늘날에 있어 그것이 철학자들의 역할이 아니게 되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반론=== 앞선 댓글에서 님께서는 철학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다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근본적으로 참과 거짓 내지 옳고 그름 등을 따져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알아내는 학문으로서 논리성을 추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선철들의 사유와 논증을 학습한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데 이번 댓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물리학이나 근현대적 과학이론을 철학자들이...(중략) 오늘날에 있어 그것이 철학자들의 역할이 아니게 되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거,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철학은 분명 ‘참과 거짓, 그리고 옳고 그름 등을 따져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알아내는 학문’이라고 하신 분이 어떻게 19세기 이후 확장된 진리의 세계, 사실의 세계에 대한 ‘철학(자)의 무지’에 대해 면죄부를 주시려고 하나요?

    알아야 합니다, 철학자들은 근대 이후 과학의 흐름을. 예를 들어,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인간의 정신이 결국은 신경화학물질의 작용 결과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입니다. 모든 것은 지구 중심이라는 생각은 깨진 지 500년도 넘었지요.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 그럼에도 언젠가는 팽창을 멈춘 뒤 다시 수축할 ‘수’도 있다는 것(예, 수축할 ‘수’도 있는 겁니다. 수축이 아니고!), 시간과 공간은 ‘한 몸’이라는 것, 전자의 움직임은 우리가 관측장비를 동원했을 때와 동원하지 않았을 때 달라진다는 것(더블 슬릿 익스페리먼트) 등을 다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합니다. 철학의 출발점이 뭔가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에 대한 이해입니다. (뒤로 계속)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19 · MS 2017

    한데, 그것을 모르는 태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순간, 님이 애초 말씀하셨던 철학의 본령은 사라지게 됩니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요?

    님은 ‘근대 이후 철학은 형이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셨는데 님이 말하는 ‘형이상’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실재로서 증명된 철학의 대상인 형이상이 뭔지, 그것부터 명확히 밝혀주시겠습니까? 헤겔류의 절대정신요? 이념요?

    저에게 헤겔류의 절대정신이나 헤겔류의 이념은 중세 교부철학자들의 ‘연옥론’이나 마찬가지처럼 보입니다. 근거도 없는 종교 같은!

    님이 미신을 믿든 종교를 믿든 저는 관심 없습니다. 그러나 수능 국어 지문에 미신이나 종교의 이야기가 무비판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고 봅니다. (뒤로 계속)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29 · MS 2017

    님의 말씀== 현실의 흐름이라는 말씀에 부합하려면 현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인 신기술 즉, 첨단과학이 부합할 것이고 그래서 안타깝게도 인문대학생들의 취업률이 저조하죠. 이는 현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향방이 갈리는 문제다보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금 시기상조인 것이지 과학이나 (헤겔의 관념론을 포함해)철학이나 다른 모든학문도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유용성이 없다 할 순 없겠습니다.

    반박===재차 강조하는데, 저는 ‘현실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한 적도 없고요. 마치 어떤 패션이 유행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같은 현실의 흐름에 대해 제가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있다면 적시해주세요.

    저는 오로지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집니다. 본 글도 그렇고요. 그러니 님이 말씀하신 신기술이나 인문대생들의 취업률 저조 등에 대해 저는 전혀 관심조차 없습니다. 제 글에 대한 님의 비판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오독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서울대 인문대 사학과 출신으로 기자를 하다가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제 책 역시 ‘현실의 흐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현실의 흐름에 역행하는 글이었지요. 두 책 모두, 서울대 국사학과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신라인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삼국이 아니라, 삼한을 통일했다고 생각했다’는 글을 모든 사료를 전수 조사해서 증명했습니다.(졸저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 학고재 간, 2017년) 이게 현실의 흐름에 부합하는 책이라고 보시나요?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뭐가 있을까요? 아뇨, 전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책을 썼습니다. 옳고 그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라인들의 통경의식(통일과 국경에 대한 의식)에 대한 한국사학계의 잘못된 사고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서요.

    이런 이야기까지 구질구질하게 쓰는 이유는 님께서 저를 오해했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저는 현실의 흐름이니 유용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애초 수능 국어 지문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요.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45 · MS 2017

    님의 말씀==뿐만아니라, 당대 철학자 쇼펜하우어 또한 헤겔철학의 그러한 점들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었죠. 그러나 말씀하셨듯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수험생들의 전인적인 능력을 검토하기 위한 바이지 주객합일적 절대정신이라는 이론을 당장 도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것이죠.

    비판=== 앞선 댓글, 조경민 선생님도 이런 이야기를 하셔서 제가 비판을 했는데 또다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하,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하나요.

    자, 수능을 왜 칩니까? 미래 세대를 이끌 젊은이들의 지적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그 테스트 문제 자체는 진리여야 합니다. 참이어야 합니다.

    이번 수능 생물 20번 문항인가가 왜 문제가 됐나요? 사실로서, 실재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논리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자연에는 존재할 수 없는 ‘마이너스 개체 수’가 논리 도출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45 · MS 2017 (수정됨)

    그렇다면 헤겔 지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정신이 뭔가요? 절대적 정신으로서의 이념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요? 현대 과학은 절대정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지 오래입니다. 거의 100년이 됐어요. 한데 왜 ‘이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지문’(수능 지문에서 나온 비판은 앞서 말했든 절대정신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헤겔의 미학 이론에 대한 비판입니다.)을 미래 세대의 지적 테스트 때 등장시키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생명과학 문제에서의 ‘음수 개체 수’처럼 말입니다.

    ‘절대정신이라는 이론을 당장 도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것’이라고 님은 말씀하셨는데, 님은 지속적으로 제 글을 ‘유용성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 한다’는 오독을 통해 접근하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원주율을 소수점 만 자리 아래로까지 계산하는 것의 유용성은 도대체 뭘까요? 제가 ‘원주율을 소수점 만 자리 아래까지 계산하는 것은 유용성이 없으니까, 그런 행동은 의미가 없다”고 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실체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저는 그런 행위에 대해 높게 평가합니다. 저는 절대정신이니 이념이니 하는 말이 유용성이 없고, 도구적 유용성이 없기 때문에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겁니다.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절대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연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나 도대체 다를 바가 뭔가요? 실재가 아니고,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유용성, 혹은 공리적 태도에 대한 저의 경도로 보이시나요?

    롤리짠 님. 댓글은 다섯 개를 초과해서 붙일 수 없다고 합니다. 해서, 아래에 독자적인 댓글로 이어집니다.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49 · MS 2017

    롤리짠 님의 말씀== 또한, 이 이론이 유용하지 않다고 해서 또 학문이 옛것이라고 해서 현재 수험생들이 (언급하셨듯)“현실적으로 통용되지 못하는” 구태학문을 답습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수험생은 헤겔의 사상을 바탕으로한 지문에 입각에 자신의 문해력, 독해력, 추리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반박===또다시 유용성이 나왔으니 이 단락은 반박하지 않아도 이제 제 논지를 이해하시겠죠? 님처럼 ’요컨대 수험생은 헤겔의 사상을 바탕으로(중략) 발휘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겠다면, 중세 교황의 연옥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지문도 수능 국어에 나올 수 있고, ‘굿을 하면 병을 고친다’는 지문도 무비판적으로 수능 국어 지문에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장을 통해서도 수험생들은 자신들의 문해력 독해력 추리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문장, 수능 국어에 등장하는 것을 바라십니까?

    한데, 이런 이야기, 이미 조경민 선생님과도 다 나눈 것인데....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2:59 · MS 2017

    님의 말씀==해서, 이러한 헤겔의 사유와 논증을 출제하는 것이 기성세대가 권력을 유지하려한다고 보기에는 비약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수능에서는 철학, 경제,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다분화하여 출제하고 있어 그것이 권력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말씀에 어폐가 있지않나 합니다.

    반박== 어떤 비약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 글의 저자가 드러났지요? 서울대 미학과 84학번으로 독일에서 유학한 분이랍니다. 그 분이 대학 시절, 무슨 공부를 했을까요? 헤겔이나 칸트류 말고 말입니다. 저 역시 당시는 그랬으니까요.

    20세기 이후, 우리의 지식 체계를 코페르니쿠스 이상으로 뒤흔든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공간론, 빛의 성질,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양자역학에 대해 도대체 무슨 공부를 했을까요? 이것은 이 글의 저자에게만 돌리는 비판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586 인문학도들을 모두 포함해서 던지는 비판입니다.
    20세기 물리학이 이룬 휘황한 성과를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본질적으로 변했는지, 저를 포함한 속칭 인문학도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공부했나요? 이것이 철학의 영역, 인문학의 영역이 아니라고요? 그럼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본질적 이해에 눈을 감은 인문학이 과연 성립할 수 있나요?
    수능에서 수학 철학 경제 역사 과학 등의 지문이 등장하는 것을 누가 반대합니까? 하지만 ‘음수 개체 수’처럼 논리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글이 등장하니 비판하는 것이지요.

  • 위선과 위악 · 728914 · 21/12/16 23:02 · MS 2017

    다시 정리합니다. 본문에서도 이미 다 말한 이야기이지만...

    이 글은 철학사를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도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이끌 젊은이들의 지적 테스트를 위한 글로써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연옥론에 대한 글, 굿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글 등이 무비판적으로 수능 국어 지문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말입니다.

  • 롤리짠 · 1093373 · 21/12/16 23:46 · MS 2021

    차분히 반론을 읽어보니 헤겔철학에 대한 선생님의 고견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 섣불리 이런말을 해도 되나 싶지만 너무나 추상적인 사상이고 말씀대로 실재도 없는 교조주의적인 말들이라는 부분에서는 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글의 종류를 막론하고 필자 그리고 독자가 무비판적으로 적고 읽었다는점과 철학에 대한 정의에 있어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던 점도 깊이 반성합니다. 일개 고등학생이 두서없이 호기롭게 휘갈긴 글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반성하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깨달음 얻고갑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HYDRA · 886118 · 21/12/19 14:34 · MS 2019

    ㄹㅇㅋㅋ
    낼 거 드럽게 많은 요즘 정보 과포화 시대에 개떡같은 주제로 출제하는게 이해 안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