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특강과 수능의 규칙성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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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찍기 법칙의 원조격인 ‘답 갯수 법칙’이 생겨났던 필연은 누구나 그 이유를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객관식 무지성 1자 찍기를 했을 때의 형평성 때문이죠.
하지만 20수능 수학 가형에서, 당시 객관식 킬러 번호였던 21번의 답은 5번이었고 5번의 갯수가 총 6개였습니다. 1번이 3개 나왔죠.
그 해 수학 가형에서 1번으로 무지성 찍기를 한 학생은 객관식에서11점을 받았겠지만, 5번으로 무지성 찍기를 한 학생은 객관식에서 20점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번호 하나 잘 골랐다고 점수 차이가 2배나 나다니, 그 해 평가원이 숫자 5에 페티쉬라도 있었던 걸까요?
교수님들은 자기가 낸 문제를 학생들이 무지성으로 맞추려 드는 걸 매우 싫어하시는 분들인데 그럴 리가요. 누구를 저격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그 해 7컷이 22점이었기 때문에, 5번으로 밀었던 학생은 24점으로 7등급을 받을 수 있긴 했을 겁니다. 주관식에도 답이 5인 문항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답이 1인 주관식이 없었기 때문에 1번으로 민 학생은 그대로 11점이었겠죠. 그 해 8컷이 13점이었기 때문에 9등급 당첨입니다.
역시 인생 한 방! 숫자 하나 잘 골라서 등급이 2개나 상승하는군요!
하지만 9등급이 7등급이 됨으로써 얻는 이익은 없습니다. 4합이 아닌 이상 수시 최저등급 계산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힌 4합의 경우에는 다른 영역에서 올 1등급을 받아도 두 자릿수가 되기 때문에 광탈입니다. 애초에 17111을 받은 학생이면 의도적인경우가 많고 설사 그게 진짜로 수학만 빼고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학생은 원서를 전략적으로 알아서 잘 쓸 테니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20수능 가형 21번 문제는 꽤나 논리 구조를 신경써서 만든문제입니다. 아마 출제하신 교수님도 이런 문제를 낸 자신에게 내심 뿌듯하셨는지 찍어서 맞추는 학생이 나오는 꼴을 정말 보기 싫으셨나 봅니다.
선지 구성에서 무조건 ㄱ이 맞다는 걸 눈치 챌수 있었는데, 선지가 ㄱ ㄴ ㄱㄴ ㄱㄷ ㄱㄴㄷ였거든요. ㄱ이 거짓이 되는 순간 답이 2가 나오기 때문에 2번이 답일 리 없다는 사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주로 이 선지 구성은 내가 이 문제에서 ㄱ을 내주더라도 난 네가 이 문제를 끝까지 풀지 않는다면 니가 내년에 있을 곳을 아무리 확률을 높여도 반반의 확률에 걸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내는 선지인데, 한 발 더 나갑니다. 이미 20번 전까지 5개가 나왔고 심지어 무조건 ㄱ이 참인 상태라 사실상 4지선다인 상태에서 흔히 말하는 ㄷ지우기 스킬을 쓰면 ㄱ X ㄱㄴ ㄱ ㄱㄴ가 되기 때문에, ㄴ까지 참이란 걸 밝힌 학생들은 5번이 이미 5개 나왔기 때문에 3번을 찍고 틀렸을 겁니다. 답은 5번이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이 문제의 정답률은 EBS 기준 45%로 꽤 높았는데, 무지성 ㄱㄴㄷ 믿찍 5가 통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문항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저격 대상이 정해져 있었던 겁니다.
먼저 이 문제에서 5번을 찍을 학생은 크게 시험지 받자마자 쭉 한 번호 찍고 잔 학생 중 5번을 고른 학생은 앞서 설명한 이유로 저격에서 제외됩니다.
또한, 21번 문제가 ㄱㄴㄷ인 걸 보자마자 묻따않믿찍5를 시전한 학생도 마찬가지 이유로 제외했을 거구요. 객관식에서 이미 어딘가 틀려서 5번 갯수가 어긋난 상태에서 5번 갯수에 문제가 없으니 ㄱㄴㄷ믿찍5를 시전한 학생의 경우 역시 비슷한 이유로 평가원이 이 문제의 저격 대상에서 제외했을 겁니다.
반면, 이 문제에서 저격한 학생은 2130 빼고 다 풀어서 맞춘 뒤 21번을 ‘합리적으로’ 찍고 남은 시간을 30번에 쏟아붓는 학생입니다. 이 학생이 30번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면 21번을 버리고도 ‘합리적인 찍기’로 맞춘다면 100점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학생이 나오면 문제를 열심히 출제한 교수님들 입장에서 속된 말로 킹받지요. ㄷ지우기 법칙을 적용하든, 답갯수를 적용하든, ㄱㄴ까지 풀고 ㄷ지우기 법칙과 답갯수를 함께 고려하든, ㄷ을 풀지 않았다면 실제 정답이었던 5번을 피해가려 할 테니까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학생은 제대로 풀어놓고 보니 5번이 6개 나와서 스스로 나온 답에 확신이 안 서서 꼬여버리는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30번까지 풀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29문제를 풀고 간단히 검토한 뒤 30번에 들어가는 학생들 중에는 5번 선지가 6개 나와서 당황해서 자신이 5번을 고른 모든 객관식 문항을 다시 풀어보려 했을 겁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요. 이렇게 시간 부족 이슈로 30번을 날려먹거나, 멀쩡히 푼 답을 고쳐서 두 문제를 동시에 보내버리는 일도 있겠지요. 게다가 만약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멀쩡히 푼 답까지 고쳐서 최소 8점을 날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영어와 탐구는 맨정신으로 풀 수 없게 될 겁니다.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자신이 푼 답이 찍기 법칙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면,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겁니다. 수능에서는 스스로에게 자의식 과잉을 가져도 됩니다. 평가원이 특정 부류, 특정 강사 수강생, 특정 커뮤니티 메타를 저격하기 위해 뜬금없이 시험 내외적으로 존재하던 규칙성을 뒤엎는 행동은 9년 전 13수능 때부터 정말 유구하게 해 온 일입니다. 저번 글에서 EBS 연계 도입 첫 해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제가 사실 이 때 TFT 수강생이었는데 외국어영역에서 저격당하고 그 해 수능을 113321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유명 강사라도 평가원이 마음 먹으면 자신을 완전히 저격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있죠. 그리고 그 이유는 저도 대학 3학년이 되고 나서 추상대수학 수업에 들어가서 깨달습니다. 학사와 박사 사이에는 정말 넘을 수 없는 깊이의 갭이 있거든요. 심지어 박사생과 정교수 사이에도 무한한 은하수 같은 갭이 있습니다. 애초에 박사생들을 지도하는 게 바로 그 교수님들이니까요.
사실 원래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저도 나름 같이 수능 보는 수험생인데 수능 전에 너무 사기를 떨어트리는 얘기를 한 것 같으니 대학생활 얘기로 약간의 공부 자극으로 마무리 해 볼게요. 저희 과에서 축제 때 주점을 열었는데, 고등학생 수준의 간단한 수학 퀴즈를 곁들인 주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천막 양 쪽 끝에 온도계 두 개를 놓고 두 온도계가 같은 온도를 가리키고 있을 때, 지금 이 천막 안에는 이 온도와 같은 온도를 가진 지점이 반드시 한 곳 있을까요? 식의 퀴즈를 내는 주점이었어요. 임의의 두 지점 사이의 임의의 경로는 연속함수이므로 사잇값의 정리에 의해 반드시 존재한다…식의 간단한 대답으로 오케이였는데, 망했어요. 게다가 수학과 전공수업에 타과 학생은 가끔 물리학과 애들 중에서도 고도의 덕후들이나 들으러 오는 정도라서 풋풋한 타 과 뉴페이스와의 만남 그런 거 없습니다. 20대의 청춘을 꽃피우고 싶다면 수험생 시절에 수학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수학과에 오시는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
하여튼 찍기 법칙은 어차피 틀릴 문제, 내 손을 완전히 떠난 문제에 한해서 1/5보다는 조금 높은 확률로 찍어 보자는 마인드로만 임해 주세요. 답안지 내고 난 뒤는 깔끔히 잊고 신경쓰지 않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게 성격 상 정말 어려우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럴 땐 케쟝콘에 빙의해서 ‘이건 맞추라고 낸 문제가 아니다’ ‘이거 푼 애들 사실 비킬러 틀렸음 ㅅㄱ’ 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한 번 해 보세요. 피식 하셨죠? 꼭 기억하고 시험장에서 머릿속에 아까 그 문제가 안 떠날 때 떠올리면서 피식해 보세요. 그 피식이 시험장에서 긴장을 생각보다 많이 풀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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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이네요
가독성 오지네요 술술읽히네
원래도 글 읽는거 좋아하는데 가독성 장난없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