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1번 (에픽테토스, 스피노자) 분석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40140777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1번 (에픽테토스, 스피노자).pdf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1번 (에픽테토스, 스피노자)
이상(理想) 도덕·윤리 연구소
소장 임재섭
갑 지문 읽기
‘이성적으로’라는 말은 ‘자연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완전하게’라는 뜻이다.
이성의 개념을 자연과의 완전한 일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입장입니다.
인간은 인상(印象)을 이성적으로 사용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당신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당신에게 고유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성적 능력이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 사건 등으로 인해 생기는 인상을 이성으로써 처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동물입니다. 인간은 외적으로 사건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내적으로 의지의 자유를 발휘해서 사건으로부터 생겨나는 인상들을 자기 나름대로 ‘자연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이법으로서의 거대한 이성은 온 세계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각 사람이 인상을 받아들이는 개별적 이성은 각자에게 고유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의 이법을 파악하고 의지의 자유를 발휘해서 인상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자연에 일치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살 때 부동심(apatheia)을 누리게 됩니다.
EBS가 제공하는 해설 등을 보면 갑을 에픽테토스로 밝히고 있고, 실제로 갑은 에픽테토스가 맞습니다. 지문이 에픽테토스 『담화록』의 일부니까요. 당연하게도 여러분께서 스토아학파의 구체적 사상가들을 알아내실 필요는 전혀 없고, 교육 과정상 알아낼 도리도 없습니다. 이 사상가가 스토아학파의 인물이라는 것만 알아내시면 됩니다. 저도 그 점을 따라 아래의 해설에서 에픽테토스 한정의 해설이 아닌 스토아학파 일반의 해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을 지문 읽기
삼각형의 본성으로부터 그것의 세 각의 합은 두 직각의 합과 동일하다는 사실이-영원에서 그리고 영원으로-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삼각형 내각의 총합이 두 직각의 합(90°+90°=180°)과 같다는 기하학적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의 사실들은 시공간의 제약과 전혀 무관하게, ‘영원에서 그리고 영원으로’ 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삼각형 내각의 총합이 180°라는 사실은 삼각형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참입니다.
이 필연과 동일한 필연으로, 신의 최고의 힘으로부터 무한하게 많은 양태(樣態)의 무한하게 많은 것들이 항상 따라 나올 것이다.
앞의 필연과 동일한 필연, 즉 기하학적 필연에 의해, 신의 무한한 힘으로부터 무한하게 많은 양태가 인과 연쇄를 따라 발생한다, 스피노자의 주장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시면 곤란한 것이, ‘무한하게 많은 양태’라는 말이 ‘양태의 수’가 무한하다는 것이지 ‘양태’가 무한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피노자가 실체만이 무한하고 그 양태들은 모조리 유한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자연 자체이며, 필연적으로 무한한 존재입니다. 모든 양태는 신 안에서 인과적으로 발생하고 소멸합니다. 그렇다면 신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신 안에서 양태가 생멸하는 일은 끊임없이 인과적으로 이어지며, 따라서 “무한하게 많은 양태의 무한하게 많은 것들이 항상 따라 나올 것”입니다.
이처럼 삼각형의 본성으로부터 내각의 총합이 필연적으로 결정되듯이, 신의 본성으로부터 “무한하게 많은 양태의 무한하게 많은 것들이 항상 따라 나올 것”이라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결정됩니다. 『윤리학(Ethica)』에서 세계를 기하학적 질서로 파악하고자 한 스피노자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네요.
ㄱ. 갑: 행복은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에서 나오는 만족일 뿐이다. (×)
일단 이 선지가 스피노자의 입장이라는 점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입장이니까 스토아학파의 입장이 아님.’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째서 행복을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에서 나오는 만족’으로 한정하는 것이 스토아학파의 입장으로 옳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행복은 바로 부동심입니다. 여기서 부동심(apatheia)이란 정념(pathos)에 휘둘리지 않는(a-) 상태(-ia)를 말합니다. 이렇게 이해되는 부동심은 요동치는 정념의 ‘부재’로 규정되는, 다분히 소극적인 개념입니다. 적극적으로 특정 행위를 해서 얻어내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만족’과 같은 적극적 정서도 아니고, 애초에 특정한 ‘정서’가 아닙니다. 부동심은 하나의 ‘상태’일 뿐입니다.
스피노자는 자기 보존의 욕망(conatus)을 해치는 수동적 감정, 즉 정념을 멀리하는 대신, 자기 보존의 욕망을 고양하는 능동적 감정을 중시했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에서 나오는 만족’이란 자기 보존의 욕망을 최고로 고양하는 최고의 능동적 감정으로 이해되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스토아학파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같은 자연적 감정을 용인했을 뿐, 스피노자처럼 적극적으로 능동적 감정을 향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ㄱ은 개념을 분석적으로 보나, 철학사의 흐름을 조명해 보나, 스토아학파의 입장으로는 옳지 못한 선지입니다. 이 내용을 아주 직접적으로 잘 묻는 문제로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16번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2020학년도 이후 평가원 윤리와 사상 최고의 역작으로 꼽는 문제입니다. 아래에 별첨해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ㄴ. 을: 자연은 인과적 필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이다. (○)
스피노자의 아주 기본적인 입장이라서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가겠습니다.
ㄷ. 갑, 을: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스토아학파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비롯한 자연 만물이 자연의 거대한 이성에 지배받아 자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의 입장에서는 인간도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인과적 필연성에 지배받아 자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ㄹ. 갑, 을: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정념의 속박을 극복할 수 있다. (○)
스토아학파는 인간이 부와 명예, 사건 사고 등의 외적 조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조절할 수는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자유를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라고 합니다. 정념에 속박되느냐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우냐는 내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의지의 자유를 발휘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정념의 속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여 자신의 정념(수동적 감정)이 불필요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자기 보존 노력으로 능동적 감정을 고양하면서 수동적 감정의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혹시 스피노자가 자유 의지를 부정한 것을 떠올리면서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을 이룬다는 게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품으셨다면, 아래 인용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피노자는 의지를 노력과 철저히 분리해서 정의했습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에 앞서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이해하는 의지는 노력(cupiditas)이 아니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나는 의지를 참인 것이나 그릇된 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능력으로 이해하며, 정신으로 하여금 사물을 추구하게 하거나 기피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스피노자, 『에티카』, 제2부 정리 48 주석 (강영계 역) -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노력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자기 보존의 욕망에 의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스피노자의 자유 의지 부정은 인간의 노력 가능성에 대한 부정을 함축하지 않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별첨 문제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소개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는 최근 수능에 대한 감각과 교과 지식이 충분한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윤리 전공자와 타과 전공자를 아우르고 있어 균형 잡힌 시각에서 모의고사를 제작한다. 수험생분들의 수능 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오류 없는 문제, 쉽지 않은 문제, 깔끔한 문제를 지향한다.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연구원
- 임재섭 서울대학교 철학과
- 강승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 김성민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 박세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 박정민 건국대학교 철학과
- 여지선 동국대학교 철학과
- 임재원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 조민준 서울대학교 철학과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약력
2021년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Éthique Fatale 모의고사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출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25학년도 한양대 문과 정시로 합격하신 분들 혹시 백분위 원점수 알려주실 수 있나요..?
-
마코프 의사 결정 모형과 주식 시장의 효율적 시장 가설 - 수특 독서 적용편 주제 통합 01 0
안녕하세요, 디시 수갤·빡갤 등지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국어 강사입니다. 오늘은...
-
ㅅㅂ 가성비 ㅈ됬다
-
계산량 하나로 밀어붙혔습니다:>
-
독서의 신 0
내가 비문학의 왕이 될게.. 지켜봐줘
-
기차지나간당 0
부지런행
-
D-217 0
국어 언매 프린투 수특 독서 몇 지문 영어 영단어 4일차 외우기 화학2 1단원 수특 2 3점 하기
-
D-217 1
영어단어 수특 영단어 3~7 10~13강 영단어장 Day1(40단어) 국어 수특...
-
아오 진짜 씨
-
[속보] 미 재무 "75개국과 맞춤형 관세 협상에 시간 걸려 90일 유예" 0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 보복하지 않고 관세 인하를 요청한 국가들과 무역...
-
수시, 확통, 생명, 사탐은 자존심 땜에 죽어도 안할거임 3
정시, 미적, 물or화or지 간다 6등급이 뜨더라도 자존심은 지켜야지
-
과탐도 생명보다는 물리, 화학, 지구가 훨씬 쉽고 확통보다 미적이 훨씬 쉽고 수상하...
-
정시파이터, 공대 목표인데 오늘도 공부 1도 안하고 3시까지 게임했네 10
수능 물지 (내신 화생지라서 자퇴하면) or 화지 (학교 계속 다니면) + 미적...
-
보고 싶다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봐줄 줄 알았어 하염없는 기다림에 몸과 마음만...
-
리메이크곡만 존나 발매하면서 인스타 바이럴 쳐돌리는 가수한테 선물해주고 싶다
-
오늘 밥먹는데 옆애 숏롱도 구분못하는 애들이 이번달 300벌엇네 천삼백박앗네 그러고...
-
트럼프 리딩방 ㅋㅋㅋ
-
7천원에 산 우산 7천원에 파는데 왜 안 팔림?
-
분명 기출변형임에도 불구하고. 점수꼬라지랑 시간안에 못푸는 꼴 보고 개빡돌아서...
-
독감>폐렴 루트 타서 월요일부터 쭉 재수학원 못 가고 집에서 약 먹고 잠만 잤더니...
-
[속보] 트럼프 “中 제외 상호관세 90일 유예…中엔 125%” 2
[속보] 트럼프 “中 제외 상호관세 90일 유예…中엔 125%”
-
젠장 또 3시야 0
오늘은 진짜 일찍 잤어야했는데
-
제가 하고 싶어요
-
@nmixxhaawon__
-
나 의외로 0
할말이 업네
-
90일동안
-
겁나 피곤한데 9
잠이 안온다
-
자작 자작 자작 0
Q. Targeting special objects he or she would...
-
나는 여자를 좋아해
-
17살 자퇴생입니다. 제가 중2때 세계사 인강만 보고 100점을 맞았는데 올해...
-
자러가야지 2
안녕히
-
히힛 옯밍아웃
-
현우진t 수분감이랑 뉴런은 병행 많이 하는 거 같은데 드릴도 드릴드랑 같이 하나요?...
-
님들 머함 6
전 탈르비언 술주정 라이브로 듣고왔어요
-
일단 저는 96년생 현재 30살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
출신고등학교에서 보려는데 학교에 전화하면 됨?
-
원래 속쌍있는거 라인을 조금 올리고 싶은데
-
공통만 풀거에여 3모 21,29,30틀 88점이고 n티켓 s1 기준 80%정도...
-
자러감 3
ㅂㅂ
-
재수하는동안은 사람사는게 아니었다싶음 원하는 대학교들어와서 하고싶은거 하는데 ㄹㅇ...
-
ㅇㅈ 3
삼김 맛 추천좀요 낼 점심임
-
현역이고 지그 수학 기출풀기 바쁜데 주변에는 기출은 커녕 수특 푸는 애들이...
-
일본 노래에는 감동이 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
근데 내 물리 실력이 처참해서 맨날 쫄튀함
-
조회수가 시원찮길래 어그로성 제목 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반수 해 보신 분들께...
-
안녕히 주무세요 1
졸려요
-
26 정시... 0
이번에 결국 의대 정원 원상복구가 될것같은데... 이렇게 되면 지금 26정시는...
(을)의 입장이 수능특강에 거의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때는 몰랐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별첨 문제 감사합니다! 을은 아우렐리우스인가요?별첨 문제의 을도 에픽테토스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지문이 아마도 《엥케이리디온》의 일부인 것 같네요. (《엥케이리디온》은 《담화록》의 요약본 정도 되는 책입니다.)
스토아학파 사상가들 구분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ㅠㅠ 정말 웬만해서는 원문 읽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도 빈번히 빗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