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선생님, 진짜 성공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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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소개하려는 사례의 주인공은 스물 두 살의 의대생이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주변 사람들과도 상당히 잘 지낸다. 자주 피곤함을 느끼고 삶에 큰 의욕이 없다는 것만 빼면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다. 그가 정신분석 상담에 응한 이유는 그저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기 때문이며, 그가 털어놓은 하소연도 그저 의학 공부에 약간의 장애가 있다는 정도뿐이다. 방금 읽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잦고 강의 중에도 이상할 정도로 빨리 피곤해지며 시험 성적도 좋지 못하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수수께끼였다. 평소 그는 훨씬 더 기억력이 좋기 때문이다. 그는 의학 공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지만 공부에 필요한 재능이 있는지 강한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정신분석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그는 꿈 이야기를 꺼냈다. 꿈에서 그는 자신이 직접 지은 고층 건물 꼭대기 층에서 약간의 승리감에 취해 다른 건물들을 내려다본다.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고 그가 잔해에 깔린다. 사람들이 그를 꺼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느껴지고 누군가 그가 중상을 입었으며 의사가 곧 올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끝없이 오래오래 의사를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침내 의사가 도착했는데 깜빡하고 의료기구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를 도울 수 없다. 그는 의사에게 분노하여 갑자기 벌떡 일어섰고, 자신이 전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의사를 비웃었고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이 꿈을 통해 더 중요한 연상을 쏟아낸다. 그가 직접 지은 고층 건물은 그가 예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고 넌지시 털어놓는다. 어린 시절에 블록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을 제일 좋아했고 열일곱 살 때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는 친절한 말투로 직업의 선택은 아들의 자유이지만 건축가는 그저 꿈 많았던 어린 시절의 잔재일 뿐이며 아들은 분명 의학 공부를 더 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여 두 번 다시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고 당연하게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너무 늦게 온 데다 의료 기구를 깜빡한 의사에 대한 그의 연상은 모호하고 빈약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갑자기 정신분석 날짜가 바뀐 것에 대해 꽤 짜증이 났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 그는 정신분석 의사가 제멋대로라고 책망하다가 결국 이렇게 말했다. "하긴 뭐,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못 하는 걸요." 그는 자신의 분노와 이 말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지금껏 한 번도 정신분석 작업이나 담당 의사에게 거부감을 느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청년은 다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꿈의 일부만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는데, 자신이 바로 아버지의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였다. 그러나 진료를 하려고 하니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당황하다가 잠에서 깼다. 연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마지못해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들었으며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때로는 아버지가 남길 유산과 그 유산으로 뭘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상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매번 억지로 억압했다. 이 꿈을 예전 꿈과 비교하다가 그는 문득 두 경우 모두 의사가 효과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명확하게 자신이 결코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첫 번째 꿈의 무능한 의사에게 명확한 분노와 조롱을 느꼈다는 사실을 정신 분석 의사가 지적하자 그는 환자를 돕지 못하는 무능한 의사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승리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지만 당시에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신분석을 추가로 진행하면서 억압한 것들이 계속 드러났다. 청년은 아버지에 대한 강한 분노의 감정을 발견했고, 의사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감정이 그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무력감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의식의 표면에서는 삶을 자기 계획대로 꾸려간다고 믿었지만 더 깊은 곳에서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체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느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확신했으며, 남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에 맞추어 행동할 수수밖에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결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고, 재능 부족이라 여겼던 것도 실은 수동적 저항의 표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어떤 사람이 개인의 소망을 억압하고 남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 자신이 그것을 바란다고 상상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운래의 소망이 있던 자리를 가짜 소망이 차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원래의 사고, 감정, 의지의 행위가 가짜 행위로 대체되면 결국 가짜 자아가 원래의 자아를 대체하게 된다. 원래의 자아는 모든 정신적 활동의 진짜 장본인이다. 가짜 자아는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자아의 이름으로 연기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물론 한 사람이 많은 역할을 맡을 수 있고 그 역할 모두가 '그'라고 주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그는 이 모든 역할에서 사람들이 그에게서 기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이 부정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서 원래의 자아가 가짜 자아의 손에 완전히 질식당한다. 꿈에서, 상상에서, 취한 상태에서 원래의 자아가 살짝 나타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이나 생각이 나타나는 것이다. 때로 그것들은 그가 겁이 나거나 부끄러워 억압해 버렸던 나쁜 것들이기도 하지만, 비웃음을 받거나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억압해 버렸던, 그가 가진 최고의 것일 때도 많다.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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