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다음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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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구라쟁이가 수능을 조졌다는 사실을
지난 번 글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엉엉 울고 난 다음 날
---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수능 문제집으로 찬 교실이
썰렁해보였다.
수능이 끝났다는 생각과 동시에 곧 졸업을 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공허해졌다.
슬슬 사람이 오는 모양이다.
여자애들끼리 복도에서 "에구 ㅠㅠ 수고했어 흐엉"하고 껴안는다.
우리반은 나름 쾌활한 척 한다.
친한 애가 왔다. 말을 걸어본다.
"야 수능 잘 봤냐?"
"응? OO, 나 영어 개조짐 79점임 ㅋㅋ"
"ㅋㅋㅋ 나도 영어 89점임 ㅋㅋㅋㅋ"
"아 미친 리얼?"
"나 국어도 개조졌음. 인생에서 70점대 뜬 거 고1 제외하고 처음이다"
"나도 국어 개조짐. 70점대 초반이더라"
"와 나 진짜 어제 엄청 울었다. 엄마가 안아주시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
"그래? 나도 뭐.."
다른 친구들이 왔다. 얼굴이 썩 좋지 않은 표정이더라.
뭔가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A군(전 글에 나온 친구)에게 물어봤다.
"너 설마 최저 떨이냐?"
"뭐래 개솔 노노. 최저는 맞춰야지"
"그럼 모평만큼 잘 봤냐?"
"수학은 그닥. 국어는 어렵더라."
"쌍사는? 탐구는 다 맞음?"
"탐구는 다 맞았지. 그걸 틀리면 사람새끼냐?"
"나 생윤 2개 틀렸는데 사람 아님?"
"ㅋㅋㅋ 생윤에 시간 투자 오지게 했는데 틀리냐 개웃기네. 사문은?"
"사문에서 개뻘짓함. 전체평균을 남자평균+여자평균이라고 구했어"
"너 ㅄ이냐? 공부 많이 해놓고 그게 뭐냐"
"괜찮. 내가 너보다 수학은 잘 봤음"
"와 빡치게 하네 이거"
---
잠시 후에 선생님이 오셔서 아침 조회를 하셨다.
"어 근데 OO이는 안 왔어?"
반장도 그때 알고서 "엥 얘 안 왔네 뭐지" 이러더라.
아침 등교 시간이 8시 40분인데
10시가 다 되도록 애가 안 오는 거야.
전화기도 꺼져있고.
담임쌤(아 쌤 그리워요 ㅠㅠ 일반사회퀸)이 걱정돼서 통화해보라고 하니까
전원이 꺼져있어서 더 걱정하시더라.
몇 십분 후에 OO이가 학교로 왔다
(사실 OO이랑 나랑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수능을 치렀는데, 얘가 국어 끝나자마자
"구라야, 나 재수해야될 듯.."이라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음.
나는 그래도 수능이니까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보라고 했고,
근데도 다른 과목 끝나서도 우울한 표정으로 재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음.
얘는 정시파이터로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앤데..)
내가 왜 이제 오냐고 물어보니까
"구라야, 나 사실 어제 옥상까지 올라갔다 왔어"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나도 "에이 뭘 또 그래~" 하고 웃으면서 받아주는데
얘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감지 안 오더라.
나도 전날에 엄청 울었으니까. 나도 힘들어 했으니까.
그렇게 반에 모인 수시러들은 면접 관련 얘기를 하고,
나는 그닥 결과가 안 좋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에이 그냥 건동홍 사범대 가서 임용고시만 보면 만족하지~"라고 했음.
사실 속마음은 아닌데, 9평 성적이 서성한 정도였어서
논술도 연대밖에 안 썼기에 사실상 기적이 일어나기엔 힘든 상황이었고.
그렇게 수능 준비를 위해서 고3 동안 부모님 카드로 샀던 미처 다 못 푼 교재를
버리러 가는데, 마음이 써늘하더라.
겨울이고, 추워서, 더 마음이 얼어붙더라.
애들도 무언가 '어색해' 보였고,
교재를 버리면서 웃는 애들도 보였고,
다음 해 수능을 준비해야하나~ 라고 웃으면서 재수를 준비하는 애도 있었고..
그렇게 얼굴에는 웃음의 가면을 낀 채,
속으로는 눈물로 겨울장마를 내리던
12월 4일이 지나갔다.
---
여기까지 수능 다음날의 이야기는 끝
근데 뭐 다들 알아서 잘 하더라.
다만, 지금의 나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는 것도, 수능을 제대로 준비하는 것도 아닌, 경계에 있는 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니까 뭔가 암울하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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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자는데도 공부할때 졸리고 거의 아침엔 졸도하듯이 하루종일 졸리고 머리가 멍멍한데 왜이런거임
공허해져요 뭔가
분위기가 연상되네요...
마음도 춥고, 실제로도 추운 그 느낌?
맞는듯 ㅋㅋ.. 이번에는 달라졌으면 좋겟네요
필력이 좋으신거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수능 본 날 국어 1 안 나와서 정말 엉엉 울었네요.. 목표로 했던 일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그 실망감과 상실감 때문에..
글 읽으니까 현역때 딱 수능끝나고 느낌나네요.... 그땐 엄청 힘들었는데
저도 수능 끝난 직후부터 4월까지가 가장 힘들었네요
우리학교는 수능 담날 학교를 안가서 그 분위기를 못 느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