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램(김민재) [476057] · MS 2013 · 쪽지

2021-06-13 22: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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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의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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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시기


입시를 담당하시던 옆반의 사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재야. 니 인문계 가봤자 어차피 꼴찌한다. 그냥 실업계 가서 빨리 취직이나 해라."


내 졸업 성적은 전교생 360명 중 260등 정도. 심지어 전국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광역시의 제일 공부 못하는 구의 중학교에서. 저런 말을 듣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분노와 열등감, 의욕과 자신감으로 불타던 나는 다짜고짜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고,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난생 처음으로 함수라는 게 무엇인지 알았고, 난생 처음으로 영단어장 하나를 다 외웠 보았다.



그렇게 치러진 반 배치고사. 전교생 480명 중 160등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광역시의 제일 공부 못하는 구에 있는 평범한 일반고다. 거기서 33%의 성적을 거뒀다는 건, 전국에서는 사실상 평균 이하라는 소리일 테다.


하지만 날아갈 듯 기뻤다. 난생 처음으로 '성취'라는 걸 해 보았다. 어쨌든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전교 등수를 상위 70% 수준에서 상위 30% 수준으로 올리는 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꽤 열심히 공부했다. 난생 처음으로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러 새벽부터 줄을 서 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하루 13시간씩 공부를 해 보았다. 난생 처음, 계속해서 난생 처음 '성취'라는 걸 하고 있었다.



고3, 6평을 봤다. 원점수와 등급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어 92, 수리나형 88, 외국어(영어) 87, 경제 43, 사회문화 44


등급은 2/2/2/2/1.


문과 중에서 6등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미친듯이 기뻤다. 지금 생각하니 죄다 2등급 중후반에 걸친 성적인데 뭐가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엄마한테 자랑했다. 중학교 때 상위 70%였는데 이제 전국에서 상위 10% 안에 든다고.


나도 '성취'라는 걸 할 수 있다고. 그 쾌감을 알겠다고.



고3 수능,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과 분석 끝에 정시에서 2추합 1불합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심지어 한 대학은 2월의 마지막 날에 전화가 왔다. (당시에는 추합 종료 기간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계속 돌리는거...)


이번에도 성취. 그리고 쾌감.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의 결과를 얻었다.




쾌감만을 느끼던 나에게, 좌절감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서울로 대학을 간 친구들이 너무나 멋있었다.


어쩌다 들어오게 된 오르비에서 중앙대를 걸고 스카이를 노리며 반수한다는 글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나는 성취하고 또 성취했으나, 여전히 그들의 성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성취에 취해 있었구나.



이때가 2013년 11월, 내 인생을 바꾼 그 날이었다.


중도휴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와 공부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래도 오르비를 비롯한 온갖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이것도 난생 처음 이뤄낸 성취였다.


공부에도 정보가 필요하다니!




재수 6평, 9평. 등급이 12321 / 11212가 나왔다. 난생 처음 성취해본 평가원 국영수 1등급. 나는 또 취해버렸다.



재수 수능. 고3때보다 더 망해버렸다.


너무 우울했다. 어쩌면 중학교 3학년 시절, 사회 선생님의 말을 들었어야 하나 싶었다.


나는 왜 되지도 않는 노력이라는 걸 해서, 이렇게 희망고문을 하게 되고 이렇게 아프게 된 걸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서울에서 놀고 집으로 내려 오던 기차 안, 랜덤재생되던 나의 플레이리스트. 들려 오는 노랫가락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무슨 영화같았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승객은 아마 내가 미친놈인 줄 알았을 거다.




그 다음날부터, 삼수를 시작했다.


이번엔 취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매일 성취하고, 작은 쾌감을 느꼈다.


작은 쾌감이 한 조각씩 모이자, 수능날이 되었다.



마지막 5교시 기초 베트남어 마킹을 끝내자, 확신이 들었다.


'성취했다.'



수능을 마치고 나오자, 배재고 교문 앞에는 정말 많은 학부모님들이 계셨다. 우리 동네에선 상상도 못하는 일인데, 확실히 서울이 교육열이 세긴 세나보다고 느꼈다.


그런데 괜시리 또 눈물이 났다. 저 부모님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자식의 성취가 자기 자신의 성취가 되는 그런 삶은 도대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삶일까.



뭐 어쨌든, 나는 정말로 성취했다.



혹자는 말한다. 의대를 간 것도 아니고, 겨우 그거 가지고 성취라고 부르냐고.


나는 말한다. 당신이 보기에 보잘것 없어보이는 이 성취는,


내 인생을 바꿨고


내 부모의 인생을 바꿨으며


지금 내가 만나는 모든 수험생들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아무런 꿈도 없이


그저 매일매일 '존재'하기만 하던


한 아이에게 '삶의 원동력'을 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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