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HfD5kEN80CQM [753526]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21-01-23 22:35:43
조회수 1,146

집이 넉넉치 않아서 손해본 게 참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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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고 이런 글 쓰는 것도 참 그렇지만 돈 때문에 싸우고 짜증나는 마음 좀 달래러 몇 줄 적어봄


뭐 엄마가 병 있는 몸 갈아가며 뒷바라지 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있었다만

참 돌아보면 열심히도 했고 참 서럽네

요즘 드는 생각이 가난하면 인생의 뎁스가 올라감

그냥 넘길 일도 고민하다보니 사람이 심각해지고


어릴 땐 내가 참으면 될 일이니 또 중요한 것도 아니니 그닥 체감이 안 갔는데

해봐야 십년 간 외식 열번 이내로 해본 거?

감자탕 집 가도 뼈해장국만 시켜먹었고 뭐 이건 두명이니까 그렇다 치고 아무튼 그런 음식점들 다 쳐서 열번이 안되는 거 같음

또 어디 가족여행도 안가 봤고 바다는 성인 돼서 놀러가기 전엔 열살 때 가고 안가봤나

놀이공원은 그냥 선택지에도 없는 거고 무슨 공연 이런 것도 그렇고

좀 슬픈 건 중딩 때 옷 사는 돈이 아까워서 십일 번가에 몇천원 짜리 카라티 네장인가 사고 받아봤는데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 그래도 없으니 그거 이년동안 입고 살았지

진짜 주말이랑 방학 때 학원 가기가 그렇게 싫었는데

바지도 그 땐 요즘 같지 않아서 유니클로 말곤 딱히 없었고 뭐 보세 이런 델 아나 사봤어야 알지

유니클로 가서 청바지 두벌 사면 그거로 여름 더울 때도 그냥 좀참고 입고

그러다보니 게임만 하고 해서 총기도 많이 사그라지고 했는데

뭐 여기까진 아무런 감흥도 사실 없음 무덤덤함

근데 하 지금 생각해보면 오천원 그게 뭐라고 주말에 토일 두번 점심 순대국 사먹는 거 만원이 아까워서 굶다가 지쳐서 공부도 못하고 기진맥진 몇시간 버티다 안되겠다 싶어서 시장 칼국수집삼천원짜리 가서 허겁지겁먹고ㅋㅋ

고삼 끝나고 별 친하지도 않은데 같이 다니던 애들 따라 패밀리레스토랑이란 걸 첨 같는데 난 이런 게 있는 걸 첨 알았음

비싼 거 아닌가 계속 걱정돼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스파게티는 막 먹으면 없어보이나 걱정하고 ㅋㅋ

근데 생각보다 얼마 안나오더라

제일 엿같은 건 봐 얼마 안하지 했던 뚱뚱한놈의 한마디

지금이야 뭐 자취도 하고 그냥 사먹지만 애효


그래도 학원은 꾸준히 보내주셨지만 고삼되고 인강이란 걸 아니이게 수지타산이 너무 안맞더라 영수 해서 40이 안되는 학원이었는데 뭐 워낙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으로 뽑아먹는 게 습관이 되어서 학원에서 제일 공부도 잘하고 그랬지만 학원 선생님들도 물갈이 되던 찰나 옮긴 곳도 맘에 안들고 인강을 듣기 시작했는데

독서실 비용은 얼마나 아깝던지

지금 40받고 과외하는데 과외돌이놈 공부 존나 안하는 거 보면 핵꿀밤 마려움

난 공부 안하면 인생이 나가리였는데 얘 보면 숙제 잘해온다고 에어팟 프로 사주고 패딩 사주고 그러더라 ㅋ

난 진짜 생존의 문제였는데 이거 말곤 길이 없으니까

인강 적응 못하고 공부는 떡락했고 맨날 집 들어가면 둘이서 싸우고 소리지르고 난 내가 그렇게 난폭하게 굴 수 있는지 그 때 처음 알았음

오늘도 케잌 뿌시고 난리였다만

밥상도 뿌셨는데 이게 좀 마음이 아프다

그거 팔만원 그래도 좋은 거 산다고 인터넷 며칠 뒤져가며 고른 건데 처음 왔을 때 원목인 줄 알았다가 아니라 실망은 좀 했어도둘이 좋아했던 상인데 케잌 몇번 밟으니까 상이 부러지더라

하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적어도 아니었는데

학교는 붙었어도 당장 등록금 나올 곳도 없고 또 외가에 신세지자니 꼴이 말이 아니라 도와준다고 하셔서 그래도 다행이지만

진짜 도와줄 곳도 없는 친구들은 어떡한담

당장 일나가라고 몇번이나 싸우고

엄마 힘드니까 한학기 자취했는데 그 동안 좀 헤깔거리시나

진짜 죽겠다

내가 이게 답이다 딱 확신을 가지고 해나갈라해도 주변 상황이 계속 나를 옥죄어온다

으뜩하노 시벌진짜

솔직히 누구보다 삶의 밀도가 높았다 자부할 수 있는데 중고딩 때 게임 빠져서 헤롱거리긴 했지만 나름의 삶은 되게 치열했는데

누구 하나 끄집어낼 사람만 있었어도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게 아쉬워 지금도 오르비 떠다니며 사람들 질문 받아주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위인전 읽으며 위인들을 가슴에 품었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꺾여버린 인간만 존재하는가

내가 상상하던 지금 나이의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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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의 다자이 · 876659 · 21/01/23 22:39 · MS 2019

    고생했다 좀만 더 고생하고 힘내자 우리

  • SyHfD5kEN80CQM · 753526 · 21/01/23 22:40 · MS 2017

    고생한 거 비해선 성과가 없다
    대기만성형이라 자위하기엔 이제 슬슬 슬퍼져오고

  • 1987년의 다자이 · 876659 · 21/01/23 22:42 · MS 2019

    아직 수능판이라 그렇지 머 양심 조금 포기하더라도 악바리로 살자

  • SyHfD5kEN80CQM · 753526 · 21/01/23 22:48 · MS 2017

    사수해서 한양대 붙었다
    한양대 붙었는데 친척들한테 알리니 한명은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이 지랄하고 나머지는 그냥 다 좋아해주시는데 삼촌 한명도 전화 나중에 돼서 알고있겠거니 하고 받았는데 떨떠름함 반응이
    에라 이 삼촌도 그렇구나 하고 전화 끊고 대충 말하니 그 때부터 싸우기 시작하고
    축하한다고 마중나와서 같이 사준 케잌이 너무 미워보여 뭉게버렸다
    이 글 보고 병신같은 놈 욕할 놈도 있겠지만 니가 이런 상황 안처해보고 말을 말아라
    적어도 속 편하게 원론 따질 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고 더 고민 많았다

  • SyHfD5kEN80CQM · 753526 · 21/01/23 22:48 · MS 2017

    암튼 고맙다

  • SyHfD5kEN80CQM · 753526 · 21/01/23 22:41 · MS 2017

    쓰고나니 만분가 같노 ㅋㅋ하

  • 댕댕냉 · 766500 · 21/01/24 02:03 · MS 2017

    만분가 ㅠㅠ 힘내요

  • 19dhw82jw001 · 903420 · 21/01/24 00:12 · MS 2019

    수고하셨어요... 정말로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힘들게 살아왔다는 말에 담긴 고달프고 지친 삶의 세월을 알아보지 못하죠. 저 역시 글쓴이님보다는 편하게 태어나 편안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 중 하나지만 혹여나 작은 위로라도 될까싶어 이렇게 남겨봅니다.

    2019.06 양귀자, <한계령>

    "부딪히고, 아등바등 연명하며 기어나가는 삶의 주인들에게는 다른 이름의 진리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탐구하고 사색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몸으로 밀어 가며 안간힘으로 두들겨야 하는 굳건한 쇠문이었다. 혹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였다."

  • SyHfD5kEN80CQM · 753526 · 21/01/24 00:13 · MS 2017

    그래도 이십년 가량 살아보니 탐구가 답이다하여 철학과로 갑니다

  • SyHfD5kEN80CQM · 753526 · 21/01/24 00:13 · MS 2017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