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역 정시 이야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5139264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경험이 없었다. 운동은 뒤에서 손에 꼽혔고 게임은 롤 기준 실버~골드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었다.
당연히 공부도 열심히 안했다. 우리 학교는 전교 2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서 2~3명이 과고에 가는 무난한 지방의 중학교였는데, 거기서 중2까지 50등에서 70등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진짜 잘하는게 하나도 없는 엄청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의사가 되지 않으면 안될 말못할 이유가 하나 생겨 공부를 시작했고 나름 열심히 공부해 합산 성적 전교 석차 대략 40등 정도로 졸업을 하게 됐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의대에 간다는 생각 자체가 쪽팔려서 주변엔 말 못했다. 분명 고등학교 입학하면 잘하는 애들 엄청 많을텐데.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때 내가 했던 공부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열람실이 아침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했는데, 그냥 자이스토리 수학 몇 권 사서 도서관 문 열 때 들어가서 문 닫을 때 나왔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내 고3 생활과 반수 생활에 엄청 큰 영향을 줬다.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 전, 집에서 엄마가 지인의 아는 분이 우리 학교에 선생님으로 계신다고 그 사람과 통화하시는 걸 들었다.
“아드님 입학시험 성적을 보니, 다른건 별론데 수학은 2등급 정도 됩니다. 이 정도면 열심히 해서 부산대 정도는 갈 수 있을텐데 원하는 학교가 따로 있으신가요?”
“우리 애는 의대에 가고 싶답니다.”
그리고서 나는 아직까지도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어머님 꿈이 너무 과하십니다!!”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 꿈이라니, 내 꿈인데. 과하다니, 내가 할 수 있다는데. 내가 가고 싶다는데.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건데.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의대에 무조건 갈거라 다짐했다.
“의대는 누가 가는 줄 압니까? 중학교 내신 3%가 갑니다 3%!!! 아참 그리고 혹시 아드님 의대 보내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엄청난 비웃음과 함께 이 말을 했는데 또 화가 났다. 아니 내가 가는거지 엄마가 보내는건가?
아직도 어이가 없다.
일단 이 일이 있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3월 모의고사를 쳤는데 겨울방학 때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지 수학을 전교 1등 했다. 사실 4점짜리 두 개 찍어서 맞았는데 비밀이다. 다른 과목은 무난하게 2~3등급이 섞여 있었고, 주목받을 정도로는 잘 치지 못했다.
1학년 2학기가 끝나도록 내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남은건 2점대 후반의 내신과 평균 2등급 정도의 모의고사 성적표였다. 나는 의대에 가야 하는데, 수시로는 우리 고등학교에서 앞으로 전부 1점대 초반을 받지 못한다면 의대는 택도 없었다. 어차피 그건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정시밖에 남은게 없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시 올인할거면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이 때 살짝 자퇴를 결심했는데 물론 몇 시간 상담을 통해 학교 생활이 엄청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2학년 때는 선생님들께 엄청 자주 혼났다. 모의고사 성적이 안나오면 내신을 올려야지, 수업시간에 왜 수학 문제 푸냐고. 정시 얼마나 무서운줄 아냐고, 재수생들 오면 어차피 모의고사 등급 하나씩 다 떨어진다고. 어찌 이리 나보고 “넌 정말 할 수 있어!”라고 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던지.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이, 고2 6모에서 전 과목 거의 안틀리고 전교 1등을 해버렸다. 심지어 여긴 지방 일반고라서 모의고사를 잘 치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전교 10등 정도랑 40점 넘게 차이나는 점수를 받아버렸다. 9월부턴 다시 팍 떨어져서 원상복구 됐지만, 이 6월 모의고사에서 나는 힘을 얻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고3이 되었고 성적이 많이 올랐다. 이제 지방 의대 정도는 무난히 갈 듯한 성적이 나왔고, 선생님들도 몇몇 분 빼고는 내가 자습해도 알아서 하게 두셨다. 우리 학교 내신 1등이 설의 갔는데 모의고사는 거의 항상 내가 1등이었다. 그냥 이렇게 수능치면 되겠구나~ 하다가 6평을 쳤는데 수학이 82점 나왔다. 6평이라 수학 2였는데 수능이었으면 3이라 확신했다. 펑펑 울었다 진짜. 나는 의대 갈거라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6평이 아니라 수능에 대입하면 이 성적으론 치대도 힘들다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나는 여기서 더 열심히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 환경을 바꾸고자 야자를 빼서 독서실에 갔고, 나름대로 엄청 열심히 하다가 9평을 쳤는데 대박이 났다. 전 과목 4개 틀리고 인설의 성적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는데, 사실 전 과목에서 두 문제를 찍었는데 둘 다 맞았다. 주변엔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거 수능이었으면 찍맞 없는 상태로 인설의는커녕 지방의도 힘들다는걸.
6평과 마찬가지로 변화가 필요했다.
어떻게 여기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나는 다시 돌아가도 못할 것 같은 선택을 한다.
수시 원서 접수가 끝나고, 나는 가톨릭대 의대 논술 접수증을 학교에 들고 가서 책상 구석에 붙였다. 그리곤 포스트잇으로 옆에 적었다.
‘말 걸지 마세요.’
학교 안에서 한 마디도 안했고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체육 시간에도 강당 들어가서 공부했다. 선생님들도 대충 소문이라도 났는지 아무도 말을 안거셨고, 내가 포스트잇 가리키면서 한 마디도 안하니까 찾아오는 애들도 점점 줄었다.
그리고 이건 꿀팁인데, 교실에 끝까지 남아있다가 고3 친구들 밥 먹고 돌아올때쯤 급식실 가면 고1~고2 줄 서있어서 그 때 혼자 영단어 보면서 새치기하면 줄 서는 시간 아끼고 책상에서 공부 좀 더 할 수 있다.
급식실 혼밥 진짜 서러웠다. 진짜 진짜 서러웠다. 그리고 나는 보여주기식 공부가 아닌데도 급식실에서 영단어 수첩보고 용기백배 한국사 보면 시선 엄청 끌렸다.
(그래도 덕분에 반수하면서 혼밥한건 타격이 1도 없었다. 밥먹다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 급식실 혼밥 생각하면 이까짓 것쯤 다 이겨내기 가능했다 ㅋㅋㅋㅋ!!)
그러다가 수능을 쳤고 지방 사립 의대 성적이 나왔다.
주변에서 많은 말을 들었는데, 제일 인상 깊었던 말은 고1부터 친했던 친구가 해준 말이다.
“솔직히 9평 치고 나서까지도 네가 진짜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근데 지금 보니까 내 생각에 너는 뭘 해도 될 거 같다.”
참 고마운 말이다.
0 XDK (+12,620)
-
10,000
-
10
-
10
-
1,000
-
1,000
-
100
-
500
-
시바 0
운동하고 9시에 집와서 쭉 씻지도않고 오르비만했다 와슈빨
-
내일부터 시작
-
고민좀 0
대학 다니다가 파일럿이라는 꿈이 생겨서 고민중인데 23에 들어가도 항공대 항공운항...
-
수능 끝나고 많이 까먹어도 인정인데 수학은 ㄹㅇ 초등학교때부터 천천히 쌓아올렸으면...
-
맞팔 해줘요 10
-
의대 정원 감소 + 현역 인원수 최다 + 의반이들
-
음
-
그걸목표로공부해보자그럼내똥글도뭔가철학적으로보이지않을까?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으캬캬캬캬캬캬캬캬
-
문제 단원별로 나와있나요??? 모의고사 형식인가요??
-
의대증원 축소 얘기도 있고 뭔가 전체적으로 작년보다는 훨씬 빡세질거같은 느낌...
-
대면 비대면 다 해봤어요 대면은 어머님께서 감사하게도 매번 과일도 준비해 주시고...
-
경기 일반고 3.5인데 생기부 챙기는게 맞나 싶음. (이과) 성적 올려서 대학가도...
-
초반은 ㄱㅊ았는데 후반에 취하고 망친듯 시발
-
동의동의 근데 3덮 67점 받고 진짜 울었어ㅠㅠ
-
수업 교재 의견부탁해요 15
다음 커리 교재 표지를 이렇게 가려고 하는데 어떤가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꺼낼 수...
-
부엉부엉부엉 1
부엉이 너무힘들다
-
강민철 연강이라 그냥 갔음 그때는 내가 대학 합격해서 당당히 봄에 싸인받으러 올 줄 알았지
-
기하할만하나요?? 미적이 악명이 너무 높아서….미치겠음 ㅜㅜㅜㅜ 1등급 목표인데...
-
좀 못봐도 공부하면 오르겟구먼 껄껄 마인드가 가능한데 화학은 못보면 가망이 없음 뭘 어떻게 더 올려
-
수학 1컷 88인데 만점자 1500 국어는 헤겔 지문보다 개화지문이 오답률 더 높다던데
-
지금은 국수 완성도는 더 나은거같은데 탐구가 개 ㅈ망했네
-
전범위도 아니고 아직 반수붕이들 표본도 없으니
-
침대에서라도 해야지요.. 개념기출은 언제쯤 끝날까
-
비염있으신 분들 5
비염 심하신 분들은 독재에서 콧물 흐르면 어떻게 하시나요..? 너무 조용한 분위기라...
-
자다가 일어남 4
학원 일 갔다가 집안일 하고 기절 하 수업이랑 과외 준비 해야하는데 힘들어서 슬슬 정병올 것 같늠
-
더프 보정컷 2
유출되었나요 나도보고십드아
-
왜 기온이 영하?
-
눈나 형들 맞팔 기
-
걍 그렇게 생각하는게 멘탈 관리에 좋은듯
-
분캠은 잘모르겠어요
-
아니 진짜 궁금해서 왜 없어요 오르비에서도 개때잡인가 이런 승제쌤 커리는 거의 못봄
-
미적하는게 맞나 ㅜㅜㅜ 지금 계산연습중인데..
-
중간중간 긴 헛소리만 빼면 이해시키는건 고트임...
-
이이이ㅣㅇ이잉ㅇㅇㅇㅇ
-
맞 팔 구 4
200명 채워주세요 잡담 태그 잘달고 뻘글 안써요
-
아 걍 자살뛸까 3
좆같네
-
대 대 대
-
ADHD검사 1
얼마나 걸리는지 아시는분 한번 받아보려고요
-
26수능 참전합니다. 16
과외돌이랑 26 수능 설대식 점수로 소원권 내기함. 25 수능 기준 410점대만...
-
https://orbi.kr/00072509242 묻히면 항상 슬픔...
-
누가 성적 발표 하루전에 공통 4틀 미적 84 담임피셜 1컷이라네요 ㅠㅠㅠ 이러면서...
-
화학 42점이 뜨니까 되게 멘탈 갈리네 이거 수능때까지 올릴수있나…. 지능이 모자란거같은데
-
저 귀여워요 3
-
22번 틀림
-
강민철을 모방하는 독해가 아니라 그냥 강민철이 하는 독해가 하고 싶다
-
윤석열<<< 4
윤석열하나
-
고2 첫 모고 잘 쳐야 반에서 기강 씨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3모 기출 풀리고...
-
지구러구 1등급 목표로 달려야하는데 계속 3등급에 머물러서...ㅠ 사탐런...
캬 다 읽고 왔는데 진짜 대단하네요...

역시 ㄱㅁ글 너무 길어요..
대충 ㄱㅁ내용인거 같은데...
한 줄 요약 해드릴게요....
기만이에요
ㅠㅠ 기만이라기 보다는
나도 이렇게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걸 말해주고 싶은 수기에요

맞아요! 열심히 공부하셨고 수고하셨네요..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멋져

멋있네요 아저씨
이게 왜 ㄱㅁ이죠 정말 멋있습니다대단하시네요! 전 올리면 옯밍 당할 것 같아서 못 올리겠네요 이미 당한 것 같기도 하고 ㅋㅋ 전 성적을 올린 게 아니라서 재미도 없을거에요
재밌어요

슬롭! 슬롭! 슬롭!
사랑해요 슬기님
게이야...
너무 대단한 슬기쟝...필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vr 체험하는 줄

“의대는 누가 가는 줄 압니까?중학교 내신 3%가 갑니다 3%!!!
아참 그리고 혹시 아드님 의대 보내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이분한테 전화걸어주죠^^
나는 왜 못갔지 ㅜㅜㅋㅋㅋ
글 깔끔한거보소..
내용에서 한번지리고 글 필력에서 두번지림 존멋
멋있네요,,,

너무 멋지다...
필력 ㄷ ㄷ
멋있어요 존경합니다
와 자극 받고 갑니다 정말 멋지시네요야 임슬기 누가 맘대로 안경 자물쇠 풀라고 했냐-
-안철나르 나르나르
진짜 독하게 하셨네요ㅠㅠ
진짜 선생들 시발이네
근데 너무 감동적이다

Goat진짜 멋지십니다
이정도 해야 성공하는구나를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재수 성공해서 이런글 쓰고싶당 ㅜㅜ
멋있으세요

멋있어요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와 진짜 너무 멋있다
마지막에 지사의 그짓말 에반디
진짜 개멋있습니다 ㅜㅜㅜㅜ 존경스럽네요
진짜 멋있습니다 ..

꼬북쟝.. 당신 정말 대단한 사라미야..크... 존경합니다

진짜 멋있으시네요
개멋있다 ㄷㄷ오르비에서 간만에 힐링글 보고 가네

3등급 현녀기 정시파이터나도 할수있다
이거하난 팩트 "꼬부기가 귀여워서 의대를 갈 수 읶었다"
친구분 말이 참 인상깊네요
어머니의 꿈이 아니라 내꿈이다에서 지렸다
올
라
가
할수있다는 자신감 배워갑니다.
그냥 공부잘하는 옯창인줄만 알았는데
멋있는 분이셨네요
멋져요

멋져요 반수 성공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뭘 해도 잘하실 것 같아요멋있어요
존경합니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요ㅜ 열심히 하겠습니다

멋있어요 ㅠㅜㅠ작성자님의 노력이 또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네요... ㅜㅜ
와 정말 멋진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ㅜㅜ
열심히 하셔서 꿈을 이루시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꿈이 됩니다
엄청 파이팅 !!!!
띵작이다 ..
학교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도 많이,셨을텐데 그럴땐 어떻게 하셨나요?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