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수시 6광탈+수능 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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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담담하게 몇 자 적어볼래요. 얼마나 길어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저 되게 열심히 살려고 했어요. 다른 애들 생기부 채우는 거 인터넷 그냥 긁어서 쓸 때 논문 한 번 더 보고 어떤 주제로 탐구하면 더 좋을까, 내가 배우고자 하는 학문에 대한 관심을 더 학문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오래 앉아있었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치열하게 했고, 항상 진심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끝없이 고민했어요.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는 상상을 하며 열심히 했어요. 면학을 끝내고 돌아가는 밤 11시의 공기를 마실 때 그 공기가 내 코로 들어와 온 몸으로 퍼져 말초신경까지 짜릿하게 만들었어요. 생기부를 위해 새벽에 깨어있을 때 몸은 미칠듯이 피곤했지만 나의 목표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있다고 느껴져 행복했어요. 학기말에 생기부 점검하면서 정말 뿌듯했어요. 내신은 늘 잘 나오지 않았어요. 뭔가 뚫릴 듯 말 듯한 느낌이 계속되었어요. 미칠듯이 답답했어요. 될 때까지 해보자는 식으로 끝까지 열심히 하긴 했어요. 어쩌다 한두 과목, 한 시험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이 나오기도 했어요. 근데 한 학기 단위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적은 5학기 중 한 번도 없어요. 마음이 풀린 것도 아닌데 중간을 잘보면 기말을 못 보고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계속 되었어요. 미련하죠? 나보다 한참 공부를 덜하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와 내 성적이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지만 결국은 바로잡지 못했어요. 그렇게 수시 시즌이 왔고 좀 모자른 성적이었지만 원하던 학교를 썼고 나머지 5장도 적절히 썼어요. 완전 하향은 일부로 안 썼어요. 그냥 붙어도 좀 가기 싫을 것 같아서, 수능 성적이 그보단 높게 나올 것 같아서 안 썼어요. 지금도 이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원하던 최저는 4합 7이었고 국어는 항상 고정3이었기에 수능에서도 욕심부리지 말고 국어3 나오고 나머지로 최저 맞추는 데 자신이 있었어요. 최저와 무관하게 1차 불합 가능성도 적지 않았으나 떨어져도 최저를 꼭 맞추고 떨어지고 싶었어요. 정시도 진심으로 공부했으니까요. 시험 시간이 시작되고 국어를 봤어요. 종 치기 전까지만 해도 참을만 했는데 시험지를 딱 보니 처음으로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로구나' 상태를 경험했어요. 국어를 그 전부터 못 했지만 이렇게 못 읽은 적은 처음이었어요. 준비했던 플랜b,c를 가동했으나 이미 터져버린 맨탈을 박살나 있었어요. 그렇게 한 지문을 날리고 마킹을 다 하고 종료종이 친 후에 감독관님께서 다른 수험생들의 답안지를 가져가실 때 눈으로 답안지를 읽었는데 밀렸더라고요. 끝났구나 싶었죠 당연히. 이게 4등급일지 5등급일지 6등급일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완전히 폭망했음을 깨닫고 그냥 나오고 싶었어요. 그래도 참고 그냥 봤어요. 편안하게 약간 긴장이 풀어진 채로 봤죠. 사탐까지 끝내고 제 2외국어는 그냥 포기각서 쓰고 나왔어요. 그 때 그 시험장을 나올 때 석양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아직까지도 못 잊고요.
그리고나서 원하던 1지망학교의 1차 결과를 확인했어요. 빨간색 글씨로 불합격이라고 써있었어요. 무척이나 이상하게도 담담했어요. 그날 저녁 근처 삼계탕집을 갔어요. 당연하게도 입맛이 없었지만 부모님께서 밥을 안 먹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시기에 그냥 덤덤하게 먹고 있는데 어떻게 시험을 보았냐고 여쭤보셨어요. 어차피 20일 후면 아시게 될 것이기에 그냥 솔직하게 국어부터 완전히 망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이 때는 어차피 최저 있는 학교 하나는 이미 떨어졌고 수능 전 떨어진 학교와 1지망 학교를 제외한 아직 4개 수시가 남았다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별 말씀은 안 하셨어요.
그렇게 그냥 수능 성적은 잊고 살았고 저는 4개 중 하나 붙어서 몰래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한번 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지금 노예비 6광탈을 했어요. 결국 저는 지금 제 손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최선을 다해 3년을 공들은 제 서류가 그렇게 형편 없었을까요? 제가 쓴 자소서가 너무 별로였나요?
지금도 뭐가 부족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최선의 최선을 다한 생기부였고 혼을 다했던 소정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땀방울은 의미가 단 1도 없었습니다. 끝없는 패배감과 우울감을 더하기만 하였지요. 수능도 마찬가지로, 내가 제가 원하던 학교의 최저를 기필코 맞추겠다라는 비상한 각오를 다졌던 수많은 밤들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많이 추스른 상황입니다. 상념도 거의 없이 편안하고 남 눈치도 별로 안 보입니다. 그러나 진심을 다했던만큼 쓰라린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 상황과 마음을 이해받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나는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되어버린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원래 남과 비교를 잘 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나보다 내신이 좋았거나 좋지 않았던 친구들이 원하는 학교에 다들 잘 가는 것을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꽤 있네요. 이미 다수의 학교에 합격한 친구, 곧 끝날 추합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는 친구, 특히 제가 간절히 원했던 그 학교에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서 축하해주고 추합을 같이 응원하는 마음이 분명하지만 그와 더불어 그 이상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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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서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막 당신의 인생은 시작한거예요.
어딘가에서 봤는데 우리 인생을 100세라고 보고 24시간 중 현재는 몇시인가보면 우리는 이제 막 아침을 맞이하는 시기에요.
당신이 했던 땀방울.고민.노력. 누구도 100퍼 알아주기 쉽지 않을거예요. 보이지 않으니. 하지만 당신. 자신은 알고 있잖아요. 얼마나 노력했는지. 진짜 처절하게 했는지. 그동안 버텨준 자신이. 당신이 대단한겁니다.
수능. 괜찮아요. 떨어졌다고 해서 인생 망한게 아니에요. 이제 막 시작했고. 오히려 이런 경험이. 지금은 ㅈ같아도. 내일의 당신을 더 단단하게. 굳세게 만들어낼거예요. 왠만한 위기에도 버텨낼겁니다.
이겨낸다면 말이죠. 이겨내세요. 절대 당신의 3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정말로요. 3년동안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 한마디 하시고. 내일을 도모합시다. 당신이 빛날.웃을.행복할 내일을.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할 일이 잘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