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수능 국어 지문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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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학년도 수능]
0. 사적 연금에는 역선택 현상이 발생한다.
1-1.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피하므로,
1-2. 납입되는 보험료 총액에 비해 지급해야 할 연금 총액이 자꾸 커지는 것이다.
제가 일주일 전에, 이 문장 독해 가능? (치킨 기프티콘 퀴즈)에서 위의 한 문장(1-1~1-2)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시거나, 혹은 오류일 경우 왜 오류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분께,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드리겠다고 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이해하려고 곰곰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1-1이 원인이 되어 1-2와 같은 결과가 도출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학 시험이 아니라 수능 국어 시험이므로, 지문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도 문제 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지문을 충분히 음미하고 이해하는 식으로 분석하는 학생들이라면 이 문장에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가 강사로서 그 의문을 풀어주려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국어를 가르치시는 분들 중에도 이 문장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여튼 정말 많은 분들이 도전해주셨는데, 의외로 왜 지문을 이해하기 어려운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아서 놀랐습니다. 1-1~1-2의 흐름이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이해력이 평균은 넘는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하 P)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하 ~P)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절대다수가 P를 소득이 적거나 불안정한 사람, 가난한 사람으로 봤고, ~P를 소득이 많고 안정적인 사람, 부유한 사람으로 봤습니다. 이 경우 1-1은 이해가 되지만, 1-2가 발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지문이 오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1-2가 참이라는 것은, 보험사의 예상보다 가입자가 더 오래 생존해, 납입 금액보다 수령 금액이 높아진다는 뜻이니까요. (참고로 사적 연금은 가입 후 일정기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하면, 특정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매달 일정금액이 나오는 상품이라 보면 됩니다. 국민연금이나 연금복권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될 겁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달리, 소득에 비례해 납입하거나,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진 않습니다.) 근데, P가 ~P보다 더 장수한다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이라면 가난한 사람보다 더 산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죠.
이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지문 서술이 오류다.
둘째, P를 빈자, ~P를 부자로 해석한 것이 오류다.
첫째를 택할 경우, 수능지문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 되고,
둘째를 택할 경우, 그렇다면 P와 ~P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문제로 남습니다.
저는 신뢰할 만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 연금시장의 역선택에 대한 논문을 쓰신 동아대 김대환 교수님(경제학 박사, 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자문에 응해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은 P를 빈자, ~P를 부자로 해석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답변을 아래와 같이 첨부합니다. 본문 중 밑줄은 제가 그었습니다.
--인용 시작--
보험에서 역선택은 "해당 보험에 가입할때 이득을 많이 볼 사람들이 가입하는 현상"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 경우, 몸이 아프거나 장수집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입하겠지요. 결국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만 가입하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보험금(의료비)을 많이 지출해야 하고,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고, 보험료가 높으면 더 건강이 나쁜 사람만 가입하고... 이러한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논리를 연금에 적용하면, 연금은 본인이 건강하거나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가입할 것입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가입자가 오래 살수록 보험금(연금)을 더 많이 지급하게 되고,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고, 보험료가 높아지면 더 오래 생존할 사람만 가입하고... 이러한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이때 보험회사와 가입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하는데, 역선택은 가입자가 보험회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즉 본인의 건강상태, 장수집안인지, 본인이 얼마나 건강한 생활율 유지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보험회사보다 가입자(소비자=당사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문에서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피하므로...."라는 문장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수도 있겠습니다. 이 문장에서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본인이 너무 오래 살것으로 생각되어 안정된 노후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빨리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노후에 상대적으로 걱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즉 역선택의 관점에서는 돈(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생존하는지 여부를 의미하게 됩니다.
결국 본인이 너무나 오래 살 것으로 생각되어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건강한 사람들=장수가 예상되는 사람들)이 연금에 가입하게 되는데, 보험회사는 이 사람들의 건강/주관적 수명/가족력/건강생활 등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평균적인 사람이라고 가정하여 보험료를 부과하게 되고 또한 평균적인 사람이라 가정하여 연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역선택으로 인해 가입자들은 분명 보험회사의 가정(평균적인 사람)과 달리 오래 생존할 것입니다. 결국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가입자로 받는 보험료보다 지출(연금)이 더 커지게 됩니다.
--인용 끝--
의외의 해석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너무나 정합적이기 때문에 "출제자의 의도가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아래 학생도 머리가 개운해졌길 바랍니다.
다만, 국어 강사로서 이 문장 독해 가능? (치킨 기프티콘 퀴즈)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지문을 읽고 일반적인 수험생이 경제학 교수님처럼, 출제자의 의도처럼 이해할 수 있는 게 가능한가? 이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국어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경제학을 포함한 다양한 전공의 대학(원)생, 금융쪽 실무에 계신 분들께도 물어봤지만, 아래와 같이 생각한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본인이 너무 오래 살것으로 생각되어 안정된 노후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빨리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노후에 상대적으로 걱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즉 역선택의 관점에서는 돈(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생존하는지 여부를 의미하게 됩니다.
보험경제학을 전공한 분께 자명하게 보일지라도, 고3이 이런 식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하다면, 애초에 지문을 덜 다듬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정된 노후 생활을 돈(부)와 엮어서 생각하는 편이 무척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빨리 사망할 것이라서 노후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나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론1]
앞서 밝혔듯, 이 칼럼의 목적은 지문을 충분히 음미하고 이해하는 식으로 분석하는 학생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의문을, 사후적으로나마 제가 강사로서 풀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여서 지문에 오류는 없으나 학생이 정확하게 이해할 가능성은 0%에 가깝고, 이런 점에서 시험용 지문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게 제 의견이고요.
[결론2]
교수님의 의견과 완전히 일치하는 분이 없어서 치킨은 제가 아내와 먹으려고 했으나... 아래 두 분이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고 생각하여 두 분께 치킨을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 열품타장인찾는다 · 753112
- RaphaelKim · 982404
오르비쪽지로 휴대폰 번호 보내주시면, 카톡으로 치킨 기프티콘 보내드리겠습니다.
[더 읽을 만한 글]
※ 본문에 인용한 교수님의 의견/해설을 사용하실 강사/저자분들은 artofkorean@gmail.com으로 사전허가를 구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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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들어도 모르겠는거 정상인가요??
제가 글을 올리고 1분 내에 댓글을 다셨으니, 정상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ㅎㅎ
흥미로운 내용이니, 찬찬히 읽고 이해해보길 권해드립니다. :)
나중에 진지하게 읽어볼게요
진지하게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재미있거든요. ㅎㅎ
평가원이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요...
슬프네요
그래도 앎의 기쁨이 있죠 :)
보험경제학 관점에서 상식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험'에 대한 해석 등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다면 제가 본문에 소개한 논문을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해 보면,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라면 굳이 연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로군요.
그렇지만 여전히 부유한 사람들도 ~P (=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들") 에 속한다는 것은 참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P 라는 집합이 있으면 그 안에
김 교수님이 말씀하신 말하자면 "시한부" 부분집합이 있을 것이고, 이들을 NPA 라고 하고,
흔히들 오해했듯이 본인이 부유하다고 생각해서 ~P인 부분집합을 NPB라고 하고,
neither NPA nor NPB인 NPC라는 집단이 있어서
NPA+NPB+NPC = ~P 라고 하면,
NPA --> 1-2 가 인과 관계를 갖지만
NPB -/-> 1-2 로 인과적으로 오히려 틀린 서술에 가깝고 (상관계수로 표현하면 -1 에 가까울 거 같고)
NPC -?-> 1-2 일텐데
이렇게 ~P 라는 집합의 일부(NPA)만
~P 는 S다 라는 명제를 만족시키는 상황에서도
위 명제에 결함이 없음을 인정해도 되나요?
만약 이게 수학이었다면 ~P가 아니라 NPA에 대한 것이라고 도메인을 제한해야만 증명을 할 수 있는 주제로 보여서요
일단 지급해야 할 연금 총액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이므로, 논의영역(domain)에서 연금이 지급될 때까지 보험료를 납입할 수 없거나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은 제외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즉, 논의영역은 연금을 받을 때까지 보험료를 납입한 후 일정 연령까지 유지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로 제한됩니다.
그리고 연금보험은 일종의 투자상품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효용극대화를 위해 연금보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즉, (보험회사 상품설계시 고려한) 평균적인 사람의 수명보다 오래 살 것으로 생각하는 부유한 사람은, 연금보험에 가입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유한 사람([시한부])은 연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 하에서 성립하긴 합니다. 실제로 워렌버핏 같은 사람이 연금보험에 가입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정리하자면, 논의영역이 '부유한' 사람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이때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시한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시한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말씀하신 도메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싶은데, 혹 추가적인 의견을 주신다면 저도 한 번 더 교수님께 문의드려보겠습니다.
아, 제가 도메인이라고 한 것은 사상(mapping)에서 정의역(domain)을 의미한 것이었어요.
X --> Y 사상에서 X의 어떤 원소는 Y에 속하지 않을 때에도 X가 Y의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죠.
이게 좋은 예는 아닌데, 마땅한 다른 예가 떠오르지 않아서 이렇게 표현을 해볼게요.
0. 사적 연금에는 역선택 현상이 발생한다.
1-1.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피하므로,
1-2. 납입되는 보험료 총액에 비해 지급해야 할 연금 총액이 자꾸 커지는 것이다.
를 아래와 같이 rewrite 한다고 할 때:
0. 적도 지방에 사는 사람의 피부는 검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1-1.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을수록 태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짧으므로
1-2.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멜라닌 색소의 농도가 자꾸 커지는 것이다.
0. 은 참인 경우도 있는 진술이고 (적도가 지나는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는 검은 경우가 많으니까)
1-1 --> 1-2 도 인과관계를 갖는 사례가 있지만,
1-1. 에서 적도에 가까운 지역일지라도 지형에 따라 푄 현상을 겪는 곳이면 날씨가 자주 흐려서 태양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다는 반례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시한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고)
0. 의 경우에도, 적도는 브라질과 콜롬비아도 지나는데, 콜롬비아에는 흑인(콜롬비아 원주민은 흑인이 아니므로)보다 백인의 비율이 오히려 더 높다는 반례가 있는데
이와 같이 반례(X의 원소이지만 Y에 속하지 않는)가 여럿 존재하는 경우에도 "X이면 Y"다 라는 명제를 옳다고 해도 되는 것인가요?
물론 "모든 X는 Y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지만, 더 흠잡을 데 없는 문장이 되려면 "어떤 X는 Y다" 혹은 "X중 어떤 부분 집합은 Y다"와 같은 식으로 좀 방어적으로 진술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가령 1-1.을 "소득이 불안정하지만 잔여수명이 길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피하므로"라고만 적어도 아무도 이 문장을 오해하지 않았겠죠.
이 경우 X =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
X중 어떤 부분집합 = "소득이 불안정하지만 잔여수명이 길다고 기대하는 사람들" 이 될 것이고요.
저도 도메인을 같은 의미로 썼습니다. :)
양화 논리에서는 정의역(domain)을 논의영역(=대충 주어집합의 원소들)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연금을 받을 때까지 연금보험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 보고 제외할 수 있다면, X="연금보험에 가입 후 납입&유지할 능력이 있는 부유한 사람들"로 제한되므로 말씀하신 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로'가 방어적 진술로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지문의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 = 바로 윗 댓글의 X = "연금보험에 가입 후 납입&유지할 능력이 있는 부유한 사람들" 이 되는 건가요?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지...
네, 보험사에서 연금 지급 총액을 걱정해야 한다면, 일단은 X가 그렇게 제한되는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한 줄 문장이라서 정합적으로 해석하려면 ad hoc 가설 같은 게 계속 덧붙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느낌이고요. 하하)
허엇... 저도 졸지에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군요.
수능 국어의 세계는 20년 전에도 그했지만 여전히 깊고도 오묘하네요. 빨랑 도망 나오길 잘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갇혀있는 수험생들과 종신형인 국어 선생님들께는 심심한 위로를 .....
한편 매우 부자인 사람은 연금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 같아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1. 아주 부자인 사람들에게는 모든 보험이 당첨금이 아주 작은 복권과 같이 되어버려서 그렇습니다.
아주 부자인 사람은 연금보험과 같은 형태의 보험으로 헷지해야 하는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고, 연금소득 형태의 현금흐름에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인데요,
가령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100원을 내고 50% 확률로 150원을 받고, 50%의 확률로 아무 것도 못 받는 내기를 한다면 다들 그 내기를 굳이 하지 않을 겁니다. 50원이 주는 효용이 없는 반면 내기를 하는 순간 25원을 손해보는 것이기 때문에요.
보험사는 보험금을 여러분들에게 다 주고 나서도 수많은 직원들의 급여를 다 주고, 그 커다란 빌딩에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왠만한 기업은 엄두도 못내는 TV광고도 하고, 그러고 나서도 주주들에게 나눠줄 이익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가입자들에게서 많은 보험료를 받아요. 얼마 존재하지 않는 리스크마저도 재보험사에 전이시켜서 실질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손실을 보지 않게 보험상품을 설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보험을 판매하는 건 "100원을 받고 50% 확률로 150원을 주고, 50% 확률로 내가 다가지는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같아요. 보험계약이 성립하는 즉시 이익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저는 자동차보험처럼 가입을 안 하면 불법인 보험 외에는 어떤 보험도 들지 않아요 ... 같은 이유로 복권도 사지 않고요. 물론 제가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다시 말해 부자들에게는 나이들어 찔끔찔끔 나오는 연금소득으로 헷지해야 하는 늙고 가난한 상황이라는 리스크도 없고, 오래 생존할지라도 연금소득으로부터 나오는 금액이 너무 작아서 그 증분이 주는 효용(100원을 내고 150원을 받을 때의 기쁨)도 없는 것이죠.
(계속)
댓글 주고 받으면서, 대표님이 연금보험에 가입하셨는지가 내심 궁금했는데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ㅎㅎ 나중에 보험 안 드는 이유를 따로 써주셔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계속)
2. ROA(총자산이익률) 또는 ROE(자기자본이익률)과 이자율 간 격차의 문제가 있어요.
연금보험이란 잔여수명이라는 불확실성을 얹고 상환을 먼 미래로 유예시킨 장기채권과 비슷한 것인데,
같은 돈을 갖고 내가 불릴 수 있는 속도(ROA, ROE)가 훨씬 더 빠를 경우 현금을 이런 장기채권에 묶어둘 유인이 없을 것 같아요.
연금보험이 유인을 가질려면 상당히 높은 채권 이자율로 유인을 해야 하는데, 이자율이 낮은 시기에는 보험사 입장에서도 그런 설계를 만드는 것이 힘들게 되어있죠.
보험사의 거래는 실질적으로 고객에게는 저리의 채권을 팔고, 자기들은 그보다 높은 수익률의 채권을 사서 그 스프레드(수익률의 차이)를 먹는 거래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보험사가 매입할 수 있는 시장의 채권들이 10% 수익을 줄 거라는 기대가 있을 때에는 고객에게도 8% 채권을 팔며 유인을 할 수 있는데 (8%로 30년이 경과하면 원금의 10배가 되니까요) 지금처럼 보험사도 3% 짜리 채권을 살 수밖에 없을 때에는 고객에게 2% 채권을 팔아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설계를 해도 매력적인 모양새가 안 나오죠.
그런 이유로 아마 지금처럼 정책금리가 0%인 시대에는 보험사들이 장사하기가 아주 힘들 겁니다.
사족) 저는 연금보험에 있어서 가입자가 보험회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스스로의 잔여수명이 인구 평균보다 유의미하게 높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예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려니와 가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가입자의 잔여수명은 보험사가 보유한 인구통계학 데이터에 수렴할 것이고 스스로 잔여수명이 길 것이라 기대하는 집단의 실제 잔여수명도 평균에서 +0.3 sigma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래서 의료보험이 아닌, 연금보험에서는 역선택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네, 저도 사족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본문에서 언급한 논문을 보면 그런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고요 :)
굿굿!
국어황들 댓글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제가 치킨을 먹게 되다니 놀랍군요. 글은 지금부터 찬찬히 읽어보고, 치킨은 나중에 맛있게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왕 부럽당...
발송했습니다! :)
설명 듣고나서 바로 이해가 가긴 했는데. 저걸 수험장에서 어찌 생각하오리까... ㅠㅠ 근데 보통 보험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험회사가 가입자에게 '알릴 의무' 혹은 '고지의 의무'를 부여하지 않나요? 가족력 등 보험회사에 알려야할 사항을 숨길 경우 추후 보험금 지급에 제한이 된다거나 이런 건 연금에서는 덜하거나 아예 없는 걸까요?
설명을 보고 이해가 가신 것만으로도 평균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ㅎㅎ 그리고 말씀하신 논점은 좀 복잡한 문제라서 본문에 소개된 논문을 참고해보길 권해드립니다.
ㅎㅎ 조금 위안이 되는군요... 언제나 좋은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D
안정적인 수입과 부의 크기가 상관관계가 있는게 아니라 생각해서 읭 하고있었는데 생존여부였군요.....
오래생존할수록 연금 총 수령액이 많다는 부분에서 ‘그럼 너무 오래살면 모아온 돈 다 써버릴테니까 안정적이지 않다는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맞네요! 시험장에서는 생각 절대 못 할 것 같네요
네, 시험장에서 생각할 필요도 없죠. 다만, 시험장 밖에서라면 충분히 고민할 만한 문제고, 또 수험생 혼자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라 제가 자문을 구해서 답변을 올려봤습니다. :)
오... 제 추론이 어느 정도 맞았나 보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참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답은 간단하다 했는데 정말 간단하군요 ㅎㅎ.
한가지 여쭈자면 , 오래 생존할수록 연금수령액이 많아진다는 말은 곧 사적연금은 사망시에는 사망후의 기간에 대해서는 연금은 지급하지 않는 계약이군요?
사망시 일부를 지급하더라도, 그보다 오래 살수록 더 이득이겠죠. ㅎㅎ
해설 보기 전까지는 이게 어떻게 오류가 아닐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왔었는데, 머리가 시원해졌네요 ㅎ 감사합니다.
오류라고 생각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오래 살 사람들만 연금에 가입하고, 짧게 살 사람들은 연금에 가입하지 않아서?" 까지는 생각했는데 그 뒤에 부랑 수명이랑 또 같이 연관짓다가 ㅠㅠ
본문 보고 이해는 깔끔히 했어요.. 역선택은 부와 관련없고 수명이랑 관련있다?
근데 또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빌게이츠가 오래 산다고 해서 노후대비가 어려울 것 같지는 않긴하고..
사실 "노후대비가 어렵다"가 보험경제학 용어? 인가
국어가 정말 어렵네요.. ㅠㅠ 더 열심히 할게요 그래도 풀면서 재미있었음
재미를 느꼈다면 이미 평균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
와 이 글 읽으면서 어색함을 느꼈는데 이런 이유였군요
본문에 있는 글중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본인이 너무 오래 살것으로 생각되어 안정된 노후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라는 말이 자신이 오래 살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늙어서는 일해서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힘든것이다 라고 이해하는게 맞나요??
국어5등급이라 이해가 힘드네요 ㅠ
정리 감사드립니다!!!!
치킨 받으시는 국어황 한 분은 의대 한 분은 무명의 고수...
제가 길게쓴글은 아닌가요 ㅠㅠ 답장없는 장문 하나있습니다 ㅠㅠ
아닙니다. 안정적 노후 생활을 부와 연결시킨 경우는 다 제외했습니다. 국민연금과 결부시킬 필요도 없고요!
오래간만에 오르비에 들어왔더니 흥미로운 내용의 글이 있어서 댓글 달아봅니다
저야 이 댓글은 선생님이 쓰신 두 글을 다 읽고 쓰는 것이라는 점 당연하지만 미리 밝혀둡니다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연금보험의 가입자: 내가 납입하는 보험료 총액보다 지금받는 연금 총액이 같거나 많으면 연금보험에 가입
연금보험사: 내가 받는 보험료 총액보다 지급하는 연금 총액이 적거나 같으면 연금보험을 운영
따라서 이론적으로 연금보험의 수요자가 공급자가 일치를 이루는 지점은 보험료 총액=연금 총액
다시 표현하자면 매달 납부 보험료×납부개월=매달 지급 연금×지급개월
그런데 지문에서 보험료 총액<연금 총액의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고 매달 납부 보험료, 납부개월, 매달 지급 연금은 보통 보험 계약시에 사전에 결정되는 부분이고 결국 이런 상황은 지급개월이 늘어나는 경우에만 가능
그 이유로 역선택 현상(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만 가입)때문이라고 했음
즉 여기서 말하는 안정된 노후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지급개월이 높은=기대수명이 긴 사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여기서 이 문장에서 설명이 부족했다고 하면 보험료와 납부개월 그리고 연금액이 사전에 결정되는 요소라는 점이 생략되어 있어서 이해가 어려운 문장이 됐을거라 생각합니다
상세한 댓글 고맙습니다.
'공정한 보험' 기출지문과도 엮어서 설명할 수 있긴 한데... 이런저런 보충설명이 들어가더라도 '안정된 노후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서 '기대수명이 긴 사람들'을 뽑아내는 건 보험경제학 전문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그냥 평균보다 오래 살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고, 그보다 빨리 죽을 사람들은 가입하지 않는다 정도로 표현됐다면 직관적이었을 것 같거든요. ㅎㅎ
참 재밌는 글이네요. 경제학자의 생각도 매우 흥미롭고, 직접 조사하셔서 이런 글 올려주시는 선생님도 대단하다는 상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댓글을 너무 늦게 확인했네요. ㅎㅎ 노력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가 아니라 수명과는 연관시켰는데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댓글을 썼었네요ㅋㅋㅋ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