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te [916979]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0-11-06 08:55:07
조회수 5,583

소송 = 신성하고 엄중한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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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모집요강 헌법소원이 뜨거운 감자네요. 

흥미로워서 댓글이랑 관련 글들도 읽어보았는데, 

일부 오르비유저들이 오해하고 있는 지점이 있는 듯하여 몇 마디 얹어봅니다.


1. 선발 기준이 '나'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소송을 하는 것이 맞냐?


소송은 기본적으로 '나'에게 이러저러한 해당 상황이 불리(여기서는 불합리가 더 적확한 어휘라고 보이긴 합니다만)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같은 논리로 수시 올인하는 사람들도 정시 확대하면 소송걸 수 있는거 아니냐?


정답입니다. 


3. 판례는 A에 대한 판결이므로 B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1) A와 B가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을 때


A와 B는 유사한 속성이므로 이 과정에서 인정된 이러저러한 것들을 활용한다는 목적에서 충분히 인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가 문제없다는 판결이 곧 B가 문제 없다는 판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딸기잼을 흉기로 인정하라는 소송에서 딸기는 음식이며 이를 잼으로 변형하여 투척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위해를 가할만한 논리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흉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다른 딸기 관련 소송에서 해당 판례가 딸기를 음식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활용하기 위해 충분히 인용할 수 있습니다. 


(2) A와 B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을 때


A와 B사이에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다면 당연히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과 마찬가지로 상이한 속성일지라도 판결과정에서 활용된 논리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즉 A에 대해 판결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여러 맥락들을 B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해당 판례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4. 현행 법상 문제가 없는데 왜 소송하냐?


현행 법에 다툴만한 소지가 있는 경우에 현행 법을 개정하라고 소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행 법상 문제가 없다고 소송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반적인 소송으로는 다툴 수 없으며, 그 소송하라고 있는 것이 헌재입니다.

또한 패소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소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5. 결


누군가의 과실이 명백할 때만 소송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소송이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하는 것이죠.

누구나 문제의 소지가 있어보인다면 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나 활력소모가 상당하여 하지 않을 뿐이지 

그렇다고 하여 '전문 자격이 있는 누군가에 의해 신성하고 엄중하게, 사전에 거의 모든 가능성을 파악한 이후에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닌 일일지라도 해당 사안에 대해 법률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느껴지면 소송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일부 오르비분들은 재판을 통해 다투는 일이 심각하고 신성하게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는데, 그래야만 추후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법을 활용하여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법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해요. 로스쿨 논의가 시작됐던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법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무언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때 마냥 참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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