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1917 [879657] · MS 2019 · 쪽지

2020-10-24 13:49:34
조회수 737

시립대 1,3번 분류 문제 정리해봤습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2792355



시립대 제시문이나 3번 보기가 고전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늘 어렵던데 이번에도 그렇게 나왔네요. 사실 그거보단 2번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아요.

여하튼 분류 문제를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우선 분류는 가,나와 다,라로 했습니다.

가는 고대 폴리스 사회를 이루고 운영하는 주체로서 '시민'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민은 여성, 외국인(귀화 제외), 노인, 어린이, 노예을 제외한, 즉 간접적으로는 노예가 아닌 성인 남성을 가리킵니다. 즉 시민의 자격은 계급/계층/귀속 집단에 따라 구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집단을 제외하는 것만으로는 그 성격을 명확히 할 수 없죠. 따라서 제시문은 시민은 재판과 정치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로 정의합니다. 민주주의 사회건 과두제 사회건 좀 차이는 있지만 여하튼 국가를 운영하고, 구성할 자격은 재판, 정치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즉 시민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시문 가는 자격과 능력에 따른 신분, 권리에 구별을 두는 사회를 설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가는 민주제 기준의 정의에서 과두제까지 포함할 수 있는 정의를 해야한다고 얘기합니다. 근데 뭐 좀 더 명확한 정의에 따른 구별이 필요하다는거지 분별성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시문 나는 오늘날 언어순화 운동이 하층민만을 겨냥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노가다판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집단이 쓰는 (외래어가 다분히 들어간) 말들만 중점으로 순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데, 기실 상층부 직업들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현상을 '현대판 이두'라고 설명하는데, 제시문에서는 이두는 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볼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런 현대판 이두들이 용어가 쓰이는 집단을 벗어나서 특별히 쓰이는 것이 아닌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점을 볼때, 제시문은 집단에 따른 행동이나 문화의 분화, 분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층부 중심의 언어순화 운동을 비판한다는 점은, 다른 집단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나아가 구별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구별을 긍정했다는 점에서 가와 궤를 함께합니다.

제시문 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숙련 노동(=기술직, 상당한 능력이 요구되는 노동)만을 우대하고, 자동화 등을 통해 비숙련 노동은 밀려나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비숙련 노동이 밀려나고 천대받는 상황이 능력중심사회, 하층부터 시작하여 사무직 등 다양한 영역의 노동시장에서의 소외를 불러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숙련기술직과 비숙련하층불안정노동자 간 구분과 구별이 심화되고 차별과 불평등이 확대됨을 이야기합니다. 심지어는, 하층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마저 해쳐 이런 상황의 변화는 지연되고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다는 능력이나 지위의 구분이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논조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키워드가 들어가있으면 이런 상황을 비판하는 부정적 늬앙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구별과 특화를 인정하는 (가)의 폴리스 사회를 소개하는 제시문과는 다른 논조로 보입니다.

제시문 라는 근대 서구적 사고관으로서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철학을 비판합니다. 막스 베버는 전문성과 특화를 중시할수록 생산과 이윤획득의 효율성이 늘어남을 이야기합니다. 반면 제시문 라에서 인용한 공자의 '군자불기'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히려 또렷한 전문성 보단 다양한 영역 간 조화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더욱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봅니다(산업 간 융합 등...).

따라서 라는 분화와 구분보단 어우러진 자세를 강조함으로서 가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번의 <보기>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불러 모아 등용한 맹상군을 비판하는 논지의 글입니다.
그런 잡재주(?)를 가진 사람보단 '참된 선비'로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즉 정리하면 전문성이나 능력에 따른 인재등용보단 모종의  보편적인 덕, 전문성 따위와는 한 차원 구별되는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맹상군에 찬성하면 가,나 비판하면 다, 라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여하튼 저는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이고...더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신 분도 있겠죠? 판단은 여러분들이 알아서...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