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정시밀당중 [954167] · MS 2020 · 쪽지

2020-08-10 22: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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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허비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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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소감문을 써내려가며, 이런 주관적인 내용조차 일목요연하게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해진 나 자신을 느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이런 글을 쓸 시간에 보다 일상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겠지만, 지금 당장은 합리성보다도 원래의 내가 가지고 있던 문장 서술력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따라서 지금 나는 짧은 반성문을 써보려 한다.


나는 항상 남들이 내 시간을 빼앗는 것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날을 세워가며 경계했었다.

그렇게 겉보기에 아득바득 모아놓은 시간들로, 나는 정녕 무엇을 했던가?

커뮤니티를 표류하며 흥미로운 제목의 글들을 클릭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

이제는 세상을 지배해버린 '알고리즘'을 따라 영상들을 시청하고, 그렇게 10분, 20분씩 자각 없이 허비하는 것,

별로 관심도 없는 주제의 가십거리를 그냥저냥 따라가며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

이 모든 행위들을 하면서도 항상 마음 한구석엔 본업과 멀어져 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것.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나쁜 습관들은 결국 일주일이 모여서, 한 달이 모여서, 일 년이 모여서 나보다 단 10분이라도 더 자각 있는 삶을 살아왔던 이들과의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냈다.

매 순간의 의지박약과 작은 포기들은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어영부영 대충대충 마지못해 끌고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 돌아봤을 때에는 나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커져 있었다.

똑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늘 '불이익이 닥치지 않을 수준'까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들은 학생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수준의 공부를 넘어서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젊음의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한 번뿐인 학창 시절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고 있으면서, 십 대의 마지막 순간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나는 왜 내가 진정 바라고 있는 일들을 실천하지 않고 그저 후회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며, 개선하지는 않는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이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환경의 불리함은 나약함의 동기를 조금 부여해줬을 뿐, 결국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낸 건 그 환경을 핑계 삼아 안주해왔던 나 자신이라는 것을 사실은 나도 선명히 느끼고 있다.

남들보다 큰 꿈을 꾸면서, 왜 남들보다 크게 노력하지 않는가?

자신이 부족함을 알면서, 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려고 하지는 않는가?

몇 개월 뒤면 받아들게 될 결과 그 자체보다도, 나중에 성인이 되어 10대를 회상하며 만족감보다는 자기 혐오와 후회만을 느끼게 될 스스로에게 미안하지는 않은가?

어떤 일 한 가지에 완전히 몰입하고 미쳐버려서 훗날 그 시기의 제목을 붙이려 할 때 한 가지 단어밖에 떠오르는, 그런 열정적인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는 건 분명 인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결국 나는 나에게 주어져 있던 두 번의 기회 중 첫 번째 기회를 절반쯤 떠나보내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완전히 놓치는 것보다도 최악의 경우가 기회를 '반만 잡는' 일이라고 본다.

기회를 온전히 잡을 정도로 한 가지 일에 매진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이 기회를 놓친 만큼 다른 일에서 똑같은 양의 가치를 창출해낸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의 노력을 과대평가하며 늘 그 자리 그대로 또다시 안주하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그릇을 넓히는 데에 소모할 수 있었을 시간과 정신력을 허비한 나 자신.

그런 스스로를 미워하고 이미 떠나보낸 시간들에 압도된 동안 난 역시나 기회를 조금조금씩 잃어갔다.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 시간과 지금 이 젊음.

아직 반쪽짜리 기회와 온전한 한 가지의 기회가 남아있다.

이미 끝난 시간들에게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던 불완전한 시간'이었다는 최후의 이름이 붙을 수 있도록,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주체인 삶을 살아보자.

다른 것 하나 신경 쓸 것 없이, 온전히 내 시간을 살아가는 데에 몰입해보자.

그것이 내가 나의 마지막 10대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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