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want [51720] · MS 2004 (수정됨) · 쪽지

2020-04-23 14: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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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지망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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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전원 출신입니다. 그래서 의대생의 생활, 생각은 모릅니다.

다만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봤을 때 제가 느꼈던 점들을 적은것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 꿈

의대를 지망하는 모든 여러분께는 저마다의 꿈이 있을것입니다.

그 꿈에는 막연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부터 나는 무슨과 의사가 되서 무엇을 하고싶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의학 전공을 배우면서 그 꿈은 많이 바뀌고는 합니다. 이 분야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부터, 특정 분야를 이해하기 어려워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결국 내가 가장 하고싶은걸 고르는게 아니라 차악을 고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상의학은 사실 학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초의학을 꿈꾸는 분들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실제 기초의학을 의대 출신이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의대에서는 생명공학, 수의학, 약학, 화학등을 전공하신 교수님들이 의대 기초과학 교수님으로 계십니다.)

임상의학은 경험에 입각한 통계결과 집합체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치료는 소위 '해보니까 되더라' 수준의 근거에 입각하고 있고, 표준 치료는 '여러 사람이 많이 해보니까 되더라' 라는 결과로 채택됩니다. 이게 왜 되는지 원리는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문에 의대 수업을 듣는동안 명의를 꿈꾸며 치료의 기전을 이해하고 적제 적소에 교과서적인 치료를 적용하고자 하던 학생들은 막연함 앞에 당황하고는 합니다. 더군다나 전 의과분과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넘어가야 하기에 학생시절동안 거의 불가능한 양의 공부를 해내야 합니다. 대부분의 범인들은 암기를 해내기도 버거워 더 나아간 탐구와 공부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 잘 되고 이해가 되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도저히 못하겠다는 분야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분야가 의대 진학 전과는 많이 다를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꿈이 바뀌어갑니다.


2. 현실

의대를 졸업하고 국시를 통과하면 의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 어떤 분야의 의사가 될 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의사자격증을 가지고 GP(일반의)가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의사 자격을 활용하여 공무원이 되거나 법조계 공부를 이어하여 완전히 다른 분야로 가기도 합니다. 특이 케이스로는 한의대를 진학하여 더블면허증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턴,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의 길로 가게됩니다. 전문의를 딴다고 끝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페이닥터, 누군가는 개원, 그리고 누군가는 교직으로 가게 됩니다. (교수직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니..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ㅠㅜ)


과거에는 의사들이 초년생부터 회사원들이 꿈꾸기 힘든 수입을 얻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일하는게 정답인 시절이었습니다. 일반의로 나가는게 권장되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의사 수는 포화되고 (우리나라 기준 포화입니다. 의료 시스템 환경에 따라 국민당 의사수가 저희보다 많은 나라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의사도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때입니다. 일반 GP로 나가서 페이를 뛰면 남들보다 늦게 취업한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기에는 적은 수입을 얻게 됩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일반인들도 아픈 증상에 따라 과를 보고 병원을 방문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일반의로 살아남기는 매우 어려워질거라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이에 전공분야를 정하여 인턴1년, 레지던트 3-4년을 보내게 됩니다. 남자라면 여기에 군대 3년이 붇어 총 7-8년의 시간입니다. 정말 긴 시간이지요. 이 시간이 지나가면 싫으나 좋으나 그 분과에서 평생을 보내야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렇다면 과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비전? 페이? 아니면 QOL?


3. 선택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데에 있어서 정답이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역시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것'을 선택해야합니다.


과에 따라서 분명히 대세가 되는 과가 있고 비인기과가 있습니다. 과거 정재영, 피안성 이런 용어들이 대세과를 지칭하는 단어들입니다. 이러한 인기과는 결국엔 돌고 돕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상 수가에 연관된 정책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인기과는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는 페이나 QOL에 입각한 인기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흥미, 관심과는 다르게 페이, 인기만 보고 과를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책임' 때문입니다.


의사가 사회에서 존중받는 직업군인 이유는 돈을 잘 벌어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닙니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책임' 때문입니다.

의사는 내게 오는 모든 환자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으며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부단히 노력해야하며 평생 공부해야합니다. 그러한 책임 완수에 대한 노력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의사라는 직군이 존중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내 관심분야와 다른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어야만이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비전이 덜하더라도, 페이가 조금 덜하더라도 내가 관심이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맺음말

저는 일반외과 (GS) 전공의입니다. 일반외과는 현재 손꼽는 기피과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기에 왔습니다. 


저는 바이탈이 보고싶었습니다. 그리고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치료가 좋았습니다. 바이탈을 보는 과라면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다양한 분야 분과들이 있습니다만 수술만큼 드라마틱하게 질환이 개선되는건 없다고 느껴 학생때 부터 인턴기간까지 외과에 관심이 생겼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의대에 진학하여 과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 올때 개개인이 하고싶은게 하나씩 생길것입니다. 그때 꼭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고싶은 분야에 가서 배우고 훌륭한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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