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726956]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20-03-04 0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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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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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 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우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 조지훈, 「산상(山上)의 노래」 -


*사양 : 겸손하여 받지 아니하더나 응하지 아니함. 또는 남에게 양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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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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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 왔는가.

→ 첫 연에서는 화자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화자는 “높으디 높은 산마루/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홀로”, “긴 밤”을, “무엇”“간구하며 울어” 왔다고 진술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높으디 높은 산마루/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라는 시행을 한 번 머릿속에 그려보자. 아주 높은 산마루(그냥 산의 꼭대기라고 생각해도 된다.)에 낡은 고목이 서있다. 그리고 화자는 이곳에 못 박힌 듯이 기대어 있다. 화자는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간구하며 울어” 왔는데, 이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아주 긴 밤을 그렇게 울어 왔다.

 분명 좋은 상황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해 부정적인 상황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화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를 간구하며 긴 밤을 울어 왔다는 것이다. 즉, 화자는 “무엇”인가를 아주 원하고 있다. 화자의 소망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소망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시를 더 감상해보자.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 화자는 갑자기, “이 아침”이라는 시간을 설정한다. 그런데 화자는 “이 아침”을 이야기할 때, “아아”라는 영탄적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아침”엔, “종소리” “은은히” 울려온다. 이 종소리는 “시들은 핏줄의 굽이굽이로/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온다. 

 도대체 어떤 아침이길래, 은은한 종소리가 온 몸 속에 은은히 울리는 것일까? 1연에서 가졌던 의문점을 약간 연결해 봐도 좋다. 하지만, 여전히 단서가 부족하다.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 화자는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꽃다운 하늘이거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제”는 2연의 “이 아침”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보는 게 맞다. 화자는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아침”이라는 시간대에서는, 눈을 감더라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라고 말한다. 화자에게 있어서 “이 아침”이라는 시간은 눈을 감아도 “꽃다운 하늘”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꽃다운”이라는 말로 미루어 봤을 때, 이 시간은 아주 아름다운 시간이다. 도대체 왜 “이 아침”은 아름다운 시간일까? 이를 다시 1연에서 얘기한 의문점과 연결해보자. 이제 슬슬 윤곽이 잡힐 것이다.

 화자는 1연에서 “무엇”을 간구하며 울었다. 그리고 2연과 3연에 등장하는 “이 아침”의 시간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가 있으며, “눈감아도 오히려/꽃다운 하늘”이 펼쳐져 있다. 화자가 이처럼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우리는 이런 의문을 거치고 나서야, 당연히 1연에 말하는 “무엇”이 이루어진 시간이 바로 “이 아침”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화자가 염원하던 게 이루어진 “이 아침”은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눈을 감아도 꽃다운, 아주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화자는 이 아름다운 시간에, “내 영혼의 촛불로/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라고 말한다. 화자가 가진 “영혼의 촛불”이라는 공간으로, 어둠 속에서 나래(날개)를 떨며 지내던, “샛별”이라는 존재는 숨으러 간다. 


 이곳의 “어둠”이라는 건 어떤 상황일까? “샛별”이라는 존재가 날개를 떨며 지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샛별”이라는 존재는 뭘까? “샛별”은 어둠 속에서 “나래”를 떨며 지냈어야 하는 존재다. 즉, “샛별”이라는 대상은 어둠을 두려워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어둠은 “샛별”을 떨게 만드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어둠은 부정적 상황이 되고, 샛별은 부정적 상황 속에서 떨며 지내는 존재가 된다. 어째서 떨까? 어둠이 샛별을 억압해서일 것이다. 

 아직 어려울테니 더 생각해보자. 샛별이라는 존재가 어둠 속에 떠있으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까만 하늘에, 샛별만 반짝인다. 그런데 이런 샛별은 떨며 지내야 한다. 주변의 어둠 때문에. 화자는 이런 “샛별”에게 “내 영혼의 촛불로” “숨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자의 촛불이 밝게 빛난다면, 샛별의 존재도 숨겨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샛별도 더는 떨지 않을 것이다. 촛불이 함께 주변을 밝혀주고 있으니까.

 이처럼, 화자의 “촛불”“샛별”을 숨길 정도로 밝게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즉, 화자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샛별”과 함께 어둠에 대항하여 빛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촛불”은 화자의 어둠에 대항하는 의지의 표상이며, “샛별”은 나약하지만, 어둠에 대항하는 의지의 표상이라 볼 수 있다.




환히 트이는 이마 우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

→ 다시 돌아와서, 이 연에서는 햇살이 떠오르고 있다. 2연과 3연에서 말한 아침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아침에 뜨는 햇살은 “환히 트이는 이마 우”에 떠오른다. 화자가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햇살”“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라고 말한다.

 화자는 3연에서, 어둠과 불빛(영혼의 촛불, 샛별)의 시각적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활용했다. 화자는 이를 통해 어둠은 부정적인 상황이며, 불빛은 “어둠”에 대항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 아침에는 “햇살”이 떠오른다. 어둠이 완전히 물러나기 시작하고, 햇살과 같은 강력한 불빛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확실하게, 화자가 염원하던 “무엇”이 이루어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두고 화자는,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라고 말한다. “시월상달”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화자가 염원하던 것이 도래한 현실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는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뒤의 에서 제대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 화자는 이런 아침에 대해,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라고 표현한다. “메마른 입술”이 표현하는 것은 화자의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침에는 메마른 입술이더라도 “피가 돌아” 온다. 즉, 화자도 부정적 상황을 벗어나서, 회복하고 있다. 

 화자는 이처럼 회복되는 입술로 “오래 잊었던 피리의/가락을 더듬노니” 라며, 피리를 불 것이라고 말한다. “피리의 가락”을 오래 잊었던 까닭은, 오랜 기간 부정적 상황에 존재했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고, 이러한 가락을 더듬는다는 것은, 화자가 “이 아침”을 맞이하여, 기쁨의 피리를 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 이에 맞추어, 새들도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한다. “이 아침”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새, 사슴, 토끼의 존재가 모두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 다시 화자는 “높으디 높은 산마루”에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있다. 여전히 “내 홀로 서서”있지만, 약간 다르다. 화자는 방금까지 자신이 간구하며 울어왔던, 그 “무엇”에 대해 쭉 생각했던 것이다. “무엇”이 이루어진 “이 아침”이라는 시간을 상상하니, 화자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바람은 “맑은 바람”이 된 것이다. 화자는 아직 “높으디 높은 산마루”“홀로 서”있으니, 부정적인 상황에 존재함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고 “무엇”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화자는 이처럼, “무엇”이 다가오는 것을, 노래하며 기꺼이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의 대조

→ 이 시에서는 시각적 이미지가 계속 대조를 이룬다. 3연의 분석에서도 말했듯, “어둠”과 “불빛(영혼의 촛불, 샛별)”의 대조를 통해, 부정적 상황과 “어둠”에 대항하는 염원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대조는 한 번 더 등장한다. “아침”이라는 시간적 배경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통해 등장한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면, 어둠은 걷히고, 햇빛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 햇빛은 화자의 “이마 우”에 비춘다. 화자는 이 “햇빛”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걸 왜 바라볼까? 당연하다. 화자가 이런 순간을 원했기 때문이다.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곳에서 비유를 통해 한 번 더 이야기한다.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라는 직유를 통해 이야기한다. “시월상달”이란, 10월에 뜨는 달을 이야기한다. 10월은 가을이다. 달이 아주 크고 밝게 뜨는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월상달”이 뜬 밤하늘을 떠올려보자. 어둠 속에서, “시월상달”만이 아주 밝게 빛나는 것이다. 이 “시월상달”은 “샛별”과는 다르게, 떨지 않는다. 아주 크게, 밝게 빛난다. 이처럼, 어둠 속을 환히 비추는 존재라는 뜻으로, 화자는 “떠오르는 햇살”을 “시월상달의 꿈”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rare-제헌이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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