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자가 카이스트 명예박사…'하나님' 나라의 자화상!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755441
신경 과학 책이 과학 출판계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점은 이해가 가능하다. 뇌 과학을 흥미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다양한 분석 및 진단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고, 그 분야로 몰린 과학자의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 과학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배울 수 없었던 최근 지식이니 이 새로운 지식의 급증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허나, 진화론 관련 책의 급증에는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진화론을 배웠고, 대학 입시에서도 관련 문제를 풀어야 했으며, 진화론이 최근에 와서야 지식의 엄청난 축적이 일어난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뇌 과학 지식의 급증과 비교했을 때 진화론 지식은 새것에 대한 추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옛것에 대한 재발견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왜 우리 독자들은 지금 진화론 서적들을 읽은 것일까? (출판계가 팔리지도 않는 진화론 책을 마구 찍어내지는 않을 테니 이 질문은 성립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재밌으니까"가 일차적인 답이다. 하지만 조금 더 큰 틀에서 생각해보자. 이에 대한 대답의 단초를 나는 몇 년 전에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팀에게 들었다. <신과다윈의 시대>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모 PD가 내게 질문했다.
"다큐를 위해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아십니까? 약 30퍼센트입니다. 그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내 즉각적인 대답은 이랬다. "종교적 이유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하는 말.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대답이 가장 많습니다. 이것은 대체 뭐죠?"
진화론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충격적인 조사였다. 대체 중·고등학교 생물시간에 진화론에 대해 뭘 배우기(배웠기)에 이런 대답이 나왔을까? 잠시 눈을 감고 내 학창 시절의 생물학 시간을 회상해보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용불용설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한 기린 그림,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헤켈의 발생반복설을 뒷받침한다고 알려진 배아 발생 그림,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그래서 진화 관련 계산 문제에 자주 등장한다) 하디 와인버그 공식, 이것이 전부였다. 혹시나 해서 헌책방에 들러 최신 생물 교과서도 훑어보았으나, 역시나 근 20년 동안 우리 학생들이 진화론에 대해 배웠던 내용은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떠올린 내용들이 진화론의 핵심도 아니며 심지어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난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에른스트 헤켈의 그림은 과학사가에 의해서 명백한 조작으로 판명 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생물학 교과서에는 버젓이 '진화의 발생학적 증거'라는 항목으로 등장해왔다. (불행히도 이 날조된 그림은 우리 중학교 교과서와 일부 과학 도서에서 아직도 퇴출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대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은 어떤가? 대학에서 일반 생물학을 수강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있다. "이 부분(진화론)은 중·고등학교 때 이미 배웠으니 그냥 넘어갑니다. 진도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우리는 진화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구닥다리정보로 공부해야 했고 심지어 틀린 내용을 밑줄 치며 배워왔다. 이것이 한국의 진화론 교육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여론은 이상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진화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 "진화론의 빛에 비추지 않고는 생물학의 어떤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지는 대목이고, 나처럼 진화론 연구와 소통이 업인 사람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진화학자들의 도움 없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 교과서를 소신껏(?) 집필해온 과학 교육학자도 공범이 되는 순간이다. (내 주변에 있는 진화학자 중에 과학 교과서 집필에 불려간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과학 출판계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진화론 관련 서적들은 우리의 이런 '결핍'을 채워주는 보충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관계'의 맥락에서 진화론을 창조론과 대비시키는 책들은 또 다른 한국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009년에 실시한 EBS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개신교인 중에 60퍼센트 이상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 국민의 60퍼센트 정도가 "창조론도 진화론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가?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는 오늘도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라는 황당한 기사가 메인 화면에 띄워져 있다. 이 단체는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에 근거하여 진화론을 거부하며 진화론이 창조과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홈페이지에 나온 그들의 비장한 미션은, "복음 전파의 커다란 장애물인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밝히고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을 드러냄으로써 창조의 신앙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실제로 이 단체는 지난 30년 동안 교회와 학교 등지에서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쳐왔고, 심지어 창조론의 관점으로 쓴 생물 교과서를 공인 교과서로 만들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 단체를 창립하고 이끌어온 명예회장이 대학 교육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현재 회장이다. 게다가 그는 작년 이맘때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의 과학기술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공적으로 카이스트(KAIST)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조용했다.
단 한명의 교수만이 "사이비 과학을 촉진시키는 것이 주목적인 협회를 만든 사람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것은 카이스트의 모순"이라며 공식적으로 항의했을 뿐이다. 세계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 어디에서도 창조과학을 주창하는 사람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히겠다"며 결성한 단체의 장을 대학 교육 정책의 수장으로 두지는 않는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던 분이 대통령이 된 이후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창조론 선전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 하이라이트! 얼마 전에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몇몇 일간지의 한 면을 도배한 어떤 개신교 목사의 광고물은 한국 개신교의 진화론 이해 수준을 정확히 드러내주는 경우였다. 그 목사는 "다윈의 학설처럼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도 어느 산속이나 정글에서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역사상 그것을 본 일이 없다"면서 진화론을 비판하고 창조론을 이야기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윈의 '생명의 나무' 개념만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질문인데, 그 큰돈을 써가며 신문에 광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현재의 침팬지나 원숭이는 몇 백 만 년, 몇 천 만 년 전쯤에 인간과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 우리와) 사촌 종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으로 진화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론의 기본을 배운 초등학생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이런 기초 지식마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전 세계 과학계에서 창조과학이 서 있을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보수주의 기독교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창조론(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은 단 한 번도 정식으로 과학 시간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가령, 지적 설계론 교육 여부를 놓고 5년 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벌어진 한 재판에서는 보수 기독교인인 판사마저도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딱 잘랐다. "논쟁이 있으니 창조론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자"라는 솔깃한 슬로건에 사려 깊은 기독교인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대체 논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치 "역사 해석에 논쟁이 있으니 한일 합병의 허구성도 함께 가르치자"라는 식의 황당한 제안일 뿐이다.
▲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 |
이 책은 세계 지성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로 불리는 존 브록만이 편집하고 16인의 세계적 석학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지적 설계론을 비판한 책으로서 생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물리학자들이 글을 썼다. 가령, 시카고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제리코인, 터프츠 대학의 인지철학자 다니엘 데닛,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하버드 대학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가급이 참여했는데, 이런 필진들이 지적 설계론 하나만을 다루기 위해서 함께 힘을 합했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이다. 이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각각 다르지만 지적 설계론에 대한입장은 한결같다. 지적 설계론은 사이비 과학이거나 기껏해야 저질 과학일 뿐이라는 것.
물론 과학과 종교의 관계 맥락에서 지적 설계론을 다룬 책들은 국내에도 이미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런 주제가 식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책인가? 이제 창조론을 다룬 책들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내가 앞에서 한국의 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할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진화론과 창조론 이슈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죽지 않았다. 이번 정권에 들어와서 더 심각해졌으며. 과학 교육의 관점에서도 더 많은 논의와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쟁점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 식탁(책)의 음식들을 잘 소화해낸다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거나 창조론 논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일차적으로 권할만한 책이지만, 전국에 계신 모든 과학 선생님들께도 일독을 권해드린다. 창조론에 경도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팁이 가득하다.
ⓒ프레시안 |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생윤사문 걍 너무재밌네 진작에할걸
-
저메추받음 4
부탁함다들
-
검을테면 철저히 검어라 단 한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
아니근데너무졸림 3
어캄
-
1학기때 3.0은 나와야 되는데 그래야 2학기때 수능 공부하면서 1점대 맞고 딱 2...
-
쪽지 주세요 ! 현우진 뉴런 김범준 대성마이맥 메가스터디 메가패스 강민철
-
잘잤다 6
나 집까지 어케 온거지 기억도 안나네
-
진짜 뭐지
-
킬링캠프 2
현우진 킬링캠프 3모기준으로 몇점정도부터 풀면 도움될까요?
-
시작 전에 제 개인적인 생각임을 미리 밝힙니다. 사전을 찾아봐도, 국립국어원 답변을...
-
2일 연속 떡볶이 먹어서 그런가 걍 웬만하면 당분간 굶어야겠음
-
맞팔구 1
한명이 팔취함 80은 유지해야됨
-
일단 병인양요랑 유럽짱깨 있는데 유럽짱깨는 걍 인터넷발 억지여론이고 잘 모르겠네...
-
파키케팔로사우르스임
-
식곤증 안오게 샐러드 마려운데 걍 백양누리갈지 고민되내
-
각잡고반수하기 0
슈웃
-
프랑스도 한국 안좋아하겠지만..... 뉴스 댓글보니까 부정적으로 보네 하긴...
-
ㅇㅂㄱ 0
기상
-
기파급 영어 1
서점에 파나요? 상하 둘다 사야하나요?
-
누굴 뽑아야하나 1
이미 글러쳐먹었지만 출산율 문제 해소 할만한 정책 구상 가능한 인간 뽑고 싶은데
-
본인의 눈치로는 쭉 보면 3사 다 쓰고있는거같은데 직원한테만 주나
-
퀄은 어떤가요???
-
평가원 #~#
-
본 칼럼은 물개물개님의 칼럼 대회에 제출한 칼럼의 수정본입니다. 급하게 썼던지라...
-
과외, 헬스, 데이트 무한반복 캬캬
-
근데 작년에 수능 이틀전에 감기걸렸을때 빨리나으려고 증상보이자마자 약먹고 하루종일...
-
저뿐인가요? 차라리 모고 돌릴때가 제일 집중 잘 되는거 같네요 ㅜㅜ
-
이번에 수능까지 염두에 두고 수학 과외 구하려는데 팁이나 에티켓 있을까요? 받아보신...
-
아니 음향 측심법 할때 당연히 왕복 거리니까 깊이는 속력 x 시간 x 1/2이겠지
-
지문에 나래이션: "A는 너무 힘든 상태에 있다." 라고 써있으면 나래이션을 통해...
-
좋아보여서 샀어요 인강 듣기도 시간 아까워서 틈틈히 읽어보기로 올해는 이거다
-
미친 하루 1
시험과 시험공부와 과제를 동시에 하는 날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
2년 동안 과외 받고 기출도 4회독 했는데 4등급이면 걍 구제불능 맞죠?
-
아는애가 툭툭 건드려서 뒤돌아봤는데 그 옆에 있는애가 대놓고 와 개못생겼다 이러더라 이게 맞는건가
-
단모음 외울때 4
학창시절에 기억나시나용 ㅋㅋㅋㅋ 저는 1번으로 외웠긴합니다 투표 ㄱㄱ
-
기저귀가 좋음 4
basis ear임
-
지금까지 뉴분감이랑 n티켓 시즌 12랑 이해원 n제 풀었는데 풀다가 제가 모르는...
-
난 굉장히 재밌었는데..
-
공하싫 0
수특풀기싫어어크아악
-
과외로 명품 살 생각하지말고 나도 돈모아서 주식 코인 인베스트먼트나 해야겠다
-
딸피라서 장난도 못치겠음 맨날 썼다 지움
-
더프 등급컷 2
어디서봐요? 나온게 확실해요????????? 화작 미적 물르 알려주세요
-
리버스 아이돌임
-
재수를 안하니깐..
-
PPT에 개 고양이 사진 자주보니까 공부하다가 사진보고 화풀림 그리고 교수님 설명에...
-
너무 잔인할거 같다
-
가능할까요? 7
도로랑 조급 가깝게 걷고 있었는데 차가 물웅덩이 밟고 지나가서 젖음 사과도 안하고...
-
듣기만 안틀렸어도 3,4덮 둘다 80중반인데 자꾸 두세개씩 나가네
-
다른 파트보다 유난히 귀류의 연속이고 내가 풀때도 현장에서 논리보다 시간으로 인한...
-
여동생 ㅋㅋㅋ 8
아이고
카이스트에 창조과학관이 있지요
기독교의 지겨운 말중 하나 -> 어떤 유명한 누구누구가 종교를 믿는다.
유명한 누가 종교인인것이 무슨상관?
결국 (현재까지의) 인간의 논리나 과학으로는 불가지 한것을
결국 어떻게 보면 신을 믿고 안믿고는 취향의 차이일 뿐임
스타킹이 좋은 사람 있고, 안경쓴 여자가 좋은사람 있듯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