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그린메타몽 [837548]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0-01-31 1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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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후기)대학발표가 늦는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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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나는 의대를 목표로 둔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 후회스럽지 않은 재수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한 노력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닐만큼 여유롭게 하기는 했지만, 엉덩이가 무겁지 않은 나로서는 나에게 딱 맞는 커리큘럼과 스케줄 관리로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6월과 9월 모의평가 때 받았던 나의 성적들은 점점 수능이 다가오면서 불안으로 느껴졌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어 2019년 수험생활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남았다.



  수시지원을 할 때에, 이 불안감을 지울 수 없어 결국 하향지원을 했다. 논술도 몇개 넣었다. 쓸 곳이 없어서 재수학원 담임선생님께서도 '네 성적에 여길 왜쓰냐'라고 했던 학교도 넣었다. 그저 막연한 불안감에.. 그리고 아무리 뒤져봐도 정말 더 이상 쓸 곳이 없어 의대논술도 두군데 지원했다.


  수능날이 오고, 왠지 느낌이 좋았다. 수험번호 뒷자리도 내 생일과 일치했고, 내가 가고싶었던 고등학교, 우리 엄마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컨디션도, 당일 행동강령 비슷한것도 다 잘 챙겨갔고 잘 숙지하고 있었다. 느낌이 좋았던 만큼 (BIS지문은 멘붕와서 건너뛰었지만 원래 국어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마지막 시험까지 분명 최선을 다해 치뤘었다.

시험이 끝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엄마와 언니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가면서 국어와 수학을 채점했다.

처음에 국어. 받은 성적을 보고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래 약한 과목이기도 했고, '다른애들도 어려웠겠지' 하는 심정으로 괜찮으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수학. 뒤로 갈수록 틀린 갯수가 늘어나더니.. 결국 처참한 점수를 받았다. 내가 살면서 수학에서 그런 성적은 듣도보도 못했었다. 

작년같았으면 가는길에 울고, 집에가서 미친년마냥 소리지르면서 울었겠다. 

하지만 올해는 첫번째가 아니어서였는지 생각보다 무뎠고, 운다고 뭐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는 허탈한 생각에 그냥 멍하니 있었다. (다행히 그 뒤에 영어와 과탐은 잘 받았었다. 그러나 수학을 너무 망했다는 생각에 뒤덮인 나머지 다른 과목들은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내가 수학을 만만하게 봐온 탓인가?

수학 때만 너무 긴장을 안해서 그런걸까?

6,9평때는 단 한번도 90점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수능 수학때만 되면 성적이 미끄러진다.

수능이 끝나고 이틀 뒤에 첫 논술시험을 보러가야했다.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을 쳤지만, 그래도 해야했다. 절대 삼수는 하고싶지 않았다. 원래 재수도 내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어거지로 학원에 가서 논술모의시험을 복기하고, 공부하고, 자신감은 금방 다시 차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논술 학원을 1년 반정도 다니면서, 나름 상위권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 자신있었다.

시험장에 가서 모든 시험들을 최선을 다해서 봤다. 모르는게 생겨도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끄적이다가 결국 답을 도출해내서 풀이도 정말 꼼꼼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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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불합격이었다. 다들 당연히 붙을거라고 생각했던 학업형조차도 불합격이었다. 예비도 없었다. 답이 부족했나? 생각해봤지만 오르비 사람들과 답을 맞춰볼때는 분명히 답이 다 맞았었다. 풀이가 부족했나?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서술형 시험때도 풀이를 너무 길게 쓰느라고 늘 시간이 딱맞춤 내지 부족했던 나였다. 

정말 전부 하나같이 다 떨어질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한번의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내가 부족했나 보지 뭐' 하는 심정으로 넘어갔다. 정시로 일단 어디라도 써봐야 하니 벌써 포기하면 안됐다. 의대가자고 이러는것도 아니었고, 그냥 웬만큼 이름 들어줄만한 학교만 가도 상관없었다.


  가군, 나군은 모든 심혈을 기울여서, 매일매일 볼드모트사를 보면서 표본분석도 하고, 한강의 흐름님 설명회대로 분석해보고, 온갖 개지랄을 했다. 진짜 개지랄 했다. 대학에서 아이디별로 볼드모트사 조회 횟수 확인해서 많이한 애 1순위 데려간다 했으면 내가 갔을 것이다. 그런다고 누가 붙여주는것도 아닌데, 정말 너무 간절했다. 

하루는 엄마 붙들고 대학에 가고싶다고 막 울기도 했었다. 다른 애들은 대학 다 잘 가서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대학가기가 힘드냐고, 의대가자고 이러는것도 아니고, 그냥 웬만큼 이름 들어줄만한 학교만 가도 상관없는데, 왜 나만 수능날이 이렇게 버겁고 입시가 힘드냐고 울었다.


  결국 가군 발표날, 예상했던 불합격을 받았다. 불합을 받을거란 예상은 했지만 과 특성상 예비가 많이 도는 곳이라 안심하려고 했다. 

그런데 tlqkf, 점공에 상위권 표본이 거의 없었다. 예상했던 등수보다 훨씬 뒤로 밀려났고, 꽃됐다는 생각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나군을 안정으로 썼기에 '아 ㅋㅋ 가군버려 나군간다' 하면서 먼저 발표할 다군을 기다렸다.

  다군은 어차피 적성에 안맞는 과라 막 질렀던 곳인데, 그래도 불합 받으니 기분은 더러웠다. 2년간 18군데 지원하면서 17번째 불합격이었다.


  대망의 나군 발표일. 오전 과외를 하고 있었다. 그날 학생이 '쌤 합불 확인하세요~' 하는 심정으로 졸아준건지, 애가 그날따라 너무 졸길래 '화장실 가라'고 하면서 나도 잠깐 화장실가서 확인을 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점공계산기를 돌렸을때에는 최대 4번?5번?예상이었다. 아, 예비 7번이 떠버렸다. 18번 불합이 아니란 사실에 눈물겨운것도 잠깐이었지, 7이라는 숫자는 과외하는 나머지 시간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다가, 집에 오는 순간 눈물로 쏟아졌다.

이러다가 정말 대학 못가는건 아닐까

재수도 하고싶지 않았는데, 정말 한강을 가야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나의 두번째 충격이었다.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내가, 사람도 점점 안만났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면 또 대학얘기가 자연스레 나올텐데, 이 긴 얘기를 다 들려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집안에만 박혀있자니 너무 우울해지고, 누구랑 만나 놀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엄마는 내가 걱정되셨는지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셨다. 그러나 여행가기에도 지쳤었고, 왠지 또 누군가가 '이시국'을 외칠까봐 가고싶었던 일본생각도 접었다. 

돈버는것밖에 할 게 없었다. 누구는 수능끝나고 쉬지않는 너는 정말 바보다, 라면서 비웃을 수도 있을만큼 그냥 돈만 벌었다. 돈이 부족한것도 아니었는데, 하고싶은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고 싶은 알바는 많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학을 가게 되면 더 못할까봐 알바를 구하면서도 계속 예비번호 7번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 애매한 위치에서 당장이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일자리를 더 알아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번의 불합격과 예비번호 7번은 어디를 가도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애매한 나의 상황과 함께 자꾸 떠올랐다. 대학을 붙을지 못붙을지 애매해 죽겠는데, 대학가게 되면 이건 못하게 되겠지, 이 알바도 오래 못할테니 신청하면 안되겠지, 하면서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지금은 화 3~10, 수 1~3, 3~10, 목 6~8, 토 12~5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 과외도 있는데, 편의점알바가 주 8시간이다. 내가 해보고 싶어 쓴 곳이긴 한데, 1년동안 운동을 쉬다가 하루 4시간씩 서있고 재고 정리하려니까 너무 피곤하다. 덕분에 12시 전에 꼬박꼬박 잔다. 10시 넘어야 일어나는게 흠이긴 하지만..

자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하는 중에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꿈에 나온다. 대학 발표 확인하는 꿈, 대학 물어보는 친척들이 나오는 꿈, 사람을 토막내서 냉장고에 숨기는 꿈, 대학 붙었다고 하는데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꿈, 어떤 꿈을 꿔도 그냥 악몽같이 다가온다. 모든 잠마다 꿈을 꾸는 나로서는 너무 괴롭기만 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몇번이고 눈물을 흘리다가, 할게 없어서 다시 잠에 들거나 더러운 기분으로 나갈 준비나 한다.


이렇게 미친듯이 일할때 만큼은,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나의 마음은 강했던 때를 자꾸 잊어버리게 되어서, 예전의 나였으면 울기는 커녕 비웃고 넘어갔을 일들이 자꾸 나를 울린다. 겨우 극복했었던 고2때의 우울감을 닮아간다.

나는 지금 그렇게, 1월의 마지막에 서있다.

-2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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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용 오르비에 가입한지 어언 1년이 되어가는데 긴글을 쓰는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여

웬만하면 신세한탄글이 좀 추해보일까봐 안쓸랬는데 어찌해도 풀릴 길이 보이질 않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단 심정으로 몇자 끄적여봤어요

우울할때마다 글을 쓰게 되는 버릇이 있었는데, 3년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되네요

대학발표를 기다리는 이 기분이 너무 처참해서 글로 써도 뭔가 다 풀리지가 않아요..ㅋㅋㅋ 필력이 부족해서 다 담아내질 못하겠어요.


어째 뒤로 갈수록 중구난방해지는 것 같지만.. 아 얘는 이렇게 살았겠구나, 하면서 그냥 썰 뭐 이런거 읽는다는 기분으로 넘어가주세요 ㅎㅎ

여러분은 수능이 끝나고 대학발표일까지 뭐하면서 지냈는지, 발표나고 나서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길어도 좋고 신세한탄도 좋으니 편하게 다 털어놓는다는 기분으로, 여기에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가요.


합격자분들 너무 축하드리고, 

불합격하신 분들은 수고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모두 2020학년도 입시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른 입시는 후딱 끝내고 손절하세요

조와요좀 눌러서 기분 풀어주세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20학년도 수능

최대 1개 선택 /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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