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landau [480550]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20-01-15 0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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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예지님(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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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방에 있는 학교에 재학중인 물리교육과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근에 실시간 검색어까지 오르게 된 학원강사의 발언과 그에 대한 반응을 유투브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예지씨라는 학원 강사분을 까기위해서도 아니고 변호를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저도 한 때 수험생활을 하면서 인강을 많이 들었고 인강 강사들에 정신적으로 의존을 많이 했었던 학생으로서, 공부에 또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대학생으로서 여러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보시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씁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고등학교) 시험을 위한 공부만이 공부의 전부인줄 알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능에 별 도움되는 것 같지 않은 학교 선생님들보다 수능을 잘 가르치고 기술적인 것들을 연구하는 인강 강사들을 훨씬 더 좋아하고 정신적으로도 의존해가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적었기에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고등학교 때 공부를 보여주기식 공부만을 한 것 같아 '열심히 한번 살아보자', '그런 기간이 인생에 한 번쯤은 있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재수를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 담임선생님 반응은 그닥 재수를 환영하지 않았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원서을 쓸 당시 제가 원서를 쓰지 않고 재수를 하겠다고 하자 화를 내셨습니다. 당시 저는 마치 제가 학교 홍보 플랜카드에 적히는 상품인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름 자존심도 상했구요.

 

 대학을 가서는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해왔다보니 그 습관 그대로 시험범위 외의 내용들은 무시하고 스스로 탐구해보지 않으며 물리가 다른 학문보다 어렵다는 이유로 마치 제가 타 학과 학생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공부 자체에 내한 즐거움이 뭔지도 모르고 학문을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체 근자감으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훈련소에서 제 인생에 대한 평가를 진지하게 해보고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책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읽은책이 사피엔스라는 책인데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유발하라리는 전쟁사를 연구하신분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전공이 물리교육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보다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며, 그 분이 주장을 하거나 인용한 문장에 각주를 달았던 페이지를 보니 어마어마한 논문 또는 저서들이 인용되어있는 것을 보았고 그로 인해 매우 겸손해지고 참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공부란 무엇인지, 스스로 좋아하는 공부를 한다는것은 어떤것인지,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였고 이기적 유전자, 과학철학, 청춘의 독서, 나의 한국현대사 등 약 40권정도의 책을 군생활 동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지고 사고의 깊이도 책을 읽기 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그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학한 후에는 운이 좋게 좋은 교수님을 만나 물리학에도 흥미를 찾게되고 학문적으로 탐구하게 되었는데(예를 들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차이가 무엇인지, 자연에는 진동이 많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진동을 기술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등등)  하면 할수록 겸손해지고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의 물리학자들의 관점이 왜 천재적인가도 이해하게되고 평소에 알지 못했던 물리학자 란다우, 폴 디랙 등의 엄청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물리학자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똑똑하고 모든 것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겸손해지고 내가 좀 더 안다고 무시하는 태도를 버리게 됐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진짜 말도안되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고작 수능 점수 조금 더 앞섰다고 똑똑하다고 말하기엔 정말 별거 아닌 시험이 수능이고 점수가 남들보다 낮다고해서 수능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며 수능은 학문이라는 범주 안에서 지극히 일부분이며 공부라는 것이 수능에서 요구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식인을 유시민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 생산자와 소매상이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자신은 지식소매상이다 라는 표현을 쓰면서 상대적으로 지식생산자를 높이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지식생산자가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아인슈타인을 예를 들자면 기존의 지식관념은 상대속도라는 것이 단순히 벡터적으로 더할 수 있는 개념이었지만 이 개념과 맞지 않은 실험과 맥스웰 방정식에 의하면 빛의 속도는 정해져 있는데 기존의 개념으로 풀리지 않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 즉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좌표계가 있을 때 그 좌표계의 시간과 내 시간이 과연 같아야될까?라는 의심으로 시작에 길이를 재정의하면서 물리에서 배우는 로렌츠 변환식이 나오게 됩니다. 즉, 지식생산자는 기존의 지식 또는 이론을 해석하고 가공하여 전달하는 것과 다르게 기존의 개념 또는 이론을 기본적으로 알고 이해하고(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있으며 자기만의 생각으로 발전해나가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또한 리처드 디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같이 자연선택의 단위가 집단, 개체, 유전자에 관한 논쟁이 있을 때 그것이 유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한권의 분량의 논리전개를 해나가게 됩니다. 온전히 학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한 문장을 증명하기위해 그와 얽혀있는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엮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책도 언급하는데 이는 이기적유전자에서 다하지 못했던 주장과 근거, 예시들을 구체적으로 써 놓은 책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과학적 주장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위해 책 한권의 분량도 모자라다는 의미이며 그 과정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매우 어려운 작입이구요.

 

 글을 너무 두서 없게 쓴것같은데...제가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수능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며 타인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정도로 그렇게 좋은 기준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험하나로 그 사람에 대해 가치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지만...) 그리고 인생 자체가 정답도 없다고 생각하며 어떤 인생이 훌륭하냐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잘 살았는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려나가며 살았는가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이 훌륭하다고 생각해도 자신의 인생이 후회되고 부질없다고 느끼면 타인의 평가는 의미가 없어지며 타인이 존경하지 않고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본인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후회가 없으며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 또한 타인의 평가가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 합니다. 결국 죽음이라는 인생을 탈출구 앞에 삶의 평가기준은 수능도, 학벌도, 부의 축적, 사회적 지위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것을 해냈다고 그것이 우월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어려운 것을 해낼려고 인간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태어났고 결국 어떻게 살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질문을 평생 달고 사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이제 반오십이지만 제가 인생에서 겪은 것들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을 뽑자면 타인에 대한 존중입니다. 칸트가 정언명령 2법칙에서 말한 것처럼 타인을 어떤 조건에 의해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대하는 것, 저는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어렵다고 느껴지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사람의 지위나 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컨텐츠를 가지며 살아가는가 즉, 어떤 생각과 사고방식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먼저 보게 되다 보니 주변에 철학적으로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제가 또 좋은 영향을 그 사람들에게 미치고 하다보니 삶의 질이 높아지고 정말 행복하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예지님의 말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마치 공부라는 것은 수능이 전부이고 수능에 재능이 없으면 용접공을 해라라는 느낌을 주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판들이 인격적인 모독, 모욕까지 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어떤 비판이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그 사람의 말의 맥락과 내용에 대한 비판으로 끝맺음을 해야하지 인격적으로 가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존재이며 인물에 대한 평가는 입체적으로 이루어져야하지 어느 한 단면만 가지고 그 사람이 그 모습의 전부라고 판단하는건 짧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여러가지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결함들을 이해하고 자신에게는 그 결함이 없는지 성찰하며 궁극적으로 그러한 부분을 어떻게 메꾸어 나갈것인지 대화하고 논쟁하는 과정을 통해 그 사회를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글을 진짜 못쓰는 편이라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으면 합니다. 이는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추천드리자면 독서입니다. 결국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갔는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 갔는가를 알아보는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유시민 작가님의 말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가치판단의 무게중심을 밖에 두지말고 자신의 내면에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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