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900828] · MS 2019 · 쪽지

2019-11-17 11:54:40
조회수 1,734

수능으로 절망한 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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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살 무렵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태어났을까. 이렇게 재미 없고, 힘들기만 한 세상... 인생은 고통의 바다...."

어깨 너머로 '까뮈'라는 사람의 글귀를 보았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멋있는 글귀다...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거다... 왠지 폼 난다....
그래서 그 문제를 붙들고 며칠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동안의 생각 끝에 나는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죽어야 하는 거다.
살만한 가치가 없으면, 죽으면 되는 거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내 의지와 무관한 이 결과를 물리면 되는 거다.  다시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가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다시 '죽음'의 유혹에 대해 한동안 생각했다.
머릿속 생각의 논리적 귀결은 '다시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되물리면 된다.'였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겁이 났다.
예리한 칼날이 팔목의 혈관을 파고들 때...
or ... 아파트 바닥에 부딪혀 으깨어질 때...
or...  밧줄이 목을 파고들어 숨이 막히고 안압이 터질듯 높아질 때...
or.... 탄환의 회전운동이 내 대뇌피질을 휘젓고 지나갈 때....
으으음.... 끔찍하다...

그리고,
매우 번거로왔다.
치사량만큼의 수면제를 사려면 당시 내가 지내던 작은 도시의 모든 약국을 뒤지고 구걸해도 불가능한 정도 였다. ...
or ....  총기소지가 불법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투덜거렸다......

또,
'아쉬움' 같은 게 있었다.
혹 인생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비밀의 커튼'이 있어서, 그 뒤쪽에 뭔가 근사한 것이 숨어 있지 않을까?
그걸 못보고 죽는 건 음.. 음....

실은,
"죽기 싫다"는 얘기다.

마침내,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죽음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며 확실한 것을 찾아 헤매던 데카르트가 도달한 곳이 <나는 생각한다.>였듯,
당시, 몇 개월의 방황 끝에, 내가 도달한 곳은, <나는 죽지 못한다.>였다.

이왕 살 바에야 죽지 못해 사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           *           *

 

 

'나'는 그냥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존재이다.
태어날 때, 누구도 '나'에게 삶의 궁극적 목적을 부여한 바 없다. (누가 부여한다고 해도 그걸 쉽게 인정하지도 않겠지만.)
지침과 규범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떤 코스로 가야 하는지....정해진 것은 없다.
외롭고 무서운 일이지만, '나'의 '자유 의지'로 고독하게 가야 한다.

'나'의 자유 의지는 '죽음'에 매혹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걸 기꺼이 맞아들이지는 못했다.
조용히 침잠하여 마음의 외침을 들어보니, 실은 <생명에의 본능적 욕구>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거다.
마음의 외침,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살고 싶다'를 수긍하고, '이왕 살 바에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추구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는 자는 누구나 '행복'을 지향한다.
문제는 이 '즐겁고 행복한 삶'의 내용 역시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해 채워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행복의 내용'이 제각각이다.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치', 그래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같지 않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동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시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이는 '많은 돈'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멋진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근사한 승용차'를 갖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몸짱이 되거나, 연예인이 되어 다른 이의 시선을 받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남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지니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땀 흘리면서 산에 오르는 과정의 경험'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한 스푼의 스프를 먹이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소박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

5지선다형의 객관식 수능 시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선택지가 다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하나만 정답인 것도 아니다.
'나'가 '나' 나름의 경험과 판단 기준에 따라 더 많은 선택지를 모색, 발굴하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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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 집단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선망하고, 추구하는 '통념적 가치'(세속적 가치, 지배적 가치)가 있는 법이다.

현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적 가치는 '돈'이다.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이 '돈'이라는 가치를 정점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에 따라 '돈'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어린 중딩조차 대놓고 "나의 장래희망은 건물주"라고 한다. (노골적으로 뻔뻔스러운 세상~)

한국의 학생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적 가치는 '대학진학을 위한 성적'이다.
거의 모든 학생 생활이 '대학진학 성적'이라는 가치를 정점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에 따라 '성적'이 학생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싫든 좋든, 이 지배적 가치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통한 탈속적 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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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고로 쳐주는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학한 '국어국문학과'는 지금이나, 당시에나 인기학과라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끝내주는 간판'의 대학교이다.
기분이 우쭐해지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그 무렵 내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나'를 데리고 친척집 순회 방문하기를 즐겼다.
은근히 친척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의 그 유치함이 뻔히 다 보이는 거지만, 어쨌든 나로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먼 친척들이 선망, 경탄, 내지는 질투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의 그 우쭐함!

어디 그 뿐이랴.
겸손한 척하면서 은근히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여러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 기분 째진다! 행복했다.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최고의 '간판'을 지닌 친구들이 꽤 있다.
서울대 법대 경O/맹O , 서울대 경영학과/경제학과 도O/석O/혜O, 서울대 의대 문O 등등....

이 친구들이 서울대에 입학할 당시에 어떠했을까?
당시 내가 지녔던 '우쭐함, 뻐근함'의 따.따.따블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분은 째지고 째져서 아마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을 것이다.
따.따.따블로 행복했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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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 간다.
그리고 드문드문 서로의 소식을 듣는다.

대학 입학 당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을 누렸던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 '행복의 고속도로'를 달려서,
보통 사람들은 근접할 수 없는 저 먼 '행복의 나라'에 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건 실제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입증된 '답'이다.
진. 실. 이라는 얘기다.

물론, 판검사-교수-의사-공인회계사-고시패스&고급 공무원 등 보통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친구들도 좀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월급쟁이, 교사, 학원강사 등등 그냥 그저 그런 직업의 친구들, 사실상 백수 신세로 빈둥대는 놈도 여럿 있다.
사업 한답시고 오락가락 하다 빚더미에 올라 알거지로 도피 중인 친구도 있다.
학창시절의 순진했던 모습과는 달리, 동료들 사이에서 '사기꾼'으로 취급되어 기피대상이 된 친구도 있다.
 
세속적 욕망이 들끓는 도시에 환멸을 느끼고, 시골로 가 흙을 일구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누군가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는 때도 있다.

질병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향한 친구의 뼛가루를 묻으며,
그때 참으로 순수했던 시절을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일도 생긴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을 지닌 친구의 삶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의사가 되었지만, 파탄난 결혼생활로 늘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한꺼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불행을 겪고 있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을 종종 알게 된다.

거꾸로,
고등학교 시절 맨날 교실의 뒷자리에서 선생들 눈치보면서 찌그러져 있거나, 말썽이나 피워대던,
소위 성적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친구들을 간혹 접하기도 한다.
싸움질 한답시고 킥복싱을 배운다고 되도 않던 폼이나 잡고,
계집애들 후리던 활약담이나 떠벌리고 다니던 놈이, 카톨릭 신부님이 되어 인자하고 근엄한 미소를 짓고 있기도 했다.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지다니!)
중학생들 돈 빼앗다가 잡혀서 정학 먹은 놈은,  번쩍거리는 외제차를 우쭐거리는 사장님이 되어 있기도 했다. (지방 도시에서 업소 몇 개를 가지고 있다더라.)
공부라고는 지지리도 못해서, 지방 전문대를 나와 일찌감치 친척이 하던 일에 빌붙어서 건축 공사판을 떠돌더니,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럴듯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다.  돈벌이=행복은 아니지만, 아무튼 돈벌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류대 나와 대기업에 눈치보며 빌붙어 있는 월급쟁이보다는 훨~ 낫다.

간판있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해서, 이 친구들의 삶이 더 불행하다 할 수 있는가?

"인간만사 새옹지마"다.

공부 잘 하고, 성적 좋아서, 더 높은 학교 간판을 차지하는 것이,

상당 기간 동안은 기분도 좋고,
뽀대도 나고, 어깨에 힘도 좀 줄 수 있고,
또 확실히 사람들이 원하는 통념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 더 유리한 계단을 딛고 올라선 것만큼은 사실이나,

인생 전체를 내다보면, 삶의 행복을 좌우할만한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없다.

대학 간판 말고도,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다른 소중한 가치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는 거다. 

 

*           *          *


  

지금의 네 눈에는 '수능 성적'과 이에 따른 '대학 간판'이 최고의 가치로 보일 것이다.
'수능 성적'만 좋으면 행복할텐데, 그 놈의 '수능 성적'이 개떡 같으니, 고를 수 있는 '대학 간판'도 개떡 같고,
그래서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기 존재가 '개떡'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나란 놈은 이 정도밖에 안되는 루저란 말인가!"

울분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고작, 이 '개떡'이 내 몫이란 말인가?"

수험생활을 성실하게 보낸 학생일수록, 기대 수준은 높아지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좌절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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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게 비정한 현실이다.
네 삶의 앞길에는 더 비참하고, 더 비굴해져야 하고, 더 자존심 무너지는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이게 너보다 인생을 좀 더 살아봤던 내가 겪고 보았던 '비정한 현실'이다.
(수능 성적 잘 나왔다고 '우쭐대는' 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말고, '너의 몫'을 순순히 받아들여라.

서울대 OO과를 갈 수 없으면, 연고대 OO과를 가면 되고,
연고대 OO과 갈 성적이 안 되면, 서성한 OO과를 가면 되고,
서성한 OO과 갈 성적이 안 되면, 중경외시 OO과를 가면 되고,
중경외시 OO과를 갈 성적이 안 되면, 어쨌든 In Seoul 하면 되고,
In Seoul도 안 되면, 소위 '지잡대'를 가면 된다.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전공 분야가 없다면,
그냥 본인의 취향, 어른들의 조언, 앞으로의 직업 전망을 고려하고, 점수에 맞춰서 적당히 가면 된다.
간판 좋은 대학교의,  거기 나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애매한 흐리멍덩한 학과보다는,
간판이 없더라도,  이후 직업 선택의 길이 분명한, 자기 영역이 확실한 학과가 더 낫다.
찾아보면, 그런 학과 제법 많이 있다.)

공부 잘 하고, 성적 좋아서, 더 높은 학교 간판을 차지하는 것이,

상당 기간 동안은 기분도 좋고, 뽀대도 나고, 어깨에 힘도 좀 줄 수 있고,
또 확실히 사람들이 원하는 통념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 더 유리한 계단을 딛고 올라선 것만큼은 사실이나,

인생 전체를 내다보면, 삶의 행복을 좌우할만한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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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안팎 무렵,
<더 높은 대학의 간판>를 위해, 졸라게 입시공부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1~2년 정도의 시간은,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삶의 경험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 수험 생활을 몇 번씩이나 거듭하는 것은 영양가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는 자해 행위이기 십상이다.

고작 '더 높은 간판'이라는 맹목적인 상향 욕구 때문에,
스무살 무렵에 해야 할, 더 가치 있는 일들
-- 더 넓은 세상, 더 다양한 삶의 경험, 더 많은 다른 기회 (연애..여행.. 친구..취미..동아리.. 여러 경험 등등) -를 희생하는,
현명하지 못한 짓이다.

더 우울한 것은, '맹목적 상향 욕구'를 위한 추가의 세월이, '목표의 성취'를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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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제대로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고, 공부의 언저리를 얼쩡거리고만 있다가,
한 해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볼까 하는 생각을 지닌 학생들은  이 글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별로 좌절할 일도 없을 테고,
따라서 '절망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노력 없이 허욕만 있는 자일 뿐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충고는 이렇다.

"넌 올해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와 변명을 대여섯 개쯤은 댈 수 있겠지.
난 '너'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바탕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내년에도 넌 열심히 하지 않을 가능성이 99%이다.
내년에도  이런저런 이유와 변명의 거리는 반드시 대여섯 개 이상은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한 해 더 공부해봐야 별 소용 없다고 본다...
물론, 세상일에는 항상 1% 정도의 예외가 있다.
네 스스로 그런 예외에 해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스스로 선택해라. "

"야단치는 게 아니다.
'공부'는 너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네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너의 길>을 찾아서,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 '너의 행복'을 위해 더 좋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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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OO대학 OO 과를 가야겠는가?
OO대학 OO과를 가지 못한다면, 네 삶이 불행할 것이라고 판단되는가?

네가 간절히 바라는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OO대학 OO과를 가야할 필요가 있다든지,
혹은 OO대학 OO과 진학 그 자체가 최종적인 삶의 목적이든지 간에
OO대학 OO과를 가지 못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OO대학 OO과를 가라!
재수를 하든, 삼수를 하든, 사수를 하든,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목숨이 남아 있다면 네 삶의 모든 것을 걸고 그걸 이루어내야 한다.

그게 네가 살아 있는 이유이고, 행복 추구의 길이니까.


그러나, 뚜렷한 지향과 목표 없이,
그냥 '더 높은 간판'이 좋다는 맹목적 상향 욕구 때문에 '한번 더'를 생각하고 있다면,  권할 생각이 없다.

계속 '대입'이라는 문턱 앞에서 오락가락 깔짝대지 말고,
그 문턱을 넘어서서 과감하게 인생의 진도를 나가라.

들어선 문턱이 원하는 수준보다 좀 떨어지는 문턱이라고 해도,
그 문턱을 지나 더 멀리 나아가는 게 필요한 때이다.
그 문턱 너머에는 또다른 여러 길이 펼쳐져 있는 것이고,
그 중 멋진 길을 선택하여 훌륭하게 가면 되는 거다.

삶의 진도를 나가는 것,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저 너머 '미지의 세계'로 더 멀리 나가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너의 행복은 네 눈에 보이는 '대학 간판'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지금은 네 눈에 보이지 않는, 저쪽의 세계에 숨어 있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마라. 남들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말고 <너의 행복>을 찾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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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을 하든, 좀더 느긋해져야 한다.

"이걸 해내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식의 벼랑끝 심정의 굳은 결의는, 항상 불안과 초조를 동반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불안과 초조는, 결국 너를 갉아먹는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면서, 모든 내적 갈등을 내려 놓고, 남은 입시의 과정을 차질없이 착실하게 진행하라.

다시 1년이란 값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카드 한 장을 더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이 가을이 지나고, 긴긴 겨울을 지내면서 잔잔해진 '마음' 속에서 어떤 것이 솟아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잡스 형님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시간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일 뿐인 도그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마십시오.
타인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소음에 휩쓸려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택하라 ! 

 

 

2014년 수능 이후, 재수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올해 수능을 앞둔 친구들이 좀더 넓은 시야로 마음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 이찬희 (펌: https://madal.co.kr/bbs/board.php?bo_table=bg&wr_id=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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