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점 [418219] · MS 2012 · 쪽지

2019-11-12 20: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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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문학 나올 수 있는 극악 난이도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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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못 만져서 삭제했습니다. 아 나의 30분...


문득 이번 연계 교재에 최인훈의 <회색인>과 이상의 <거울>이 모두 실렸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 나,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최인훈의 <회색인>은 장황하고 현학적인 독백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으로 수험생들만이 아니라 현대문학사를 뒤쫓아가는 대학생들과 문학애호가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최인훈의 작품이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지적 성실성으로 인함인데, 작품 내의 수많은 모티프 차용이 그의 지적 성실성을 엿보게 해줍니다.


<회색인>의 모티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거울 모티프를 들 수 있습니다.


거울 모티프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근현대문학에서 거울이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점에 이르면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통해 주체의 분열이 정식화된다는 점이다. 거울은 독고준을 비춘다. 거울, 혹은 때로는 거울을 대신하는 거울의 대용물로서의 유리창(유리창-거울)은 독고준의 외양만을 비추는 게 물론 아니다. <회색인>이 보여 주는 주체의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 즉 어떻게 자기를 구성해 내는가의 문제는 단지 타자로서의 ‘나’의 이미지에 대한 내면적 자아의 동일시나 통합으로 미봉될 수 없는 문제이다. 독고준의 모든 문제는 내면의 ‘나’와 외부에서 보여 지는 ‘나’의 조화로운 변증법적 구성의 실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 연구는 출발한다. 우리 時/代에 동일성의 논리라는 것은 타자를 동일자에 환원시키고 그럼으로써 차이를 동일성에 종속시킴이 없이는 타자를 스스로 제시할 수 없다는 사고의 한 형태이다

논문1. 김주언(2011), <최인훈 소설에 나타난 거울 모티프의 양상과 함의>


거울을 통해 인물의 분열상이 드러나는 부분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창가에서 조금 비켜 섰다. 유리에 얼굴이 비쳐 있었다. 그는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유리 속의 남자의 눈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그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누구냐 너는 그것을 나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나는 모른다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서 대답을 들을 때까지 너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면 이러긴가 나는 그런 사랑을 원치 않는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할 수 없다 네가 가는 곳이 어디든지 그곳에 나는 있다 나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네가 가장 열중한 순간에도 너의 등뒤에는 내가 있다 너는 없다 너는 나의 그림자다 그렇지 않은 줄 번연히 알면서 앙탈하지 말라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다 그것만은 사실이다 당장 대답하라는 것도 아니지 시간은 있다 다만 그 시간들을 허비하면 안 돼 우리는 타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나도 그 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례가 있지 않은가 그건 번번이 실패하지 않았는가.

독고준은 돌아섰다. 유리 속의 남자도 돌아섰다. 이런 대화에 준은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자기가 미쳐 버리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떤 다른 힘이 끼어들지 않는 한 그는 이 승부에서 거꾸러지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두려울망정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감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나의 일을 한다. 이 대결을 풀어 버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길을 끝가지 가는 길뿐이다.

그가 다시 돌아섰을 때 유리 속의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끼리의 우정이 스민 웃음이었다.

본문 1. 유리창을 보는 독고준


이때 본문1에서 독고준이 한 발화의 (의도된) 청자는 ‘네’로 유리창 속에 비친 독고준입니다. 이를 통해서 분열된 자아상을 볼 수 있죠.


한편 작품을 전반적으로 훑어볼 경우, 거울이 분열을 나타내는 모티프일 뿐만 아니라, 이상에 대해 최인훈이 보내는 일종의 경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소설의 10장의 끝부분과 12장, 13장, 14장의 끝부분에는 독고준이 거울이나 창에 비친 자기의 분신을 바라보고 상념에 잠기거나 대화를 건네는 대목들이 나타난다. 전체가 14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자기 자신, 자기의 에고에 대한 독고준의 질문과 회의는 깊어지며. 이는 특히 김순임과 이유정이라는 두 여성 인물과의 관계를 고민해 나가는 과정에서 심각한 양상을 빚게 된다. 작중에 나타나는 띄어쓰기 없는 ‘의식의 흐름’의 문장들로 보아 명백히 전대 작가인 이상을 의식하고 있는 이 분신담적 ‘거울상’ 모티프는 독고준의 자신의 에고이즘에 대한 회의 과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논문2. 방민호(2017), <‘데가주망’의 논리>


의식의 흐름의 문장들이 나타나는 양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활에 쪼들리고 학비 걱정을 하면서 철지난 영화를 보고 희미한 동굴 속에서 재즈를 들으며 멀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음악이 끊기는 사이사이 스며드는 빗소리. 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선다. 좌석은 입구에서 뚝 떨어져 낮아졌기 때문에 입구에 들어서는 사람의 다리만 보인다. 하이힐이 젖어 있다. 지나간다. 또 문이 열린다. 하이힐과 훌쭉한 바지 끝에 남자 구두. 음악실에 오기는 오랜만이다. 이런 데서 들려 주는 음악은 즐기라는 게 아니고 서로의 이야기를 지켜 주는 간섭음(干涉音)이다. 그래서 토막 잘리고 뭉치고 웅성거리는 소음이 어렴풋이 쿵쿵 박자를 씹으며 소용돌이친다. 막힌 동굴에 흘러 들어와서 비비적거리는 진흙탕. 그 진흙탕에 빠져 들어간다. 반듯한 평면 위에서 말쑥한 공을 노리며 에고를 추적하는 맛과는 또 다른 느낌이 여기는 있다. 끝없이 빠져 들어가는 진수렁. 그러다가는 불쑥 솟아오르고. 울적한 드럼 소리, 게으르고 울적한 드럼 소리, 게으르고 단조한…… 외가락인 박자. 여자의 목쉰 음성. 그대없이는이세상없네그대가슴은내보금자리내게로…… “자네학교에남지?” “글쎄요……” “졸업후에무슨계획있나?” “계획이뭐……” “생각해보게……” “참이번논문은좋더군” “뭘요……” “안색이안좋군공부도몸을돌보면서하게” 아닙니다선생님마스터베이션을너무해서그렇습니다선생님은안그러셨어요?목쉰음성그대없이는이세상없네나정말몰라또그소리야말했잖아염려없다고그래도미스터리난미스터리의성질을믿어커피둘홍차하나얘커피하나는설탕넣지마라이리줘전표는왜자꾸빠뜨리니그런것도아냐소집단속에서인간행위의미시적(微視的)진실을발견한다는거야미국사회학은세균학이돼가는건가아무튼미국사회는미래가있는사회야움직이고비교적편견없고편견없어?깜둥이새끼하고는한자리에앉지앉겠다는데두그건뭔가남의일이라구너무혹독하게굴지는말어어느사회에나편견은있는거야아무튼그들은문제를합리적으로해결하려고하잖아이세상에해결못할문제는안녕히가세요비가아직오죠?더있을까요?어머누가가시라고했어요이리줘염치를좀알아요염치를어떻게되니응새학기야구월이란말이지응잘됐어이답답한데갈수만있으면가는거야아무튼여기보다나을게아냐?석사과정까지할생각이야눌러앉는거아냐?글쎄가봐야겠지만그러나역시엽전사는데가좋을지도몰라거기서후광(後光)을달고살기는여기서고독한모양이야그야물론테네시월리엄스의희곡읽었지옹색하게생각하지마라몫이나쁜놈은천당에서도비럭질할거야그대없이는이세상없네정말못잊어그대만못잊어……이쪽으로앉아하루만빌려줄래곧돌려줄게공자가라사대책은빌려주는놈이병신바지저고리소리마라도서관이없을때니까그랬지개인장서지도서관하구구원할수있을까구원?치료책을마련했을때는병상(病狀)이달라지구그러면또즉치료와병이숨바꼭질하는셈이군반드시위대해져야만해?왜?왜그래?그냥아무것도아니게살면왜안돼?깡통아위대하고싶지않기때문에위대해야하는거야우리가사는時/代는미치도록사랑해요당신이없으면……모자라는데어머니미안합니다제얘기를어떻게들으셔도좋습니다알아요정말입니까말하지않고통할수있다면말을아낄필요가있어요어차피말하나않으나마찬가지웅변은은(銀)침묵도은(銀)그러니까지껄여요아무거나침묵은나빠요아무말도못한새에당하느니고함을지르고물어뜯으면서이봐저게누구야데카르트아냐?그런가저건뭣하러갖다놨을까너왜학교다니니?답답해답답해너애국자야?이자식또덜떨어진소리임마애국자아니니까그러잖아강제북송하구말까?글쎄교포가정부를안믿는다고선언하는판이니무슨수로막아?일본애들눈으로보면남도정부요북도정부라는거겠지일본애들때문에우린멍들었어근대국가를만드는데골몰해야할시기에당신이없으면이세상없네……그쪽에자리있잖아좀더옳지가볼까어느쪽으로갈래?난좀들를데가있어그럼내일만나재선(再選)을하면자유당이되는거아냐하하자넨정객들이름잘알아응뭐신문보느라면그렇게되잖아난일면은안봐안보는새에나라망하면망해?그땐또모르지모르지가아냐민주사회의시민은그래서는안돼시시한소리말어그래어쭙잖은자식들육갑떠는이야기에지저분한가십이나주워읽으란말야차라리나라망하는걸보겠다어쩔수없어이건우리힘으로움직이는사회가아닌담에야미칠듯이사랑해그대없이는…….

본문2. 극단적인 경우


이러한 경우로 의식의 흐름이 문제화될 것이라 생각은 되지 않습니다만, 이를 통해서 우리는 최인훈과 이상의 관계성에 대해 높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지요.


준은 담뱃불을 붙여 들고 창 앞으로 걸어갔다. 유리 저편에는 언제나 보는 친구가 서 있었다. 준은 그 얼굴을 대하자 약간 부끄럽게 생각했다. 나의 단 하나의 벗. 제일 믿을 수 있는 동맹자를, 일시나마 수상쩍게 생각한 것이 미안했던 것이다. 모든 일은 우리 두 사람이 해결하는 길밖에는 없다. 끈질긴 꾐과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유리 속의 남자는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그 여유 있는 몸짓에 준은 안심했다. 사랑을 얻을 수 없을 때는 시간을, 시간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런데 드라큘라는 어쩌다 흡혈귀가 되었을까. 영화에는 거기 대한 풀이는 없었다. 옛날 얘기가 흔히 그렇듯이 대뜸 설명 없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준은 ‘파우스트’와 ‘드라큘라’를 비교해 보았다. 아마 드라큘라도 처음에는 독서가였을 것이다. 넓은 성안에서, 장가도 들지 않은 그로서 할 일이라곤 책읽기밖에 없었다. 파우스트처럼 철학, 문학, 연금술, 게다가 신학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결은 없었다. 낡은 책 냄새가 밴 어두운 서재에서 어떤 순간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바로 신이 아닐까? 그 순간에 그는 으스스 떨었다. 그래서는 왜 안 되는가? 신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 세상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도 이내 소식이 없다.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는 것이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나뿐이다. 그렇다. 신은 유(有)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나는 신이다. 그는 흥분과 두려움이 엇갈리는 한밤을 새우면서 끝내 결심했을 것이다. 내가 신이라면 나는 사도(使徒)를 가져야 한다. 그는 주(主)가 되기를 택했다. 이렇게 해서 밤의 포교가 시작되었다. 낮에는 이미 땅을 차지한 승려들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들은 마귀가 다니니 문단속을 하라고 선전했다. 파우스트는 타협했으나 드라큘라는 타협하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적의 진영에 타협하여 작위를 받았으나 드라큘라는 학살되었다. 그가 십자가 그림자에 걸려서 그 그림자 속에서 타죽은 것은 얼마나 상징적인가. 드라큘라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다. 거짓 상식과 비열한 평화를 뜻하는 그 갈보리의 십자가에. 이렇게 해서 그는 주가 되었다. 왕관과 천사군과 나팔과 처벌로 표현되는 지배자의 의상을 벗어 버리고, 반역과 뒤따르는 밀정의 무리와 고문과 사랑의 호소로 표현되는 반란자(叛亂者)의 모습으로 학살된 것이다. 그는 검은 신약(新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검은 신약의 어두운 주 드라큘라. 후신약(後新約)의 주 드라큘라. 자기가 꾸며 낸 생각에 만족하여 독고준은 아까까지 자기를 괴롭히던 물음─사랑하는데 왜 사랑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문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리스도가 나하구 무슨 상관이야 드라큘라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다른 사람들의 룰을 따라 육갑하자는 거야? 번역극에 출연하고 있었구나 아뿔싸 또 실수할 뻔했구나.

그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아주 유쾌해졌다. 돈키호테는되지않겠다는것선교사부인을흉내내는원주민아가씨는되지말자는것이내결심이아니었나─빌어먹을이놈의세상을살자면함정투성이구나그런데나는그걸할뻔했으니천만의말씀이다드라마여안녕난그런각본에끼지않는다. 함정에서 벗어난 짐승처럼 가볍고 신나는 동작으로 그는 옷을 벗고 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뛰어오를 때 쿵 하고 소리를 냈다. 몇 번 뒤채다가 조용해졌다. 어느새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아주 태평한 숨소리였다.

본문3. 의식의 흐름이 나타난 경우. 

(이때의 드라큘라는, 독고준과 동일시되는 대상으로서 독고준이 그와 동일시되며 김순임의 위상은 새롭게 자리매김합니다. 드라큘라 모티프에 대한 언급은 이 자리에선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ㅠ)


위와 같은 최인훈 <회색인>과 이상 <거울>의 연결성은 두 작품의 갈래 복합 지문을 감히 상상하게끔 합니다.


서사와 서정의 갈래 복합이기에 이러한 지문이 구성된다면 공통 문항의 출제는 상당히 제약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서술상의 특징 공통점 문항은, 표현 효과가 내적 갈등인 선지가 답인 문항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공통 <보기>로는 자아의 분열을 묻는 보기가 나올 수 있으며, 적절하지 않은 선지로, 독고준의 정신이 분열되지 않은 부분(타자와 대화하며 그 초점이 외면을 향해 있는 등)에 대해 분열된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는 선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인훈의 <회색인>은 굉장히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한 가지 접근을 알 수 있으셨길 바랍니다.


+) 이런 글을 쓴 제가 하기 뭐한 말이지만, 수능은 대응이 주가 되어야 하는 시험입니다. 아마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와도 긴장하지 마시고 잘 헤쳐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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