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자를 그리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5145533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비록 천박하기 그지 없는 글이지만, 미래를 이끌 세대들이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주었으면' 하고 감히 바라기에...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 이들이 있다. 1992년 혹은 1993년에 만났던 ‘그’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느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당시 나는 해당 연구소의 문제점을 취재 중이었다. 연구원 사이에 “기자가 취재하고 다닌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나를 만나자고 했다. 삐삐로 연락이 왔는지, 회사 내선 전화로 연락이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북창동의 어느 음식점에서 그와 마주했다. 20대 후반의 나에게, 그는 한참 선배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40대 초반이었을 터. 그리 크지 않았고, 말랐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차분하게 해당 연구소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기자를 하면서 숱한 ‘내부 고발자’를 보았지만, 그 만큼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어조와 논리로 내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데...
연구소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 중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제는 단 하나도 없다. 그를 지금껏 기억하게 만든 것은, 대화 중 나온 그의 이런 이야기였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했다는 “국민은 1류,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라는 이야기가 유행하던 때였다.
“에이.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어떻게 정치가 3류가 되나요? 그래도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하는 게 정치인데. 만약 정치가 삼류라면, 그런 사람을 뽑아주는 유권자 역시 삼류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말은 지금 내 귓가에 대고 하는 목소리처럼 또렷해져만 갔다.
우리, 아주 솔직하게, 패를 까놓고 이야기하자. 솔직하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실을 들여다볼 때 중요하니까...
국회의원의 평균 예비고사, 혹은 학력고사, 수능 점수보다 높은 직업군이 과연 몇 개나 될까? 변호사나 의사, 혹은 행정고시를 통과한 직업 공무원, 그리고 ‘손꼽히는’ 중앙언론사 기자(기자에 대한 나의 이 ‘애정’이란!)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똑똑할수록 쓰레기“라는 이야기인가? 교육은 그럼 이 사회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것인가? 그렇다면, 광복 이후 이 사회가 이룬, 전 세계가 놀라는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보다는, ‘권력’이 가진 속성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원적인 추악함 혹은 이기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직업이 정치인이어서가 아닐까?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몇몇 문인들이 정치판에 가서, 혹은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지극히 비논리적이면서도, 분노와 적의만이 가득한 말’을 쏟아내는 것을 숱하게 보았다.
나에게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사람은 섬진강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인이었다. 그가 쓴 시와, 그가 어느 정당의 대변인으로 있으면서 뱉어낸 말은 사뭇 달랐다. 그것만을 보고, “문인들은 위선자이고 쓰레기 같은 놈들이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자를 하면서 지켜보았던 국회의원은 정말로 대단한 자리였다. 단지 사회적 대접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 자리는, 자신이 이 사회에서 바라는 사회상을 육화시킬 수 있는 직위였다.
여자가 아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남자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성욕은 감퇴하는 대신, 사회적 실현 욕망은 더 커지지 않는가? 최소한 나는 그랬다. 그 욕망을 가장 잘 실현시킬 수 있는 자리가 국회의원 혹은 ‘중앙 정치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정치인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싸움판’이 될 수밖에 없다. 한데,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고, 공자나 맹자의 이야기만 할 수 있을까? 이기는 전략과 전술을 논할 수밖에 없지... 그러다보면 말과 행동도 거칠어질 수밖에...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터에서, ‘성선’을 이야기하는 사람만큼 비현실적인 이가 있을까?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지도 근 30년이 돼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이야기는 내 귓전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울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쓰레기야, 라고 욕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저 ‘만약 당신의 말이 옳다면, 그것은 정치인이 쓰레기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 쓰레기이기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만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 뒤처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전혀 이해 못하는 사람이니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가 빚은 참극은 20세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역사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지 않는가!
이기심을 없애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자!
아,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한데, 그런 구호를 육화시키고자 했던 정치체가 초래한 결과가 뭐였던가? 그런 사회에서 특권이 없어지지도 않았음은, 소비에트까지 갈 필요도 없이 북한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정자들이 어디 구수회의를 해서 “우리 중 가장 나은 놈을 수정시키자”고 하는가? 그저 본능에 따라, ‘나를 남기자’는 일념으로 난자에게 향하는 것이지.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니...
기자를 하면서 배운 최고의 덕목은 ‘주장보다는 사실을 숭배할 것’이었다. 기자를 그만 둔 지 이제 10년도 더 지났지만, 그 가르침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제는 얼굴과 이름조차 기억 못하기에, 어느 붐비는 지하철 전동차량 안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댈지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지만, 1990년대 초반,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어느 학자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후기.
그 기사는 결국 게재되지 않았다. 해당 연구소에서 데스크, 혹은 더 위의 책임자에게 사정을 한 탓이었을 것이다. 편집까지 마친 글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그런 일이 흔했다. 나 역시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았고...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대황젠ㅋㅋ 0
ㅋㅋ 상성은 상성이지 ㅋㅋ
-
옆 테이블에 아주머니가 앉으셨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매월승리가 놓여져 있었음......
-
제가 글을 잘 쓰는 재주가 없어서,, 조금만 양해를 부탁드리고 시작하도록...
-
넌 뭐야? 1
용감한 쿠키 기여워
-
반가운 오르비 1
-
달지 말라고 해도 달거긴함
-
나 이번에 처음암
-
아는게없어
-
질문을 거꾸로하면 문질
-
보통 뉴분감 공통/선택 전부 완강하는데 얼마나 걸리죠? 2
74일 잡고 있는데 너무 긴가요? 월: 수1 뉴런 + 시냅스 화: 수1 수특 +...
-
왜지우심
-
뭔가 당연하기도 하면서 생각해보면 왜 사용 기한이 주는데 가격이 오르지?
-
오르비 한산하네 2
-
허수야… 제발 2
진짜 오늘 왜그래.. 진짜 왜 그러는거야…
-
지금 마플시너지, 쎈이랑 다 풀었고 수분감 step1까지도 얼추 끝났는디 이제 뉴런 들어가도 되나?
-
사실 이미 다녀옴.
-
작년에 뉴런 안하고 수분감만 풀었었습니다 기코 -> 수특 -> 커넥션 -> 6평전...
-
시퀀트였는지 코시퀀트였는지는 기억 안 나눈데 저런 공식 하나 있지 읺았나요...?
-
안냐세요, 어디에특별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조언도 구하고자 글 남겨요.. 간단히...
-
더콰이엇도 좋네 0
The Real Me 듣는 중
-
앱 lesser 작수 백분위 83(원점수 82점) 독해력 백분위 84
-
하닉가고싶은데 1
건대 전전이랑 시립 전전컴 가서 하닉 잘 갈수있나요? 뭐 본인 역량이겠지만..
-
특전 특성화고 직탐으로 서울다 일반전형쓸수 있다는데 직탐표점메리트면 내신 cc여도...
-
오처넌어치의 기대감을 사는것 같다
-
새로운 스타일이어서 잘 모르겠음 ㅡㅡ
-
이 글은 블로그에 작성한 글 입니다. 블로그에서 원문 확인하기 :...
-
인설의 탐구 선택 12
인설의 목표로 일단 언매, 미적은 확정이고 탐구를 정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까요??...
-
43퍼보다 높은 대학 어디 어디 있음?
-
부러워요.... 아싸는 못가서 울엇어
-
서울대 간호 0
확통 사탐으로 농어촌 정시 지원 가능한가요?
-
여자셨음??? 과외 시장에 계신데 ㄷㄷㄷㄷ
-
정시 인설의 수능 2개틀림 수학,화1,생1 할 생각임
-
그래서 자고 일어나니 2시라 방금 아침겸점심겸저녁으로 한솥 도시락 먹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
인강 0
솔직히 말하면 인강은 과탐이랑 뉴런정도만 들어도 괜찮을까요 나머지는 독학으로...
-
지1 공부량 0
재수생이라 시간은 많고 오지훈 풀커리(오즈모고포함) + EBS수특수완봉투모고등?...
-
지인선 n제 2
드릴이랑 비교해서 난이도 어떤가요? 드릴3,4,5 거의 다 풀어서 하나 사려고 하는데
-
어휘 3개틀림 아
-
왜 우리학교는 0
자꾸 학생표본 수준과 맞지않는 부교재를 골라서 이상한문제를 내놓을까..
-
현재 시야 ㅇㅈ 8
예예~~
-
이동석(2010) 중세국어 어기 `번`의 단어족...
-
대학 탐방가는데 저녁쯤 될 것 같아서ㅜㅜ 건물 밖만 버고 올건데 몇시까지 열려있는지...
-
씻으러 가자 4
-
성적 인증 https://orbi.kr/00070673396/ U CAN DO식...
-
넵
-
그것마저 째고싶다 아 허리 너무 아픈데 ㅅㅂ..
-
본능이란 대단하네
오랜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ㅎㅎ
아, 사범님, 오랜만입니다. 아해 임용시험 뒷바라지하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오랜만에 오셨네요 선생님
예, 아해 뒷바라지 중 시간이 남아서요. 잘 지내셨죠, 후후...
두 번째 임용이었나요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두 번째 도전 맞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ㅎㅎ 수능이 코앞이네요!
수능 대박 나소서...
잘 지내시지요?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섬진강 시인... 제가 아는 그분 맞나보네요.
그런일이 있었군요 흠...
옛 서, 선생님도 잘 지내시지요?
예, 그 분이 그 분 맞습니다. 좋은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