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gee [459907] · MS 2013 · 쪽지

2019-10-08 1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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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현주해에게 기생하면서까지 돌아온 오르비 공주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4896935

공주대란이 종결된 후, 오르비 공주(현 절대현주해)는 3월 9일 경 '안녕, 오르비.' 라는 비장한 제목의 글을 남기며 오르비언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인사드릴게요. 잘 있어요' 라는 말이 무색하게, 불과 13일 후인 3월 22일에 '오랜만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후 '빙점', '대치동의 폭력' 등 다양한 '방구석 작가'식 글을 올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염치 없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오던 그는, 6월에 여러 번의 공세를 받으며 오르비 2회 탈퇴라는 진기록을 남기고 오르비를 떠나게 됩니다.

몇개월 간 잠잠하던 그는, 최근 들어 '절대현주해'라는 아이디를 빌려 오르비에 복귀했습니다. 수많은 조롱과 비판 끝에 오르비를 2번씩이나 탈퇴를 했음에도, 남의 아이디를 빌려서까지 오르비에 돌아오려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짠한 마음에 이번에는 그냥 둘까도 생각했지만, 삼수까지 하는 와중에도 6평 21131이 나오는 실력으로 전국 수석을 한 것마냥 기고만장해져서, 처절하게 실패했던 작년 재수때와 마찬가지로 수능이 다가올수록 해찰을 일삼는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공주라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오르비언들에게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올립니다.

공주님도 올해는 꼭 좋은 결과로 삼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과거 비판글 재업로드


올해 3월 2일 경, 오르비 공주(현 고속공주)가 자신의 인스타에 글을 올렸습니다.

  

공주님은 평소에도 정치/사회적 이슈나 이념 갈등, 남녀 갈등과 같이 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는 식의 단정적인 어투로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그의 글은 사실 관계가 잘못 되었거나, 잘못된 지식을 바탕으로 했거나, 논리가 매우 미약하거나 하는 등 상당부분 오류로 가득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논조의 댓글을 달면 공주님은 언제나 댓글을 삭제하고 해당 댓글을 단 사람을 차단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해당 글을 삭제하는 도피성 행각을 보였으며, 비판한 이를 차단한 후에 자신만의 성에서 반박글을 쓰고 그마저도 얼마 안 가 삭제하는 모습을 보여왔죠.

  

자신의 글에 정말 자신이 있고,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왜 정당한 비판에 직면했을 때 이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지 정말 의구스럽습니다. 비판 댓글들은 대부분 글의 논리적 결함, 지식의 부정확함, 부적절함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성격의 것들이었지, 공주님 자체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거나,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어투의 글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주님은, 댓글을 삭제하고, 비판하는 이를 차단하고, 글을 삭제하고, 계속해서 비판을 외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첨부된 사진이 공주님이 올린 글의 원문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공주님. 한 동안 잠잠하더니 또 이런류의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군요. 

공주님의 글은 너무 많은 오류로 점철돼 있어서 비판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곧 삼수를 시작할 공주님을 위해서 공부할 시간 아끼시라고 짧게 몇 가지만 지적해드리겠습니다.

우선, 4.3 항쟁의 배경과 발발에 대해 지적할만한 부분들을 짚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점령지역에 대한 당시 국제법상의 대원칙으로 ‘헤이그 규약’이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피점령 지역은 점령국의 영토가 아니며 이 지역의 주권은 그대로 유지된다’입니다. 해방 후 남한에 진주해 군정을 시작한 하지 중장의 미군 제 7사단은 대한 점령정책에 있어 이 원칙을 무시합니다. 즉, 미군정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미 남한 내에 존재했던 여운형의 인공이나 망명세력인 김구의 임정 등의 자생적 정치세력의 주권보유론을 부정합니다. 그 결과, ‘피점령 지역의 주권정부 부재’라는 모순이 발생하자, 스스로 ‘주권보유자-점령권력-자치권력’의 ‘3중 역할론’을 떠맡게 됩니다. 그래서 미군정 스스로가 군정의 역할만 하고 민정은 점령 지역의 자치에 맡긴다는 원칙을 깨버리고 민정까지 맡게 됐던 것입니다. 남한에 대해 아무런 사전 준비와 정보도 없이 남한에 들어온 하지의 미군정이(애초에 하지 사단의 원래 목적은 일본 점령이었기에) 미곡자유화 정책의 실패와 뒤이은 미곡수집령 실시, 거듭되는 식량고, 행정부 내 친일파의 대거 등용 등 얼마나 많은 실정을 저질렀는지는 공주님도 상식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이러한 미군정의 점령 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치정부의 성격이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이 제주도였습니다. 제주도는 여운형의 인공의 지부 중 하나였던 인민위원회의 세력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제주에 상륙한 미군정 역시 초기엔 인민위원회와 큰 충돌 없이 통치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미군정의 거듭된 실정과 미소공위의 결렬 등을 계기로 “자주통일 독립, 일제 잔재세력과 파시스트 청산”등을 외치며 47년 3.1절 기념식 때 인민위원회가 주도한 평화적 가두시위가 진행되는데, 이를 군정이 가혹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자치기구와 도민들이 총파업을 벌이자 미군정이 대규모의 경찰과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극우 청년단을 파견해 가혹한 진압을 강행하며 시작된 것이 4.3 항쟁입니다.

 4.3 항쟁은 1) 지역의 현실에 맞지 않는 민간 정책들로 인한 쌀값 폭등과 식량고, 2)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민족적 열망을 무시한 결과, 해방 이후에도 지속된 친일 모리배들의 모리행위들에 대해 누적된 분노, 3) 당시 한민당과 같은 부일협력자들을 기반으로 한 정당조차 부정하지 못했던, 전 국민이 공유했던 통일된 민족 자주국가의 건설이라는 숙원이 점차로 요원(遙遠)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 4) 제주도에 4.3 이전부터 일찍이 파견된 군.경과 서청단의 횡포에 대한 반발과 같은 요인들이 한꺼번에 표출된 사건이었고, 그 표출 방식 또한 애초에 평화적인 가두시위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가혹하게 진압한 것이 미군정과 한국의 군, 경찰이었죠. 더욱 심각한 것은 서북청년단과 같은 민간단체에 국가권력을 실어줘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이 끝도 없이 자행되게 했다는 점입니다. 

  

베버가 얘기했든 근대 국가는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입니다. 말인즉슨, 근대국가는 경찰, 군대라는 형태로 폭력을 독점하는 한편, 국가를 제외한 사적인 영역에서 폭력이 남용되는 것을 막습니다. 또한, 공적인 폭력을 휘둘러야 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정당한 경우에만이 합법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북청년단과 같은 민간 집단에 되려 국가권력을 실어주고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 서북청년단을 위시로 한 청년단이 ‘극우반공’의 탈을 쓰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악마적 행위들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는 기찬님도 아마 들어본 적 있을겁니다. 이는 근대국가에서, 더군다나 공주님이 그렇게 찬탄해 마지않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근대국가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공주님은 마치 4.3 항쟁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며 생색내듯 인정하며 민간인 학살이라는 엄중한 문제보다 반란에 대한 정당한 진압이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합니다. 4.3 때 벌어진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정당한 진압이 아니었고, 폴리티사이드(politicide)이자 제노사이드(genocide) 였습니다. 

국가 또는 그 대행 권위체가 그 국민들을 상대로 벌인 범죄였으며, 유엔의 제노사이드 협약까지 위반한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는 국가적 범죄였습니다. 제노사이드의 의미와 유엔의 제노사이드 협약에 대해서는 스스로 공부해보길 바랍니다.

  

  

  

  

또한, 미소공위 재개최 요구를 ‘사회주의적 운동’이라고 부르며 매도하는 뉘앙스로 부르던데, 공주님의 현대사 공부가 부족함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통일된 자주민족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은 전 국민적 염원이었고, 좌우 이념, 정치세력을 막론하고 남한 내 주요세력이 공유했던 숙원이었습니다. 미소공위 개최는 모스크바 3상회의 때부터 이미 결정된, 미소 양국 역시 어찌됐든 한반도에 통일된 민족 자주 국가를 설립해야한다는 구상 하에 이루어진 노력이었죠. 47년 5-7월의 시기에 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고 여운형이 암살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조차 계속해서 한반도의 좌,우 세력을 망라해 한반도에 통일된 정부를 세우려는 구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재홍과 같은 중도 우파를 위시로 해 과도입법의원을 건설하고,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에도 힘을 실어주려 한 것이었죠. 한반도의 모든 정치세력이(단정 선언 이후 이승만과 한민당 정도를 제외하면)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향한 수단이자, 미군정조차 지원했던 미소공위 활동을 재개할 것을 요청하는 것을 단순히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며 매도하다니. 입체적으로 사건을 보자고 하면서 정작 공주님이 사건을 볼 때 얼마나 단면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엄연히 빨갱이 운동이에요,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학자의 사관이 이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썼던데, 관련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으면 책도 좀 읽고, 출처가 명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도 좀 하고 글을 쓰기 바랍니다. 공주님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역사학자의 사관이 4.3을 공산폭동으로 보는 ‘공산폭동론’에 입각해 있다는 것인데, 현재 역사학계에서 주류를 점하고 있는 한국 현대사 연구자 중 ‘공산폭동론’에 입각한 사관을 가진 연구자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시초이자 태두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이자 한국 현대사 권위자인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박태균 교수를 필두로 하여 한국 현대사 주류 연구자들은 대부분 ‘항쟁론’, 내지는 ‘국가폭력/민중수난론’의 관점에서 4.3 항쟁을 국가 폭력에 항거한 민중항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까지 객원 교수로 다녀온 분들의 사관을, 역시나 ‘좌빨’이라고 공주님은 매도할 확률이 높겠지만요. 지만원 같은, 학자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극우 어용 사이비 학자 정도를 제외하면 ‘폭동론’은 학계에서 사장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교과서에도 항쟁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역사학자의 사관이 아니라, 일베를 애국자로 생각하고, 군 부대 내에서 가혹행위로 자살한 가엾은 공군 병사를 조롱하는 발언을 한 공주대 모 교수의 사관이 아닐까 의심됩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까 염려되어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공주님은 근대역사학의 본령(本領)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당시 남한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그렇게 활발했다면, 현재적 관점-현실 사회주의가 역사에서 소멸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본주의화된 현재-을 투영해 빨갱이들이 운동을 일으켰고, 잘 진압되었다 식의 단순하고 투박한 해석을 하기보다는, 1차 사료에 밀착해 그 시대의 구조적 본질을 당대적 맥락에서 정확히 해석하고, 시대에 따른 변화를 명확히 규명해야 하는 것이 근대 역사학의 본령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1946년 9월 10일에 미군정 공보부에 의해 작성된 여론조사인 ‘미래 한국정부의 형태와 구조(Type and structure of a Future Korean Government’에 의하면 당시 남한 민중의 70프로가 미래 정부의 형태로서 사회주의 정부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남한이 사회주의 세력이 더욱 왕성했고, 북한이 자본가 계급이 더 많았기에 미소 양군의 남,북한에의 진주를 역사적 용어로 ‘역점령’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조소앙의 삼균주의에서 잘 드러나듯, 한민당부터 한국공산당에 이르기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세력이 토지국유화, 기업국유화 및 국가통제 경제의 원칙 등 사회민주주의적인 원칙에 합의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제헌 헌법을 기초하고, 이승만 행정부 내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그 유명한 유진오조차 제헌헌법에 국유화와 국영기업 등의, 사회민주주의적 색채가 강한 조항들을 넣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근대역사학의 본령은, 현재적 관점에서, 대체 왜 저랬을까, 온 나라가 빨갱이였네, 하고 개탄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에 밀착해 당대적 맥락을 온전히 복원해, 어떤 역사적 연원속에서, 구조적 맥락 속에서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현실이 만들어지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 연구 태도는 캘리포니아 학파(존 던컨, 골드스톤 등으로 대표되는)를 중심으로 해 전 세계 역사학계가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 내에서 사회주의의 주류적 위치로의 형성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와 제 3세계와의 친연성, 한국 독립운동에서의 사회주의의 역할에 대해 공부해보길 바랍니다.

공주님이 이념에 기반해 감정적으로 격해져 반문할까봐 미리 얘기해두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는 근대 역사학의 본령, 내지는 본분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려는 것이지, 사회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공주님의 글은 항상, 과문(寡聞)함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지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자신이 하는 말이 진리인냥 단언하는 공주님의 만용(蠻勇)은 참으로 보기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오르비 공주인 것을. 오르비 공주를 이런식으로라도 상대화, 객관화하게 된다면, 공주님의 앞날에도 많은 발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반박글을 쓴다면 공주님이 몰랐던 사실들을 알고 있던냥 수정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어느덧 3월이 되었군요. 올해에는 공주님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길 바라고, 삼수를 하는 데에 있어 많은 응원 보냅니다. 공주님은 또 다시 댓글을 삭제하고 차단할 것이 명약관화이나, 그럼에도 소통을 기대해봅니다.

  

  

  

  

  

이렇게 글을 올렸더니, 역시나 바로 댓글이 삭제 당했고 바로 차단을 당했습니다. 그 이후 공주님의 반박글이 올라오더군요. 정말 기대됐습니다. 어떤 논거를 들어 반박글을 썼을지. 그러나, 반박글의 내용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뭘 더 보여줘야 됩니까? 남로당이 선동했다는 팩트 자료 여기 다 있고, 이게 역사학자들의 주된 사관이죠 ㅋㅋㅋㅋ

  

애초에 내 말 뜻을 자꾸 왜곡하는데, 이건 박헌영이가 제주도민들을 선동하고 반무장 세력 이끌고 제주도에 왔다는게 문제라는 거 잖아요! 말은 거창하게 하는데, 자꾸 본질 흐리지 맙시다 ㅋㅋㅋㅋ'

  

자꾸 팩트 팩트 하며 굉장히 자신감이 넘치길래, 캡쳐해서 가져온 논거라는 것을 유심히 봤습니다. 굉장히 낯이 익어 설마 설마 하며 봤는데, '나무위키' 였습니다!

  

세상에, 대학 교수님들이 보고서를 쓸 때 출처로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강의 개요나 과제 개요에 늘 적어놓으시는, 바로 그 '나무위키'인 겁니다! 여러 잡다한 지식이 모여 있어 심심풀이로 재밌게 읽기는 좋아, 많은 학생들이 과제를 작성할 때 간혹 참고하기도 하지만, 부정확한 지식이 많고, 학문적 엄정성과 중립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기에 엄밀한 학술적 글의 참고문헌이나 근거로는 가져오면 안되는, 바로 그 오픈백과 '나무위키'였습니다.

  

심지어 나무위키의 홈페이지에조차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에는, 하물며 그 주제에 정치적 의제가 포함되어 있어 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경우에는, 적어도 학술 단행본 요약본이라도 읽어보던가, 하다 못해 논문 몇 개라도 읽어보고, 관련 주제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한 후에 글을 써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논거의 출처가 '나무위키'였다니. 글에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었네요;

  

나무위키의 내용이 '팩트'고, 이것이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의 주된 사관이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럽습니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이 들으면 정말로 개탄을 할 주장입니다. 

  

서중석, 박태균, 정용욱 같은 한국 현대사학계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연구물에서 공히 인정되고 있는 '항쟁론' 과 같은 사관보다는 나무위키의 익명 편집자들이 출처도 모를 내용들을 짜집기 해서 편집한 내용이 역사학자들의 주된 사관인 것이군요!

  

  

  

  

  

반박글이라고 올린 글들의 내용에도 오류가 너무나도 많지만, 몇 가지만 지적해주도록 하죠.

  

우선, '박헌영이가 제주도민들을 선동하고 반무장 세력 이끌고 제주도에 왔다는게 문제라는 거다' 라는 주장입니다.

  

팩트 되게 좋아하셔서 말씀드리면, 박헌영은 제주도민들을 선동한 적이 없고, 반무장 세력을 이끌고 제주도에 온 적이 없습니다. 되려, 서북청년단 같은 아무런 권한도 없는 민간 단체에 공권력을 부여해주고 무장을 시켜 제주도에 파견한 것은 미군정과 남한 군,경이었죠.

  

 4.3 항쟁이 일어난 48년에조차, 남로당 중앙 지도부는 제주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남북 연석회의에서도 제주도의 상황은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박헌영의 "남한의 정치정세"에 관한 연설과 허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의 선거에 대한 반대투쟁의 계획"에 관한 연설 가운데 어디에도 제주도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남로당 강경파의 증언에서도 중앙당의 지시가 부재했음이 드러납니다. 4.3 항쟁이 남로당 중앙지부와는 분리된, 제주도당의 독자적인 결정이었음은 양정심 교수의 <4.3 항쟁과 남로당 제주도당>과 같은 논문이나, <제주 4.3연구의 새로운 모색>, 서중석 교수님이 참여한 <제주 4.3연구> 등의 개설서에 이미 명확히 논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꾸 4.3 항쟁과 박헌영을 연관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지창수 등 여순 반란 관련 인물들을 왜 자꾸 끌고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순 반란은 군대 내 남로당 세력이 4.3항쟁의 발발을 계기로 여수순천 일대에서 일으킨 반란이 맞습니다. 그에 대해 부정한 적도 없구요. 다만 4.3 항쟁이 여순반란의 원인이 되었을뿐 4.3의 이후 전개과정에 있어 여순반란과의 연관성은 매우 희미합니다. 

  

제가 4.3 항쟁의 주도에 남로당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줄 알고 이런 주장을 한 것 같은데, 제 댓글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 저는 4.3 항쟁의 발생에 남로당이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은 이종우, 김달삼 등의 남로당 제주도당 내 강경파가 맞습니다. 다만 제 주장의 핵심은 그러한 무장 봉기가 일어난 배경, 무장 봉기 이후의 초토화 작전까지 총체적으로 보면 '단순 좌익 무장 봉기 진압 수준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해 무리하게 자행된 민간인 대학살/제노사이드' 이거나 '제주도민들이 무장봉기 이전부터 당국의 평화시위 발포와 고문치사, 서북청년단의 횡포, 모리배질에 항거해오던 차에 좌익 강경파 주도의 무장 봉기가 일어나자 호응한 민중항쟁'이라는 게 한국 현대사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항쟁론', '국가폭력/민중수난론'의 주장이라는 겁니다.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을 그 논거로 삼는 '폭동론'은 이미 논파된지가 오래입니다.

  

민중이 항쟁에 참여하게 되고 어떠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제주도 민중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게 되는지를 상술하기 위해 당시 미군정 하의 사회, 경제적 현실과 미군정의 정책, 미군정의 '3중역할론' 등을 설명한 것인데, 제대로 이해를 못하신것 같습니다. 아마 모호하게 쓴 저의 책임도 있겠죠.

  

제주 민중이 단순히 남로당의 선동에 '속아'넘어가서 항쟁에 참여했고, 국가권력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항쟁과 역사의 주체였던 민중을 객체화시키고, 그들의 행위를 폄하하는 주장입니다. 그들이 항쟁에 참여하게 된 물적 토대를 그 동인으로서 저는 명확히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많은 부분, 그 사회적 존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통일된 민족 국가를 설립하는 것이 당시 한국 민중의 숙원이자, 좌, 우 이념을 막론하고 모든 정치세력이 공유했던 공질적 기반이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용욱 교수의 역작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이나 , '해방의 공간, 점령의 시간'에 자세히 상술되어 있죠. 당시 남한 대다수의 민중이 어떤 형태의 정부를 원하고 있었는지는, 미군정 공보부가 3년의 기간 동안 실시한 다양한 여론조사(가두조사, 여론샘플링 등 여러 형태로)의 결과에 명확히 나와있습니다. 이는 공개된 미군정 문서 열람을 통해 누구나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장준하의 회고록이나, 임정 요인들의 귀국 회고록에도 잘 드러나 있고요. 김구도, 이승만도, 박헌영도, 결국은 자신의 세력이 중요했지만 서로 타협하며 통일 정부를 수립하고 나아가야했다는 인식 자체는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연장선 상에서 제주도 민중이나 남로당 제주도 지부 역시 단정 수립 반대와 미소공위 재개 촉구 운동 등을 벌인 것이지요.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를 촉구하는 것의 목적이 뭐였는데요. 같은 과정이어도 그 과정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과정이 향하는 목적은 달라집니다. 남로당이 주장했기에, 이건 엄연히 사회주의적 입장에 해당하구요' 라고 하셨는데. 글쎄요, 사회주의를 이념으로서 표방하는 단체가 주장하는 모든 것은 '사회주의적' 입장인가요? 또한, '사회주의적' 색채를 가진 주장은 언제나 그릇된 것인가요? 북유럽 국가들의 강력한 소득재분배 정책은 사회민주주의의 성격이 강한 것들인데, 그럼 그런 정책들 또한 완전히 그릇된 것인가요? 

  

아니, 애초에 '사회주의적'이나 '사회주의'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주장을 하시는 건지 의문스럽습니다. 공주님이 언제나 그렇듯, 개념이나 용어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용어를 남발하는 모습이 여기에서도 보이네요. 사회주의를 '빨갱이들 사상!' 하며 기피하실게 뻔하지만, 전 세계에서 학술적 주제로서 인정받는 하나의 역사적 개념입니다.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으시다면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 저명한 사회주의 사상사 연구자들의 좋은 저작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공주님은 굉장히 결과론적일 뿐만 아니라 현재적 관점을 강하게 투영하여 당대적 맥락을 사상(捨象)시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단순히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행동의 차원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포폄(褒貶)을 하는 데에 집중하는데, 이는 중세 역사학에서나 하는 일이지, 근대 역사학의 본령은 아닙니다. 근대 역사학의 본령에 대해서는 앞에 설명해놓았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질문하세요. 친절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뭐, 사실 할 얘기는 더 많지만, 그렇게 달가워하실 것 같지도 않고.. 이쯤 간단한 마무리 말과 함께 마무리 짓도록 하죠.

  

4.3 항쟁은 이제서야 제대로 조명을 받고 있는 사건입니다. 87년 민주화 이전 군부독재 시절에 반공, 국가주의적 역사관이 주류를 점할 때에는, '폭동론'이 주류적 시각이었고 4.3의 역사적 위치와 성격에 대해 제대로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87년 민주화 후 조직적인 진상규명운동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4.3 항쟁에 대해 학술 차원에서도,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제대로 된 규정이 가능해지기 시작했어요. 4.3항쟁은 아직도 계속해서 연구가 되고 있고,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사안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복잡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면, 적어도 4.3 항쟁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연구가 이루어져왔는지에 대한 연구사 정리와, 현재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의견과, 문제가 되고 있는 쟁점들과, 어떤 부분이 확실하게 주장될 수 있는지 정도는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필요했을 겁니다. 학계의 주류적 견해와 주제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한 출처와 논거를 가지고 와서 설명을 해도 나무위키 같이 학문적 엄밀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누구나 본문을 수정할 수 있는 오픈 소스의 내용을 가져와서는 이게 '역사학자들의 주류적 의견이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니, 애초에 제대로 된 대화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바램이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 그나마 유일하게 학술서라고 불릴 수 있을만한 논거로 '6.25 동란과 남한 좌익'이라는 책을 제시하셔서 매우 기뻐하며 책의 내용을 요약본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뭐 당신 같은 사람은 거들떠고 안보겠지만'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공주님의 생각과는 달리 이념적 색채가 그렇게 강한 사람도 아니고 그게 학술적 가치가 있다면 어떤 책이든 섭렵해서 읽습니다. 그게 공부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이기도 하고요. 유일하게 제시한 학술적 논거라 굉장히 기대를 했지만, 책의 내용에 여전히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반공주의를 지상 가치로 내세우는 군사독재 시절에나 쓰였을 법한 국가주의적, 반공일변도의 역사관에 기반해 쓰여진 책이더군요. 이미 오래 전 시카고대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에 의해 정리된, 한국 전쟁의 기원에 있어 전통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견지하는, 뭐 그런 종류의 책. 2010년에 쓰여진 책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학계의 동향을 이렇게도 못 따라갈 수가 있나 하는, 개탄스러운 마음까지 드는 책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원 글에서든, 반박글에서든, 너무도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공주님을 응원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스스로를 상대화하고 객관화하는 노력을 계속 해간다면, 언젠가는 발전한 공주님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공주님의 앞길을 응원합니다. 삼수 힘내세요. 

 

 많은 분들이 요청하셔서 글 요약 올려드립니다 

요약: 공주가 3월 2일 경 인스타에 제주 4.3 항쟁에 관한 글을 올림. 사실관계나 지식이 잘못된게 너무 많고, 더욱 심각한 것은 학계에서 이미 사장된 시각을 역사학계의 주류적 시각이라고 주장해 놨길래, 비판하는 댓글을 닮. 역시나 그가 늘 그래왔듯 댓글 바로 삭제당함. 얼마 후 광분하며 반박글을 올리길래 봤더니 근거의 출처가 무려 '나무위키' 였고, 글은 여전히 잘못된 지식으로 점철돼 있었음. 자신도 뭔가 아차 싶었는지 원글과 반박글 모두를 헐레벌떡 삭제함. 학계의 주류 학자들에 의해 공인받는, 명확한 근거를 가져와서 반박을 해줘도 나무위키 따위를 근거랍시고 가져와서 아득바득 우기는 아집과 안하무인함이 너무 우스워서 박제해놓고 쓴 비판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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