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ON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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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MYTH
MALCOLM GLADWELL | THE NEW YORKER | MAY 16, 2011
1979년 끄트머리께 스물 네 살 난 창업자 한 사람이 실리컨밸리에 있는 연구소를 찾아왔다. 제록스 PARC라는 이름의 연구소였다. 이 젊은이는 연구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컴퓨터 회사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였다.
‘제록스 PARC‘는 제록스 내에서 혁신을 담당하고 있던 곳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파올로 알토의 ‘코요테 언덕길’ (Coyote Hill Road) 위에 있다. 파올로 알토 마을 언저리에 있는 언덕들 사이에, 높이는 낮고 너비는 긴 콘크리트 건물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거대한 테라스들은 실리컨밸리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을 굽어보고 있다. 연구소 북서쪽으로는 스탠포드 대학의 후버 타워가 보이고 정북쪽으로는 휴렛패커드의 본사가 보인다. 온갖 컴퓨터 칩 디자인 회사들과 소프트웨어 펌들, 수많은 벤처 캐피털리스트와 하드웨어 제조회사들이 이 연구소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풍경과 맞닥뜨린 방문객이라면, 이 ‘제록스 PARC‘라는 연구소가 ‘계곡’을 굽어보며 지배하고 있는 영주의 성채라는 느낌을 받는다. 기실,1979년 스티브 잡스가 PARC를 방문했던 당시만 해도 이 말은 그리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1970년 제록스는 세계 최고의 컴퓨터 엔지니어들과 프로그래머들을 그러모아서 그 후 십 년 세월 동안 전례 없던 혁신과 발명의 행진을 벌이고 있던 참이었다. 70년대 살면서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골몰하던 사람이라면 PARC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코요테 언덕길”로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애플은 이미 떠오르는 별이었다. ‘밸리’ 내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면 죄다 애플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놓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래서 잡스는 제록스에 거래 하나를 제안했다. 10만 주를 100만 달러에 팔겠다. (당시 누구나 군침을 흘리고 있던 애플의 IPO는 일 년밖에 남아 있지 않던 시점이었다.) 단, 조건이 있다. PARC의 “치마 속”을 보여줄 것. 그 뒤 여러 번 흥정이 오갔다. 제록스로서는 잡스한테 PARC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 마치 닭장에 늑대를 들여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여준다고 해도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 것인가? 그러나 결국 제록스는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당시 PARC에서 일하던 연구원 한 명은 잡스를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다고 기억한다. 오늘날 수도자와 같은 모습을 한 디지털계의 황제한테 카페인을 듬뿍 주입하고 얼굴 볼 살만 조금 붙이면 그때의 잡스를 연상할 수 있다고 한다. 잡스는 두 시간가량 안내자한테 인도되어 연구소 안을 둘러보도록 허락 받았고, 어느 순간 그의 발걸음은 PARC가 개발한 ‘퍼스널 컴퓨터’인 “제록스 알토” 앞에서 멈추었다.
래리 테슬러라는 이름의 엔지니어가 ‘데모’를 보여주었다. “마우스”라는 이름이 붙은 기기를 써서 스크린에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당시 컴퓨터를 조작하려면 키보드에 명령어를 쳐 넣어야 했지만, 테슬러는 스크린 위에 놓여 있는 “아이콘”이라는 것을 “클릭”해서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윈도우”를 열고 닫으면서 하나의 작업에서 다음의 작업으로 손쉽게 넘어갔다. 우아한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에다가 문서 작업을 했고, 세계 최초의 “이서넷” 네트워크를 통해서 PARC 내의 다른 연구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보여주었다.
잡스는 혼자 간 게 아니라 엔지니어 한 명을 동반하고 있었다. 빌 애트킨슨이라는 이름의 엔지니어였다. 애트킨슨은 코가 스크린에 거의 닿도록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있었다. ‘데모’를 보여주던 엔지니어 테슬러는, “잡스는 그 동안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술회한다. “내가 ‘데모’를 하기 시작한 지 일 분쯤 지난 후 잡스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펄쩍펄쩍 뛰다시피 하면서 고함을 쳤다. ‘도대체 왜 이걸 그냥 썩이고 있어! 내가 본 것 가운데 최고야, 이건 혁명적이야!’ 하면서.” 제록스는 잡스 말대로 “제록스 알토”를 썩이지 않고 그 후속 모델을 1981년부터 시장에 내놓지만, 느려 터지고 힘도 없어 기신거리는 것들이었다. 종국에 제록스는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 전면 철수하고 만다.
한편 잡스는 연구소에서 자기 사무실로 뛰어가서 자기 팀한테 어서 다음 세대 컴퓨터가 될 이 “알토” 비슷한 것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렸다. 스크린에 ‘메뉴’도 넣고, 윈도우도 넣고 마우스도 만들라고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실리컨 밸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품 가운데 하나인 맥킨토시이다. 잡스는 나중에 이렇게 당시를 술회하고 있다. “제록스가 당시 자기네가 갖고 있던 것의 참 값어치를 알고 그것을 살렸다면 제록스는 아마 지금IBM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당시 제록스의 규모를 합친 기업이 되었을 터이다. 세계 최대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제록스 PARC“의 전설이다. 잡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이고 제록스는 ‘에서’였던 셈이다. 자신의 상속권을 푼돈에 동생한테 넘겼다는 것. 지난 삼십 년 동안 이 전설은 현실이 되었다. 한때 미국 테크놀로지 업계의 총아였던 제록스는 추락한 반면 애플은 이제 테크놀로지 업계 왕좌에 등극했다. 당시 파올로 알토의 한 구석에서 벌어진 ‘제록스 알토’의 ‘데모’는 진정한 혁신가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는, 비전과 가차없는 성정을 상징하지만, 전설이 으레 그렇듯, 진실은 이보다 좀더 복잡하다.
그날 PARC에서 돌아오자마자 잡스는 딘 호비라는 이름의 남자와 만난다. 나중에 IEDO라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산업디자인 펌의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잡스가 PARC에 간 게 아마 수요일이나 목요일이었던 듯싶은데, 내가 그와 만난 게 금요일 오후였다.” 호비의 회상은 이어진다.
잡스한테 설명하고 싶었던 아이디어가 여럿 있어서 찾아갔던 것인데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잡스는 “아니, 아니, 아니, 그것 말고 ‘마우스’ 좀 만들어 줘.”하고 말했다. ‘마우스’가 도대체 뭐냐고 되물으니까, 잡스는PARC에서 본 것을 설명하면서, “걔네 마우스는 만드는 데 원가만 300달러고 두 주 만에 망가져 버리거든. 이게 내가 생각한 디자인 ‘스펙’이야. 만드는 데 비용은 15달러를 넘지 않아야 하고 몇 년 동안 망가지는 일도 없어야 해. 그리고 ‘포마이카’ 표면에서도 작동해야 하고 내 청바지 위에서도 작동해야 해.”하고 말했다. 그 미팅이 끝나고서 나는 근처 ‘월그린’으로 가서 (당시만 해도 마운튼 뷰의 그랜트 거리와 엘 카미노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 한 구석에 ‘월그린’이 하나 있었다.) 겨드랑이 냄새 없애는 ‘디오드런트’를 각 제품마다 죄다 샀다. 이 ‘디오드런트’에는 ‘볼ball‘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버터 담는 그릇도 샀다. 이게 ‘마우스’의 시작이었다.”
호비가 자신의 펌을 애초 세웠던, 파올로 알토 시내에 있는 허술한 건물 안에서 나는 호비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비는 그날 아침 현재 그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사람한테 자신의 옛 사무실을 쓸 수 있도록 부탁해서 우리가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애플 마우스 얘기를 하면서 그게 탄생한 생가에서 얘기를 하는 게 더 재미 있을 성싶었던 까닭이었다. 사무실은 자그마한 침실 규모였다. 벽에 칠해진 페인트는 한 백 년은 되었지 싶었다. 호비는 사무실 한 구석에 놓인, 삐걱거리는 책상 앞에 앉았다. “우리 작업실은 옥상에 있었다.”면서 창문 너머 엿보이는 옥상 난간을 가리켰다.
[…]
호비는 당시 자신이 받은 ‘컨설팅 피fee‘가 한 시간 당 35달러, 통틀어서10만 달러쯤 된다고 했다. “잡스한테는 로열티를 받고 싶다고 했다. 하나 당 50센트쯤 받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었다. 아마 5만 ~ 10만 개쯤 팔리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예상이 얼마나 빗나갔나를 떠올리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잡스는 아주 노련한 사업가였다. 나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그때 하나 당 5센트만 달라고 할 걸 그랬다..”
여기서 ‘제록스와 잡스의 전설’에 얽힌 복잡함이 드러난다. 전설에 따르면 잡스가 제록스의 퍼스널 컴퓨터를 훔쳤다는 것이지만, 기실 잡스가 호비한테 준 ‘디자인 스펙’은 제록스의 마우스와는 아예 다른 것이었다. 잡스는 PARC에서 목격한 것을 재생산하는 데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마우스에 버튼을 몇 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오랫동안 논쟁했다. 셋을 만들어야 하나, 둘, 아니면 하나?” 제록스에 있던 마우스는 세 개의 버튼을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내린 결론은 마우스 쓰는 법을 익히는 것만 해도 어려운데, 버튼을 세 개나 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튼을 하나만 달았다. 이게 중요한 결정이었다.”
과연 잡스가 ‘마우스’라는 “아이디어”를 제록스한테서 훔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제록스도 ‘마우스’ 아이디어의 창안자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PARC 연구진은 스탠포드 연구소 (SRI)에서 근무하던 더글라스 엥겔바트라는 컴퓨터 사이언티스트한테서 얻은 것이었다.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GUI)도 마찬가지다. PARC 연구진이 개발했던 것은 그저 명령어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스크린에 있는 아이콘으로 대체하는 게 다였다. 아이콘을 클릭하면 ‘팝업’ 메뉴가 떴고, 이것이 사용자의 ‘의도’와 컴퓨터의 ‘반응’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였다. 그러나 잡스와 그의 팀이 만든 것은 한 차원 뛰어 오른 것이었다. “직접 조작”에 초점을 두었다. 스크린 위의 윈도우를 크게 하고 싶으면 직접 커서를 대어서 크기를 늘릴 수 있는 것이었다. 움직이고 싶으면 잡아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또한 ‘메뉴 바’와 ‘풀다운 메뉴’ 그리고 저 유명한 ‘휴지통’을 만들었다. ‘제록스 알토’에 비하면 급진적 혁명을 겪은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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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록스는 “개인 컴퓨터”를 만들었으되 애플은 “대중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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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제록스가 애초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의 참 값어치를 알고 그것을 살렸다고” 하더라도 잡스의 말처럼 테크놀로지 업계의 왕좌에는 오르지 못했을 공산이 높다. “역사상 유례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그것이 소비시장에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테크놀로지 전문 저널리스트인 해리 맥크랙큰은 적고 있다. “엔지니어링과 사업은 다르다. 둘 다에서 성공한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가 이 말을 하고 있는 문맥은 ‘시스코 시스템’에 관한 기사에서이지만, 기실 45년 전 제록스한테도 딱 맞는 말이지 싶다. 그렇다고 해서 제록스 PARC가 실패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 숨어 있는 것이 수많은 성공이었고PARC와 같은 연구소의 성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잣대로서 써야 한다.
[…]
심리학자 딘 시몬튼은 이렇게 주장한다. 진정한 천재와 평범한 수재를 가름하는 것은 ‘다산多産’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이다. 바하와 그 당시에는 천재였으나 지금은 잊혀진 수많은 작곡가들을 가른 것은 ‘타율’이 아니라 ‘타석수’이다. 이 둘을 가른 것은, 평범한 천재들은 그저 여남은 개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지만, 바하가 평생 동안 만든 곡의 수효는 천 개를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천재가 천재인 까닭은 수많은 통찰과 아이디어, 이론, 그리고 마구잡이 식의 관찰을 뿜어내고 그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연결점을 찾기 때문이다. “질은 양의 확률함수이다.”라고 시몬튼은 주장한다.
[…]
COMMENT
예전에 스티븐 핑커와 말콤 글래드웰이 뉴욕타임즈 지면에서 대판 붙었을 때, 나는 대개 핑커 편을 들었지만 (그리고 그 동안 글래드웰의 글에 대한 비판을 여러 번 했지만) 글래드웰의 ‘포뮬러’ 곧, 세간에 널리 알려진 얘기를 좀더 깊게 파고들어가서 얽히고설킨 복잡함을 캐내는 그의 저널리즘에는 깊이 감탄하곤 한다. 글래드웰의 글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딱히 발췌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하나의 망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까닭에 한 두 부분만 따로 떼어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 번역할 수는 없어서 대충 땄는데, 앞뒤의 문맥이 좀 허술하게 되고 말았지만 원문은 잘쓴 글이다. (뉴요커 웹사이트에 가보니까 이 글은 공개글이 아니다. 아이패드나 킨들이 있는 분은 다른 건 몰라도 뉴요커는 사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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