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끝나고~삼반수~대학 때까지 쓴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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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1 -노을밤
노을녘 붉음과 푸름이 공존하는 밤
먹으로 흠뻑- 거칠게 칠한
짐승 무리같은 구름들
산등성이는 땅과 하늘을 이어 검푸르고
멀리서 시리우스성의 별빛은
이 땅에 나지막하게 입을 맞춘다
지상에선,
교회당 형광 십자탑에 걸린
적막하지만
분주한 사람들의 향연.
#
편의점에서 - 수필
편의점입니다.
바깥은 빌딩의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피스텔과 아파트먼트는 잠이 들었습니다.
대형 상가-이곳 편의점도 속해 있는 그 장르의 건물-
에는 불빛이 번쩍번쩍 합니다.
승용차와 대중교통의 기적 소리와 타이어 소리도 들립니다.
아스팔트 위를 긁어대는,
노는 형님들의 튜닝카 엔진 소리도 들리곤 합니다.
수험생들인지
고시생들인지
이제 나이조차 분간할 수 없는
남녀 무리들이
한산한 편의점에
떼지어 들어오더니
담배 몇갑 음료수 몇캔을 들고
다시 나갑니다.
그리고 홀로,
저는 지금 라면 면발을 붙잡고 있습니다.
세끼는 잘 챙겨 먹습니다만, 이건, 아니
이것이야말로
저같은 수험생에게는,
보잘것 없지만 유일무이한 타락이고 쾌락입니다.
어떤 이들이
대학가의 선술집에서 따뜻한 위스키의 향을 맡을 때,
저는 시끄럽고 어둑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문제지의 다갈빛 악취와
라면의 매큰한 증기에 취한 지
이렇게 2년 반 째입니다.
라면 면발에게 우정마저 느끼는 내가 이제 더이상
미덥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꼬들꼬들하고 누리끼리한 그 미모에
도취되지 않을 이는
이 나라 한국에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라면 한 젓가락을 놓고
편의점 안을 들여다 보면
꼭 마시멜로빛 냉장고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화사한 인테리어와 순백색 조명
그리고 스테이트 오브 아트 한,
귀여운 분위기
하지만
꼭 점장 노인의 퉁명함이
스피드 넘치는 소녀같은
편의점의 아이덴티티를 흐려버리는 겁니다.
편의점 밖은,
빌딩 숲 사이로
하늘에
조막만한 이쁜 별들은 없고
거대한 달만이 반쯤 가린채 떠서
위압감을 조성합니다.
하지만 바닷속 왕초 고래 격인 달은
도시의 공포 속에서
'내가 자연이다' 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달님같은 빛으로 가득찬
편의점 안에서는 그나마
지 신세도 모르고
저란 녀석은
얼큰시큰한 라면 국물을 비울 때까지
별빛보다도 근심이 없는 소년이 됩니다.
밖을 나서면
다시, 적막하고 분주한 먹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숨을 내쉬어도
위로해 주는 이 하나 없으니
저는 별빛처럼 반짝이고 싶어도
결국엔 먹구름같은 음울한 사나이가 됩니다.
#
아르스의 소녀
그 날
한 젊은 여인이 마녀라는 죄명을 달고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녀는 물론 진짜 마녀도 아니고
이단도 아니고
이교도도 아니고
거짓말쟁이도 허풍쟁이도 아니고
교회의 가르침에 반항한 적도
국가의 법률에 어긋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만,
아르스의 시골 소녀
그녀의 동무는
양치는 목동
탁발 수도승
농부의 아이들
송아지 노새
포도나무
개똥지빠귀
은방울꽃
밀짚 바구니
하늘에 헤이는 별들
그녀가 하는 일은
다만 나뭇잎 피리 장단에 노래를 부르며
뜨개질이나 하고 송아지 여물이나 주는 것
그리고
그런 그녀가
어느날 신의 은총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전장에 나아가
빗발치는 핏방울 속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선봉에 서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더 무서운 일은
아랫것들의 전쟁이 아니라
윗분들의 손장난이었음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적국의 수뇌들은
그녀를 죽이기 위해선
뭐든지 하기로 작정한 겁니다.
교회의 주교들은
정치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그녀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그녀의 은인
그녀가 남몰래 사모했을지 모르는
아국의 왕자는
그녀가 희생양이 되는데
충분히 동의하고 남은 겁니다.
그는 그녀를 속으로 시기하고 있던 겁니다.
그렇게 그녀는
윗분들의 침묵과
그 하수인들의 형식 상 선언과
그들이 고용한 군중들의
거짓되고 추잡한 매도 욕설 속에
불길 속에서 재가 되기 까지
하늘의 별을 헤인 겁니다.
주교와 왕자와 재판관과 군중들 또한
믿고 있었던
시골 어느 늦은 밤
그녀와 그녀 동생과 목동 청년이
들판에 누워 그 이름을 부르던
다윗의 별과 바다의 별을 헤이며.
"예수, 마리아!"
그녀의 송아지는 아직 어리고
그녀의 뜨개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운영전 (雲英傳) -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
운영이라 하옵니다.
생 화답하시길
그래, 고개를 들어봐라.
아, 그 때 그 순간은
모란마냥 붉지 못해
이슬보다 아쉬웠던.
그렇습니다.
본연히 저의 탓이옵니다
생의 낯과 얼을 뵐 적에
소녀 마음과 몸에
얼음 비늘이 어리는.
그 생의 형형한 눈동자에
내 같지도 않은 생의 애착이
다 팔려가는 기분이었으니
두렁의 붕어보다
소녀는 더 어리석었고
허나
생에게 소녀가
작은 고양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버들닢에 스친 바람같은 찰나여.
소녀야, 운영아
어찌 그리 어린 소리를 하느냐
사내에게 작은 미소 한 번 띄우지 못하고
내 너의 마음을 알듯 너 나의 마음을 알진대
버들닢에 바람이 내가 될즉이면
내 역풍의 기운이 되어 너를 덮치리라
영원히 저 적토에서 함께 뒹굴자
청초한 비늘들이 삭아 버리기 전에
우리 풍우 속에서 모든 것이 되자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싹을 틔우자
#
천사//부제: laudate gloria tua
어딘지 모를 그 위로부터
달빛이 여전히 비추는데
노랗게 뜬 눈에
검은 독니가 박혀 있다
찬란한 달빛으로부터 내려와
은방울꽃 소리를 내며
황금빛 날갯짓을 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승냥이 불여우 떼와 망령들이
공장 연기 같은 숨을 내쉬며
할퀴고 심장에 구멍을 냈다
그저 날개를 접고 웅크린 채
입술에 알쏭달쏭한 미소를 띄었다
결국 그들은 날개마저 산산조각 냈다
그 순간에도 미소만을 남겼다만
온 몸에 검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승냥이의 발톱조차 운명의 실타래에 감기고
망령들의 곡소리가 온 세상에 퍼지는 때
날개도 잃고
흉측한 검은 꽃이 돋은 채로
구부러진 몸 사이 얼굴을 다시,
달빛을 향해 들이민다
그런 너의 영광을 찬미한다
#
우주의 사랑 - 제 1 연작
온 몸으로 바다를 품은 잠자리 한 쌍
그 잠자리 커플을 애완하는
은하수를 유유히 여행하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여신
그녀의 하프 소리에 취한 황금빛 하루살이들
하루가 지나고 우주의 저물 녘이 되면
하루살이들은 별똥별이 되어 온 은하로 퍼지고
영롱한 알 껍질을 깨고 나온
잠자리 부부의 어린 아이들은
주인이신 여신의 거룩한 가슴 속에 숨어
우주를 진주처럼 바라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먼 데서 푸르게 영원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신의 아버지 바이로차나
#
일상시 1 (부제: 자랑 같은 자랑)
지하철 한 구석 텅이
야채 몇 접 이고 온 노인네
숱 없는 머리칼에는
세월이 역력한 비듬-께 가 더러 앉아 있고
눈알 하나는 어찌된 건지 노랗게 부르터 있는데
치아 없는 입가엔 입술이라곤 없다
흰 저고리에 넝마 같은 몸빼 차림
그런,
구-추한 노파의 행색
아----
떨이 좀 해요 총각---
전에 망설이던 것을
그래 바로 오늘에야
나는 그 마른 손에 내 낯선 손길로
지전 몇 장 쥐어 드리고
두부 한 모 양파 두 통 봉지에 담은 채로
그 자리를 떠났다.
오늘 난 순진해서 행복하다.
#
일상시 2 - 강아지
꼬마 별 같은 눈동자에
민들레 같은 털날을 휘날리며
너른 정원 위를 총총 뜀박질하는
너는 나의 가족 나의 동생
귀여운 강아지야
너는 우리에게
행복의 샘터이고
위로의 별빛이야
또 목자이신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꽃다발 같은 존재이고
또한 영원한 아가란다
따스한 너의 온기를 느끼는
오늘 하루로
우리는
또
내일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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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2
티원 화이팅!!!!
수험생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라 더 좋네요
고맙습니다.
나도 한 때 이럴 때가 있었는데ㅋㅋ. 국문과 지향했었는데 지금은 철학이 더 좋습니다. 서울대 꼭 가시기를 빌게요.
응원 감사합니다! 저두 철학 좋아합니다 ㅎㅎ
와진짜잘쓰시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