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불안과 우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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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D-100이군요. 어떤 분들은 수능이 다가오길 기대하실테고, 또 다른 분들 중에는 수능이 좀 더 늦춰졌으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마 전자이건 후자이건 간에 두 집단 간에 그나마 교집합이 있다면 현재 공부하는 데 있어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물론 아닌 분들도 있을 거라...)
사실 공부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일인 듯합니다. 일례로 『라틴어 수업』의 저자이신 한동일 선생님께서도 당신께서 지으신 책 중 공부라는 작업은 몹시도 힘들고 고달픈 작업이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소소하게 제 생각을 덧붙여보자면 공부하는 것이 몹시도 힘든 이유 중 하나가 공부한다는 작업 자체가 자신이 쌓아나가는 것들이 곧장 보이지 않음에 따른 불안에 기반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고3/N수생들에게는 대학 입시의 관문을 통과한다는 것을 더더욱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 정확히는 사회 전체가 대학이 한 사람의 본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통념에 동조하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이가 몹시도 그릇된 생각이라 보고 주변에 예시들도 있지만 지금은 이를 차치하고 논의를 전개하겠습니다.)
일례로 오르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입시 사이트 그리고 입시 학원들에서도 보여주는 양상이지만 성공이라는 지표에 “어느 학교”를 갔느냐, 더 나아가서는 “학점이 몇이냐? 로스쿨을 갔느냐?” 등등의 기준들을 세워넣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들을 점차 내면화해갑니다. 즉, 이런 것들이 자신의 본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해가는 겁니다.
이번에 고3이 되신 분들 혹은 N수생분들은 올해 초부터 다시 수능을 봐야한다는 사실에, 수능 공부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최소한 한 번 이상 짓눌려계신 분들이 분명 계실 것이라 봅니다. 회상해보면, 현역 때, 그리고 재수 때 저 역시도 더 나아가서는 삼수 때도 똑같은 경험을 했었습니다.
현역 때는 4월 교육청 모의고사를 보고 난 후 모의고사 성적이 23111이라는 ‘사실’에 불안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재수 때는 당시 100일 남은 시점에서 대성 모의고사 30번을 못 푼다는 ‘사실’에 보고 불안에 빠졌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자신이 겪었던 현실의 벽 앞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절망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여러분들 중 일부가 겪고 계실 불안이 절망과 우울로 화하는 그 때가 문제인 것입니다. 오히려 건강한 불안은 자신의 실존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이 문제인지 직시하고 그에 대한 방안을 세워줍니다.
그러나 불안 중 우울과 슬픔으로 화기도 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불안인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무감각을 자신이 감싸도록 합니다. 즉, 자신이 누군가에게, 심지어 스스로에게조차 보살핌을 받고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일례로, 앞서 밝혔지만 저는 삼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재수 때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즉, 노량진에서 4시에 시장을 나가시는 분들, 출근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부끄러워 제 자신을 극단으로 밀어붙였습니다. 10월 중반까지 6;30분 넘어서 등원한 적도 없고 솔직히 말해서 빌보드도 거의 항상 들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떤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 생각했겠죠. 하지만, 항상 저는 “불안”에 떨며 살았습니다. 현역 때 수능을 체해서 말아먹었기 때문이죠.(17수능 당시 국어 98 수학 92었지만 점심먹고 체해서 영어와 사탐을 보기 좋게 말아먹습니다. 탐구 떡밥있었을 때 그래서 사탐 못보면 의미없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또 점심 먹고 체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막판에 가서는 ‘진짜 이렇게 했는데 성적 안나오면 어떡하지?’ ‘아랍어 준비 제대로 안했는데 어떡하지?’ ‘약 안먹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등등 항상 불안에 떨었습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불안이 우울로 화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재수 때는 학원에서 거의 한 마디도 안하고 살았습니다. 맨날 우중충한 얼굴로 복도에서는 수학문제를 중얼거리며(아오 지금 생각해보면 병신새끼...) 항상 냉소를 짓고 다녔죠.
아마 경험해신 분들은 알겠지만 우울은 스스로를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고립시키고 수동적으로 사람을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정말 답이 없어집니다. 결국 시험장에서 감독관과 싸운 상황을 맞딱뜨린 저는 처참히 무너집니다. 만약 우울함에 빠지지 않았다면, 좀 더 능동적으로 생각하면 이를 좋게좋게 넘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다시 저는 학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수를 하게된 거죠. 초반에는 똑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열심히 하긴 했는데 뭔가 비어있었어요. 더욱 우울했습니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3월에 술 먹고 등원하기도 하고 몰래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습니다.(그 때 숨죽이면서 우는 게...경험해본 사람들만 압니다.)
그 때, 저한테 전환의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본회퍼의 『옥중서신 – 저항과 복종』을 읽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정수환 선생님이 당시 수업을 들어오셔서 추천을 해주신 책이었는데...이 때 본회퍼의 일생을 보면서 느낀 것은 누구든지 불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용되었는 이들과 본회퍼뿐만 아니라 장교들도, 교도관들도 모두가 말입니다. 다시 말해 상황이 더 낫든, 나쁘든 누구든지 흔들린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본회퍼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이켜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가지고 있는 것,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고수하는 것뿐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 – 저항과 복종』, p.64.)
특히 위 문구를 보면서 느낀 것은 ‘아 결국 문제는 나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전년에 시험관이 지랄을 하던 뭘 하던 간에 저는 집중을 했어야 했고, 3월 초반에 스스로를 흔드는 일을 하지말았어야 했죠. 결국 키르케고르가 밝힌 것과 같이 절망 및 우울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일 뿐, 내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는가 이루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였던 것이죠. 다시 말해, 우울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이고 이미 비참한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할 것이라 봅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자신이 생각한 만큼 성적이 안 나왔기에 불안에 떨 수 있고, 옛 트라우마를 건들어서 불안에 떨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 두세요. 그러한 불안이 우울과 절망으로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 속에서도 ‘나’를 지켜내는 것.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두는 것. 이건 여러분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해야만하는 것입니다. “나는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칸트가 괜히 한 것이 아닙니다.
비참한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마세요.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불안을 더욱 성숙한 거름으로 만들지, 스스로를 태우는 불쏘시개로 만들지는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겁니다.
남은 100일도 ‘불안’과 함께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내년에 관악에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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