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 쪽지

2019-07-26 03: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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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심심해서 써보는 의대생활 (7) - 해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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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제목값은 해서 심심할 때 쓰는 글인데


요새 뉴스가 심심할 틈이 없도록 만드네요...



뉴스 읽고 이슈 분석하다보니 디램에 낸드에 비메모리에


예전이라면 접하지 못했을 용어도 만나게는 되는 듯



아무튼 이번 글은 소재가 소재다보니


다소 조심스럽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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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에서 해부 실습을 할 때


반드시 하는 의식이 하나 있다.


"위령제/추모식"이다. 



우리 학교는 재단이 불교 재단이다보니


명칭이 위령제인 듯 하지만


다른 학교를 참고하면 위령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추모식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위령제/추모식은


의학 교육의 발전과 연구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더 나은 의료환경 속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유지와 함께


시신을 기증하신 고인을 기리고자 하는 자리이다.



위의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데


학교에 따라 절차도 다른 것으로 안다.



가령


북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연세대의 경우는 추모예배(with 목사)의 형식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설립된 가톨릭대의 경우는 위령미사(with 신부)의 형식으로


대한불교조계종에 의해 설립된 동국대의 경우는 위령제(with 승려)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무튼 우리 학교의 경우


전국 의과대학 중 유일한 불교재단이다보니


학교 차원에서 불교식으로 진행하는 위령제 또한 유일한 것으로 안다.


(위령제 진행하시는 스님 말씀으로는 그러셨다. -_-)



위령제는 총 두 번 진행한다.



한 번은 해부 실습 첫 시간에 실시하며


해부 실습 수업에 참여하는 의과대학생과 해부학 교실, 불교대학 학생들 몇몇과 위령제를 주관하는 스님(아마도 불교대학 교수님이신 듯 하다. 정확히는 나도 모르겠다.)



또 한 번은 해부 실습이 끝난 뒤에 실시하는데


올해는 사정상 2학기로 미뤄진 것으로 알지만


이때는 유족 분들까지 참석하시는 자리인 만큼


정장 차림을 갖춰야 한다.



불교적 의례로 진행된다는 점에선


타종교나 무교, 무신론자에게 종교적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불교 신자는 아니다보니


'내가 이 자리에서 집중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신념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므로


이런 우려가 어색하다거나 이상하다기보단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느낌이라 생각한다.



그때 위령제를 주관하는 스님이


"이 자리는 고인에 대한 예를 표하는 자리인 만큼 학생들께서도 비록 종교가 다를지라도 이 시간 만큼은 모두가 고인을 한 마음으로 기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셨다.



물론 종교도 다르고 신념도 다르다.


하지만 어찌됐든 의학이란게 사람을 이롭게 하는 학문이고


떠난 분이나 남아있는 사람이나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길을 닦는 데 이바지하는 점은 동일하다.



신념이나 종교는 다르겠지만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대전제는 동일해야 하지 않은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한마음'으로 고인을 기리기로 다짐했다.



위령제를 주관하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들 합장을 한 상태로 해부실을 한 바퀴 돌며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첫 번쨰 위령제는 그렇게 끝났다.




해부 수업은 크게 이론과 실습으로 나눌 수 있다.



'인체형태학'이라는 과목명 속에 해부학과 조직학으로 나뉘고


각각 이론과 실습이 할당되어 있는 형태였는데


과목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체의 형태적 구조를 학습한다.


굳이 차이를 나누자면 해부는 '거시적 형태'고 조직은 '미시적 형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밑에 학번부턴 '맨눈해부학'으로 따로 독립했다.)



이론 수업은 앞 글에서 말했다시피


아주대 정민석 교수가 해부 교수님의 은사님이시다보니


수업 자료나 강조 포인트 모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으셨다.


(둘 다 들어본 사람에 의하면 "우리 학교 해부 교수님의 강의력이 더 좋다"고 하는데 뭐 개인마다 평은 다를 수도 있다.)



해부학을 강의 스타일에 따라 분류하면


계통해부학, 국소해부학, 비교해부학으로 나눌 수 있다.



계통해부학은 골격계, 근육계, 신경계 등의 순으로 강의한다면


국소해부학은 등(Back), 목(Neck), 머리(Head), 복부(Abdomen), 골반(Pelvis), 다리(lower limb) 순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비교해부학은 진화생물학/분류학 등에서 등장하는 계통수를 바탕으로 해부학적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인데, 생2 해본 사람은 상동기관, 상사기관이라는 용어로 많이 접했을 그 부분 맞다. 이건 예3 때 했다.



실습과 병행하다보니 국소해부학 강의 스타일로 이론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본과 올라와서 무서운 진도량의 위엄을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 많으면서도 어려운 분량을 순식간에 나간다.


쉴 틈도 없이 말이다.



심지어 모두 생소한 용어다. 뭘 이해하고 외울 틈도 없이 금방 지나간다.


"T...Trapezius...? 이 근육이 뭘 움직이고 그런다고? 아니 그 사이에 등 근육이 지나갔네?"


"lumbosacral angle? 이게 뭐랑 뭐로 이루어져 있다고? 아니 교수님 1분 사이에 angle이 몇개나 등장하는거에요..."



용어는 영어와 라틴어가 섞여있다보니 정말 머리가 아프다.


(나중에 교수님께 듣기로는 라틴어 명칭 근육은 'muscle'을 생략해도 되나, 영어 명칭 근육은 'muscle'을 생략하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라면


'근육'이었다.



뼈를 배울 때는 뼈가 가장 많은 줄 알았다.


뼈보다 더 많은 게 근육이더라.


근육은 명칭만 외워야 하는 게 아니다.



위치. 당연히 외워야 한다.


목에 붙어있는 근육을 허리에서 찾고 있는 순간 이미 틀린거다.



근육이 움직이는 과정을 지렛대와 유사하게 보고


Origin과 Insertion도 알아야 한다.


둘을 헷갈리면 안 된다.



근육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3D로 이해해야 하는데


수많은 용어 외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에게 제일 부족한 공간지각력 가지고 그걸 이해해야 한다니


솔직히 정말 죽을 노릇이었다.


(고등학생 때 공간지각력만 C가 떴을 정도니...)



정민석 교수 자료집에서 몇가지 그림을 가져와봤다.


(이거는 아주대 해부학 교실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알아서 찾아보자.)






어꺠쪽 근육들을 각각 앞과 위에서 바라본 시야로 나타낸 것이다.


저 그림들을 머릿속에 넣으면 된다고 한다.



신경(nerve)과 동맥(artery), 정맥(vein), 림프계(lymphatic system), 기관(organ) 등 다른 구조물 또한 배우는데


뭐 사실 뼈만 뺴고 다 한다고 보면 된다.


아니 뼈도 때로는 학습한다.



등과 목, 머리를


3~4주 이론 진도 나갔을 때


강의록 슬라이드는 300슬라이드긴 했는데


한 슬라이드가 저런 그림들이었다.



저 그림을 전부 그리는 서술형이 나왔으니


공부할 때 정말... 지금도 기억을 떠올리고 싶진 않다.



해부는 솔직히 본과 1학년 1학기 과목.


아니 지금까지 과목 중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과목이었다.


뭐 실제로도 해부는 못하면 못했지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_-



저 그림을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넣은 상태로


실습실에 들어가야


카데바 실습 때 원활하게 구조물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Atlas 앱과 강의록을 옆에 펼쳐두거나


때로는 실습용 교과서를 옆에 펼쳐둔 상태로


구조물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이론 수업을 하고나서 바로 실습 수업을 하는데


그 짧은 시간 내에 전부 익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니까 말이다.



해부 실습에서 근육, 혈관이나 신경을 실수로 자르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구조물을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들 해부를 처음 하는 것이다보니 흔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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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해부하다가 피 튀기냐는 질문도 있는데


실제로는 튀기는 일은 거의 없다.



시신 보존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혈액을 모두 제거하고


포르말린(보존액)으로 그 자리를 모두 채우며



설령 심장 등에 피가 조금씩 남아있더라도


포르말린이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변형시키므로


그 과정에서 남아있던 피도 모두 응고된다.



물론 드물게 골반(Pelvis) 쪽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남아있던 피가 튀는 일이 있다고는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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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태(?)를 만일에 방지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해부를 하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스키닝 작업'(피부나 지방을 벗겨내는 작업)이 오래 걸릴 경우


해부 실습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정규 수업시간은 5시반까지여도


실제로 끝나는 시간은 7시~8시면 빨리 끝나는 편이고


10시나 11시, 때로는 새벽까지도 진행되는 일이 빈번하다.



따라서 저녁 시간이 되면


(해부를 아침부터 시작할 경우 점심 시간도 포함)


배달 주문을 하고서 배달이 도착하면


'해부실 바깥'으로 나가서 강의실에서 밥을 먹고 다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실습인데 밥을 안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해부 실습 시간에는 출석체크도 따로 하지 않고 (물론 이건 교수님마다 다르다.)


쉬는 시간도 따로 정해놓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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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해부실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냐고 묻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실습실 내에서의 식사는 금지되어 있다.


요즘 세상에 해부실 안에서 밥먹는 행동하다가는 퇴학당한다.



그리고 포르말린 냄새가 가득한 실습실에서


굳이 끼니를 해결하려 하는 사람도 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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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과대학에서 있다보면 알겠지만


'어나더레벨(Another level)'은 항상 존재한다.



해부에서 어나더레벨들은 그 짧은 시간 내에


구조물들을 모두 머리 속에 3차원 형태로 명칭과 origin, insertion까지 모두 외운다.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실수하지 않고 구조물들을 모두 찾아낸다.


어떤 경우에는 한 치의 오차나 실수도 없이 말이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옵세'와 '어나더레벨'은 겹치지 않는단 점이다.


의과대학에서 옵세는 열심히 하는 애들을 통칭하는 말이라면


어나더레벨은 학습이나 이해도, 성적에서


일반적인 수준보다 매우 높은 애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나더레벨'이 흔히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어나더레벨은 때때로 수업 중간마다 교수님의 별별 질문에 다 대답하기도 하는데


그 대답을 들을 때마다


"와 쟤는 아직 안 배운걸 어떻게 아는거지..."하고 감탄하거나


"와 쟤는 저걸 어떻게 다 기억하지..."하고 놀라기도 한다.


(때때로는 놀라는 소리가 교실 곳곳에서 나기도 한다.)




가령




이런식으로....



의과대학에서도 많이 볼 풍경이다.



하도 많이 보다보니


의과대학에서 어나더레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본과 생활의 시작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어나더레벨의 위엄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시험이다.


특히 해부 시험의 경우 어렵게 나오다보니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해부 시험이 어떻게 나오고


얼마나 어렵길래 격차가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부터 해부 시험 방식


그리고 그 유명한 '땡시'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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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해부에 대해선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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