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빛은역사 [813421] · MS 2018

2019-07-10 22: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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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윤리 오개념 의심: '현실주의'에 대한 일부 교과서의 서술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3541031

교학사 교과서 293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실주의적 입장에 의하면 분쟁이 일어날 경우 오직 힘의 논리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힘의 논리란 군비를 증강하거나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어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 이기적 인간들로 구성된 국가도 이기적이며 그런 국가로 구성된 국제 관계 역시 자기 이익이라는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저는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 이기적 인간들로 구성된 국가도 이기적이며 그런 국가로 구성된 국제 관계 역시 자기 이익이라는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라는 식의 서술이, 과연 현실주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지 의심스럽습니다. 저의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과연 현실주의자들 모두(혹은 대다수)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주장했을까요?

2. 아울러, 교학사 교과서에 있는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 이기적 인간들로 구성된 국가도 이기적이며"라는 문구는, 마치 '국가가 이기적인 이유는,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이다'는 늬앙스를 풍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에 과연 대다수의 현실주의자들이 동의할까요?

 


물론, 현실주의자들 중에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국가가 이기적인 이유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모겐소와 니부어가 그러합니다. 


가.

"모든 정치 현상의 배후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 추구욕이 깔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 점에서 모겐소니버나 카의 연속선상에 있다. 모겐소 인간의 정치성의 근저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이기심과 권력욕을 말한다. 이 두 가지 본성은 인간의 모든 정치적 행동에 잠재되어 있어서 이성으로 억누르거나 소멸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 이러한 인간 본성에 기초한 국제정치의 본질은 권력 정치이다. [...] 모겐소는 국제정치의 영역이 이러한 권력정치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이며,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는 이상주의는 결국 더 파괴적인 형태로 국제정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Morgenthau 1962)" (변환의 세계정치 제2판, 을유문화사, 165페이지)

 

 

나.

“고전현실주의의 계보는 투키디데스가 인간 행위의 철칙으로서 권력정치를 묘사한 데에서 시작된다. (...)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행위자로서의 국가 행태는 단지 국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국제정치가 필연적으로 권력 정치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요인은 인간 본성이다. (...) 투키디데스와 모겐소는 둘 다 권력을 추구하는 국가 행태의 본질적인 연속성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세계정치론, 을유문화사, 118페이지)

 

 

아마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이러한 류의 현실주의자들'의 주장이 모든(혹은 대부분의) 현실주의자들에게도 통용되리라고 착각한 나머지 교과서에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라고 서술해놓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러한 서술에 동의하지 않을 현실주의자들도 많습니다. 저는 대표적으로 케네스 월츠(Kenneth Neal Waltz)를 거론하겠습니다. 고맙게도 교학사 교과서가 문제의 서술이 있는 곳(293페이지)에서 두 페이지 뒤에 케네스 월츠에 대해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교학사 교과서의 295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습니다.


월츠(Waltz, K)에 따르면 국가 능력과 힘의 과소를 기준으로 적과 동지를 구분한다. 따라서 국제적 무정부 상태에서 국가들의 힘이 어떻게 분배되어 있느냐에 따라 국제 체제를 단극, 양극, 다극 구조로 설명한다. [...]”

 

이런 식으로, 교학사 교과서도 현실주의자인 월츠의 견해에 대해 서술해놨습니다. 그런데, 교과서 집필진은 정작 월츠가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라는 서술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인용합니다.


1) “월츠의 이론은 국제체제의 구조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구조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라고 부른다. 또는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하여 국가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했던 모겐소의 고전 현실주의(classical realism)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신현실주의(neorealism)로 지칭된다.” (변환의 세계정치 제2판, 을유문화사, 192페이지)

 

2) “구조현실주의는 국제정치가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인간 본성의 결과라는 고전현실주의의 가정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현실주의에서는 안보 경쟁과 국가 간 갈등의 원인을 국가 이상의 상위 권위 부재와 국제체제의 권력 분포로 본다. 구조현실주의의 이러한 형태는 월츠가 쓴 국제정치이론과 가장 일반적으로 연결된다. (세계정치론 5th Edition, 을유문화사, 119페이지)

 

3)

왈츠는 국제정치를 국내 변수 또는 인간의 본성으로 환원하지 않고 설명하는 논리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왈츠는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용되는 국제정치 논의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구축했다.” (왈츠 이후, 한울, 46페이지)

 

4)

모겐소는 국가가 힘을 추구하며 이러한 경향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이기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왈츠 국가가 힘을 추구하는 것은 힘을 가질 경우 자신이 더 안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며, 힘 자체는 효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왈츠 이후, 한울, 35페이지)

 

5)

“힘의 여러 가지 측면을 다루는 다양한 종류의 현실주의 이론이 존재하지만 이중 두 가지 현실주의 이론이 가장 유명하다. 하나는 한스 모겐소의 국가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에서 제안된 인간본능 현실주의’(human nature realism)이며, 다른 하나는 방어적 현실주의’(defensive realism)인데주로 케네스 월츠의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에서 제안된 것이다. [...] 방어적 현실주의는 흔히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라고도 불리는데, 월츠 교수의 저작 『국제정치이론』이 출간된 1970년대 후반부터 각광받기 시작했다. 모겐소와는 달리 월츠는 강대국들이 본능적으로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강대국들을 공격적으로 만드는 권력을 향한 의지는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라고 보았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57~59페이지)

 

6)

“더 나아가 모겐소는 국가들이 내재적으로 권력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힘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월츠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속성은 국가들이 스스로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힘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53페이지)

 

7)

“[...] 본성이라는 것이 확인되기 어렵고 추상적이며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구체적인 국제정치현상에 설명변수 또는 독립변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다. 사실 현대 국제정치학이론이 일종의 암묵적 금기로 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에 기초해서 국제정치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 이러한 논의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학자는 신현실주의·구조주의적 현실주의를 창시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Kenneth N. Waltz)이다. 월츠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저서 인간·국가·전쟁에서 전쟁의 원인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인간의 본성국가의 성격국제정치의 구조적 특성이 그 세가지이고각각의 차원은 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 이미지론으로 불린다. [...] 월츠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가 전쟁의 원인을 밝히고 앞으로의 전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 예를 들면,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설명은 왜 한국전쟁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형태로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 둘째인간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지만 자라면서 사회환경에 따라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본성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이후 저작인 국제정치이론에서는 인간 본성의 무제를 본격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으며첫 번째와 두 번째 이미지의 설명을 환원론으로 묶어 비판한다.” (정치는 도덕적인가: 라인홀드 니버의 초월적 국제정치사상, 한길사, 54~56페이지)



제가 지금 당장 월츠의 저작(『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1차적으로 이 정도로 조사를 한 다음 글을 작성했습니다. 조만간 월츠의 저작을 구해서 읽어본 다음, 최종적으로 해당 서술이 오류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물론, 제가 확인한 서적들도 국제정치 개론서("변환의 세계정치", "세계정치론")이거나 국제정치 전문서적("정치는 도덕적인가: 라인홀드 니버의 초월적 국제정치사상",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왈츠 이후")이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교학사 교과서의 해당 서술이 상당한 확률로 오류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변환의 세계정치 제2판, 을유문화사

세계정치론 5th Edition, 을유문화사

정치는 도덕적인가: 라인홀드 니버의 초월적 국제정치사상, 한길사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김앤김북스

왈츠 이후,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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