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minum [487666] · MS 2014 · 쪽지

2019-06-20 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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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인플레이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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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출처: https://brunch.co.kr/@matgrim/43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미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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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늘린들, 입시전형을 아무리 간소화한들, “개천의 용”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천의 용”이 가능했던 시대는 가까이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이미 옛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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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용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나카무로 타키코의 『데이터가 뒤집은 공부의 진실』을 한 번 읽어보기 권합니다.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행정적으로 유사한 일본, 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데이터를 근거로 하고 있어서 우리 교육 현실에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습니다. 스웨덴 교실을 예를 들며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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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뒤집은 공부의 진실』은 2015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저자가 아베 수상 직속인 ‘교육 재생 실행회(교육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기구)’의 자문위원으로 발탁될 정도로 일본의 교육 현실에 파문을 일으킨 책입니다. 심지어 저자는 교육학 전공이 아니라 통계학 전공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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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근거로 삼는 것이 “옆집, 앞집 아이”의 이야기죠. 즉, 경험에 근거한 판단이 대부분입니다. 경험을 근거한 판단은 전체나 실체의 진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경제학, 통계학 분야를 전공한 나카무로 마키코의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통계와 데이터에 근거합니다. (저자가 자녀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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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보면, 독서를 많이 한 아이가 학습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데이터가 말해주는 진실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독서를 잘 한다"라는 결론입니다. 결국 유전이라는 말이죠. 생물학적 유전과 환경적인 유전에 대한 통계 분석도 주목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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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tv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막연한 주장(?)을 엎고, 학생들의 게임 시간에 비례한 학습력에 대한 분석도 재미있습니다. 매일 1~2 시간 정도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나, 매일 평균 2시간이 넘어가면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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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각 공립학교들은 "놀랍게도" 해당 학교 재학 중인 아이들의 가정 소득 수준에 대한 분석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이후부터 의무적으로 공시한답니다. 학교 선정에 있어서 학부모들이 참고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인종 분포도와 재학생들의 부모 소득 수준을 공시한다고 하는군요. 이 사실, 알고 계셨는지요? (우리나라에서 이랬다면, 아마 난리가 나겠죠.) 그만큼 미국도 이젠 대놓고 레벨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향평준화와는 다소 거리가 먼 방향이 감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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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대의 몇 년 전 신입생들의 학부모 연봉 분석 결과, 평균 연소득은 약 ‘1,000만 엔’이라고 합니다. 약 1억 원 이상이니 중산층 그 이상입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의상황은 좀 더 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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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건, 결국 DNA (유전적, 환경적)와 소득 수준의 차이가 학습능력과 상관관계를 갖는 "유의미한" 요인이라는 분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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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우세론이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동시에 일본, 미국, 캐나다 역시 금수저 우세론과 “개천에 용 없다”는 다소 슬픈 결론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저소득층을 위한 매우 따듯하고도(?) 현실적인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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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대학입시=공부”라는 큰 프레임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쓴 책입니다. 결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를 증명하려 한다든가, 명문대 출신의 삶의 만족도 따위를 조사한 내용이 아니지요. 그러나 아주 냉정하고 분명하게 우리가 흔히 “공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명문대 진학과 관련한 풍경에 대해 그 숫자를 보여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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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OECD 국가 그 어느 누구도 “개천 용” 구경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만 헬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몽주의 이성 시대 이후의 인문학 번성이 가져온 비극(?)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대 자체가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입니다. 다시 말해서, 더는 가난을 뚫고 역경을 견디며 서울대에 입학하여 팔자 고쳤다는 80년대 한국영화 같은 시대가 아니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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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의 살아남기에 대해, 모두가 조금 더 영민하게 미래를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무한소수의 비밀이나 새로운 중력파 연구는 몇몇 DNA 보유자들에게 맡기고, 백양 각색의 모양과 색깔대로 미래를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도 대기업에 가고, 교수도 되고 좀 그러면 안되나! 흥!”하고 섭섭해하기 전에, 그 아이가 어떤 기업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가를 먼저 떠올리시는 부모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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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명문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이미 그 가치는 예전의 값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더욱, 자녀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과감히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 오히려 좀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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