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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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벌써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내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데다가, 절친한 친구의 부인의 죽음을 목도하며,
그도 언젠가는 장례식장의 사진 액자 속에서 서서히 누군가의 가슴 혹은, 추억 속에서만 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것.
벌써 20년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20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부모의 죽음을 볼 만큼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비열하게 부모의 돈을 훔쳐서 '삼수'라는 길을 아주 뻔뻔히 걷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 그러니까 20년 만에 - 쌓이고 쌓이던 삶의 무게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는 하지만, 아플 준비를 할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고 해야 마땅할 게다.
그저 이 '지구'라는 행성에 던져지며, 그를 빌미로 부모로 부터 무한한 보호를 받았고, 그렇기에
삶의 '위기'를 지혜로이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란 내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위기가 오면, 어떻게 해서든 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면
적합한 표현이 될 것이다.
자연스레, 시간의 시선을 과거로 돌려, 그 때의 '나'를 추억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아프지 않았고, 삶의 무게를 몰랐고, 퍽 순수했던 과거의 한 시점의 '나'를.
회상하는 동안, 내가 쓴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물론, 삼수를 하고 있는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전히, 과거의 한 장면을 그려보며,
R'gorithm 이라고 쓰여진 책이 내 앞에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이
줄곧 왔었으니 말이다. 내 삶의 알고리즘을 찾고 싶었다.
3600원 짜리 컵밥을 먹고 나서,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채 이러한 망상에 빠진 나머지,
목에 껴 있는 가래를 삼키기 위해서 차를 골랐다. 쓴 맛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 망상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위로하기에 충분한 향이 필요했던 것.
그렇기에, 평소에 마시던 향을 고를 수는 없었다.
망상을 가라 앉히기 위해 마셨다기 보단, 현재에 그저 적응하기 위해 마셨으니.
하는 수 없이, 평소에 아예 마시지 않던 페퍼민트를 골랐다.
뜨거운 물을 컵에 담고, 그를 타면서 향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다,
향이 내 콧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향을 맡고, 그 망상으로 부터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과거에 자주 먹었던 민트 초콜릿의 향과 너무도 흡사했으니까.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니, 너는 그 두 개의 시제를 모두 소중히 여기면 된다고,
그 차는 내게 말을 했다.
그 말 덕분에,
삶의 무게에 짓눌리어 과거를 비참히 추억하던 현재가,
과거를 더욱 단단히, 소중히 만들기 위해 살아내는 현재로 바뀌어가고 있다.
오늘, 페퍼민트에 관련한 경험을 꼭 글로 적고 싶었다.
사람에게, 혹은 글에게 위로받은 적은 많았는데,
차의 향으로 위로받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페퍼민트의 향처럼, 누군가의 아픔과 기쁨을 매개하여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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