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541907] · MS 2014 · 쪽지

2018-12-14 21: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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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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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를 신봉하지 않는다.

여전히 신의 존재에 회의적이며,

그를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가게 되리란 얘기가

내게는 너무도 낯설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강조하는 ‘사랑’을 사랑한다.


한 여자가 있었다.

심하지 않지만,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멋있는 아들을 두고 있고, 약 30평 즘 되는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집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의 부모는 그 즈음

매우 바빴기 때문에, 나를 돌 볼 만한 사람이

없었고, 인력을 구하고 구해, 이 집 까지 오게된 것.


그 집에 왔을 때는 기분이 참 좋았다.

엄숙한 집의 분위기와는 달리 — 그도 그럴 것이

부모가 모두 교수였으므로 — 그 집의 분위기는

매우 평온했다.


기억은 아나지만, 9층의 902호 였고,

어느 정도 햇빛이 잘 들어오는 편이어서

햇살이 내 얼굴 전부를 담아낼만치 눈부셨다.


그녀는, 내게 항상 무언가를 사주곤 했다.

장난감, 옷, 음식거리 따위를 말이다.

어린 나는, 그것을 너무도 당연시 여겼던 것일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같이 그녀와

얘기를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


/


일요일이 되면, 그녀는 나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

긴 예배시간, 나는 그녀를 침대 삼아 그녀에게

몸을 맡기고, 따분한 목사님의 설교가 언제 끝나나 하는

맘으로 멍 때렸다. 


교회에 가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교회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난 그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것을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고 해야 맞는 답이 될 게다.


그렇게 예배시간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도중,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나는, 그것을 ‘가정 폭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하여, 그냥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씨발, 음식이 이게 뭐야. 야, 다시해.


-에이, 참 알았어요 알았어. 다시할게.


‘별 심각한 건 아니니까.’


/


나는 사내아이 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였지만,

총 게임을 좋아했다. 물론, 어린 내가 그 게임을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였고, 나는 그녀에게

그것을 부탁했다.


-나! 이거 인증번호 있어야 하는데! 이거 해줘!


-응, 알았어 잠시만.


-뭐야, 이거 잘못 쳐서 3일 후 다시 해야 한다는데.

이게 뭐야, 그럼 나 오늘 이 게임 못한단 말이야.


철부지처럼 그만 울음을 보이며,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나의 부모는,

내게 따끔하게 혼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혼을 내기 보다도,

내게 미안한 눈치였고, 나는 그것을 알아채자 마자

눈물을 멈추었다. 무언가 낯설었다고 해야할까.


/


어느덧,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며,

공부라는 의무 아닌 의무 때문에, 그 집에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녀의 전화번호를 그 때 저장했기에,

카카오톡 명단에는 있었던 것.


고3 9월 즈음, 반신욕을 하면서

카카오톡 명단을 훑다,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

그 즉시, 반가운 마음으로, 그녀를 눌렀는데,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한 장의 사진과, 하나의 메시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공룡 이야기-

00봉사활동 단체사진과, 


하나의 메시지,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아, 이게 사랑인거구나.’

‘어린아이에게 순수함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그의 높이에 맞추는 저 행위를 사랑이라고 하는거구나.’


내 모든 기억들이, 그리고 자잘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모여지는 느낌이었고, 그 무거운 감정을 이기지 못해,

결국 울고 말았던 게다.


그녀에게 교회란 결국, 사랑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엄청난 투정을 부리었을 때,

혼을 내지 않고 미안함을 갖던 것도 사랑이었다.


가정 폭력을 하는 남편에게,

순응 아닌 순응을 하는 태도 또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를 깨닫고 난 이후, 수능이 끝나면

다시 그녀를 찾아가야 겠단 생각을 했다.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

그 때 투정부린 것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내게 준 사랑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내가 배운 사랑을 베풀기 위해.


내게는, 기독교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그것은, 다소 몽환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이었고, 존중이었고, 자유였으니까.


이번에는 정말, 이번 겨울에는 정말,

찾아갈 수 있을까. 찾아가서, 큰 절을 올릴 수 있을까.

심심치않게 욕설을 퍼부을 남편에게 그만하라는 얘기를

따끔하게 할 수 있을까.


대학이라는 공간에 가면,

이념과 자유를 좇을 수 있는 공간에 가면,

나는 먼저, 그녀와의 추억을 다시 재생시킬 생각이다.


그것이, 학문이 주는, 이념이 내게 주는,

사랑과 자유와 가장 맞닿아 있는 하나의 사례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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