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많았던 "공주", 생각없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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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현역시절의 글부터
재수 시절의 글들.
어간과 어미를 맞추어 썼는지 잘 모르겠고,
주장에 대한 논리가 타당한 지도 잘 모르겠고,
글의 흐름이 매끄러운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내가 그 글들을 쉽사리 '똥글'이라고 치부하기엔,
나름의 무서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날의 생각이 있었다는 것,
고3 오르비 유저 '공주'는,
그리고 재수생 오르비 유저 '왕후'는,
그 생각을 토대로 미래의 청사진을 가지려 했다는 것.
그 사실에 쉽사리 글을 삭제하지 못합니다.
오르비에 남긴 글의 내용들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얘기해 본 적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무섭다는 것을 무섭다고 얘기하기가 무서웠고,
생각이 복잡하다는 것을 복잡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내겐 매우 복잡했으니까요.
그저, 마음에 묵혀 두어야 하는 말들인데,
묵혀두기엔 너무 아플 것 같아 하나 하나 풀으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모를 때에,
잠시 공부하던 것을 멈추거나, 잠시 길을 걷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 그 즉시 그를 묻기를 갈망하는 인간.
그 갈망의 과정들을 잘 풀어내 온 유저.
현실에서는, 그런 갈망들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에,
조금 무뚝뚝하고 조용한 사람이지요.
공주라는 유저와, 나는 조금 다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의 나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만들어 보려 했지요.
귀여운 척을 한다거나, 남에게 잘 꺼내지 않는
'갈망'을 풀어놓거나.
아, 정확히는 내 자신의 깊은 내면 속을
비추어 버리는 캐릭터로 만들어 보려 했다고 해야할까.
수능을 그리 잘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못 보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항간에 이를 두고, 나를 비난하곤 합니다.
돈을 그렇게 썼는데도 결과가 고작 '애매함'이냐는 것이
그들의 논리지요.
크게 반박은 못했습니다.
무뚝뚝하고 조용한 가면을 썼다고 얘기하면
적절한 이유가 될 듯 합니다.
그럼에도, 반박할 거리는 참 많았습니다.
재수 생활을 보내오며, 고교 생활의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이겨냈다는 것.
재수 생활을 보내오며, 그토록 혐오하던 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재수 생활을 보내오며, 모더니즘이라는 것에 대해
작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세상은 이를 알아주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이를 알아달라고 부탁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잡념'의 레테르.
어쩌면, 그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자아 분열을 시작한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또 마이너리티의 감성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
비슷한 맥락이지만,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만의 색으로 세상을 칠하길 원하는 인간인 듯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공주'가 쓴 글 대로
내 자신을 맞추고 있지요.
분열 했던 자아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쉽지는 않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렇지만,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을 숨기고
생각이 없는 척을 해온 학생이 아니라,
생각이 요즘 많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학생으로 변하기 위해서지요.
내가 정한 가정이 가져온 현실은 불안정,
내 간절한 간청이 원하는 곳은 오로지 한 곳.
글 속에서나 그리는 그 순간이 한 컷이면 충분한 삶.
오늘도 정체된 이 곳의 흐름에 홀로 작은 바람을
불어냅니다.
그 주체가 '공주'가 아닌 진정한 '나'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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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많은요즘입니다..ㅜㅜ 인 낭 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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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글 잘 보고 있어요:) 같은 수험생인데도 이렇게 생각이 풍부할 수 있다는 걸 느낀답니다!
ㅜㅜㅜ 고마워용 ㅜㅜㅜ자주 보지만 정말 글 잘 쓰십니다. 화려한 기교 없이 내면의 생각들을 찬찬히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공감시키고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싶네요. 어딜 가든, 어디에 있든 성공하실 분이라 장담합니다. 항상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광입니다 그저...
부족한 생각이고, 또 어느 시선에 따라서는
마이너리티의 생각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쉬운 일은 분명 아닌데, 참 부끄럽고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공주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