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셀럽공주✨ [541907] · MS 2014 · 쪽지

2018-10-17 23: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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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내고자 했던 것, 그리고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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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 낭만을 즐겨야 할 권리가 있는

젊음의 한 칸을 대치동에서 보내기로 작정한

마음의 한 켠에는 '대학'이라는 관문이 있었다.


그것을 뚫어내지 못한다면,

내가 보내온 여태까지의 시간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을 

플래너 한 켠에 적었다.

그 풍채가 꽤나 위대하게 살아있고, 또 남아있길 바라며.


그러나, 공부를 하고, 또 그가 가진 '미'와 '선'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내가 얻어내고자 했던 그 대학이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내게 한 두 번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김광균의 와사등을 읽고난 후

러셀 자리에서 소리없이 울었던 때,

그로 인해 모더니즘의 '축자'들이 내 가슴 속에 박히었던 때,


외할머니 산소 옆에 놓인 밤나무를 보면서

플라타너스의 심상을 이해했을 때,


내 보잘것 없는 말 한 마디로,

자살하려던 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냈을 때,


난생 처음으로, 서먹서먹했던

아버지께 존경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때 마다 그 깨달음은 내게로 왔다.


이는 예고된 것이 아니었다.

하냥 순간적인 순간이었고,

무의식적인 의식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그 자극이 내게로 왔을 땐,

소부허유가 귀를 씻어내듯,

나 자신을 스스로 정당화 시키기 위해

나의 귀를 씻어내려 노력했음을 고백한다.

그 자극을 듣고 싶지 않았으므로.


허나, 그 깨달음이 반복적으로 내 머리, 귀

아니, 더 나아가 내 온 몸을 울렸을 때 알았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를.


그것은 대학 따위로 설명할 수 없고,

나의 존재, 그 자체만이 설명할 수 있는 

'온전한 나'가 그것.


그를 알고난 후, 플래너에 썼던 '대학'이라는 목표를

지웠다. 


대신, 순간적으로 왔다가 가버리는 그

깨달음의 도둑들의 이름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본질적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


그 때부터, 공부하는 방향이 달라졌다.

문제를 맞히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성을 맞히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또 어디에 있는가.

깨달음 덕택인지는 몰라도, 답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나이며, 지금은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서

낭만 대신 일시적 절망과 좌절을 택한 것일 뿐'


그것이 나의 존재성을 맞히는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내가 얻어내고자 했던 것은 대학이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그 보다 수 백배, 수 천배 더 빛나는

나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음을.


그래서 믿는다.

시험장에서 그 존재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나타나, 문제가 아닌 존재성을 맞히게 해줄거라고.


설령, 답안지에 오답이 가득하여

여느 때와 같은 실수와 실패를 했을 지라도,

나는 떳떳하게 시험장을 나오리라는 것을.


또, 그 깨달음이 내 스승이 된 후에는,

문제를 맞히는 공부보다, 존재성을 입증하고,

탐구하는 공부를 지향했기에 나는 앞으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시험지에는 그 '존재'를 묻지 않았기에

문제를 틀려도 떳떳해도 된다는 그 자유를.


얻어내고자 했던 것보다

더 귀한 것을 얻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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