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청의미 [447559]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18-09-30 16: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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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 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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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p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


[살다 보면 누구나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들어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뱅뱅사거리나 세종로 사거리와 달리 인생의 사거리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이정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안내판이 없다는 건 그릇된 길로 들어서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보다는 애초에 길이 없으므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뜻에 가까울 것이다.

정해진 길이 없는 곳을 걸을 때 중요한 건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눈치와 코치에만 연연하다 재치 있는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삶을 그르치는 이들을 나는 수없이 봐왔다.

가끔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내 욕망과 상처를 끄집어내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관찰해봄직 하다.


솔직히 말해 솔직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남을 속이면 기껏해야 벌을 받지만 나를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형벌을]


난, 나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한다.


누구에게나 솔직하려고 노력한다.


손해인 것은, 거짓말을 계속하게 될 때의 얻는 이득보다

나를 모르게 되는 손해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나를 보이는 과정이 삶이다.

삶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안다.


남을 속인다면 남에게 사과를 해야 하거나, 벌을 받으면 된다.

나를 속이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못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게 제일 큰 손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138p 라이팅은 리라이팅


["라이팅? 글쓰기? 글은 고칠수록 빛이 나는 법이지. 라이팅은 한마디로 리라이팅(writing is rewriting)이라고 볼 수 있지."


특별한 글쓰기 비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문장을 작성하고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괜찮은 글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날 리 없다.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는 기계 같다. 확실히 기계다. 

조금 더 여러 가지를 해보기 위해서는 감정은 절제해야 한다. 시간은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그리고 계속 배우는 것. 

내가 글 쓰는 것은 리라이팅이라는 말을 듣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걸 해도 결국 변하는 것은 없잖아. 
좋은 단어와 좋은 문장이라는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지?]


나는, 아무래도 기계 같다.



분명, 좋은 문장과 좋은 단어는 쓸모가 있다. 

작가의 삶은 밀도가 높다. 항상 깨달음의 연속. 연속.

그 깨달음이라는, 잔잔한 향의 감정을 우리는 글로 느끼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불교의 선문답과 같을지도 모른다.


禪. 선은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을 아마 이 작가라는 사람은 하나보다.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깨달음은 깨달음일 뿐, 실제로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

차라리 나는 논리적이다. 나는 이성적이다. 

요즘에 드는 감정은 피곤함, 혹은 새로움을 접할 때의 신선함. 외에는 없다.

이렇게 사람으로서 감정이 적을 수 있을까. 


그래. 그래서 책의 리라이팅을 내가 하지 않았다.

나 대신 리라이팅을 해주는 작가님이 맡게 되었다.

아얘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주셨다. 진짜 그러신 것 같다.

작가라는 사람은, 그 깨달음의 느낌을.

그 감정을 민감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게 시간낭비라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



203p 글 앞에서 쩔쩔맬 때면 나는


[책 쓰기는 문장을 정제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 깊은 밤 방 안에 홀로 있을 때 느낀 상념, 점심을 먹고 커피를 들이켜며 중얼거린 말에서 가치 없는 표현을 걸러낸 다음 중요한 고갱이를 문장으로 옮기고, 다시 발효와 숙성을 거쳐 조심스레 종이 위에 활자로 펼쳐놓는 일이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 발효와 숙성을 거치고 조심스럽게.

단어의 힘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문장의 힘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 하나의 문장에 고민하고, 그 하나의 문장에 불쾌해하며

한 줄에 감탄을 자아내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분명 큰 변화를 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의 말과 한 줄의 글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이 작가는 이러한 영역에는 전문가인 것 같다.

벌써 베스트셀러가 몇 권이다. 아마, 책의 인세로 부자가 되셨을 것 같다.

그만큼 공감. 그렇게 공감을 일으키는 문장을 쓴 것이다.

그것이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는 것.

전문가. 전문가이다. 이 작가는. 작가라는 영역에서.


참 어린 생각이겠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까지 고민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내가 접하는 모든 지식들과 모든 경험들에서

내가 무력하다는 사실만을 얻어내는지 모르겠다.


어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내가 했던 것도,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수학의 개념. 딱 하나였고

그 이상은 내가 전문가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참 작은 부분일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한 고민의 총합은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다.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영역이다.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한 대우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쉽게 얻어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문가의 영역은 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다.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내가 어떤 영역의 전문가가 될까라는 질문의 답과 동일하다.

나는 이 시대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는 어떤 영역을 선택할까.

기계 같은 삶에 어떤 추가적인 무언가가 필요할까.

나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할 삶이 무한히 많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선택할 것은 아주 조금의 영역이라는 것을 안다.

그 조금만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내 기계 같은 삶은 유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도 1시간짜리 글이다. 같은 분량의 이 책이 1시간 안에 쓰였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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