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학년 2학기, 연세대 신학대학에서 은하수 담배를 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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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학년도 2학기는 음영이 교차된 채로 시작됐다.
즐거움과 아쉬움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나를 즐겁게 한 것이 사실은 나에 대한 아쉬움, 실망감과 함께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림에서 대상의 윤곽선을 공간에 녹여 버려 물체와 공간의 구분을 흐릿하게 하는 '스푸마토'처럼, 내 자신에 느꼈던 자랑스러움은 동시에 나에 대한 일종의 자기 혐오를 똬리틀게 했다.(스푸마토 기법의 대표자는 다 빈치이다. 모나리자에서 그의 얼굴과 배경의 구분을 명확히 해 보시라. 불가능하다. 그게 스푸마토 기법이다.)
당시 대학 등록금 고지서는 집에 우편물로 날아왔다. 그 해 8월 초 어느 오후, 나는 등록금 고지서를 우편물로 받았다.
납부할 등록금 총액은 6000원이었다. 원래 등록금 총액이 얼마였는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30만원대 중반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전액 장학금을 받아도 학생회비 6000원은 내야만 했다.
뛸 뜻이 기뻤다. 하위권 성적으로 입학했다는 '공포심'과 열등감 때문에 공부를 남들보다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였으니... 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셨다.
하지만 마음 저 어딘가에는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 혹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남았다.
명색 사학도라는 놈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만을 한 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공부를 하는 놈이나, 시위를 하는 친구나 모두 고민의 ‘결’은 어느 정도 같았던.
어찌됐든 '하위권 컴플렉스'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2학기의 시작이었지만, 1학기보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2학기가 됐다.
9월 하순, 학내 프락치 사건이 터졌다. 학생회장 선거 과정에서 학생 운동을 정탐하던 프락치가 잡힌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락치에 대한 폭행 시비가 일었고, 결국 몇몇 이가 구속된다. 그 중 하나가 이제는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유시민씨였다.
강 대 강의 대치 국면...
결국 학내 자유화 조치에 따라 84학년도 신학기가 되면서 교내에서 철수했던 경찰력이 다시금 학교에 배치됐고, 전체 재학생들은 학과별 투표 끝에 수업 거부와 관악캠퍼스 사상 초유의 중간고사 시험 거부 투쟁을 벌이게 됐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눈마저 시리게 했던 오후가 되면 아크로폴리스에 모였던 수많은 학생들. 그리고 학교본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그 목소리...
“여러분! 여러분은 이 나라의 최고 지성이 될 사람입니다. 지성인답게 이제 학업에 열중해주십시오. 교실로 돌아가주십시오.”
그리고 연이어 터진 최루탄...
수업 거부로 난 갈 곳이 없었다. 시위? 여전히 열심히 참여하는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푸른 청 자킷을 제복처럼 입은 형사들의 독기 어린 눈매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어느 오후, 시위가 없던 아크리폴리스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청 자킷을 입은 40대 아저씨도 내 옆에서 쉬고 있었다.
“아저씨가 짭새에요?”
“그래, 짭새지. 여기 장미꽃이 참 예뼜는데... 왜 뽑았는지...”
그 해 5월, 아크로폴리스 주변에 잘 피고 있던 장미꽃을 학생들은 시위 도중 뽑았다. 관상용이 아니라, 아크로폴리스에 학생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울타리처럼 심은 것이라면서... 이것이야말로 학원 자유화 조치의 기만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아저씨’와 나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아저씨와 그 날 어떻게 헤어졌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하긴, 그 형사인들 아들 같은, 혹은 막내 동생 같은 학생들을 때리고 잡고 싶었겠는가? 그 역시 가장으로 먹고 살려고 그랬겠지... 장미꽃이 예뼜다고 회상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옆집 40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들어야 할 수업도 없고, 그렇다고 교내 시위와 진압 작전이 연일 벌어지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할 ‘염치’도 없고...
그래서 찾은 곳이 연세대였다. 당시 대학 도서관은 학생증이 있었야만 출입이 가능했는데, 언더우드 동상 오른쪽에 자리한 연세대 신학대학 도서관은 외부인도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삭막한’ 관악보다는 연세대가 좋았다.
연세대 본관과 신학대학 건물은 사적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서 깊다. 연세대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학생들이 도심에서 시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 곳 저 곳에 자리했던 각 단과대학을 관악산 구석에 한 데 몰아넣은 채, 건축물의 특성도 없이 일괄적으로 4~5층 건물로 ‘때려 지은’ 관악캠퍼스 건축물보다는 대학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게 했다.(80년대 당시의 관악캠퍼스는 그랬다.)
그리고 왠지 모를 자유로움도 좋았다. 학생들 복장도 관악보다는 훨씬 세련된 것 같았고...
하지만, 무엇보다 담쟁이덩굴이 얽혀 오른 신학대학 도서관의 삐걱거리며 들뜬 마루 바닥과 진한 갈색의 책걸상은 나에게 평안함을 주었다. 내가 대학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그 때 읽은 책들은 모두 종교나 역사에 관련된 것이었다. 명 강의로 날리셨던 종교학과 정진홍 선생의 시카고대학 스승이었던 멀치아 엘리아데의 ‘성(聖과 속(俗)’, 사무엘 세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학교 생각이 나서 우울해지면, 언더우드 동상 아래 벤치에서 잘 피우지도 못하는 은하수를 물어대며, 캠퍼스 이 곳 저 곳을 넋 놓고 쳐다보곤 했다.
당시 최고급 담배는 500원짜리 솔이었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 운운하는 대학생이 솔을 피운다는 게 왠지 모를 죄책감을 주었다. 나뿐 아니라 상당수의 동료들도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그 바로 아래 급 담배인 330원 짜리 은하수와 거북선, 한산도였다. 한데 거북선과 한산도는 독했기 때문에 나는 은하수를 사곤 했다. 당시 길거리 가판대에서는 은하수 세 개비를 100원에, 솔은 두 개비에 100원에 팔았다.(당시는 이를 ‘까치 담배’라고 불렀다. 표준어로 한다면 ‘개비 담배’가 맞을 것이지만, 사람들은 한 가치 두 가치 할 때처럼 ‘가치’라고 표현한 뒤 경음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시험 거부...
당시 신문에서는 관악캠퍼스의 수업 거부에 이은 시험 거부를 연일 1면과 사회면에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시험 거부 첫 날, 석간 동아일보가 1면 톱 제목으로 뽑은 ‘우울한 관악’은 내 기억에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일부 학생은 물론 시험을 치렀다. 나? 중간고사 1주일 기간 동안에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다. 시위에 적극 참여할 용기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험을 치를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시험 기간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고 생각된다. 며칠 만에 학교를 찾았다, 중앙도서관으로... 그래도 책은 읽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중앙도서관 옆(인문대학 방향 쪽)에 자리한 언덕 벤치에 앉았는데, 벤치 바로 옆 단풍나무가 너무도 ‘맑게 붉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붉었고, 그렇다고 붉다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밝고 맑은 그 빛...
그 단풍나무 빛은 1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던 나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위안이었다.
어쩌면 ‘시위 참여’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나는 도피처로써 미의 세계로 눈을 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20대 내내 ‘아름다움’에 그리도 집착했던 것은, 그리고 당시 신문사에서는 인기가 없던 문화부 기자가 되겠다며 수습 기자를 마친 뒤 제출하는 지원 부서 작성 때 동기 중 유일하게 문화부를 지망했던 것은 지금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그 단풍나무 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단풍나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10대 마지막 시절을 위로하고, 20대 때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을 갖게 했던 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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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이야기...
84학년도 2학기 기말고사에는 모든 학생들이 참여했다. 물론 학점은 모두 엉망이었다.
내 학점은 2.58이었다. B-와 C+의 중간 성적이었다. 그 해 내가 다니던 학과에서는 39명 중 6명이 학사 경고(평점 2.0 미만이 학사 경고였다.)를 받았고, 그 중 2명은 연속 경고로 제적됐다.
그리고 이어진 2학년 1학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교학과로 전과를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 목사가 꿈이었는데, 나의 고민을 종교로 풀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유야무야...
대신 사학 계열의 다른 학과를 부전공으로 택해 폭 넓은 공부를 하게 됐다. 당시 부전공은 무척이나 드문 경우였다.
2학년 2학기, 결국 학교 생활을 버틸 자신이 없어 군대로 도피하고자 했다. 카투사 입대. 당시 카투사는 1년에 두 차례, 국사와 국민윤리, 그리고 영어 시험을 치른 뒤 성적순으로 뽑았다. 그래서 입대가 결정됐다. 1986년 7월 18일 목요일...
군 입대 직전 마지막 학기였던 3학년 1학기는 지옥이었다. 전방 입소 거부,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을 외치며 86년 4월 28일, 신림사거리에서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호씨가 분신했다. 그 즈음, 서울대 국문학과 1년 여선배가 참여와 실존의 고민 속에서 자살했다. 한강에 몸을 던졌다.
기실 20대 초반이라면, 이성과의 사랑(물론 동성과의 사랑도 있을 수 있다.)을 이야기하고, 섹스에 대해 고민해야 할 나이 아니던가? 한데 우리는 그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이제 내 가슴 속에 추억으로, 그리고 훈장으로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청춘이었음에... 그래도 우리는 뜨거웠음에...
브라우닝의 시처럼 ‘함께 늙어 가리라. 그래도 좋은 것은 여전히 우리 앞 날에 남았음에...’(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로버트 브라우닝의 1864년 작 ‘랍비 벤 에즈라’ 중
딱 31년 후배가 되는 아들이 있다.(대학은 다르다.) 아해의 모습을 보면 요즘 젊음이 우리 때에 비해 얼마나 ‘차가운지’ 안다.
취업, 결혼, 집 장만...
우리는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취업은 당연히 되는 것이었고, 집도 몇 년 만 고생하면 살 수 있었다. 그러니 결혼이야 나이 들면 해야 하는 것이었고...
요즘은 과연 그런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런 세상을 소위 ‘386’, 그리고 그 윗세대들이 만든 것인데... 내 세대와 내 바로 위 선배 세대가 만든 것인데... 우리가 자복 자책해야지...
누구나 자신이 겪었던 청춘은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찬란하기까지 하다. 그 낭만과 찬란을 누렸던 나는, 내 아해 세대에게 다시금 빚진 자가 돼 서 있는 것이다.
지금 나의 독백, 50대 중반 사내의 ‘철없음’으로 돌리시라.
그럼에도, 그럼에도...
즐기시라.
가능하다면, 즐기시라.
절대로 가역적이지 않은,
돌아올 수 없는 그대들의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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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느 '386', 50대 중반 사내의 기억입니다.
피카부님이 학부모가 아닌 학생이라면, 즐기소서, 님의 찬란한 시절을...
매번 글 읽을때마다 감탄밖에 안나오네요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글 계속 부탁드려도 될까요 ㅎㅎ
감탄은 무슨...
그냥 어느 여전히 철없는 50대 중반 사내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지금 젊음을 통과하고 계시는 분들이 조금 더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요...
그 젊음, 다시 오지 않으니까...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비운동권의 이야기라 신기하네요. 저도 이때 학교를 다녔다면 이렇게 고뇌하며 살았겠구나 싶네요
에고... 님은 저보다 더 용기있었을 겁니다.
저야 뭐...
즐기십시오, 가능하시면...
연세대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더더욱 글에서 윤동주 냄새가 나네요 Zzz
허걱... 윤동주 선생님을 제 글에서 찾으시다니요?
윤 선생님이 계시다면 명예 훼손 당하십니다, 후후...
연세대 언더우드 동상 주변은 그 추억 때문인지, 기자 생활을 할 때도 무척 좋아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아조씨 존멋
존멋요? 하하... 저 멋도 없고, 인간으로서의 맛도 없는 무미한 사람입니다.
그저 청춘 예찬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힘든 시절, 내 세대보다 분명 더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그 젊음을 어찌됐든 즐기시라는 뜻에서 썼습니다.
항상 좋은 날 되소서... 평안하시고요...
저희 교수님도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니까 즐기라고 하는데.. 다들 벚꽃구경 하는데.. 혼자 도서관에서 앉아있으니까 외로워요 ㅠㅠㅠ
하하... 도서관이라...
오늘은 비가 오거나 흐리니까 그렇고, 이번 주말에라도 어찌 안 될까요?
벚꽃 나들이?
즐기세요, 제발... 가능한 만큼이라도...
아조C 멋져요
팔로우 했어여 ㅎ
에구... 죄송합니다.
이런 시대를 만든 사람의 하나라서요. 진심입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즐길 수 있는 만큼은 즐기십시오. 가능하시면... 님의 청춘, 다시 못 옵니다.
저희과 건물이 굉장히 유서깊은 곳이었군요.. 지금은 재건축 한 거 같았는데.. 아닌가 모르겠다 ㅜㅜ
저는 과연 그 시기였으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저는 지금 흔히 '운동권'으로 불리는 학회에도 들어가 있고(물론 지금 운동권이란 소리 듣는 사람들조차도 예전 기준으로 보면 그게 뭐가 운동권이냐는 말 나올수도 있지만요), 그런 곳에 몸 담고 있는 분들도 여럿 알고는 있는데도 정작 무언가 집회 같은 거만 생기면 용기가 없고 놀기 귀찮다는 이유로 몇 번 나가지 않았어요. 이 글을 보니까 이런 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군요.
아 그리고 사담이긴 한데 학점 2.58이라는 말을 보니 뜨끔하네요 ㅎㅎ 제 저번학기 학점도 2.58이어서 ㅠㅠ
아, 신학대생이시군요.
신학대 건물,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사적 277호, 요즘은 아펜젤러관으로 불린다죠?
그리고 저와 '학점 동창'이시군요. 반갑습니다, 후후...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 제 학점 동창님...
혹시 책 안 내시나요? 글솜씨가 믿기지가 않습니다...
에이... 제 글솜씨는 엉망입니다.
그리고 '논증'이 필요할 때의 문체나, 신문에 썼던 문체는 여기와는 또 다를 수밖에 없지요... 감정이 아닌, 사실에 대해 써야 하니까...
못난 책이지만, 소생이 '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학고재 출간)라는 책을 지난 해 여름에 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책이지요. 그 책, 연세대 중앙도서관에도 있습니다.(물론 첫번째 출간한 책도 있지요.)
혹, 만약 시간이 저어어어어어어엉말로 남으신다면, 화장실에서 무료할 때 서론과 결론만 읽어주소서.
제가 특히 젊은 세대(물론 저도 여전히 젊지만!)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우리 역사 의식에 대해...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
그때는 그때의 시각으로 이해한다는 말이 참 맞는 거같네요. 지금 시각으로보면 그때 운동권 대학생들이 외쳤던 민중투쟁, 계급, 부르주아....이런 말들은 오늘날에는 현실에서 외치기보다 책으로 만나고 실제로 저런말을 하면 많이 이상하게 볼테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레슬리 폴 하틀리가 발표한 소설 '중개인'(1953년 작)의 첫 문장처럼 '과거는 낯 선 나라'이지요.
과거를 현재의 기준에서 파악한다면, 여러 '뒤틀림'이 발생한다고 저는 봅니다.
이것을 친일 문제나 역사 청산 문제로 대입한다면...
너무도 '핫한' 이야기가 되겠기에, 여기서 저는 접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
자주 글 올려주십시오. 팔로잉하고 구독하겠습니다.
에이... 제 글이 팔로잉해서 읽을만한 수준은 아닐 겁니다.
이전 글과 댓글에서도 여러 차례 썼지만, 그냥 나누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젊은 분들(물론 저 역시 여전히 젊습니다.)이 조금 더 즐길 수 있었으면 해서요, 청춘을...
물론 많은 어려움이, 저희 때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오늘도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그렇고 그런 글 읽어주셔서..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즐기십시오, 가능한 만큼은...
그 당시의 역사와 이야기를 정말로 감탄스럽게 글로 표현하시는게 너무나 멋있으십니다..한때 저는 기자를 꿈꾸며 많은 글들을 보며 글쓰기 방법을 익혔지만 위선과 위악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제가 이제까지 봐왔던 글들보다 더욱 더 높은 수준의 글 솜씨를 가지고 계서서 놀랍습니다.. 항상 멋있으십니다
에이 무슨 말씀을...
님은 저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쓰실 겁니다.
제 글이야 뭐 3류이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진심어린 응원...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이런 좋은 글을 올려주신다면...
오르비에서 제가 젊은 분들(물론 저 역시 아직은 젊지만)과 대화할 수 있는 게 저로서는 영광이지요.
항상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 시절의 한 부분을
좋은 글로 느끼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공감해주신다면 제가 더 고맙지요.
항상 좋은 날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글보고 자체휴강 결심했읍니다 학점 원주율의 전사 뚝딱이 간다~
허걱...
혹 '자체 휴강'이 진짜로 수업을 빼먹는 것인지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니 되옵니다, 그러시면..
젊음을 즐기시되, 수업은 빠지시면 아니 되옵니다.
한데...
화급한 연애가 걸린 것이라면...
허합니다.
즐기소서, 젊음을....
연애못해서 수업드갑니다 인생..
하하... 연애 아니면 수업 들어가세요. 틀딱처럼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대신 오늘 수업 마치시고 정한수처럼 맑은 소주 한 잔, 마음 맞는 친구와 하시든지요. 아니면 주말에 벚꽃 구경이라도요.
아, 좋겠다... 그 젊음이...
저 역시 아직은 젋지만, 그래도 20대 초반이 가장 빛나니까요...
응원합니다.
ㅋ
저는 저와 23학번의 차이가 나는 삼촌이자 선배와 이야기하면 얼마나 그 당시에 그 나이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른지 알수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건 모두에게 20대란 불안과 성장의 양면앞에서 흔들리는 갈대임은 느낄수 있었네요. 막걸리촌 대신 참살이길이 정착된시점부터 같은공간에서 다른 시대를 살고있어도 고민의 성격이 달라도 힘든시절이었음을 공감합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님 말씀처럼 불안과 성장이 공존하는 시기가 맞지요. 그래서 더 귀중하고 빛나는 시점이고요.
고려대학교...
84년 봄에 처음 가 본 학교였지요. 그 때는 지금처럼 건물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학교가 예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99년 회사의 배려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2년 동안 배울 기회를 얻었는데, 캠퍼스에 건물이 예전에 비해 너무 많아져서 저는 아쉬웠습니다. 오후 3시쯤 공부하다가 피곤해지면 아이스링크에 가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지요. 제가 공부하던 연구실이 동문회관 건물에 있었는데, 걸어서 아이스링크에 갔지요. 재학생 입장료가 2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닌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후후...

참고로 지금도아이스링크장 가격은 크게 변동이없습니다와... 그렇군요. 언제 가 봐야겠습니다. 일반인 가격을 내고서라도...
동문 할인은 없을까요, 후후...
감사합니다.
댓글을 안달 수가 없네요 한편의 문학 작품을 본 느낌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그저 '즐기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즐길 수 있는 만큼은 즐기소서...
그래서 닉네임이 미의 산책.. 이였을까요 ㅎㅎ
허걱...
갓량공급님이 어찌 저를...
영광에 영광입니다...
진짜 매번 읽을때마다 뒤로가기를 누르지 못하게 하시네요.
몰입이.. ㅎㄷㄷ 감사합니다.
에이... 과찬도 너무 심하면 욕입니다, 후후...
저는 여전히 젊지만, 그래도 가장 빛나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있었지요...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플' 뿐 아니라, '차가와지기 쉬운' 현재의 청춘들에게...
아저씨의 아해가 부럽습니다. 얼마나 많은 지혜를 물려받으실지..
하하... 물론 제 아해는 저보다 훨씬 낫지만, 여기 오르비의 괴물들과는 다른 친구입니다.
놀기 좋아하고, 게임 좋아했던 중학생 시절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갔지요.
물론 고교시절에 '해당하는' 2년은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고요, 제가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너를 인정한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지금은 초등학교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남역 근처 학교에 다니면서...
저희 때는 교대나 국립대 사대 나오면 그냥 임용시험도 없이 교사가 됐는데...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제목처럼, 참 '어려운 시절'을 여러분은 살고 있습니다.
미안함과 죄책감... 기성새대로서 갖는...
위선과위악님을 팔로우 해두었기에 글을 쓰시면 알람이 뜨지요. 그럼 바로 들어가봅니다. 오늘은 어떤글을 쓰셨는지 하는 기대.
그러나 금새 뒤로가기를 누릅니다. 아 지금과 같이 흥미거리만 찾는데 몰두한 상태에서, 이 글을 대충 읽어내린다는건 죄악이겠구나. 다시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글을 읽어야지 하고... 요즘 수능 문학작품만을 읽다가, 힐링되는듯한 편안한 향수에잠긴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차려주신 밥상과 같은 글이었어요 잘읽었습니다.
아이고... 이런 평가까지... 과분합니다, 저에게는...
수험생 생활, 참으로 힘들지요. 저도 '두 차례' 겪어보았지요.
1983년과 1989년~1990년에 걸쳐서... 한 번은 학력고사, 한 번은 언론사 시험...
님에게 오직 찬란한 미래만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화이팅!!!!!
혹시 시위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후회감은 없으셨나요?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예상정국때 촛불집회와 시위가 많이 열리던 나날에 학업을 핑계로 시위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매우 후회되더라고요. 물론 서슬퍼런 군부독재 시절의 시위와 21세기의 시위는 느낌은 다르지만.. 저희 아버지도 군부시절 돌을 던지다 안기부에 갈뻔했지만 미친듯이 뛰어서 목숨(?)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갑자기 위선님의 글에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오버랩되네요...
님이 잘 아시듯, 그리고 님도 지적하셨듯, 후회는 지금의 감정이고, 당시는 죄책감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요.
한데...
지금 죄책감은 솔직히 별로 없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둔감해지고, 속물스레 변한 탓'도 있겠지만,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이후 행로를 보면서 갖게 된 감정이기도 합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잠깐 썼지만, 저는 오히려 당시 죄책감 속에서 '반도체 싸게 만들기 위해, 의료 수준 높이기 위해 노력한' 친구들에게 더 큰 고마움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삼성이 소니를 앞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전자기술은 영원히 일본의 뒤를 따라갈 것이라고 보았던 사람입니다.
소니의 '워크맨'이 1980년대 초반 나왔을 때 삼성이 곧이어 '마이마이'라는 카셋트플레이어를 출시했지요. 지금 중국이 한국을 그러는 것처럼, 솔직히 그냥 모방한 것이지요.
한데 그 차이란...
워크맨은 정말 매끄럽게 음악 소리가 들리는데, 마이마이에서는 '탱크 지나는 소리'가 났습니다.
한데 그 어느 순간,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소니와 아이와, 히다치, 파나소닉 등 쟁쟁한 일본 전자회사의 총 매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하더군요.
진보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최고의 덕목은 그 사람이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생활의 편의'를 얼마 만큼 가져다 주었느냐에 있다고 믿게 된 까닭입니다.
카스트로? 아주 훌륭한 혁명가였지요, 젊은 시절에는... 한데 그의 말년은? 예, 저에게는 독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김일성? 아주 훌륭한 항일 투사였습니다, 1930년대에... 하지만 그의 말년은? 저는 김일성보다는 박정희가 훨씬 더 뛰어난 지도자라고 봅니다.
지금 저는 후회는 없습니다.
당시 죄책감은 있었지만, 지금은 없지요.
다만 당시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국의 과학기술을 빛내려고 노력한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사무치는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의 발전에 제가 그리도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까닭이고요...
우리나라를 잘먹고 잘살게 해준 기술자와 사업가들 또한 매우 존경합니다만 민주화운동가들이 그저 열정과 이론뿐인 혁명으로 끝났을지언정 올바른 사회를 원하는 외침과 정신만큼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선생님의 의견도 매우 공감합니다. 대다수의 운동권들이 실무경험없이 그저 이론과 혁명만 앞선 망상으로 끝난 감도 꽤 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운동권들이 행동만 앞선 자연발화로 끝났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해준 의미나 고찰을 가볍게 보고 싶진 않습니다.
p.s근데 김일성이 딱히 훌륭한 항일투사로 활동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요...
예, 님의 생각이 옳지요.
하여튼 저는 '제 세대'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후후...
그리고, 혹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하와이대 교수를 지내셨던 서대숙 선생의 김일성 관련 연구 저서를 읽어보시셨으면 합니다.
1989년 서울대에서 '북한 공산당사 연구'를 처음으로 강의하셨는데, 정말로 제 눈을 뜨이게 하셨지요. 그 때 김일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중요함을 알게 됐습니다.
한데 당시는... 주사파들로부터는 '김일성을 너무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으셨고, 우파로부터는 '김일성의 젊은 시절 행적을 너무 과대 평가한다'고 비판받았지요.
좋은 말씀. 좋은 도서 추천 감사합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 오늘 좋은 지식 많이 얻어갑니다. 학업에서 풀 수 없었던 궁금증과 접하지 못한 지식을 많이 배워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미래세대는 더 나은 사회속에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세대는 산업화의 역군이었고 민주화의 역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부 어른들의 나쁜 이미지가 젊은 층에게 '꼰대'라는 유행어를 만들었지만 저는 선생님처럼 훌륭하신 어른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님처럼 저희 세대를 인정해주시면 더없이 고맙지요, 저희로서는...
물론 여전히 저는 '제 세대'에 비판적이지만, 후후...
공부 열심히 하시고, 건강도 잘 챙기셔서 꼭 '서울 공산 대학'에 입학하시기를 바랍니다. 하하... 서울 공산 대학이 어딘지 아시죠? 화이팅~~~~~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아이고, 제가 더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힘들더라도 즐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의 청춘들이... 대다수가 '아프고 차가울'지라도요...
제가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님도 바라시는 목표, 이번 수능 때 꼭 이루소서.
(군대 조교 톤으로) 자, 삼반수님은 오는 11월 셋째 목요일에 치르는 2019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는다, 실시!!!!!!
아 참... 제가 혹 결례를 한 것이 아닌지요.
님, 지금 대학생이시지요? 삼반수 끝에 목표를 이미 이루신 것이지요?
제가 혹 결례를 한 것이 아닐까 해서 님이 작성하신 지난 글들을 잠깐 보니, 이미 대학생으로 목표를 이루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결례였다면,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제 글을 보셨다니 부끄럽네요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세 번째 수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인 건 맞습니다
선생님의 댓글이 결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목표를 가진 삶이 진짜 삶이지요.
올해는 목표를 반드시,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오는 11월 셋째 목요일 대박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햐......
언젠가 꼭 위악님과 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맑게 붉다....라는 표현과 음영을 즐거움과 아쉬움에 빗대시다니....
글 한 줄 한 줄이 머리속에 영상화되구 나레이션이 되어 영화처럼 지나갔네요..
많은 독서를 하신 듯 합니다..지금 입시에 치여 읽지 못한 책들이 많은데,
내년에 입학해서 많은 책을 읽고 위악님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면 하네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갑사합니다. 늘 신선한 표현에 감탄은 덤이에요 ㅎㅎ
아이고..
저는 님이 생각하시는 정도의 사람이 절대로 못 됩니다.
그저 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기억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청춘들, 제가 보기에는 저 때와 비교했을 때 너무도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기에...
꼭 바라시는 대학에 합격하셔서 빛나는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는 11월 셋째 목요일 오후 6시, 활짝 웃는 얼굴로 부모님과 맥주 한 잔 혹은 차 한 잔 나누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저도 아해랑 2014년 11월 13일 오후 6시, 소주 한 잔 나눴지요. 아해가 수능 마쳤던 날... 그러던 아해가 벌써 4학년이 돼서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월 참...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이야, 요즘 그리도 핫한 의대생이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지금 가지신 의대생으로서의 생각을 나중에 '절반만' 간직하셨으면 합니다. 그럼 그 언제든 존경받으실 겁니다.
의사라는 직업,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직업이지요...
참, 감히 부탁드리건데...
언제 시간되시면 셔윈 눌랜드의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를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이미 읽으셨다면 죄송...)
인문학적 훈향을 듬뿍 담아, 삶과 죽음을 의사로서 논한 책인데, 정말로 명저입니다. 제가 다섯 차례 읽은 책인데,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아버님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제가 이번에 입시를 마치고 목표대학을 가지 못해서 도전을 할지 계속 고민이 됩니다.만약 다시 준비를 한다면 저는 24살에 새내기가 됩니다.그런 나이에도 목표대학을 결국 합격하는것이 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그리고 서울대학교는 늦게 학교에오신 학우분들도 많이 계실지요.지금은 23살 새내기로서 그냥저냥 동생들하고 지냅니다만,사실 목표대학이 아닌데도 계속 억지로 다닌다는 느낌이 나서 마음을 여는것은 힘이듭니다.1년이라는 시간과 나이를 하나 더 먹더라도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룬다면 저는 더 행복할까요....나이가 많이 먹고 대학에 입학하는것이 동기분들과 어울릴때 많이 힘들까요......대학에서 관계를 맺는것이 중요할까요 제 자신의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좋을까요?저는 관계맺는것을 60%정도 중요성을 두고있는데 제가 나이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우선... 군 문제는 해결이 되셨는지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고민 거리가 군대 문제이지요.
행시를 치려 해도 한 2~3년 공부하다가 안 되면 군대 문제가 걸리니까요...
만약 군 문제가 해결이 됐다면...
한 번 더 도전해 보시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가족의 반대만 없다면요. 가족의 반대가 있다면, 그것은... 하,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것은 가족의 문제가 되니까요...
그런 난관이 없을 때 다시 공부해 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석원 선생처럼 "서울대 5수를 해서라도 가라"고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평생 아쉬움을 남기고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평균 수명, 최소한 님의 세대는 90세 이상일 겁니다, 무조건...
그리고 50대 중반이 돼 보니... 1~2년 늦은 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더군요.
그러니, 아쉬움이 남으면 도전하세요. 하지만, '수능 중독'이라는 생각이 스스로 들 정도라면 과감히 포기하시고 다른 길을 찾으시고요.
님, 수능 중독 아니시죠? 절박하신 것 맞죠? 그럼 도전하세요. 늦지 않았습니다. 님 아직도 창창한 젊은이입니다.
단, 이번 1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반드시 하시고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내가 수긍하겠다고 생각하고 불태우세요, 님의 육신을...
제가 어릴 적 좋아했던 문구 하나로 모든 답을 대신합니다.
프랑스 혁명기 당시 유행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숭상한 것을 불태우고,
자신이 불태운 것을 숭상하라."
말씀감사합니다.마지막줄에서 소름이 돋았네요.저도 수능중독인지 아니면 정말 간절한것인지 판단이 힘듭니다.수능중독이라면 어떤 심리적 상태라고 볼 수 있을지요.다른 이유들에 의해서 현상황이 마음이
들지 않는데 그것을 수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일까요?복잡한 생각들이 마구 듭니다.저도 즐겁고 행복하게 얼마남지않은 20대초반을 즐기고 싶어요
아...
그 지점에서는 저 역시 답을 못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님이 님을 잘 돌아보셔야 하겠지요.
내가 수능 중독(더 정확히는 현실-내가 속한 대학-에 그저 만족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목표에 대한 절박함인지에 대한...
저는 후자이기를 바랍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생각이 복잡하시면 짧게 여행이라도 떠나 보세요. 그리고 자문해보세요. 나의 상태가 무엇인지, 어떤지에 대해...
그리고...
고르디우스의 매듭, 잘 아시죠?
너무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마치 풀기 힘든 매듭을 칼로 끊어버렸던 알렉산더처럼 말입니다.
같은 학번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3류대 출신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살았고 느낌도 다르네요.
저는 백골단이라 불리는 체포조의 눈빛이 매섭게 느껴지기 보단 최루탄에 눈물이 고이고 충혈된 눈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백골단은 이름은 살벌하지만 지금과 달리 대충 고등학교 나오고 군대 갔다온 어린 신입 순경과 지리질이 복도 빽도 없는 같은 또래의 전경이 었으니까요.
참고로 태양 솔 아리랑 거북선은 동급담배입니다. 순서대로 독한 ...........
님도 역시 정확히 기억하시는군요. 백골단...
백골단은 대부분 젊은 경찰로 구성됐지만, 아마 서울대를 맡은 관악서 소속 '베테랑'들도 백골단에 끼어 있던 듯 합니다. 백골단의 '현장 중간 지휘부'쯤 될까 한...
한데 님은 백골단에서 일종의 '연민'을 느끼셨군요.
아마 제가 경찰력에 대한 공포감을 님보다 더 진하게 갖고 있었나 봅니다.
전경이야 전경복을 입고 있어서 무서운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백골단의 그 푸른 청 자킷... 하, 저는 무섭기만 했습니다, 후후...
그리고, 84년에 거북선과 솔이 동급이었나요? 거북선과 한산도, 은하수가 동급이 아니었나요? 솔이 500원, 그리고 '은하수급'이 330원이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기억을 하는데...
언제 한 번 담배인삼공사 자료를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자료 고증은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
추신===님이 너무 겸양스레 말씀하셔서 저도 한 마디 하면... 저는 인생 자체가 '3류'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너무도 후회되는 게 많아서요. 왜 그 때 그리 했을까, 생각되는 게 여전히 많습니다. 하여, 요즘도 제 머리를 제가 칠 때가 있지요.
저는 짧은 몇줄 글을 힘겹게 썼는대
긴 글을 깔끔하게 빨리도 달으셨네요
제 글에 솔과 아리랑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은하수 한산도가 동급이며 한산도가 독하고
그리고 200원대의 청자 환희 샘
저는 주로 청자와 300원대의 은하수를 피웠지요
간이 부었는지 미쳤는지 길건너 엄마친구 담배가게에서 고3 때부터 사서 피웠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럼 어찌됐든 거북선은 고급이었군요. 제가 거북선 가격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한데 어머님 친구 담배 가게에서 담배를 사셨다구요, 고 3 때? 허걱...
하여튼 재밌습니다. 옛 추억 함께 나누니...
항상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소서...
선생님 (호칭 괜찮으시죠?) 글 첫부분을 읽으며..문득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 떠올랐습니다. 불확실하고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젊은날..그리고 비겁한 기성세대로 살아가는..그러나 조금 더 읽어가며 ~~ 제 생각은 그 뿌연 안개가 말끔하게 걷히더군요. 분명 선생님은 젊은날을 암울하게 보내셨다고 생각하시겠지만..그 이면에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독서하고 사색하며 훌륭한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찬란한 글은 그런날들을 사셨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적으론 풍요롭지 못하셨겠지만 깊이 있는 내면의 사색이 가능했던 시절이었겠구나~~~ 짐작해봅니다. 저흰 풍족한 시대를 살지만..내면을 들여다보기는 커녕 아름다움을 느끼기나 하는지..입시지옥. 청년실업..그옛날 80년대보다 더 투명하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음에 무거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슴 서늘하게 하는 마지막 글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젊음을 즐겨보겠습니다. 깊이 사색하고 독서도 많이해야겠습니다. 훗날..선생님처럼 멋진 중년?으로 살고싶어졌습니다. 멋진글 고맙습니다~^^
제 글에서 김승옥 선생의 무진기행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예, 김승옥 선생에 대한 명예 훼손이 맞습니다, 후후...
훗날 평론가로 한국 문단을 호령했던 김현 선생(서울대 불문과 교수 역임. 1990년 작고하셨지요. 아마 90년이 맞을 겁니다.), 그리고 시인 최하림 선생이 소설쓰기를 포기했던 것은, 하여 두 분이 평론과 시로 돌아섰던 것은...
오롯이 김승옥 선생 때문이었지요. 그의 산문을 당해낼 재주가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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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어찌됐든 저와 제 세대는 어찌됐든 '행복한 청년 시절'을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아프고 차가운' 시절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그 때는 무척이나 아프고,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청춘을 보면 그래도 우리가 풍요로운 시절을 지낸 것이었지요.
한데, 감히 첨언하자면...
1950년대에 청춘을 보내신 분들은 지금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듯 합니다. 전쟁도 그렇고, 변변한 직장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분들 보고 참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때는 그 때의 상황이 있는 것이고, 지금은 지금이 상황이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이런 세상을 만든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을 담아 감히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만큼은 즐겨보시라는...
이 말, 무척이나 무책임하다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데...
어찌됐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통계적으로 볼 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자, 청춘이여, 화이팅하십시다.
그리고 님은 저보다 훨씬 멋진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저보다 훨씬 여유로운 중년으로 사실 겁니다.
추천 후 감상합니다 형님(저도 서른 정도 된 아재라서..ㅜㅜ 뒤늦게 공부 시작하는 고졸 만학도랍니다)
아...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두 손 모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님의 목표, 이번 11월 셋째 목요일 수능에서 꼭 이루소서.
그래서 내년에는 님이 목표하신 대학의 입학식 때 입학생 대표로 선서를 하소서...
비켜라, 우리 마지막싶새님 나아가신다.
이번 수능에서 우리 '마지막싶새'님 만점에 대박 나신다.
의대 경영대 다 비켜라, 납작 엎드려라~~~
응원합니다. 몸을 불사르십시오. 영혼을 불태우십시오.
응원합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도 "위선과 위약"님의 글에 묻어서 (필명 멋지세요. 역시 문과 최고!!!) 저도 추억을 한 가닥씩 꺼내 봅니다.
1) 전액 장학금- 부럽습니다. 저는 9학기나 다녔는데 한 번도 못받았어요.
2) 84년 2학기 - 당시가 힘들지 않았던 이는 없었을 겁니다. 도서관에서 학업에 매진한 학생, 짱돌을 들고 경찰을 교내 진입을 막아선 학생, 나아가 학교 밖의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한 학생, 대부분이 거부하는 중간 고사를 몰래 들어가서 보고, 나중에 좋은 학점을 받은 학생...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다 꿈만 같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점은 97년이지만 가장 떠올리기 싫은 시점은 84년 2학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차마 84년 2학기 학점을 밝힐 수가 없네요. ㅎㅎ
3) 연세대/신촌 저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관악에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곳이었죠. 만미집,만미투,고바우집.. 자주 가기엔 비싼 집들이었기에 어쩌다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녹두 거리의 신한다방/신영다방에 비하면 독수리다방은 어찌 그리 세련됐는지...
4) 저는 33년 후배인 아들이 있는데 이놈이 운이 좋아서 동문 후배로 들어왔네요. (그래서 제 비밀 번호가 ****8417 입니다.) 저도 "제발 좀 네 인생 즐겨라"라고 하는데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하지만 얘네들은 또 자기들만의 즐기는 방법이 있겠죠? 그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19학번이 될(과연?) 딸아이네요. 얘는 아빠 도움이 좀 많이 필요한 것 같아 여기까지 흘러들어와 "위선과위약"님의 글에 댓글도 달고 있습니다. 부모가 수시/정시 여러모로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현실은 뭔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해 보이지만, 제도를 내가 바꿀 수는 없으니 있는 제도 안에서 허점도 찾고, 제 아이에게 유리한 길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학습 자료 다운도 받고요. (그런데 요전에 받은 자료는 인쇄/제본 해서 줬는데 별로 도움이 안되는지 잘 안보네요ㅠ)
5) 이처럼 빡빡해진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루 하루 즐겁게,재미있게 살려고 마음먹습니다. 건강하시고, 맛난 것 많이 드시고, 행복하세요~!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와... 션한맥주님의 글이 더 재밌습니다.
님도 84학년도 2학기가 가장 힘드셨군요. 하긴 그랬지요. 누구에게나...
게다가 님께서도 신촌을 좋아하셨군요. 하하...
좋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으셨다는 것도 그렇고...
하여튼 연세대는 뭔가 고급스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관악과 안암이 비슷한 느낌도 주었고...
그나저나...
아이고, 아드님이 서울대를...
그런 말 하잖습니까? 자기가 서울대 간 것보다, 자기 자식이 서울대 갈 때가 더 좋다고...
무척이나 좋으셨겠네요...
제가 신문사 문화부에서 근무할 때 관악캠퍼스 인문대 수석으로 들어왔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머리 좋기로 소문났던...
어느 날, 그가 말하더군요.
"오늘 치과에 갔는데 이를 잘못 뽑았어. 한데 하나도 안 아퍼!"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공부 잘 한다던 딸이 서울대를 붙은 날이더군요.
하하...
따님도 잘 될 겁니다. 그 아버지에 그 오빠에 그 딸이겠지요...
그리고 요즘 입시에서 전략은 부모가 짜고, 공부는 아해가 하는 것이니 션한맥주님의 행동은 지극히 타당한 거라고 저는 봅니다. 아니, 그렇게 안 하시면 직무 유기입니다, 부모로서...
항상 응원합니다.
와 뭔가 소설의 한 장면같네요
불의에 투쟁하는 지식인과 그걸 지켜보며 갈등하는 지식인..
“여러분! 여러분은 이 나라의 최고 지성이 될 사람입니다. 지성인답게 이제 학업에 열중해주십시오. 교실로 돌아가주십시오.”
이대목 역시 뭔가 작위적으로 만들어진것 같기도 할정도로
필력도 그렇고 수능지문으로 나와도 될것 같아요(수능공부를 해서그런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아이고, 이런 글이 수능 지문으로 나오면 바로 법정으로 갑니다.
주제도 모호하고, 글도 비문이고... 하하...
예, 작위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니 드라마 이상으로 '드라마타이즈드' 된 상황이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당시는...
친구가 죽거나 자살하고, 시위 나갔다가 어디 깨져서 돌아오고...
옆 과의 친구 하나는 시위 나갔다가 강제로 군에 끌려간 뒤, 어느 날 신문에 짤막하게 한 줄 나오더군요. 아마 1987년이었을 겁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최00군, 군에서 시신으로 발견, 자살 추정' 식으로...
그 친구가 자살? 지금도 저는 믿지 않지만, 끝내 그 친구의 죽음은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요.
키도 크고, 아주 순수한 친구였는데...
하긴 인문대 언어학과 박종철 군(저와 같은 84학번)은 학생 운동을 사실상 그만 둔 상태였는데도, 경찰이 시위 주동자 색출하겠다며 남영동 끌고 갔다가 죽인 것이었지요.
그 푸르던 시절, 연애 이야기를 한 번도 동료들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제가 알던 인문대 친구들은...
한데...
그래도 그립습니다, 그 시절이...
그리고... 무척이나 힘든 시기라고, 무척이나 저주 받은 시대라고 저는 당시에 생각했는데, 제 아해를 보니...
아이고... 요즘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세계 챔피언을 지낸 홍수환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
"나는 링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다. 한데 복서로서의 인생을 마치고 세상에 나와 보니 세상 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링은 내가 죽도록 맞으면 말려주는 사람(심판이든 세컨드이든)이라도 있는데, 세상에는 없더라!"
꼭 그런 느낌입니다.
저는 80년대가 그리도 무서웠는데, 요즘 보면...
2010년대가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청춘에게는...
훨씬 냉정하고, 차갑고...
취업, 결혼, 집 장만...
에휴...
그래도, 그래도 힘 내야지요.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렇기에 일부러라도 우리는 낙관적이 돼야 하고, 긍정적이 돼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하니까요.
화이팅!!!!
언제나 인생선배님(호칭을 뭐라고 해야할 지 몰라서..)글을 읽고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지요, 공감해주셔서...
요즘 청춘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나누고 싶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즐기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희 때보다 더 힘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31년 후배인 제 아해를 보니 확실히 알겠더군요.
요즘 청춘들, 우리보다 훨씬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그러니까 즐길 수 있는 만큼은 즐기고 살자고요. 가능하면 낙관적으로, 긍정적으로...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글이 참 재미있네요. 한밤중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그리 재밌지는 않은데, 그렇게 읽어주시면 고마울 뿐이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즐거운 청춘시절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선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소통을 할 수 있어서요.
연세대생이시군요. 학교 다닐 때 제 꿈이 연세대 영문과 여학생과 미팅하는 것이었는데... 하하,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를 않았네요.
지나보면 가장 좋은 시절일 겁니다, 님의 지금이.
저희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청춘이 훨씬 더 차갑고 살벌한 시대를 보내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즐기세요, 즐길 수 있는 만큼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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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이고, 영광입니다, 제가...
그럴 만한 사람의 글이 아닐 터인데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무엇보다, 명문대 중의 명문대인 연세대에서 청춘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우와 글을 다 읽어내릴 때까지 저는 어떤 문학작품 복붙해 올리신 글인 줄 알았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년은 송도일테지만 내후년 이맘때쯤 저도 신촌 캠퍼스의 그 정취를 느끼고 싶네요ㅠㅠㅠ
님은 연세대에서 젊음을 즐기시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니 우선은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건강 유지 잘 하시고요.
제 대학 다닐 때 꿈이 연세대 영문과 여학생이랑 연애하는 것이었는데(왠지 연세대 하면 고급스런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미팅 한 번 제대로 못했지요, 후후...
연대 언홍과에 꼭 붙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