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요청) 고은을 풍자한 이문열의 '사로잡힌 악령'의 전문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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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크흐흐으흐 , 키이히히히 , 크크 , 키키 , 흐흐 , 히히 , ㅎㅎㅎ ……나는 조금 전부터 지금의 내 웃음소리를 어떻게 의성 (擬聲 )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다 . 하지만 현재의 자음과 모음만으로는 아무래도 틀린 일 같다 . 다소 낭비적이기는 해도 산문의 서술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
여러분은 해원 (解怨 )과 허탈 , 득의와 안도가 악마적인 기쁨 위에 알맞게 조화를 이루며 실려 있는 그런 웃음을 상상해 주기 바란다 . 색조는 ― 틀림없이 밝은 쪽이지만 그래도 전체로는 음산함이 깔려 있는 그런 배색 (配色 )쯤으로 느끼면 될 듯싶다 .
내게서 그런 웃음을 유발시킨 것은 오늘 낮에 뜻하지 아니하게 맞닥뜨린 어떤 광경 때문이었다 . 나는 오늘 지난 삼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줄곧 나를 괴롭혀 온 악령이 버얼건 대낮에 , 그것도 여럿이 빙 둘러서서 보고 있는 가운데서 끽소리 못하고 붙들려 , 오랏줄에 꽁꽁 묶인 채 그의 영원한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 우리 도시를 독기로 자우룩하게 만들고 온갖 미혹의 환영을 흩뿌리며 우리의 상처와 상처 사이를 헤집고 다닐 대는 그렇게도 영리하던 악령이 , 자기가 끌려가는 곳이 어딘 줄도 묻지 않고 오히려 헤헤거리며 앞장서 걷고 있었다 .
이것도 산문 (山門 )에서 말하는 그 인연인가 . 나는 그가 아홉 발이 넘는 꼬리를 굽 갈라진 발을 묵의 (墨衣 )와 짚신 속에 감추고 조심스레 우리의 도시로 스며들 때를 보았고 이제는 소시민의 때묻은 나사 (羅紗 )옷과 칠피 구두에 영혼이 갇혀 볼품없이 이 도시의 질척한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꼴을 본 셈이다 . 어쨌든 악령은 사라졌다 . 그토록 오래 영험했던 그의 부적들은 힘을 잃었고 마침내 그는 사로잡혀 영원한 그의 감옥으로 끌려갔다 . 근래까지도 나는 얼마나 자주 옛적의 엉터리 도통 (道通 ) 이야기들에서처럼 그가 한순간에 수만 길 업화 (業火 )를 치뚫고 느닷없이 거룩한 천상으로 치솟는 상상에 가슴 졸여 왔던가 .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 악령은 자신의 악에 사로잡혔다 . 이제 그는 영원히 자신이 저지른 악업 속에 갇혔다.
소설은 고은이 승려였을 때부터 시작한다.
1.
세상의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악도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늙고 죽는가. 악의 태어남은 여러 외형을 가지지만 거짓과 뻔뻔스러움과 천박한 허영은 그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내가 그에게서 태어나고 있는 악령을 본 것도 바로 그런 특질들을 통해서였다.
삼십 년 전 어느 봄날 나는 한 법학도로서 이제는 세상에 아니 계시는 은사 한 분의 자택에서 그분의 일을 돕고 있었다. 은사께서는 당시의 손꼽히는 법학자로서 지금도 남아 팔리고 있는 유명한 법학책을 막 끝내신 뒤였는데 내가 그 댁에 불려간 것은 그 마지막 색인 작업 때문이었다.
틀어 놓은 선풍기 바람 때문에 날리는 원고지를 한 손으로 누르며 색인에 넣을 중요한 낱말들을 뽑아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반갑잖은 얼굴로 송수화기를 든 은사께서 마지못한 듯 상대에게 자택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혀를 찼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의 말이라 나는 찾아오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은사께서는 잠시 시간을 내지 않을 수 없다는 듯 보고 계시던 원고를 한쪽으로 밀어 놓으며 여전히 탐탁찮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큰 절의 스님이야. 더구나 그 사람이 모시는 큰스님은 속세에 계실 때 내가 가장 존경했던 선배이기도 하고…….”
전화를 건 곳이 멀지 않았던지 그와의 첫상면은 오 분도 안 돼 이루어졌다. 먼저 내개 뜻밖인 것은 그가 너무 젊다는 점이었다. 잘해야 나보다 서넛 정도 위일까. 그런데도 나는 눈길조차 감히 맞받지 못하는 마흔 줄의 대학교수요 저명한 법학자에게 당당하게 내방을 통보하고 찾아와 마주앉을 수 있다는 게 그때는 솔직히 놀라웠다. 그 다음은 그의 차림. 그의 승복은 별로 넉넉하지 못했던 그 시대에도 눈에 띌 만큼 누더기였는 데다 댓돌에 벗어 놓은 신발은 짚신이었다.
곧 그와 은사의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미닫이 이쪽에서 일을 계속하면서 본의 아니게 엿듣께 된 나에게는 그 진전 역시 조금은 뜻밖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는 승려와 속세의 형률(刑律)을 다루는 학자 사이에서 무슨 공통의 관심사가 있을까 싶었으나 차 한 잔을 마시기도 전에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법률적 개념과 불교적 본성론이, 생래적범인(生來的犯人)과 ‘잃어버린 소’가 맞물리면서 금세 대화는 불이 붙었다.
“사승(師僧)은 선사(禪師)인데 상좌는 학승(學僧)이구먼.”
그러면서 그의 말을 받는 은사의 말투에도 이미 조금 전의 마지못해함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먼저 미심쩍은 구석을 찾아낸 것 또한 은사였다. 그날 그는 한 시간쯤 앉았다가 돌아갔는데 대문간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은사께서 문득 무엇에 깨난 사람처럼 말씀하셨다.
“하필이면 귀한 짚신일까? 요즘은 고무신보다 더 비쌀 텐데…….”
그 말을 듣자 내게도 미심쩍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의 누더기도 어떤 곳은 헤져서 기운 것이 아니라 억지로 찢은 뒤에 꿰만 것 같은 데가 있었다. 이어 은근히 감탄스러웠던 그의 논리에도 의심이 일었다. 은사께서는 그때 이미 드러난 사람, 그를 상대로 준비했다면 비록 법률에 무지하더라도 한 시간쯤은 주의를 끌 만한 논리를 엮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재치와 억지, 아첨과 자기 현시(顯示)의 절묘한 배합도 한몫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은사께서는 그 이상 의심을 키우지 않으셨고, 따라서 그는 그뒤에도 이따금씩 은사의 자택을 드나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의심을 더 키우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소간 인상적이기는 해도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 그때 잠시 품었던 의심조차 잊어 갔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그에 대한 의심을 키워 가게 된 것은 친구 운규네의 사랑방에서 다시 그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운규의 아버지는 시인으로서 나이는 내 은사보다 서넛 적었지만 젊어서부터 시명(詩名)을 떨쳐 대중적으로는 오히려 지명도가 더 높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름난 그 시인과 승복을 걸친 그가 대작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 말씀이 뭐, 시승(詩僧)이라던가. 어쨌던 유명한 절의 유명한 대사 밑에서 도를 닦는 스님이라더군.”
그같은 운규의 설명에 내가 불쑥 물었다.
“아버님과는 어떻게 알게 됐대?”
“어느날 무턱대고 찾아왔대. 아버님 원래 찾아오는 사람 마다하시지 않는 분이시잖아? 게다가 아버님 시는 죄대 훤히 꿰고 있고…… 또 술병을 차고 찾아오는 중, 그것도 재밌잖아딱 아버님 취향이지 뭐. 첫날부터 저렇게 죽이 맞아 돌아가더라구.”
운규는 그렇게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했으나 그 순간 나는 잊어가던 그에 대한 의심이 불현 듯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어 그 의심은 한층 구체성을 띄어 갔다. 그는 어쩌면 승복에 가리워진 거짓말과 뻔뻔스러움을 밑천으로 이른바 ‘명사(名士)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명사들과의 만남으로 천박한 허영심의 대리만족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때도 의심은 그 자리에서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와 당장의, 그리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학 상급반이던 나는 벌써 사법고시에 쫓기고 있었다. 나는 곧 전처럼 그를 잊어 갔다.
내가 잊어 가던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끝내 재학중에는 합격하지 못한 사법고시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는 나는 어느 조용한 말사(末寺)로 들어가 시험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 방장실(房長室)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맞댄 것은 은사의 자택에서 잠시 뿐이었고, 그것도 그뒤 삼 년이나 흘러서인지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구태여 그를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다만 되살아나는 의심으로 그의 하는 양만 살폈다. 짐작으로 그는 사형(師兄) 된다는 그곳 총무스님에게서 노자로도 몇 푼 뜯어 가려고 들른 것 같았다.
그날 만약 그가 조용히 돈이나 얻어 떠났더라면 그에 대한 내 의심이 되살아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에 따른 내 확인 작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린 상좌를 십리 아래 마을까지 내려보내 사온 소주로 취한 그는 사람은 좋아도 미욱한 기가 있는 총무스님을 갖은 욕설로 몰아 대다가 내 방으로 건너왔다.
“한지붕 아래 놓아 주라, 살려 주라고 비는 보살과 잡아 가두려고 칼을 가는 중생이 같이 사니 진흙과 연꽃이 함께로구나.”
그런 알쏭달쏭한 선문답 같은 말로 시작한 그는 이어 초보적인 법지식을 불교 논리로 교묘하게 비튼 궤변으로 내 주의를 끌어들였다. 그중에는 삼 년 전 은사댁엣 들은 것도 섞여 있었는데 말투와 토씨까지 내 기억 속의 것과 비슷했다. 그러다가 내 반응이 신통찮다고 여겼던지 화제를 바꾸었다.
“학생도 순수 법학이나 해보지. 까짓 고시하면 뭘해? 내 친구 중에 순수법학을 해 교수하는 양반이 있는데 것도 할 만한 모양이더만.”
그러고는 그 친구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은사의 이름을 댔다. 순수법학을 고시준비의 반대말로 쓰는 것보다는 이십 년 가까이 손 위가 되는 은사의 이름을 정말로 친구처럼 경칭 없이 부르는 게 속으로는 더 쓴 웃음이 났다. 은사께서 그를 받아들인 까닭이 무엇인지 알 길을 없었으나 만약 그것이 어떤 문화적인 허영 때문이었다면 은사께서는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으신 셈이었다.
“그분은 나이가 쉰에 가까우신데 어떻게 친구가…….?”
나는 그가 하는 양을 보기 위해 짐짓 정색을 하고 그렇게 물어 보았다. 그가 이제는 약간의 거드름까지 느껴지는 말투로 받았다.
“승속(僧俗)이 달라도 지성과 지성의 만남에 까짓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내가 찾아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취하면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게 바로 친구 아니겠어?”
이건 정말로 알아두어야 할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이 구체적으로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애써 속마음을 숨기고 이번에는 조금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슬몃 그의 허영심을 건드려 보았다.
“그럼 다른 유명한 친구분들도 많으시겠네요.”
그러자 그가 마침 잘 물어 주었다는 듯 그 자리에 앉아 여나믄 명의 귀에 익은 이름을 늘어놓았다. 동양화 서양화의 대가가 나란히 늘어서고 문인과 학자가 줄을 이었는데 하나같이 대중적인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친구의 아버지인 시인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아이구, 그 걸레. 그 친구는 나이 곰백살이 되어도 철들기는 틀렸어. 천성이 광대라구, 광대.”
그런 촌평과 함께였다.
이튿날 그가 떠나간 뒤 나는 마음 먹고 총무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좀전에 떠난 스님 유별나던데요. 무애초탈하신 분 같았는데.”
“무애초탈은 무슨……땡초야, 땡초”
총무스님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잘라 말했다.
“스님과 동문이시라면서요?”
“아, 동문은 동문이지. 어쨌든 큰 스님께서 받아들이셨으니까. 어쩌다 저런 중생을 받아들여서…….”
“그럼 원래부터 스님이 아니셨던 모양이네요. 아니, 나이 들어서 귀의하신 모양이군요. 속세에서 뭘 하시던 분이신데요?”
“도무지 어디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제말로는 교편도 잡았다 그러고 글쟁이도 했고, 사회사업도 벌여 보았다더군. 그때 나이 겨우 스물이었는데.”
“그렇게 못 미더운 사람을 큰스님께서 왜 받아들이셨을까요? 눈이 매섭기로 이름난 분이시라던데.”
“막무가내로 덤벼드니 뿌리치지 못하셨고 ― 다른 깊은 뜻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게….”
총무 스님은 그래 놓고 무언가를 머뭇거리다가 결심하듯 말을 이었다.
“업(業) 중에서도 구업(口業)이 가장 무섭다지만, 그날 큰스님께서 그에게 맞대 놓고 꾸짖듯 하신 말씀은 이랬대. ‘ 놈, 네 고리가 하마 여덟발은 되는구나. 한 발만 더 자라면 요사 둔갑을 떨다가 무간지옥에 떨어질 터인데 때 맞추어 잘 왔다. 네가 여기서 끝내 배겨나면 그 꼬리가 떨어질 것이요, 이 산문을 나서면 그날로 무간지옥이 너를 기다릴 것이니라.’”
“그래도 큰스님의 상좌라고 하던데요.”
“내가 곧 큰스님 곁을 떠나 뒤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상좌라는 게 무슨 명패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 제가 나서 설쳐 대면 남보기에는 상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고작 한두 해였을걸. 세상이 좁다하며 저잣거리를 휘젓고 다닌다는 소문이 돈 지도 하마 여러 해가 되니까.”
거기까지 듣자 나는 섬뜩한 기분이로 한 기괴한 악의 탄생을 느꼈다. 그 큰스님은 그의 특이한 경력 때문에 당시 불교계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좀 불경스런 말이지만 나는 웬지 큰스님이 그를 거두어들인 게 아니라 오히려 유명함 때문에 그에게 ‘사냥’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 악에 대한 내 반응은 기껏해야 혐오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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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작성할 영어 칼럼 주제 선호도 조사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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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목록이 참 씁쓸하다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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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참고) 이걸로 이문열은 진보계열 문인들에게 엄청나게 까였다. 씨은 고발
초판에만 사로잡힌 악령 이 있고 2쇄 부터는 삭제 됬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오르비언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ㅋㅋ
하지만 이문열도 박사모다 ㅠ
아싸 이문열 금시조는 수능에 안나오것다ㅎ 다행 ㅠ 그거 존나어렵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