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석 [797447] · MS 2018 · 쪽지

2018-02-27 04:12:24
조회수 6,107

(저장용) 의대 오지 말라는 글을 읽고난 30대 아재의 소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6323834

잘 모르면 말을 아끼는 게 현명합니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예요. 

특히 오르비같이 수험생들 바글바글하고 여론 하나하나가 예민한 사이트에서는 더더욱.


원 글을 읽고 너무 속이 고구마 한 박스 들이킨 것처럼 답답해서 그 글에 격한 어조로 댓글을 달았지만

이제는 차분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원 글쓴이가 정말 하고싶은 말이 "의사들도 이제 예전만큼 꿀 빨던 시대는 지났다" 정도의 말을 하고싶었다면 글을 그렇게 써서는 안됐습니다. 고등학생분들이나 수험생분들은 크게 못 느꼈겠지만 사회에서 일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의사 생활에 대해 잘 안다면 정말 화가 치밀어오를 수 밖에 없는 글이었어요. 의사들이 아무리 교사나 공무원처럼 세상 물정 몰라도 되는 직업군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건 너무 기만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전 왜 그렇게 화가 나서 댓글을 달았을까요?

지금부터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애초에 의사는 면허가 있는 전문직이며, 사회에서 타 직종과 전문직은 애초에 비교를 불허합니다. 

구직과 이직이 자유롭고, 거주지에 따른 제약도 크지 않은데다가 지대가 통제되기 때문에 수입 역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전문직 중 의사같은 탑티어 전문직은 더 말 할 나위 없습니다.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급여(돈)입니다.

의사는 대한민국 직군들 중 유일하게 세후로 급여를 논하는 직종입니다. 

오르비엔 고등학생들이나 수험생들이 많기 때문에 잘 모르실수도 있으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가 받는 연봉은 다 그대로 우리 주머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일정 비율 세금을 떼고 들어오게 되는데

보통 "연봉이 1억이다" 라고 하면 세전 연봉이 1억이라는 것이고 세후 연봉은 이중에서 약 25%쯤 뗀 7500만원 정도예요. 그니까 세전 1억=세후 7500 인거죠.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직군은 세전으로 연봉을 논합니다. 


그런데 의사들만 세후로 연봉을 논해요.

의사가 말하는 연봉 1억은 실제로 세금을 뗀 실수령액이 연 1억이라는 뜻이고, 우리나라는 연봉이 높아질수록 세금 떼는 %가 높아지기 때문에 실제로 세후 연 1억은 세전 연 1억 4천3백에 육박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연봉이죠? 이 연봉을 의사들은 레지던트를 마친 30대 초중반에 이미 받게 됩니다. 물론 과마다 다르지만 수도권에서 페이가 짜더라도 지방에 가면 결국 월 천이상은 과 불문하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아닌 일반 회사원이 세전 1억 4천을 받으려면 대기업 임원급은 되어야 해요. 근데 대기업 임원은 일반과 교수보다도 되기가 훨씬 더 어렵고 그마저도 운과 정치질 등 실력과 관계 없는 외적 요소가 많이 작용합니다. 결정적으로, 임원이 되려면 최소한 한 회사에서 18년 20년은 일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요. 

나이 40중반 이후가 돼서야, 그마저도 선택된 극소수만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을 의사는 그냥 30대 중반에 받아버립니다.

근데 대기업 임원은 정말 몸이 부서져라 일하죠.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9시 10시 11시에 퇴근합니다. 주 6회 주 7회 출근할때도 잦아요. 가정이라곤 아예 팽개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의사는요? 9시까지 출근해서 6시에 칼퇴합니다. 심지어 주 5일이고 정말 조건 잘 잡으면 주 4일도 가능합니다. 

 

좋은 과를 나온 의사만 그런 게 아니냐고요? 저건 그냥 월 세후 800~1000 받는 의사들 얘기고요, 정형같이 좋은 과 나온 의사는 월 1200 이상을 세후로 받고, 지방에 가면 세후 월 2000까지도 받습니다. 세후 월 2000이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연봉입니다. 그럼 세후로 2억이 훌쩍 넘는 연봉이고 세전으로 치면 3억을 넘습니다.

회사원이 연봉 3억? 임원중에서도 거의 전무 이상, 대기업 그룹장이나 좀 작은 대기업인 경우엔 부사장급이나 가능한 연봉입니다. 아예 불가능한 연봉이라는 뜻입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런 고위직 회사원의 생활은 정말 뼈가 갈리는 생활 그 자체입니다. 의사는요? 9시출근 6시퇴근 주5일 확실히 보장됩니다.


의대 갓 졸업하여 면허만 있는 의사를 GP라고 합니다. 여자는 26~27세, 남자는 군대를 해결했다면 29~30세 정도겠네요. 의대생이 아니었다면 대기업 취준을 한참 할 나이거나 이제 막 취업해서 겨우 1년차 정도 됐을 나이 입니다. 

근데 이런 GP들이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안 하고 바로 병원에 취업해서 현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뭐 돈이 급해서일수도 있고 인턴 던트가 워낙 험난한 과정이다보니 그냥 싫어서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의 연봉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무려 세후 6천입니다. 세후 월 500인 셈이죠. 그럼 세전으로는 연 7500정도입니다.

세전으로 연 7500은 실로 어마어마한 연봉입니다. 왜냐고요? 변리사의 경우 최소 7년차 이상(나이 30대 중반)

대기업의 경우 최소 부장급~탑티어대기업은 과장 높은 연차(30극후반~40초반) 혹은 낮은 대기업의 경우 부장급(근속연수 17년 이상 40대 중반)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연봉이거든요. 

아참, GP들은 주 4회 일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하루 근무시간이 6시간인 경우도 흔해요. 근데 저 돈을 받습니다..


회사에서 15년 이상을 최소 바쳐야 받을 수 있는 연봉을 GP는 20대 후반이나 나이 서른에 받게 되는 겁니다. 

이런데 의사가 가성비가 안 좋다는둥 이젠 메리트가 없다는 둥...... 그럼 도대체 어떤 직업이 메리트가 있고 어떤 직업이 가성비가 좋은 거죠? 이러니까 어이가 당연히 없지 않나요?


너무 돈 얘기만 했나요? 그럼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얘기해볼까요? 회사원들 7시까지 출근해서 몸 갈려나가면서 9시 10시까지 일 할 때, 의사들은요? 칼퇴하고 주5일 딱딱 지키죠? 주4일 근무하기도 하고 하루에 꼴랑 6시간 일하기도 합니다.

물론 인턴때랑 레지던트때 개고생하죠. 압니다. 근데 인턴때만 해도 세전 3~4천의 연봉을 받고 레지던트땐 세전 5천 이상의 연봉을 받습니다. 대기업 초봉부터 시작해서 대리 연봉이 딱 레지던트 연봉 정도거나 그보다 적어요

누가 보면 인턴 레지던트는 자원봉사하는 줄 알겠습니다그려. 의사의 사회진출은 그 어떤 전공보다 빠릅니다. 일반 과를 나온 남자들은 사회에 나가려면 군대갔다오고 학점복구하고 취준하고 해서 28살은 되어야 취업을 합니다. 근데 의사는요? 


아참, 대기업 연봉은 그럼 얼마나 될까요?

처음 입사하면 3~4년정도는 일반 말단사원이고 그땐 연봉이 회사마다 다르지만 세전 3천 중반~4천 중반입니다.

현기차나 삼전같은 탑티어 대기업만 무려 5천 후반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은 조삼모사! 매년 상승률이 낮습니다. ㅋㅋㅋㅋ 어이없죠? 


그럼 4년쯤 일하면 대리를 답니다. 여전히 연봉은 크게 차이가 안 납니다. 대리를 달고 나서 5년쯤 더 일하면 과장이 됩니다. 과장은 이미 회사에서 최소 7~10년은 일해야 과장이 되는데, 삼전이나 현기차 과장은 세전 8천~9천, 

그 외 수많은 평범한 대기업들은 세전 6~7천을 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4~5년을 더 일하면 차장이 되고, 또 그만큼 더 일하면 부장이 됩니다. 



부장이 되고 나서야 드디어 연봉이 세전 1억을 좀 넘거나(삼전이나 현기차)

세전 7~8천이 됩니다(일반 대기업)

부장이 되려면 나이가 40중반 이후입니다. 근데 그떄까지 회사에서 살아남는 사람의 수 자체가 입사동기들 중에서 정말 별로 없습니다. 


근데..................GP 연봉이 세후 6000= 세전 7천 입니다..............................꼴랑 20후반 나이에....


돈 얘기는 그만 하고 다른 얘기를 해볼게요.

40대 중반이 회사에서 짤리기 가장 쉬운 나이입니다. 그럼 회사원들은 40중반에 짤리면 어딜 갈까요? 

대기업의 하청업체 등등에 가서 한 2년 정도 더 일합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나고 나면? 그럼 진짜 이제 갈 곳이 없어서 치킨집을 운영하거나 하는 등으로 자영업을 하거나, 아니면 뭐 인맥 알음알음해서 다른 회사에 가기도 하죠.


의사는요? 페닥 40초반까지 하다가 개원을 하거나, 아니면 40중반까지 페닥을 질질 끌어서 하다가 개원을 하겠죠.

물론 개원해서 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망한다는게 치킨집이 망하는거랑 의사가 망하는게 같아요? 

하다못해 요양병원에 가도 세후 600 이상은 줍니다. 진짜 진짜 나이 40 50돼서 안 풀린 의사도 월 세후 600은 안정적으로 챙겨요.


비교가 됩니까?



이러니까 의사들이 징징징해도 의사 아닌 타 직역군 중에서 의사의 근무환경과 연봉을 잘 아는 저같은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는 겁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저처럼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의사 아닌 사람들이나 연고서성한 나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비웃는 겁니다. 


졸라 이쁜 여자애가 


"야 이쁜거 다 소용 없어 사실 짜증날떄도 많아ㅠㅠ 이쁜거 다 필요없어 예전같지 않아이제ㅠ 난 주변에서 이뻐지고 싶다고 하면 완전 말릴거야ㅠ 가성비 개구려 짜증나 이뻐질 이유가 전혀없어 난 너네들이 오히려 부럽다ㅠ" 


이딴 소리 하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전 아까 그 글 읽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냥 그냥 한마디로 요약할게요


"지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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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탱 · 761187 · 18/02/27 04:20 · MS 2017

    스크랩하면 되는데

  • 순대국마시쪙 · 770472 · 18/02/27 05:35 · MS 2017

    현재 수술대기로 인한 입원중입니다.


    대학병원 의사들은 절대 칼퇴 못하던데...

    외과쪽은 특히 더....

  • 황강백사장 · 802020 · 18/02/27 07:13 · MS 2018

    40대가 되면 왜 짤린다고하지?? 정년까지 가는 사람이 더 많은데.....갈수록 대기업에서 자르기도 힘든데....

  • 청동미르 · 256031 · 18/02/27 09:22 · MS 2008

    그들이 살아갈 10여년 후의 사회에 대해 정확히 예측, 진단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선택들의 경우...
    지난 과거의 그들의 잘못된(후회하는) 선택에 대한 현재의 해석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20여년 전 의대를 가지 않아 지금 후회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도...
    그 당시에는 그 선택이 충분히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 여러분들에게 조언을 하시는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직장인을 비롯한 선배 수험생들
    - 생각보다 그렇게 현명하지 못합니다... ㅡ.ㅡ...

    남의 말에 살지 말고, 자신이 마음 속으로 말하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긴 바랍니다...
    - 한편, 이 말이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를 들어라 것이 아님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만점각 · 836283 · 20/12/27 12:27 · MS 2018

    궁금증 많이 해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