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생 고려대학교 합격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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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어느 글에서 수기, 올리기로 약속 했었는데...쓰는데도 오래 걸렸고, 다 쓰고 나서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올립니다.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글 업로드가 상당히 늦어졌네요. 작년에 약속하고 또 작년에 결과가 다 나왔는데, 올해가 돼서야 수기 올리는 점, 사과드립니다.
-이 수기는 제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부끄럼을 무릅쓰고 쓴 것입니다. 항상 멋진 모습만 있을 수 없고, 부족한 부분, 때로는 어린 생각도 있습니다. 배울 점,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 등을 각각의 상황에 걸맞게끔 잘 판단하셔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다 혹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바로 공부하러 가시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합니다. 글은 언제나 이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다 지칠 때 다시 오셔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다보면 오만했던 저의 생각이 나옵니다. 제게 독이 될지도 모르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그 부분들을 빼고 이야기 하면 진솔한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솔직하게 써내려가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이 너무 길어 줄이려다 말았습니다. 이 글은 여러분을 위한 글이자 저를 위한 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달려온 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때로 쓸데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혹 이 글이 재수, 삼수를 조장하는 글이 될까봐 걱정입니다. 저도 삼수를 했지만, 끝나고서 돌아보니 제가 수능공부 하느라 보낸 젊은 날의 2년은 훨씬 값지게 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수, 삼수는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저의 무덤, 고려대학교를 매우 사랑합니다.
서두가 지나치게 길군요
앞으로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숨 한번 깊게 쉬고,
시작하겠습니다.
어릴 때의 저는 너무나 평범했습니다. 잡다한 생각이 많은 편이라 애늙은이 소리를 듣긴 했지만, 단지 그 뿐이었어요. 다른 애들처럼 공부하기는 싫어하고 놀기는 좋아해서, 학습지는 만화 부분만 보고 하루 종일 컴퓨터 하고 친구들 만나서 놀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철이 없었네요.
그렇게 평범하게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목표는 30등 이내 진입. 첫 시험 성적은 전교생 약240명 중 52등이었어요. 차츰 공부하는 방법과 마인드를 익혀가며 중3 마지막 시험은 전교 2등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저는 목표하던 경주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모두가 알다시피 아주 긴 방학을 갖게 되었죠. 제게 주어졌던 그 시간들을 두 글자로 줄이자면 방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제 갈 길도 모른 채 밤 새 쏘다니며, 술을 마시며, 예쁜 여학우들을 찾아다니며(?) 놀았어요.
그렇게 저는 중3 겨울 방학을 보냈고, 경주고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유형도 시험 시간도 모른 채 쳤던 3월 첫 모의고사는 500점 만점에 약 360점. 언어가 3등급, 외국어가 3등급 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점수지만, 그 때는 그래도 좋았어요.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공부는 손에서 놓은 지 오래였고, 집안과는 오해로 인해 더더욱 멀어졌어요. 수업시간엔 졸고, 야자시간엔 딴생각하고. 집에 오면 컴퓨터하고(중학교 때 시험을 잘 보고 다시 인터넷을 연결했어요). 담임 선생님은 저더러 1학년 6반이라는 배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저 혼자 노를 반대방향으로 젓는다고, 저는 신발 속의 모래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어요.
주말에 공부하는 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주말에는 반드시 놀아야 했죠. 그러다 타 지역 여자애들과 놀게 되었고, 거기서 전 제 첫사랑을 만났어요(누가 뭐래도 그땐 사랑이라 생각했어요 ㅎㅎㅎ). 마음이 맞아 장거리 연애는 시작되었죠. 어릴 때라 뭘 알았겠어요. 금방 헤어졌고, 저는 혼자 속앓이. 끙끙 앓고 나니 성적은 이미 바닥이었어요. 12월 모의고사는 아마 과학이 50점…이었나… 고정 2등급이었던 수학은 고정 3등급이 되어있었고요.
단지 수학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문과로 결정했고,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질리지도 않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왔죠. 그러다 저는 친구에게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제 삶의 터닝 포인트가 여기가 되겠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였어요. 부모님도 없이 혼자 자란 여학생 이야기였는데, 예쁜 외모가 오히려 화가 되어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제 친구가 그 애를 도와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문자 그대로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친구인데, 자기가 굶어가면서도 그 여학생 밥 한끼 사주면서 살고 있다더군요. 그 이야기를 하고 친구는 잠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정말로요. 부끄러웠어요. 정말로요…
아침까지 저는 많은 생각을 하였고, 집에 있던 간식들을 바리바리 긁어 모아 친구 가방에 몰래(?) 넣어놨어요. 그리고 그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이렇게만 살아가자고 다짐하던 저를 질책하며,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어요.
이 날 밤에요. 아니, 이 날 밤부터 새벽을 거쳐 아침까지요.
저는 이 나라를,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노라 다짐했어요. 그 당시 세운 구체적 방안은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을 좀 더 개선된 형태로 이 나라에도 세우는 것, 공부하고 싶지만 힘든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는 것 등이었어요. 그리고 그 첫 단추로서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삼았죠. 가서 많이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세운 당장의 목표는, 서울대학교였어요.
그 곳에 가야 학력 때문에 발목이 잡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기왕에 할거면 화끈하게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상위권을 위한 자습실(시습실)이 있었는데, 시습실 인원이 2배로 늘면서, 한 친구가 아파서 학교에 한동안 못나오게 되면서, 60명 정원의 시습실에 61등이던 저는 들어가게 되었어요. 참 운이 좋게도 딱딱 맞아 떨어진거죠.
저는 그 여학생의 이름을 책상에 써 붙이고 다시금 펜을 쥐었어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네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고 살아온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기 위해.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공부를 놓은 지 일년이 넘었으니….
그러나 힘들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당시 제 시습실 짝꿍에게 물어 봐가며, 수학 잘하는 애들에게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거냐 물어 봐가며, 공-신(이게 왜 금지어인지;)에 들어가서 칼럼들을 읽어가며, 다시금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고2가 되었죠. 저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라 생각해요. 제 멘토이자 훗날 라이벌이 될 녀석이 이 때 짝꿍이 되었거든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웅’이라는 친구였는데,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단 한번도 시습실에서 나가본 적이 없는, 학교에서 칭하는 ‘시습실 원년멤버’였어요. 공부를 잘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죠.
하루는 약간 거들먹거리며, 웅이에게 “야 이번 주말에 나와서 공부할래?”라고 물어봤어요. 사실 진짜로 공부할 맘은 없었고, 이렇게나 달라진 저를 보여주며 뭔가 작은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녀석의 대답이 제 심장에, 제 삶에 박차를 가했어요.
“어? 난 원래 나와서 하고 있었는데?”
이상했어요. 기분이 묘했어요. 가슴이 따끔거렸어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인간이라면 주말에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제 고정관념(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깨버리고, 주말에도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 때 그 주말은 그렇게 웅이와 함께 공부를 하며 보냈어요. 주말에도 공부하는 제가 기특했던 저는 치킨을 사먹었고(ㅋㅋㅋ) 그 때부터 “치킨 먹자”라는 말은 주말에 함께 공부하자는 우리끼리의 은어가 되었죠. 겨울방학은 그리 끝이 나고(방학이라고 해도 매일 학교에 나왔어요) 3월 모의고사는 사실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였지만, 약간의 움직임을 보였기에 우선은 만족했어요.
그렇게 다시금 무뎌지려는 찰나, 시습실 개편이 있었어요. 원래의 인원(30명)으로 돌아가고, 누적 성적에 따라 멤버도 개편되었죠. 저는 시습실에서 나왔고, 아니 짤렸고(시짤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저는 제 자신에게 다시금 채찍질을 했어요. 그때 교제 중이던 여학생과도 헤어졌어요. 가장 약했던 수학은 한 문제집을 정하고 그 범위에 해당되는(아직 4월이라 범위가 얼마 안됐거든요) 문제를 다 외웠어요. 4월에는 제 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학 100점이 나왔어요.
그렇게 주말에 치킨을 먹어가며 공부를 하던 중, 또 한번 박차를 가할 계기가 있었어요(운이 참 좋죠?)
구본석 공-신님의 수기였어요.
필패와 필승 수기를 읽어 내려간 뒤, 저는 할 말을 잃었어요.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아…저게 서울대구나…”
습관적으로 저는 서울대에 갈거라 말하고 다녔는데, 제가 해오던 말의 무게를 그제서야 느꼈어요. 그리고 결심했죠. 따라가자고.
그때부터 저는 마음을 다시금 다잡고, 공부에 전력투구했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과의 교류는 거의 사라졌고, 한 달에 한번쯤 만나면 일요일은 오후부터 자습 시작이라고 거짓말하며 오후 12시쯤에 헤어져서는 학교에 와서 공부했어요. 쉬는 시간을 쪼개서 저녁 먹기 전까지 영어 모의고사 1회분을 풀었고, 점심 시간에 줄 서있는 시간이 아까워 책보다 늦게야 가서 먹고 왔어요.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목이 말라도 물도 마시지 않았고, 4교시가 되면 물을 마셨죠.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 가면 시간을 아낄 수 있거든요.
웃긴건 이렇게 공부해도 어느 정도에서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고, 저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거에요. 성적은 전국 백분위 1~2퍼센트 내외에서 왔다 갔다 했고, 한 두 등수 차이로 시습실에 다시 들어갔다가 또 한 두 등수 차이로 다시 나오게 됐죠.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이었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꿈을 위해.
제게 참 뜻깊었던 2009년은 그렇게 지나갔어요. 고3이 되기 전 마지막 시험, 12월 모의고사만이 남아있었죠. 그 시험을 치고 저는 중학교 친구들과 만나서 놀려고 했어요.
거듭 말하지만, 저는 운이 참 좋은 놈인 것 같네요.
12월 모의고사에서 수학이 60점이 나왔거든요.
충격이었어요. 1년 동안 저는 고3이라고 생각하며 주위의 친구들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웅이와 함께 매주 치킨을 먹어왔는데. 노는 시간은 물론이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했는데.
시습실에서 잘린 것도 모자라 고3이 되기 전 마지막 시험에서 수학 점수가 60점.
글쎄, 다른 사람이라면, 혹은 다른 순간의 저라면, 어떻게 생각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의 저는 꽤나 괜찮은 놈이었나 봅니다.
당장 미용실로 가서 삭발을 하고, 학교로 돌아왔어요.
자습실에 들어가서 원인을 분석하고, 공부를 시작했죠.
제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그렇게 그렇게 절망 위에서 시작되었어요.
주위 사람들은 머리 밀면 공부 잘 되는 줄 아냐며, 이제까지 살아오던 게 있는데 이제 와서 공부한다고 되겠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누가 뭐래도 그렇게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선생님께 말씀드려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경주고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어요. 집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갔고,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었어요. 공부, 오직 공부였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학교 식당으로 가면서 단어장을 봤어요. 도착해서는 밥을 먹으며 단어를 외웠죠. 다 먹고 다시 학교로 가면서 단어를 외웠고, 양치를 하면서도 단어를 외웠어요. 한번 앉으면 일어나지 않았어요. 쉬는 시간에도 공부했죠. 수업시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받아 적었고, 혹시나 다른 이야기를 하시거나 수업을 거의 하지 않는 선생님 시간이 되면 책상 위에 펴놓았던 암기장을 보며 단어, 사탐 내용 등을 외웠어요.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공부했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고, 밤 11시에 야자가 끝나면 저는 ‘시습실 옆’ 빈 교실로 가서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그 교실에서 3명이 함께 공부를 시작했는데, 매일 거기서 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춥다는 이유로 결국 혼자 남게 되었죠. 정말 추웠어요. 한겨울, 그 밤에 히터도 없이 제 입김을 보아가며 공부했어요. 시습실 친구들은 11시 50분이 되면 집에 갔는데, 마치고 가면서 친구들이 제게 시습실에서 공부하라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저는 끝까지 그 교실을 지켰어요. 시습실에서 떨어지고 시습실 옆 추운 교실에서 공부하며, 시습실 친구들에게 제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며, 추워서 잠도 오지 않는 그 교실에서 공부했어요. 책상에는 오직 네 글자만이 적혀있었죠. 臥薪嘗膽(와신상담).
보통 기숙사는 1~2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저는 그 때 까지만 공부를 하고 기숙사로 돌아갔어요.(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다 기숙사 문이 닫혀 못 들어가기도 했었고요) 기숙사로 돌아가면 뜨거운 물로 언 손발을 녹이고, 다시 책상에 앉았어요. 그 정도 시간이 되면 더 이상 머리가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수학을 했죠. 근육처럼, 머리도 극한의 상황에서 더 사용하면 더 좋아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참 즐거웠어요. 낮에는 학교 친구들을 보며 공부했고, 새벽에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눈을 빛내며 공부하고 있을 친구들을 상상하며 공부했죠.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열정이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 상상하며 공부했어요. 보통 3시에서 3시30분 정도까지 공부를 했고, 한번이라도 졸면 그때 공부를 올스탑하고 잠자리에 누웠어요. 누워서 자는 게 아니라 자면서 눕는 거였죠.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 오늘 공부한 내용을 정리했어요. 정리하고 눕다가 잠이 깨면 다시 일어나서 공부하기도 했고요. 한번은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이 순간이 가면 이 순간 하고 싶은 공부는 두 번 다시 못 할거라 생각해서 다시 일어나서 네 시인가 다섯 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네요.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다시 씻고, 식당으로 가면서 단어를 외웠어요.
이 생활을 꼬박 3개월, 그리고 3월 첫 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집에서 밥을 먹으며 농담처럼 “이번에 나 전교1등 하면 어떡하지?”라고 했을 만큼, 기대하고 있는 시험이었어요. 하지만 시험 전날 일이 생겨 시험을 제대로 못 치르게 되었고, 그럼에도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며 더 노력했어요. 그리고 다음 시험에야 제대로 시험을 치르게 되었죠.
결과는 수학 96점. 언수외 285점. 전교2등, 전국백분위 0.1%.
저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랐어요. 그 이후로 저는 중간중간 흔들림이 있었지만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페이스를 유지해왔어요. 기뻤거든요, 제가 하면 해낼 수 있는 놈이라는 사실이.
그 해 있었던 월드컵도 보지 않았어요. 월드컵을 보느라 시간을 보내면 그만큼 내가 살리지 못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끝끝내 일을 내고야 말았어요.
6월 시험 전교1등.
친척들 사이에서는 기대 받는 사람이, 학교에서는 주목 받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제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게 의문의 눈초리를 던지는 사람은 없었고, 저는 더욱 더 편하게 공부했어요. 아예 오답노트를 들고 다니며 밥 먹으러 오가면서, 밥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수학 문제를 풀었어요.
어느덧 10월이 되었고, 10월에 저는 대상포진에 걸렸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감기라고 하셨고, 대상포진에 걸린 채 감기약을 먹고 시험을 쳤을 때도 전교 5등이라는 글자가 찍힌 성적표를 받아냈죠.
그리고 보름 뒤, 드디어 수능이라는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더군요.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너무나 좋았어요. 너무나 자랑스러웠어요
수능 치기 전날인 11월 17일, 플래너에 저는 이렇게 남겼어요
사랑한다, 박준하
18일 아침, 오늘은 나를 위한 스테이지라고 생각하며 시험장으로 향했죠.
시험은 정신 없이 쳤어요. 언, 수, 외, 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수능을 치고, 그날 밤 피시방에 가서 가채점을 했어요.
언어94. 나쁘지 않았어요(불수능이라 백분위는 99퍼센트였어요)
그런데, 수학이…
96점일거라 생각했는데 계산 실수로 8점이 날아가서 88점….이더라고요.
보자마자 생각했죠
아, 재수구나
가장 먼저 웅이에게 전화했어요. 시험을 잘 봤냐는 저의 물음에 “어”라고 짧게 대답하더군요. 녀석은 학교에서 1등이었고, 전국 등수는 100등 내외였던 걸로 기억해요. 며칠 뒤 학교에 가보니 저는 학교에서 8등이었어요. ‘대상포진 걸렸을 때 감기약 먹고 시험 쳤어도 이것보단 잘 쳤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더라고요. 다른 대학에 쓰라는 말들을 듣지도 않고, 서울대와 고려대에 원서를 내고 재수를 결심했어요.
재수학원에 등록하고, 서울에서 재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학원에서는 밤 새 공부할 수도 없었고, 지하철은 1시 전에 끊기더군요. 갑자기 급변한 상황에 저는 적응하기가 힘들었고, 꿈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공부해서 내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그래서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힘들어했어요.
고3때 난생 처음 전교1등 했던 6월, 재수 때는 고1 첫 모의고사 이후로 처음으로 언어 3등급을 받았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공부를 시작했죠. 밥 대신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모든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했어요. 8월에는 다시금 0.1퍼센트 대의 성적을 찾았죠. 이 때 방심한게 실수였을까요. 저는 여기서 해서는 안될 선택을 했어요.
연애를 시작했거든요.
과정은 이야기 하기도 싫을 만큼 안 좋았고, 결과 또한 물론 형편없었어요. 고3때는 우선선발로 될 곳에 펑크를 노리면서 원서를 냈거든요. 물론 불합격이었고, 추가합격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2월, 저는 결국 그 대학 정모도 오티도 끝나고 나서야 5차 추가합격이 되었어요. 제 성적에는 아주 과분한 곳이었죠.
기뻤어요, 그래서. 반수 하려던 마음도 접고, 열심히 다니기로 결심했어요. 공-신 사이트에는 멘토 신청도 해서 멘토가 되었고, 학교에 가서는 홍보대사 신청해서 뽑히기도 했어요. 합격 한 이후로 새터, 개강총회, 엠티 등 거의 모든 과 활동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겉보기에는 잘 지내고 있는 듯한 저였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어요. 눈 앞에 닥친 대입이라는 산 앞에서, 정상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기권해버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들었어요. 로스쿨을 준비해도, 행시를 준비해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죠.
그래서 제 자신에게 물었어요. 과연 이게 고2때의 네가, 고3때의 네가, 재수를 결심하던 그 순간의 네가 나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던 미래의 내 모습이 맞냐고.
대답은 No.
그래서, 그래서 다시 시작했어요. 학교도 싫지 않고 사람들도 좋았지만, 남들보다 한번 더 수능을 쳐서 들어온 대학이지만, 학교에 애착도 있지만.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한 애착이 없었기에. 다시 한번 시작했어요.
나 자신을 사랑하니까, 아니 사랑하고 싶어서. 다시 한번 그 컴컴한 불안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4월이었어요 그 때가. 우선 4월 교육청 모의고사를 뽑아서 풀었죠. 등비수열의 합 공식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언수외가 100 92 100. 전국 0.04퍼센트였나 그랬어요. 제 마음은 확고해졌죠. 홍보대사 선배들에게는 스테이크를 사주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나왔어요. 과방 출입도 그 때를 기점으로 안 했죠. 면목이 없었으니까요. 순식간에 제 삶은 강의실과 기숙사 제 방으로 국한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학기초에 너무 열심히 활동을 했다는 거죠. 제 방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때문에 1학기에는 가끔 영어 인강이나 보고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이도 저도 아닌 채 시간을 보내다가 시험 바로 전날부터 거의 일주일간 밤샘공부를 했죠. 학점은 물론 3점대. 6월 22일 종강 날,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정리를 한 후 경주로 내려갔어요.
물론 가장 먼저 반대가 있었죠. 참 많이 싸웠어요. 그렇게 서울대가 가고 싶으면 10수를 하라는 말도 들었어요. 결국 제가 조건을 하나 내 걸고 그 싸움은 우선 끝이 났어요. 경찰대 1차 합격이었죠. 경찰대에 떨어지면 다시 학교에 다니고, 경찰대 1차에 합격하면 휴학을 하고 수능을 친다는 조건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하자고 한 후 휴학계를 먼저 냈어요. 사실 휴학 기간이 있어 놓치면 휴학을 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나서 전 경찰대 시험 준비를 시작했어요. 막막하더라고요. 11월부터 7월까지…8개월간 놀다 수험 공부를 시작했으니. 게다가 그 어렵다는 경찰대 시험에, 몇 달 있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한달.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시작했어요. 재수시절 제 방탕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제가 삼수를 한다고 하면 비웃을게 너무나 뻔했으니까요. 모두가 말릴 것 같았으니까요.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더 독하게 했어요. 끝나고 당당하게 그 시절의 나는 당신들이 본 내 모습 중 일부에 불과했다고, 그건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학원도 가지 않았어요. 나 자신과 싸워 이기고 싶어서. 또, 작년 만만찮은 학원비를 내 주시는 부모님께 죄송한 줄도 모르고 놀아댔던 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삭발이었어요. 머리를 밀고나니 어머님께서 꼭 고3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저는 마음이 쓰라렸어요. 그 때 대학을 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어야 했는데…2년이 지났는데, 2년 전과 같은 공부를 하며 부모님 고생시키는 제가 한없이 밉기도 했죠.
그래서 이를 꽉 물고 공부했어요. 하루 종일 공부를 안 하는 시간이 없었고, 새벽에 자기 전에는 화장실에서 단어장을 한번 읽고 잤어요. 굳이 화장실에서 단어장을 본 이유는 암모니아를 맡으면 집중이 잘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기 때문이에요. 험하게 말하자면 똥오줌 냄새를 맡아가며 공부한 거네요. 일부러 저 자신을 더 비참하게끔 만들었어요. 쓰라림을 씹어가며 더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서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공부는 갈수록 탄력이 붙었어요. 공부를 하다 힘들 때면 시 한편을 읽고 다시 공부에 전념했어요. 하루 15시간 공부하고 1시간은 쉰다는 의미로 책을 읽기도 했죠. 집에서 2주쯤 공부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게 되었고, 집 앞 독서실로 자리를 옮겼어요. 나쁘지 않은 선택. 공부가 잘 되더라고요. 문제는 미치도록 외롭다는 거였죠. 결국 한달 만에 시내로 나갔어요. 친한 친구랑 만나서 같이 시험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그 친구도 반수 준비중이었거든요) 필요한 자료도 뽑으러요. 책만 보다 한달 만에 그리로 나가니, 참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건물이 영어 단어로 보였고 지나가는 차가 수식으로 보였어요. 희열을 느끼며 집에 와서 다시금 공부했죠. 밤새기를 밥먹듯이 했고, 가끔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일부러 또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슬럼프도 가시더라고요.
그렇게 경찰대 시험은 다가왔어요. 사실 작년에도 한 문제 차이로 경찰대에 떨어졌던 지라, 자신있었어요. 누나에게 “이 시험장 내가 먹고 올게” 라고 말하며 시험장에 들어갔어요. 언어는 그냥 그저 그렇게 패스. 외국어도 무난하게 패스. 그런데 수학이 문제였어요. 제 아킬레스건인 고1 수학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열심히 찍고 시험장에서 나왔죠.
평을 들어보니 외국어가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평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요. 하지만 수학이 쉬웠다는 말에 쾌재는 바로 잦아들었죠.
결과부터 말하자면, 떨어졌어요. 재수 때 보다 훨씬 낮은 성적으로. 몇 년 준비해도 되기 힘든 경찰대 시험을 8개월간 놀다가 고작 한달 준비하고 치겠다는 건 사실 오만이죠. 그 때 저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삼수 실패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아니 그래도. 저는 수능을 다시 치고 싶었어요. 여기서 그만둔다면 뜨거웠던 저를 다시 깨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나약해진 저 자신과 타협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께 솔직하게 말씀 드렸어요. 경찰대는 안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수능을 다시 보고 싶다. 서울대에 못 가도 좋다. 작년에 방탕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아들의 마지막 한풀이라 생각해달라.
새벽 5시. 결국 허락을 받았어요.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모 학원 주말 반 대기 열에 등록해놓고(결국 수능 날까지 자리가 안났지만) 도서관에 다녔어요. 힘들었어요. 너무나 외로웠어요. 매일 혼자 밥을 먹었죠. 혼자 밥 먹기 싫어서 한 시간쯤 그냥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주로 도서관 옥상에서 주먹밥을 먹었는데 어느 날은 옥상이 닫혀 길에 있는 벤치에서 주먹밥을 먹다 서러워 결국 반밖에 못 먹고 올라온 적도 있었어요. 결국 집에서 하는 날도 있었죠. 하지만 공부는 꾸준히 했어요. 그리고 절대 저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어요. 비록 고등학교 때처럼 뜨겁지는 않았지만, 뜨겁기 보다는 뜨뜨미지근한 저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부했어요. 하루 10시간도 공부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질책하기 보다는 그래도 이 불안 속에 다시 몸을 던진 용기를 칭찬했어요.
저는 결국 저 자신과 화해를 했고, 한층 편해진 마음으로 공부를 했어요.
언수외도, 사회탐구도, 제2외국어도 사실 현역 때보다 실력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특히나 사회탐구, 제2외국어는 죄다 까먹어서 백지상태나 다를 바 없더라고요.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았어요. 조바심이 나지 않았어요. 이미 제게 과분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이 공부는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가 아니었으니까요. 나 자신과의 화해를 위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공부였으니까요. 순간 순간 공부하고 있는 저 자신을 사랑하며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11월은 성큼 다가왔죠.
11월7일, 수능 전날
저는 2년 만에, 제게 다시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이어리에는 2년 전과 꼭 같이 썼어요.
사랑한다, 박준하
11월8일. 2013수능.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서 나섰어요. 학교로 올라가다 보니 수능 응원이 한창이더라고요. 눈에 띄었던 플래카드는 “OO이 상위 1%”. ‘상위 1%면 복학인데…’라는 생각을 하니 옅은 웃음이 흘러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입가에 웃음을 띠고서 시험장에 들어갔어요.
1교시 언어. 아무리 마음을 비워도 긴장하는 병은 안 고쳐졌나 봐요. 글이 하나도 안 읽히더라고요. 듣기도 놓칠 뻔 하고 억지로 억지로 풀어냈네요.
2교시 수리. 실수를 워낙 많이 해서 300가지 실수 유형을 정리하고 들어갔어요. 실수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풀었죠. 다 풀고 나니 시간이 좀 남더라고요. 검산하다가 계산 실수 3개 발견… 당황스러워야 정상일까요? 그때의 저는 웃기더라고요. 그렇게 연습하고도 30문제 중 3문제나 계산 실수를 한 제 자신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로 실수한 부분들을 고쳤어요.
3교시 외국어. 생각보다 잘 안 읽혔어요. 아마 3번의 수능 중 가장 어렵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네요. 검토도 못해보고 허겁지겁 풀고서 냈어요.
4교시 사회탐구.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언수외 망했다…’였어요. 풀기 싫더라고요. 이거 다 맞으나다 틀리나 어차피 복학인데... 하지만 제가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한 약속이 떠올랐어요. 망하더라도 끝나고서 실컷 울기로 하고, 일단 그 순간 만큼은 조금의 후회나 미련도 남기지 말자. 치열하게 하자.
이 악물고 풀어냈어요. 혹 이게 대입에 있어 의미 없는 행동이 되더라도 좋았어요. 그 순간에 치열했다는 그 사실 하나면 충분했으니까. 국사, 정치, 사회문화… 너무나 많이 까먹었고, 반수에 경찰대 준비까지 시간은 촉박했기에 거의 백지였어요. 포기하고싶다는 생각이 계속 밀려왔지만 이겨냈죠.
5교시. 제2외국어. 마지막 시간. 금방 풀었어요. 검토도 다 끝났죠. 그러나 시험지를 덮지 않고 계속 검토했어요.
종이 울리더라고요.
끝
드디어 끝.
5년간의 수험생활이 이렇게 끝이 났구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저는 학교에서 걸어 나왔어요.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슬프지 않았어요. 더 이상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니까요. 저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되 그 한계에 최대한 다가가려 노력했으니까요. 지난 5년의 수험생활 동안 부쩍 친해진 어둠도 절 다독여 주더라고요.
수 없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 노트북을 켰어요. 웅이 전화가 오더라고요. 어떻냐고. 전화를 하면서 매겼어요.
“맞았다”, “맞았다”, “맞았다”, “맞았다”…
“98점”
…
“100점”
…
“98점”
언수외 296점.
그때의 기분을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치킨을 먹으면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제가 수능 쳤다는 사실을 대부분이 몰랐기 때문에, 수능을 쳤다는 사실부터 얘기해야 하는 친구가 대부분이었죠.
그 중 반년간 연락을 안 한 친구도 있었어요. 재수 시절 저와 단짝이었는데, 그 녀석은 공부해서서울대에 갔지만 저는 방탕한 재수 시절을 보내고서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거든요. 부끄러워서 연락도, 삼수 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그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받자마자 말했어요. “궁금하면 500원”.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나왔죠. 이 녀석 앞에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도. 이제야 조금 당당히 설 수 있었어요.
집에서 나와 보고싶은 사람을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회탐구와 아랍어를 매겼어요. 이건 역시나. 3번의 수능 중 가장 못봤더라고요.
원서를 쓰기까지 수십 번 고민했어요. 사회탐구, 제2외국어까지 4과목 모두 보는 학교는 합격률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 중 두 과목만 보는 학교에 다닐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원서 지원이 더 신중해졌죠. 가고싶은 과가 있었는데 문제는 점수가 조금 남는다는 거였어요. 주위에선 조금만 더 높여 쓰자고 말했지만, 결국 제가 쓰고싶은 곳에 썼어요. 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 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방향으로 끝맺고 싶었거든요.
결국 12월 31일,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초합격자 명단에 올랐어요.
5년간의 수험 생활을 지나, 삼수생이었던 저는 이날을 기점으로 고려대학교 학생이 되었네요.
그리고 결과와 무관하게 저는 제가 원하는 저 자신을 찾았고, 인터넷 공-신이 된지 1년 만에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어요.
…
저는 남들보다 조금 긴 수험생활을 하였고, 그래서 할 이야기도 많았네요. 마지막으로 몇 마디 보태자면, 여러분 공부의 끝에는 꼭 행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공부라는 거, 때로는 즐겁기도 하지만 항상 즐겁지만은 않잖아요. 인내의 순간을 보내고 나서 얻게 될 열매가 그냥 허울뿐인 학력이라면, 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그 안에 행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한 길을 이런저런 조건이 막는다면,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댓글이나 쪽지로 고민을 털어놔 주시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상담해 드리고, 인터넷 강의가, 전자사전이 꼭 필요한데 형편이 어려우시면 알바를 해서라도 도와드릴게요. 단, “멋진 사람이 되어서 같은 조건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조건으로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바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2013.1.19. 아침을 맞으며.
삼수끝에 고려대학교에 합격하신 분의 수기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그렇게 그렇게 절망 위에서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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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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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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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하면서 읽으려고 이미지화 해가면서 읽어가는데 결국 끝까지 읽고나서는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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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한 선배가 붙었는데 수능 성적 직접 물어보기는 좀 그래서...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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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아름답다
크으 멋있으신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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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생각하고 노력하는것부터 샤대생인듯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더라구요
진짜 공부는 노력인데 노력이 재능임 ㅠㅠ
이거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땐가 나온 수기ㅎㅎ 이 분이랑 어느 정도 인연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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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 수기 쓰신분과 인연이 있으시다니어 뭐야 누구세요 ㅋㅋㅋㅋ
많이 보던 글이네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엇 후배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