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학번예비군 [728116] · MS 2017 · 쪽지

2017-12-28 00:24:47
조회수 2,737

4반수생이 바라본 대한민국 입시의 현주소(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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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 소개를 하자면


지방 똥통고(비평준화지역 하위권 인문계) 내 중위권 이었다가

유시험 전형으로 기적적으로 ㄱㄴㄷㅅ 기숙학원 꼴지반 꼴지로 들어가 대치동 논술을 듣고

지금 단 배지를 달고 1년 동안 대학물 먹다가

군 생활(육군) 동안 독학을 하고

강북 소재 독재학원에 두어 달 다니다 복학을 기다리고 있는 휴학생입니다


 소개가 긴 이유는 자기자랑이 아니라 그래도 나름 다양한 형태의 입시 환경을 겪어 보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입시’ 라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은 걸 보고, 듣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쯤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1. 수시와 정시


한줄 요약 : 나는 수시를 옹호하지만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시의 장점은 투명성입니다. 정시는 적어도 투명성 하나는 완전히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입시 제도입니다. 또한 수능시험은 여러 해 공부를 하면서 많이 느낀 거지만,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객관식 시험으로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측면에서 정말 우수한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기능도 하고요.


 다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은 다른 개념입니다. 투명성은 공정성에 포함된 요소일 뿐, 둘이 같은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나 학력으로나 지역별로 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대한민국에서 한방의 시험으로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제도가, 투명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형평성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방에서도 수능 만점자 심심찮게 나오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습니다. 접할 수 있는 교육 컨텐츠에도 큰 차이가 있고 (여기서 인강이라는 반례를 제시하는 분들도 봤는데... 그러지 마세요), 정보력에도 정말 큰 격차가 느껴집니다.


 또한 12년의 수학 ‘과정’을 수능시험이라는 한 ‘지점’ 으로 평가하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요? 과정과 잠재력을, 아무리 우수한 시험이라고 해도 온전히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렇게 정시를 깐 이유는 현 정부의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반사효과로 정시를 완전무결한 입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게 학생부/특기자 전형이죠. (논술은 이 글에선 정시의 연장선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이건 정시보다 더 심각합니다. 투명성 역시 공정성의 큰 축입니다. 수시 전형은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무엇으로 변별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고, 그 기준으로 선발하는지 조차 깜깜합니다. 정유라 사태가 이를 강력하게 입증하죠.


 수시를 늘이는 데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정시를 줄이는 데에도 초점을 맞춰 봅시다. 정시 줄어든 선발 인원으로 점점 바늘구멍이 되어가고 있는 정시에서 대학별로 상이한 선발 제도(반영비 등) 로 수험생이 겪는 고초는 커져가고 있습니다. 정시 컨설팅 비용도 큰 부담이고요. (영업 행위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부담이 크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수시 정시 비율만을 고려하거나 수능 제도를 수술하는 데만 초점을 두지 말고, 수시의 투명성과 정시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그리고 수시와 정시의 비율 조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의 1순위는 수시의 투명성 확보입니다.


 위의 내용과는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긴 하지만,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부유한 가정환경의 학생’ 도, ‘잠재력만 뛰어난 학생’ 도 아닌, “대학 와서 잘 할 만한 학생”을 뽑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여러 해 학생을 뽑아 본 결과 학종으로 온 학생들이 더 큰 성과를 내고 있기에 대학에서 수시 비율을 늘리고 있는 거구요. 제가 다니는 과에서는 확실히 학종으로 온 애들이 학점이 높더라구요... 물론 극히 적은 표본이라 이걸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요.

 이 팩트에 대한 해석은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2. 사교육


한줄 요약 : 교육 정책으로는 사교육을 ‘절대’ 억제할 수 없다.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습니다. 공교육으로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기에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공교육으로 충족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사교육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존재해 왔지만,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공교육 이상의 위상을 자랑하고,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공교육으로 충족되지 않는 것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겠지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당연히 ‘대입 대비’ 입니다. (중고등학교 사교육 시장에 한정해서요) 공교육과 사교육은 애초에 목적이 다릅니다. 고등학교는 대학을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학원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구요.


 그럼 사교육을 억제(사교육 행위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사교육으로 인한 빈부 격차 고착화, 가계 부담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시를 늘이면 사교육이 줄어들까요? 내신/면접 대비 학원이 늘어나겠죠. 제 생각에 사교육을 줄이려면, 명문대 진학=행복, 대입 실패=불행 이라는 공식이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교육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전자의 공식보다 후자의 공식이 훨씬 세지 않나요?


 저는 현 정부가 사교육 줄인답시고 이상한 삽질하지 말고, 사회적 안정망을 구축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3. 마무리


요새 몸 쓰는 일 하다가 장문을 쓰려니 횡설수설 하네요ㅜㅜ


짧게 마무리 할게요. 수헝생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조리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걸로 자신을 가두는 틀을 만들었다면, 그 틀을 깨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갈 때입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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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ller K · 781338 · 17/12/28 00:31 · MS 2017

    감사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 18학번예비군 · 728116 · 17/12/28 00:34 · MS 2017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 Killer K · 781338 · 17/12/28 00:35 · MS 2017

    장수생으로서 그리고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문과생으로서 너무 공감했습니다

  • 18학번예비군 · 728116 · 17/12/28 00:38 · MS 2017

    와 다시보니까 이거 논술로 대학간 사람이 쓴 글 맞나요ㅋㅋㅋㅋ왜케 횡설수설이지
    이게 논술을 줄이는 이유인가(농담)

    그리고 추가하자면, 대학에서 정시를 줄이는 이유 중 하나는 탈주자들 때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시로 온 애들 중에 탈주자 은근 많거든요 특히 상위과에선

    개인적으로 수시 정시 통합하고 수능:내신:서류:면접 이 2:1.5:1.5:5 로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투명성은 보장되어야 하구요

    사회생활 하면서 느낀 게 사람 평가하는 데 제일 확실한게 면접인것 같더라구요
    (인성, 능력 다 종합해서)
    5분만 대화해 봐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각이 나오니..

  • 10선비 · 727942 · 18/09/09 02:45 · MS 2017

    1년 전에 쓰신 글이지만, 저랑 생각이 같으시네요. 대입제도 건드린다고 본질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대학을 안가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 만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대학 수요는 자연스레 줄고 사교육 또한 말할 것도 없겠지요. 대입제도 칼질은 완전히 주객전도라고 생각... 교육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고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본다면 교육제도도 함께 개혁하는 게 맞는 관점일 수도 있겠으나 그건 단지 대입전형으로 깔짝댈 일은 절대 아니죠. 그 과도기에 있는 당사자,학생들만 고통받을 뿐... 다만 학종을 늘리는 건 그들(정부,대학) 입장에서 괜찮아 보이긴 합니다. 바라는 인재상과도 일치하겠고 제 경험상 학종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대학에서도 더 잘하더라구요. 고등학교 때 하던 것을 그대로 하면 되니까요. 과제든 시험이든 대외관계든. 수능도 점점 사고력이 아닌 숙련도 시험으로 기우는 것 같고 고인물 돼가고 문도 좁아지고.. 아다리가 이리 잘 맞나 싶은데ㅋㅋ
    뭐 횡설수설 했는데 저도 빨리 입시판 뜨고 새 공부 하고 싶네요.. 이놈의 수능이 자꾸 밀당을 하는데, 단도리를 쳐버려야지 원..
    사실 메인글 보고 삶에 공감이 가서 들어왔습니다. 일반고에서 공부 좀 해보겠다고 정석 붙잡던 고3때의 제가 떠올라서요. 성적 추이도 비슷하기도 하고 하여튼 수능 접수 '안' 하신 거 축하드려요. 한 발짝 나아가신 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