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온 야심한 밤 독서 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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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써놓고, 내가 7살 부터 17살까지 썼던 일기장이며, 친구랑 주고받았던 편지며, 교지에 실었던 글이며
수행평가로 냈던 보고서까지 쭉 다 읽은 감상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0년 치 일기를 읽는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초6때 엄마랑 싸우고 짜증난다는 한 문장을 1장 반으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개초딩의 발악과
중2때 상실의 시대를 읽고 야한 부분만 필사해놓은 (...) 발정난 ㅈ중딩의 망상과
고1때 막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미적분1 중간고사 9.5점 (...)을 받은 뒤 적어놓은 급식충의 자살계획 까지
읽다보니 헛웃음과 함께 살짝 코가 찡긋했다 (찡긋)
생각해보면 나는 참 나대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딜가나 주목을 받고 싶어했고 또 남들의 시선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녀석이었다
정말 특이한 놈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내게 뱉는 것과 같은데,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에 담아두기 쓴 이야기들을 뱉어냈고, 한번 씩은 정도가 과하기도 했다.
10년 동안 몽니부리는부라퀴라는 한 인간이 살아왔던 궤적을 그려보자
우습게도 문과라서 다항함수로 그의 궤적을 추정해보자
삶의 변곡점은, 지나가고 나서야 느껴졌다.
초6때 만났던 담임은 진로 소주의 새로운 브랜드 네이밍 공모전에 참가하였던 경험을 쓴 글을
자기 반 학생들에게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정말 특이한 인간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이들과 같은 수준에서 장난치며, 매일 아침이면 TV를 켜고
우리 반 아이들과 닮은 짤들을 가져와서 놀려 대었다.
봄날이 갑자기 우리를 불러냈다는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근처 체육공원에서 4교시까지 놀기도 했다
(딱 한 번 그랬다)
그러더니 어느 날 부터 아이들에게 백지 한 장을 나눠주고 글을 쓰라고,
(사실은 자기가 그동안 써놨던 글을 마구마구 애들 앞에서 자랑해놓고)
뭔 일만 있으면 - 혹은 한번 씩 시간 날때마다 - 애들 글을 걷어갔다.
자연스럽게 나도 그를 따라 글을 써서 모아두기 시작했다
첫번째 변곡점이었다
그와 내 삶의 접점은 단 한 번 이었지만 그래프의 기울기는
아주 많이 바뀌었다
나는 그가 내게 붙여준 '김구 선생'이란 별명을 아직까지 기억한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목뒤점 28호'.
중2때 만난 친구 녀석들은 죄다 이상한 놈들이었다.
한 놈은 메탈 광에 일베저장소 애니게시판 이용자였지만 나중에 애게를 끊고 자전거를 미친듯이 타러 다니더니
여친이 생겼다
한 놈은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는, 오지 오스본과 레드 제플린을 들으며 밴드부에 들어가 일렉 기타만 존나 쳐대더니
여친이 생겼다
한 놈은 그렇게 생겨가지고는, 애니도 보고 성우 덕질도 하고 레포데도 하고 4연딸러였던 친형의 가르침을 실천하다가
여친이 생겼다
나만 없었다.
그 학교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시청각실에 틀어박혀 밴드부 녀석들과 시간을 떼웠다
처음에 중1때 전교생 앞에서 비틀즈의 렛잇비를 불렀던 나는 (영어노래부르기 대회였다)
중2때 너바나의 을 불러제끼던 형을 보고 밴드부에 들어왔다
그래놓고서는 변성기가 와버렸고, 쇳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점심시간 그린데이의 열창을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이 감상하게 되었고
음악 선생의 "몽니야 아무리 그래도 네 목소리가 그리 아름답지는 않단다"란 한마디에 나는 보컬을 때리쳤다
그리고 그 해 영어 노래 부르기 대회에서
맥클모어의 을 불렀다
지금까지도 힙합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노래를 불렀을 때 찌푸렸던 얼굴들이 랩을 하니 감탄으로 바뀌었다
난 타고난 관종... 인가 보다.
사실 어떤 순간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밴드부 녀석들을 만난 순간부터 였는지
너바나를 불러제꼈던 형을 보게된 순간 이었는지
을 부르고 나서 질끈 감았던 눈 (선글라스를 끼고 했다) 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부터였는지
어쨌든 어느 순간 부터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특히 힙합을 존나게 들어대더니
성적이 존나게 떨어졌다
두번째 변곡점이었다
성적이 떨어져서 외고를 못갔다
전학을 갔다
그때 첫사랑...?을 만나긴 했는데
돌이켜보면 너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이 없던 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너 때문에 일본어를 좋아하게 되지도
를 3회독 하지도
포켓몬 소울실버 하트콜드를 올 클리어 하지도
붕어빵을 자주 먹게 되지도
않았다
대신 무슨 헛물을 들이켰는지
편지를 존나게 썼다
아, 너는 2통 정도 받았다
대신 너 얘기를 걔한테 엄청나게, 엄청나게, 엄청나게, 썼다
근데 걔는 다 듣고 있더라
물론 나는 아직까지 모쏠이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글 나부랭이나 쓰고 있지)
어쨌든 전학간 학교에서는 내신을 좀 땄다
지역에서 유명한 일반고에 운 좋게 가게 되었다
그리고 수학 내신을 8등급 받았다
1학년 때 수1 수2 미1을 다 배우는 미친 학교였다 시발 진짜 미친 거 아닌가
2학기 중간고사 미적분1 시험에서 나는 9.5점을 받았다
안 믿겨서 채점을 5번은 했다
서술형은 5문제는 2문제를 풀었는데도 답이 아예 틀려서 0점이었다
객관식은 3문제를 맞았다
눈물이 났다
우스운 건 1주일 정도 지나자 괜찮아졌다 망각의 동물인 덕분도 있었지만
성적표에는 내 밑에 8명이 있어서 9등급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해 겨울방학에 나는 지키지 못한 결심을 200개는 했다
지금까지 한 15개 정도는 지켰던 것 같다
수능 수학에서 2개만 틀린 걸 보면.
나 같은 빡대가리도 존나게 쳐맞다보면 뭐가 뭔지 주먹이고 발차기인지는 깨달을 수 있었나 보다
그게 네 번째고,
지금까지 내 삶이 굽이쳐온 지점이다.
수능 치는 날은 또 어땠던가
그 1주일사이에 감기가 걸려버렸다
9월 모의고사까지 수학은 내 발목을 잡았다
76점이었다
14번이 안 풀려서 멘탈이 흔들리더니 아예 확통에서 점수가 처절하게 깎여나갔다
6월과 9월 사이에 국어가 10점 올라서 안심하고
수학만 했다
난 왜 3년 내도록 수학이 발목을 잡는 건지 진짜 좆같았다
매번 2-3등급을 왔다갔다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개꿀잼 몰칸지
이육사가 ppap추면서 나오더니 허프만 부호화...엌ㅋㅋ 오버슈팅 엌ㅋㅋㅋ
국어가 8점 떨어졌다 (가채점때는 14점 떨어졌다 ㅋㅋㅋ)
사실 국어 치고 그냥 시험장을 나가고 싶었다
화장실에 가서 코를 푸는 데 어떤 미친놈이 "야 국어 1컷 100아니냐" 이지랄을 떨더라
헛웃음이 나와서 긴장이 풀렸다
저새끼도 쫄리는 구석이 있어서 ㅈ도 안되는 허언을 치는 구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한숨을 쉬니 허연 입김이 보였다
여전히 ㅈ같지만 수학을 풀러 갔다
그리고 16점이 올랐다
띠용~~
나는 지금도 국어 1컷 100 아니냐며 너스레를 떤 새끼한테 존나 고맙다
11월 23일 해운대고 3층에서 시험친 새끼야 너 존나 고맙다고
내 성적이 이곳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만큼 좋지는 않다
특히 국어...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써대던 새키가 이렇게 ㅈ망한 성적을 받을 줄이야..
논술로 대학을 붙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래도 그런 건 상관없다
어쨌든 내가 내 손으로 얻은 결과다
내 삶이 그렇게 요동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기울기의 변화는 있었고
실수 전체 구간에서 증가했던 것도 아니다
난 여전히 세계지리를 친 걸 후회하고 있고
3합 5를 맞출 자신이 없어서 중앙대 논술 원서를 넣지 않았던 걸 후회하고 있고
찌질하게도 아직까지 첫사랑의 간단한 제안을 넌씨눈스러운 행동으로 무시한 걸 후회하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오르비에 상주하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을 후회하고 있다
허나 분명한 건
나는 잘 살아왔고 잘 버텨왔다
남은 나의 삶이 어떤 궤적을 그리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그냥 아끼고 사랑하고 싶다 그게 다다
음... 뭐라고 이 글을 마무리 할까.
좋은 결과를 맞이한 여러분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 여러분
올 한해 동안 정말로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남은 2017년 동안 행복하시고
메리-크리스마스
이상 수능끝난 고3의 잡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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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냥 문득 써보고 싶어짐
오오..
메리-크리스마스
글 ㅈ나게 재미나게 잘쓰시네요 논술 합격감 인정!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이런 인재가 왜 여치니가 없을까ㅠㅠ
ㅋㅋㅋㅋ 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