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넴 [669256]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7-12-13 16:28:29
조회수 15,225

재수후기) 뼈아픈실패와 건강상의 문제 속에 제일 치열했던 1년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520326

페넴 님의 2018학년도 수능 성적표

구분 표점
한국사 - - 2
국어 128 96 1
수학 가 126 99 1
영어 - - 1
화학1 66 97 1
지구과학1 70 99 1

안녕하세요. 올해 수능을 본 재수생입니다.


앞 글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글은 원래 고등학교 후배들과 나중에 제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자서전(?) 같은 느낌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런데 원래 모의고사를 잘보다가 수능때 망한 케이스나, 건강상의 문제때문에 걱정이 많은 분들이 계신거 같아서 제 경험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히 오르비라는 곳에서 제가 수능을 엄청 잘봤다? 라고 말 할 수는 없겠죠 당연히 ㅎㅎ


그래도 만족할만한 성적이 나와서 , 비슷한 경험을 하고있는 고3 친구들에게 제 경험이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올려봅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많이 깁니다.


제가 다 아는것처럼 얘기해서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습니다. ㅠ 훨씬 심한 악조건속에서 노력하고 계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뼈아픈 실패, 그리고 20인생 중 제일 치열했던 1년간의 재도전


0.들어가면서


 저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13333으로 재수를 결심하고, 재수하여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94 수학(가)96 영어98 화학1 47 지구과학1 50으로 올 1등급을 맞은 재수생입니다. 제가 감히 이곳에서 잘 봤다고 말할 수 있겠냐마는, 올 한해 느낀점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이 글은 현역 때 겪은 뼈아픈 실패와, 재수과정에서의 고난과 역경에서 느낀 점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모든걸 다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건강상태가 안 좋아 많이 힘들었던 저는 올해가 더욱 길게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수능에서 아쉬운 성적을 받아서 재수를 고민 중이거나, 이미 N수를 진행중에 너무나도 힘드신 분들이 읽으며 공감하고 희망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모의평가에서 고득점을 받다가 수능에서 실망스러운 점수를 받은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을 보고 다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나는 분명히 이런 점수를 받을게 아닌데..?’ 그 동안 의심없이 묵묵히 해왔던 공부들이 시험 한번으로 ‘의미없다’고, 고작 숫자 몇개들로 판가름 날때 끝없는 허무에 빠질 겁니다. 그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던 오만한 고3의 실패


 저는 경기도의 지방 사립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자사고는 아니고 그저 평범한, 어찌보면 잘하는 편이 아닌 고등학교일겁니다. 그러다보니 높지 않은 점수로 교내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했고, (예로 모의고사 수학 84점으로 1등을 한적도 있었음.) 저 무의식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자만감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고3 현역때 6월 모의평가까지 화핚1 생명과학1을 응시했고, 6월모의평가를 응시한 후 서울대학교를 지원하고 싶어서 생명과학2를 골라 7월부터 수능 때까지 생명과학2를 응시하였습니다. 첫 3월 모의평가에서 11111을 받고, 4월 모의평가에서 12111등급을 맞아서 ‘이 정도 성적이면 서울대학교를 노려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과목 응시를 고민하다가 생1을 소홀히 하게 된 6월에 21113 (화1 생1)을 맞았습니다. 9월에는 결국 탐구과목 생1을 생2로 바꾼채로 응시하여 11123 (화1 생2)를 맞았고, 수시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 화학생명공학/ 의과대학 세 군데를 집어넣은 후 수능시험장에서 13333을 맞게되었습니다.


 사실 수능에서 뒷 시험들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국어 시험은 다행히도 원래 자신있었던 과목이어서 시간을 남기면서 98점을 받았고, 수학 영어 과목들도 수능 시험장에서는 나쁘지않게 봤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구과목에서는 몇문제씩 풀지 못하며 망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고, 예상치 못한 수학과 영어 또한 84, 87 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아 지금까지 본 모든 시험 중 최악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화학은 맨 뒷장까지 가지도 못해서 서너문제를 내리 찍은 것 같았고, 생2도 그냥 평상시에 보던 모의고사와는 체감난이도가 너무 달랐고, 역시 서너문제를 내리 찍었습니다. 고1부터 고3때까지 본 모든 시험중 가장 낮은 점수를 수능 날 받게 되니 당시에는 어이가 없었고, 저를 응원해준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과 이러한 성적을 받아온 저에 대한 자괴감만이 가득했습니다. 


 수능 실패요인은 불안한 실력의 수학과 6월모의평가 이후 급하게 탐구과목을 변경하면서 발생한 심리적 이유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3들끼리만 보는 교육청과 재수생, 반수생 유입전의 평가원 시험들에서 느낀 헛된 자만심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수시는 고려대 연세대는 1차부터 떨어졌고, 아쉬운 마음에 서울대 면접을 보고는 왔지만,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지 못해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오로지 한 시험만을 보고 달려온 저는 절망과 허무함만이 가득차있었습니다. 이렇게 며칠 밤마다 수능시험을 다시보는 꿈을 꾸고는 또 현실이 아님에 울고, 마지막으로 합격증만이라도 받고싶다는 생각에 안정이 뜨는 공대 중하위권 학과들로 건국대, 아주대, 인하대 세군대를 집어넣었는데 세 군데가 모두 붙었습니다. 학교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붙은 이상 한 학기를 다니고 반수를 하면서 다시 재도전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저도 처음에는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니던 학교가 있으니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받으니 마음이 편할거라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런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치열함을 부여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세 군데의 합격증은 모두 다음 추가합격자들에게 넘겨주고 생재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2. 재수의 방향성 결정과 흔들림



재수를 결심하게 된 후 어떤 식의 재수방식을 선택해야 할 지 고민하게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그렇게 재수율이 높은 지역이 아니었고, 교육열이 대치동가나 강남8학군과 같은 곳보다 많이 떨어지는 곳 이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안은 크게 세가지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로 독학재수, 두 번째로 재수종합기숙학원, 세 번째로 학사에 머무르면서 통학재수를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원에 다니지 않았고 이러한 공부방법이 모의고사에서도 잘 발휘되었다고 생각해서 (수능 제외) 굳이 학원에 다닐 필요없이 독학 재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학원에 다니면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마음 저편에는 핸드폰, 노래, TV, 컴퓨터와 같은 저에게 익숙했던 것들과의 격리가 두려워서도 였을것입니다. ‘나는 핸드폰을 잘 관리할 수 있다. 실제로도 전원을 끄고 잘 공부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동안 제가 그런식으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것은 가슴깊이 손을 얹고 말하자면, 전혀 치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어느정도 성적이 나온다는 이유로 머리만 믿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재수기숙학원으로 방향을 잡았고, A기숙학원, B기숙학원, C기숙학원등의 선택지가 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A기숙학원이나 B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되면 평가원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C기숙학원의 절반 정도 되는 가격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집안의 경제적 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서 그 쪽으로 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같이 찾아본 결과 실적과 강사진, 접근성을 놓고 비교해보니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숙학원이 상당히 우월한 실적을 낸 것을 보고, 부모님은 경제적 부분은 신경쓰지 말고 제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격려해 주셨고, 저는 C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3. 지옥 같았던 입소와 기숙학원에서의 한 달


 저는 2월에 기숙학원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외동아들이었던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과분할 정도로 넘치게 받으며 자랐고, 기숙학원을 들어가기 일주일 전 부터 매일마다 저를 걱정하시며 우는 어머니를 제가 달래드리며 결국 집을 뒤로하고 들어오게되었습니다.그 전까지 타지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숙생활을 한 적을 없었기 때문에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처음 반을 배정받고 들어가니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온 40여명의 동갑, 형, 누나들이 같은 반에 있었고, 첫 날은 정말 반에서 아무말도 오고가지 않는 채로 하루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간을 반에서 생활하면서 한 말은 짝에게 건네는 ‘안녕?’ 워낙 좁은 공간에서 부딪힐 때 한 말인 ‘죄송합니다.’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3달간 공부를 놓은 결과와 나름 상위 반에 배정됨에 따라 받는 고난이도의 문제들로 이루어진 수업들로 인해 따라가기 힘들었고, 밤에는 같은 기숙사 방 친구들과 지금 여기 있는 것이 현실인지 한탄하며 잠에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주일정도 지나다보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정말이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월이 지나가고 서로 말문이 약간 트이면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첫 3월 모의고사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첨언기숙학원은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비교하면정말 최상위권만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고등학교에서는 꽤나 공부를 잘했단 소리를 들었었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그저그런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심지어는 제가 못푸는 수학 문제들을 이곳에 있는 친구들이 순식간에 풀어내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해온 공부는 무엇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한편으로는 이렇게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몹시 궁금했고요그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모의평가는 다 최상위 학교를 갈 수 있는 친구들이 수능을 망치고 좀 더 높은 곳을 위해본래 자신의 실력에 맞는 학교를 가고 싶어 1년 이란 시간을 투자한 것 이었습니다이렇게 보면 정말 수능이란 것이 뭔지우리를 왜 한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물론 그보다 좋은 방법이 확실히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4. 3월 첫 모의고사 미응시...


 재수기숙학원은 철저히 성적과 실적으로 판단합니다. 2월이 지나가며 반 친구들과 서로의 출신고등학교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작년 실적은 어땠는지, 학교 친구들이 이곳에 몇명 있는지 등등의 얘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같은 학교 출신의 친구, 심지어는 이곳을 거쳐간 선배도 없었고, 작년 학교실적이 안타깝게도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 실력으로 증명해보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지역의 유명학교나 자사고, 과학고, 특목고 같은 곳에서 온 친구들도 꽤 많았기 때문에 초반 대화상대도 없었던 저는 3월모의고사에서 나의 실력을 반드시 뽐내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3월 모의고사날. 비록 사설이지만 학생들의 수준을 판단해 볼 수 있는 시험. 전날 밤부터 머리가 어지럽던 저는 심한 고열과 어지러움을 느끼고 국어 시험시작전까지 양호실에 누워있다가, 국어시험을 비몽사몽간에 마치고 수학시험을 보던중 결국 쓰러져서 양호실에 누워 시험을 응시하지 못 했습니다. 그 침대위에 누워있던 와중에 든 첫 생각은 ‘아, 이렇게 시험을 보지 못하면 반급우들이, 또 이곳의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여길까... 공부도 못하면서 꾀병으로 도망친다고 여기지는 않을까?’였습니다. 그렇게 병이 심해진 저는 3월 초에 집으로 병가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집에온 저는 울면서 부모님께 기숙학원을 나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하셨고, 저는 좀더 버티다가 다시 전화하기로 말씀드리고 다시 기숙학원으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5. 轉禍爲福 (전화위복) 모든 걸 쏟아 부은 첫 시험, 4월 모의고사


 3월 모의고사를 치르지 못한 저는 심한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 속에서 복귀하게 되었고, 다시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게 됩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에 항상 책을 들고 다니게 되었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1시에 기숙사에 들어갈 때 까지 공부를 하지 않는 순시간은 1시간 반이 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이머로 공부하지 않거나 멍때리는 시간에는 항상 start를 누르며 시간을 재었고, 공부하는 시간이 아닌 공부하지 않는 시간을 재었습니다. 그렇게 수업시간 포함 하루 평균 14~15시간 정도를 공부하면서 어느덧 4월 모의고사가 다가왔습니다. 


 제가 다닌 기숙학원은 빌보드라고 해서, 모의고사를 보고나면 기숙학원 빌보드와 전체 빌보드를 붙입니다. 기숙학원 빌보드는 자연계 600여명 인문계300여명 중에서 상위 150여명 정도를 순위대로 붙이는 것이고, 전체 빌보드는 말그대로, 학원 전체 학생들중에서 상위 400여명정도를 붙이는 것입니다. (빌보드는 서울대 기준 표준점수로 등수를 매김) 그래서 시험을 잘 본 학생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는데, 전체 빌보드는 커녕 기숙빌보드 끝자락이라도 들고싶었던 제가 4월 모의고사에서 반 2등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기숙 20여등, 전체에서 300등정도 였는데, 이런 작은 성과를 낸 후 저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제가 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부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만약 이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받고,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면 재수를 끝까지 해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받은 담임선생님의 작은 칭찬 한마디가 저에게 큰 힘이 된셈이지요.


6. 6월 모의고사에서의 참패, 그리고 9월 모의고사에서의 만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반친구들과 친해지고 배드민턴, 체육단련실에서의 운동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체력은 국력! 나름 초반의 꽉 조이던 반 분위기도 느슨해지고, 사람 사는곳이라 부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되었지요. 반 친구들과 가끔씩 밥을 같이 먹기도 하면서 수업을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6월이 되었습니다. 기숙학원은 난방과 냉방이 아주아주 잘되어서 6월에는 춥고 겨울에는 덥더군요. 이 점은 외부환경과 관련없이 일관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6월 모의평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모의고사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시험을 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에는 못 미치는 점수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단순한 등급으로만 보자면 11122로 나쁘지 않은 점수가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어 수학은 1등급 커트에 걸렸고, 원래 N수를 하면 가장 많이 오른다는 탐구과목, 화학과 지구과학이 이상한 실수들 때문에 2등급에 그치고 만 것이었습니다. 화학은 앞장에서 틀리고 맨 뒷장은 심지어 시간이 부족해서 40점이라는 점수를 맞았는데, 결국 전체 빌보드는 고사하고 기숙 내에서의 빌보드도 들지 못 했습니다. 이는 잠시 운동에 너무 치중해있던 저에게 다시금 각성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다시금 심기일전한 저는 다시 하루 14~15시간 공부에 돌입했고, 4월모의평가 이후 처음으로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전체 빌보드에 들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화학이 너무 쉽게 출제되어서 표점이 낮았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반 전체 1등이라는 기염도 토했습니다. 원점수 98 88 (1) 50 50 으로 등급은 12111 이었지만, 수학을 제외한 백분위가 모두 100에 육박하는 점수를 받게되었고, 수능 전 마지막 평가원 모의고사를 기분좋게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9월 모의고사를 끝내고 수시 상담기간이 되어서 수시 접수를 해야하는데, 면접을 쓰기에는 애매한 내신을 가지고 있던 저는 전체기준 300등 내외가 되어야 의대를 갈 수 있다는 말에 들쭉날쭉한 모의고사 점수와 수능 당일 컨디션에 따라 점수가 크게 등락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지방의대 교과전형 4군데와 고대 화학과 종합, 동국대 한의대 면접을 쓰게 되었습니다. 수능을 너무 잘 볼경우 수시로 의대에 납치 될 수 있었지만, 그 때 까지 본 모의고사의 최고점수가 어차피 수시로 쓰는 의대 선이었기 때문에 납치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의대 최저를 목표로 수능을 공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80여일 남짓, 계속해서 잔병치레가 있긴 했지만, 허리 통증도 사라지고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하던 저는 이대로면 수능도 잘 볼 수 있겠지란 희망으로 계속해서 공부해나갔습니다. 이렇게 무난하게 공부해나간 후에는 다시 행복한 생활이 펼쳐질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던 중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7. 예기치 못했던 치통, 그리고 느껴지는 불안감


 현역 때부터 저는 이명이 있었습니다. 공부에 집중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귀에서 ‘삐’하는 기계음 같은게 들리는 것이었죠. 귀가 막힌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이 증상으로 인해 수능보기 전까지 계속 불안했습니다. 이 때, 근처 타지역에 있는 유명한 이비인후과도 다 찾아가보고 진료를 받아봤지만 다 같이 외관상으로는 문제가 없어보인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결국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이지요. 어떤 병원에서는 메니에르라는 희귀병 가능성도 열어두었지만, 역시나 확신은 없었지요. 그래도 이정도는 참고 수능을 응시할 수 있었기에 수능이 끝나고 고쳐지겠지란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수능이 완전히 끝난 지금은 조금 나아졌죠.

저는 재수 생활을 하면서 잦은 감기와 현역 때 존재했던 이명, 2~7월까지는 선천적 기형(3/4번 척추뼈가 붙어있음)으로 인한 허리통증 (다행히도 이후에는 완화됨), 6~9월까지는 독감과 세균성 편도염, 8~11월 수능응시까지는 잘못된 충치치료로 인한 치통을 앓았습니다. 특히 이 치통은 너무나 심각해서 수능 2주전부터 이 고통때문에 모의고사의 정상적 응시가 불가했고, 저 혼자 아침에 푸는 국어 모의고사 때는 이 치통때문에 평소에 했던 고등사고와 추론이 불가했습니다. 3년동안 해왔던 국어 문제 푸는 방법을 사용치 못하고 단순 글자를 비교치면서 풀게 되었죠. 수능 2주전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니 어쩔 수 없었지만,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에 버티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때도 치과에 여럿 다녔는데, 역시나 외관상 문제는 보이지 않았고, 가는데 마다 이상한 점으로 의심스러운 점으로 꼽는건 8월달에 치료했던 충치치아였습니다. 이는 이미 레진재료로 비싼 돈 주고 때운 것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열어보기는 조심스러웠고, X-Ray로도 이상한점이 발견되지 않자 어떤 치과에서는 시린이 개선 치약을 처방해주고, 어떤 치과에서는 잇몸 약같은것을 발라주더군요. 그리고서는 며칠 뒤에 다시 와보라고.. 그 중 한 치과에서 수험생인 것을 말하니 조금 더 조심스러워 하면서 수능때 까지는 참아보라면서, 그냥 돌려보내려고 하시더군요. 수능 며칠 남은 수험생을 잘못 치료해 의료사고에 말릴까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겠지요.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간곡히 부탁하니 진통제 두 종을 처방해 주시더군요. 그 둘 다 강력한 진통제였는데, 하나는 암이나 다리 절단 등 중증도의 통증에 처방되는 약이었습니다. 저는 1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놔둘 수 없으니 우선 그 강력한 진통제 약들을 먹어가며 남은 일주일을 버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중증도의 진통제가 듣지를 않고, 먹으면 엄청나게 졸음이 쏟아진다는 것이 었습니다. 보통 이지엔 프로나, 타이레놀, 게보린으로는 효과가 없어서 먹게 된 것인데, 일반 상비약들보다도 엄청나게 졸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때는 다리를 날카로운 샤프로 찔러가면서 공부를 하고자 했는데 , 이 방법이 중증도의 진통제에는 또 효과가 없더군요. 


 결국 일주일 전부터 공부는 하루에 4~5시간도 채 못 하게되다가 3일전에는 통증이 너무 악화되어서 아예 집으로 병가를 나가서 집근처에있는 치과를 가게되었습니다. 가서 사정을 말씀드리니 마지막 수단으로 그 충치치료 했던 치아를 열어 보시더군요. 열어보니 그 안에는 8월에 충치치료를 한답시고 다시 재료로 닫아놓은 안이, 충치가 완전히 치료가 안 된채 감염되어있었습니다. 급한대로 충치부분만 제거했습니다. 끝내고 집에 왔는데 마취효과가 끝나니 고통이 다시 엄습했습니다. 정말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수능시험장에서 이 고통을 지니고 시험보는 제가 생각나서 미칠 것 같더군요. 어쩔 수 없이 다시 치과로 돌아가서 신경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1차 신경치료를 받았는데도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신경치료를 끝내고 집이왔을때는 수능 D-3의 저녁이 지나고 있었고 치과는 문을 닫았습니다. 게다가 내일모레는 예비 소집이 있는 날입니다. 이제는 학원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정말 미칠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면서 항암 진통제 한알을 먹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학원을 돌아와서 예비소집을 하고, 이 통증을 가지고는 도저히 수능을 볼 수 없을것 같은 생각에 정말 염치 불구하고 바쁘신 부모님이 다시 와서 치과에 가게되었습니다.


 수능 이틀전에 말입니다. 역시나 더이상의 신경치료는 오히려 신경을 자극해 수능 때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다면서, 남은건 기도뿐이라고... 수능 끝난 후 신경치료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수능이 하루 남았습니다. 나간날 저녁에 학원으로 돌아가는데 치통이 도지고, 설상가상 감기가 걸렸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더군요. 내일 배정 학교로 이동할 버스 차량 교육을 받으러 이동해서도 치통과 두통이 겹쳐서 진통제를 먹고 양호실에 누워있었습니다. 수능 시작까지 반나절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죠. 정말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더군요. 지난 1년간 고생했던 시간이 생각나면서... ‘내일 시험을 못 보면 어떻게 되는거지? 내가 이런 고통을 느낄 정도로 죄를 많이 지었던가?’ 정말 억울해서 신까지 원망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교실로 와서 최종 마무리를 하는데 고개를 들기조차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옆반에서 벽을 쾅쾅 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복도 여기저기서 욕들과 함께 육두문자가 날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야!!! 연기되었대!!” 비몽사몽간이었던 저는 ‘어...? 연기? 화재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고, 수능 일주일 연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버린 책들을 주우러 다니느라 학원을 아노미 상태에 빠졌고, 내일 탈출할거라는 기대에 부푼 친구들이 교실에서 울면서 저도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저에게는 그것이 행운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 마지막 질주, 1년+7일 간의 마무리


 그렇게 다시 늘어난 일주일의 시간 에서 풀문제들이 다 떨어진 반 친구들은 모의고사를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다음날 외출을 다녀온 친구에 의해서 대치동가에 있는 오프 모의고사들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사되어 나누어졌습니다. 원치 않은 만남 이였을지 몰라도 1년간의 정이란것이 쌓였나봅니다. 이렇게 일주일분량의 모의고사들이 만들어지고 다시금 공부에 돌입합니다. 감기는 다행히 조금 사라지지만 치통을 가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연장된 수능 3일전에 학원을 완전히 퇴소하고 전날에 다시 돌아와서 시험만 보기로 합니다. 집에와서 진통제를 먹고, 낮에조차 쏟아지는 잠에 잠드는 하루를 반복하면서 다가온 수능전날 학원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수능 전날 집에서 낮잠을 잤던 여파인지 12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게 최악의 컨디션으로 진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맞이하게됩니다.


9.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DAY


 5시반. 그 동안의 대수능 마인드컨트롤에 의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치통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듯 했습니다. 1년동안 밥을 먹은 식당에가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챙겨서 교실로 향합니다.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듣고 버스에 오르자 갑자기 다시 시작되는 치통과 졸음에 도착할 때 까지 잠을 청해봅니다. 시험장에 도착하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고사장으로 향합니다. 고사장에 도착하고나서도 멈추지 않는 치통에, 비상으로 챙겨둔 이지엔 프로와, 항앙 진통제, 2단계진통제, 게보린을 주머니에 준비해두고 물을 떠둡니다.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국어가 시작하기전 국어선생님이 챙겨주신 지문을 읽어보지만 읽히지는 않고 치통만 더 느껴지는 듯 합니다. 결국 화작문 한세트를 읽고 그냥 명상을 하기로 합니다. 곧 수능 1교시가 시작되었고, 모의고사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1페이지를 넘기던 저는 치통 때문에 글씨가 튀어나가는 것을 느끼며 눈에 글자가 하나도 읽히지 않았습니다. 화작문은 지금 풀고있는건지 글자를 읽고 있는건지 하나도 모를만큼 치통에 온 신경이 팔렸고 푼 문제도 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10분이 경과하자 저는 손을 들고 준비해온 이지엔 프로라는 액상형 진통제를 복용하기를 청했습니다. 옆에 놓아둔 물과 함께 진통제를 먹고 다시 풀기 시작했습니다. 5분쯤 더 경과하자 진통제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치통은 조금씩 사라졌는데, 의식이 점점 흐려졌습니다. 그 액상형진통제는 원래 저녁때마다 테스트 했었는데, 졸음이 올 때는 그냥 밤이라서 오는 줄 알고 부작용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엄청나게 졸리는 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20분이 지나자 거의 숙면을 취하기 직전까지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고, 수능시험용 샤프는 너무 뭉툭해서 다리를 엄청나게 세게 찌르면서 잠을 깨야했습니다. 이런식으로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나지 않게 1교시가 지나갔고, 시간은 이런상황에서도 어떻게 남아서 가채점을 끝냈습니다. 작년 수능도 98을 맞을 만큼 제일 자신있었던 국어에서 이렇게 되버리니 벌써부터 머릿속에는 삼수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우선 진통제 효과가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에가서 찬물로 세수를 합니다. 그리고 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9월모의평가때 미리 테스트해본 우황 청심원을 반병 먹고 다음 교시를 대비합니다.


2교시 본령이 울렸고, 수학 문제지가 배부되었습니다. 수능 전부터 대치동 가에서 돌았다는 찌라시, 이번 수능은 수학이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다. 안 그래도 작년에 수학을 망친 기억때문에 더 걱정되던 저는 수학을 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수학은 국어처럼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고 체화된 머리로 20번까지는 그냥 푸는것이었기 때문에, 20번까지 다풀고 18분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OMR을 마킹하고 답 갯수를 확인하는데 답 갯수가 맞지 않았습니다. 20번은 안그래도 약간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초조하고 20번에 시간을 더 투자 하게 되었지만, 역시나 확신은 없었습니다. 21번은 넘기고 29까지 먼저 풀자는 마음으로 뒤로 넘어갔는데, 27번 쌍곡선 문제에서 또 막히게되었습니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 되니 치통이 심해졌고, 27번 별표를 친채로 29번 풀이에 돌입했습니다. 어떻게 29번의 답형태가 나온 저는 27번과 20번, 21번을 다시금 보면서 풀기 시작했고, 답갯수를 아무리 검토해도 맞출수 없어서 그냥 20번도 5번으로 마킹했습니다. 이상태로 21번 문제를 돌입했고, 풀어내는데 성공했지만 21번답까지 마킹하니 답갯수가 더욱 괴랄해졌습니다. 상식대로라면 1번을 찍어야 그동안의 평가원 경향에 맞았지만, 제 자신이 낸 답이 맞다고 생각하고 몇번이나 다시 풀었습니다. 결국 30번은 풀지 못했고, 29문제를 푼채로 수학을 내게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학원 친구들과 밥을 같이 먹는데 저를 제외한 모두가 21번 문제를 답갯수를 맞춰서 1번을 찍었더군요. 정말 답갯수를 맞췄어야 했나 후회를 하면서 3교시 영어를 돌입했습니다.


영어 시간이 되자 다시 치통이 도져서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2단계 진통제를 먹고 시험을 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치통이 가시지 않았고, 욱신거리는 채로 영어듣기를 하면서 미리 빼둔 34페이지 일치 불일치를 풀었습니다. 어떻게 빈칸까지 왔는데 빈칸답이 1211 이 나오고 문장삽입도 두문제가 같은 답이 나와서 몇번이고 돌려봤지만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90점만 넘기를 소망하면서 그냥 OMR을 제출합니다.


마지막 한국사 탐구 영역 시간입니다. 이미 많은 양의 진통제와 우황 청심원을 복용한 상태여서 제정신이 아닙니다. 하지만 치통은 남아있었기에 이번에는 항암 진통제를 반알 잘라서 통안에 넣어두고, 한국사를 끝내고 문제지를 교체하는 시간에 먹기로 합니다. 한국사 시간이 시작되었고, 최저등급만 넘기자는 생각으로 아는 문제를 풀어 나갔고, 남은 20분은 진통제 여파를 줄이기 위해 수면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탐구 시간이 되자 미리 잘라둔 반알짜리 제일 강력한 진통제를 먹었고, 화학시험에 돌입했습니다. 정말 이 진통제는 너무나 강력해서 졸음은 오지 않는 대신 머리가 계속해서 몽롱하더군요. 만약 평소에 박상현이나 백인덕 실전모의고사같이 어려운 문제들로 시간안에 푸는 타임어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완전히 멘탈을 잃고 박살이 났을겁니다. 하지만 평소에 극악의 난이도의 문제들을 시간안에 푸는 연습을 했던 덕분에 3페이지까지 푸는데 8분밖에 소요되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문제들을 시간안에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시간압박이 적었던 지구과학 시간. 여기서는 순전히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엽개념들과 적용 능력들을 묻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동안 꼼꼼히 공부해왔던 지식들을 꺼내가며 다행히 낚시형 문항들을 잘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시험이 끝나고 불길한 마음으로 고사장을 나서서 기다리던 부모님의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며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국어 수학 영어의 답지가 나왔길래 차안에서 가채점을 바로 진행했는데 그 결과는.

국어94 수학(가)96 영어98점 이었습니다. 정말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고생하셨을 부모님도 너무 기뻐하시면서 장하다고, 고생했다고 해주셨습니다. 저의 이 고통을, 진통제를 먹으며 시험본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의대 최저는 어느정도 맞춘 상태였기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혹시 작년처럼 탐구를 또 망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밤 9시에 탐구 채점을 했습니다. 결과는 화학1 47 지구과학1 50 이었습니다. 화학이 시간이 많이 남은 것에 비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진통제를 그렇게 먹고 본 것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글을 쓰는 시점까지도 제가 이 점수를 맞은 것이 현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문제를 풀면서 제정신으로 푼 과목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수능 전날도, 수능을 보는 아침도, 심지어 본령이 친 순간까지 제가 이 컨디션으로 수능을 잘 볼꺼라고 생각치 못 했습니다. 잠을 2~3시간 자고도 수능을 잘 봤다는 얘기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믿습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수능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상황에서도 제가 노력한 것들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어떤 컨디션이 될지 모른다해도, 어떤 컨디션에서도 잘 볼 수 있는 실력을 가꾸는게 가능합니다.


여러분도 해낼 수 있습니다. 저보다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도 많을 수 있습니다. 저보다 많은 햇수를 도전 중일 수도 있겠지요. 사실 저는 이 정도의 결과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크나큰 도움이라는 많은 복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복이 있을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어떤 나쁜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발생하던지 여러분의 페이스를 잃지 마시고 꼭 끝까지 멘탈을 잡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들에 행운만이 있길 바랍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끝내 노력의 보답을 받으실 겁니다!!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한번더 제가 한 얘기가 불편하실분들이 있을거 같아 걱정되는데 죄송합니다. ㅠㅠ 

제가 모든걸 다 겪은것처럼 얘기했네요 더 악조건속에서 고생하시는 분들 응원합니다.!


0 XDK (+100)

  1.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