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두유어베스트 [256574] · MS 2008 · 쪽지

2009-09-29 02:21:06
조회수 7,732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어느 삼수생의 기억)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42477

승리와 성공만으로 우리의 인생이 뻗어 나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평생을 남들보다 앞서가고, 행복한 순간만을 간직한 채 삶을 영위해 나간다면 이 역시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그러나 운명은 우리 인간에게 이러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안고 산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기억의 소유자에게 때론 보다 발전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희망의 원동력으로,
또 때론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을 평생의 좌절과 상처로 남아있다.


우리가 흔히 ‘성공’했다고 칭송하는 인물들, 또는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위인들의 삶을 생각해보라.
누구 하나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고 그 자격을 갖춘 인물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들이 순간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고통의 기억을 발전의 기회로 삼은 사람들이며, 그러기에 그들은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던 것이다.



실패. 그것은 누구나 한번 이상은 겪어야 할 인생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실패. 그것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또 다른 기회이다.
오늘 나는 내 인생에서 겪은 무수한 실패 중 하나이자,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짤막하게 서술할까 한다.




이제는 내 주변의 모든 지인들이 알겠지만, 나는 대학을 위해 남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더 공부한 삼수생이다.
학벌사회, 그리고 학력중시사회 대한민국에서나 볼 수 있는 삼수생.
TV속에서 혹은 책 속에서 늘 공부에 찌든 채 실패의 이미지만을 가득 담고 있는 삼수생.
인터넷 사이트 회원가입을 할 때도 직업란에 ‘기타’로 밖에 쓸 수 없는 서러운 삼수생.
바로 그 삼수생이 2008년 나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2008년, 그 한해는 22년 짧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 전까지 남들보다 조금 더 잘난 맛에 고난 없이, 고통 없이 그렇게 탄탄대로였던 내 인생에 ‘대입’에 관한 두 번의 실패는 실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특히 ‘수능 등급제’라는 제도적 모순까지 겹쳐 생긴 최악의 재수 실패는 당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부터 사회에 대한 분노까지 쓰라린 아픔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 모든 걸 생각 않고서라도 그 때 그 순간만큼은 실패 자체가 맨 정신으로 받아 드리기 힘든 현실이었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5개월간의 엄청난 방황.
그리고 방황의 끝자락에서 맞이한 신문 속 한 광고.




‘학교, 학원, 독서실, 집. 하루 15시간을 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37권의 문제집을 풀었고, 20권의 연습장을 다 썼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버렸던 노트를 다시 찾고 상자에 넣어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문구를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야 말로 진정 또 다른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어쨌든 나는 그렇게 나의 세 번째 대입 도전을 신이 내게 준 마지막 기회이자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뜨거운 인생경험을 가슴속에 채워가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9개월간의 지독한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다.
9개월간 내가 어떤 공부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독하게 했는지는 여기서 자세히 서술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전하고 싶은 것은 그 과정에 있어 돌이켜 보건데 본인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사실 재수생, 삼수생, 장수생도 남들처럼 술 마시고, 인생을 즐기고, 마음 편하게 대학 다니고, 자유롭게 살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괴로운 길을 선택한 건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청춘의 시기에 대학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투자에 대한 결과도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이고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내 인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번 더 원치 않은 ‘결과’를 맞이할 경우에 드는 좌절감의 정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를 넘어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바로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과정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때이다.
아무리 남들이 지켜보고, 입 발린 말을 해도 주어진 순간에 얼마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무서웠다.
원치 않은 결과를 맞이했을 때, 결과를 초래한 과거에 후회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리고 또 다시 어떠한 핑계를 대며 실패한 현실을 변호하고, 타협하고, 합리화하고 있을 내 미래가.......



그 잘난 줄 알았던 내가 목표와 실천의 괴리로 부끄럽게 가장 못난 삼수까지 하고 있는데,
여전히 정신 못 차린 채 똑같은 실수에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한심한 놈이 될 순 없었다.
아니 만약 한 번 더 그런다면 그것은 내 그릇의 크기이고, 나란 놈의 근본적한계로 인정하겠노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물론 그러긴 죽기보다 싫었다.

‘진인사대천명’이야 말로 고작 삼수생 따위의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앉아 공부하고, 한 번 더 깨어 있고, 한 번 더 기도하고.......



얼마나 많은 순간을 이 악물고 자존심을 버려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을 흘리며 지새웠는지,
얼마나 많은 모의고사를 긴장해가며 치러왔는지,
그리고 11월 13일 그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기다림에 몸부림 쳤는지,
아마 같은 경험에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24시간 쉴 새 없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주체 그리고 존재에 대한 괴리감,
인생목표점을 향해 어디선가 열심히 달리고 있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그들 삶의 현재진행형과 대조해보는 내 인생의 작은 방황,
그리고 잇따라 엄습하는 검으스름한 외로움........



생각만큼, 아니 생각한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서럽도록 인정하기 싫었다. 나의 근본적 한계를.
지치다 못해 썩어버린 이 내 속은 미친 듯이 울고 있는데, 스스로의 자존에게 나약한 모습 따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렇게 꾹 참고 하루하루도 버텨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힘든 고난의 과정을 마치고 지금 이렇게 그날의 추억을 미소 지으며 되뇌어 보고 있다.




2008년. 외롭고 어려웠던 21살 인생행로에서 이렇게 삼수생 시절은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나의 21번째 삶의 화폭에 감사한다.
이러한 시련과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한 인내와 용기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된 실패를 통해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견디기 힘든 기다림을 통해 간절함의 진실을 배웠으며,
근거 없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으로 관계에 대한 감사함을 가졌다.
건방졌던 과거가 부끄러웠기에 겸허함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나란 존재의 초라함을 뼈저리게 느꼈기에‘진인사대천명’이라는 위대한 명제를 체득할 수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에서 평생 간직해야할 소중한 진리들을 하나하나 얻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나의 마지막 대입 도전을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절망감 가운데서 배워가는 진리는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원동력이 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다시 한번 역설하지만 결과는 어디까지나 노력에 비례해서 따라오는 2차적인 문제이다.
문제는 평생 후회로 남길만한 과거의 과정 따위는 결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절대적 목적이고 이유인 것이다.
때문에 남들이 나의 과거에 대해 동정의 시선을 갖든, 폄하하는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평생 잊지 말고 가슴깊이 간직해야할 성장통의 한해, 고난의 2008.
중요한 건 이 역시 지나고 보니 긴 인생에 있어 작은 과정 중 하나일 뿐,
22살 푸른 청춘인 나는 과거의 값진 배움을 바탕으로 보다 큰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힘든 기억들을 아름다운 추억들로, 인생의 값진 경험들로 승화 시킬 것이다.
내 인생의 청춘의 시작은 2년 늦게, 하지만 그만큼 2년 깊게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

대학에서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기억'에 대한 짤막한 글쓰기과제로 썼던 글입니다.
쓰면서 작년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작년 이맘 때 엄청 힘들었었는데.......
오르비에 올라와있는 수기나 격려 글 보며 다시금 마음잡고 공부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수험생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려봅니다.
진인사대천명.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영은이 · 305611 · 09/09/29 10:10

    감사합니다 독학생 엄청나게 공감 합니다

  • 두유어베스트 · 256574 · 09/09/30 01:38 · MS 2008

    감사합니다. 남은 기간 마무리잘하셔서 좋은 결과 있길 진정바랍니다 화이팅.

  • 왕따쟁이후니 · 275958 · 09/10/01 15:39 · MS 2009

    짧은 글이지만 긴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

  • 싸이코 · 234569 · 09/10/01 16:52

    盡人事待天命.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드는 순간 까지 외적 상황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수능공부에만 전념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고시원 들어온지 2주쯤 되어가네요. 타고난 호모루덴스라고 하죠, 고통을 해학으로 바꿔버리는 이 천성에 괴로움을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수험생의 가장 큰 고통은 다름이 아니라 불안감 이었어요. 불안감. 그 불안감을 갖고도 進 할 수 있도록 힘주는 글. 감사히 잘 봤습니다.

  • 국자별 · 137891 · 09/10/30 16:07 · MS 2006

    와 멋지다

  • 연세경영10 · 241024 · 09/10/09 00:40

    멋있네요.. 소름이 돋습니다. 재수하고 있는 재수생입니다. 멋진글 감사합니다.

  • 꿈꾸는다락방 · 260469 · 09/10/17 20:30 · MS 2008

    고대 맞죠 ?

  • HIDEOº · 227712 · 09/11/18 03:30 · MS 2018

    같이 공부했던 친구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켜봤기에

    그의 글이 빛나보인다.

    고생많았네 친구 ㅋ

  • threshold · 316598 · 09/12/01 00:15 · MS 2009

    멋집니다

  • Josh · 274200 · 09/12/11 12:53 · MS 2009

    진짜 감동받았습니다ㅠㅠ 초반에는 정신적 나태함으로 중후반에는 불안감때문에
    한심하게 재수 실패했는데 정말 공감되네요. 불안감으로 망한걸 늘 합리화했고 '그래도 나는 앉아서 공부했다'는 걸로 우기다가 최근에야 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늘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집중력을 잃었던것이 잘못중의 잘못이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재수 실패하고 이제 삼수 하려 하는데 정말 보고 감동 많이 받았어요. 이번에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확신을 갖고 노력하려 합니다. 힘낼게요ㅠㅠ

  • 공뇽 · 315605 · 09/12/19 13:38 · MS 2009

    아- 저도 삼수했는데
    뒤돌아보면 후회없는 시간들이 되었기를..

  • 지금이그때다 · 295889 · 09/12/24 00:01

    평범하지만 진리? 이네요.... 삼(반)수 생으로써...
    잘 보구 갑니다

  • 하얀물안개^^ · 324726 · 09/12/30 23:28 · MS 2009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 [FireDS]저스트두잇 · 296011 · 10/01/17 18:29 · MS 2009

    소름돋네요

  • 강심장 · 278476 · 10/01/23 18:22 · MS 2009

    반수를 실패하고 삼수하려는 학생입니다 ... 글 정말 잘 보았습니다 .. 존경스럽습니다 ..

  • ISME · 249970 · 10/11/26 22:14 · MS 2008

    감사합니다.

  • FZeW7pwk8vfCEO · 600176 · 17/03/04 20:16 · MS 2015

    좋은 글 올려주셔서 정말감사합니다

  • 그땐그랬지 · 1419753 · 25/10/31 23:51 · MS 2025 (수정됨)

    글쓴이 입니다. 공인회계사로서 여러 경험을 해오면서 최근에는 개업도 하고, 유치원 입학을 앞둔 어여쁜 4살 딸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인 22살 시절의 저의 부끄러운 고백이 16년이 지난 38살 그 어떤 조언보다 반성 반 격려 반 오묘한 마음을 갖게하네요.

    계속 열심히 살고있고 , 그 시절보다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