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도방실차단 [37808] · MS 2003 · 쪽지

2005-12-21 1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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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후기2]신이 있다면 묻고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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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약 한달 뒤, 나는 아예 원서를 쓰는걸 포기한채 서울로 올라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치동'이라는 학원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뭐랄까...음식점 숫자보다 학원 숫자가 더 많은 그런 기이한 곳이었다.
주변 친척들에게 몇가지 정보를 얻어 학원을 몇군데 등록했다. 왠지 나만 그 사람들과 다른것 같았다.
한 손엔 컵라면, 한 손엔 영어 단어장을 들고 학원에 들어가는 여학생도 보았고,
앞으로 입시가 어떻게 될꺼라는둥의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초등학생도 보았다. 그걸 이상하게 보는건 왠지 나뿐인것 같았다.
그래,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리고 몇몇 동기들이 재수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적어도 그 학생들보다는 앞서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다른 동기들이 평소의 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때, 나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라'군의 최상위 학원 단일계열 모집에 합격했다.
그곳은 또 다른 생활이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겪어보는 남녀합반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난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친구를 빨리 만든게 오히려 좋지 못한 일이었다고나 할까. 재수 초기에 학생들이 갖는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모두 내가 받아줘야만 했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고 일일이 들어주었다.
내가 나를 절제하는 능력이 좀 더 늘어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남들이 PC방에 가서 아침햇살을 받으며 나오고 있을때, 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시간조차 아껴야 한다며
제일 먼저 학원에 들어가 그 날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가끔가다 학원 같은 반 아이들이랑 게임을 하러 간다거나, 노래방을 간다거나, 술을 마시러 간다는것
- 사실 안하는게 정상이지만 재수하러 서울 올라간 지방 학생들은 전부 한다 -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만큼 자신을 절제했다.

처음엔 자연계열 800명의 학생들중에 600등대였던 성적이 거짓말처럼 올라가기 시작했다.
3개월 후 처음으로 상위 150명 안에 들어간 이후로 내 성적은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점점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아이들도 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다른데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9월 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점수를 매기고 나 자신도 믿을수가 없었다. 493점.
매번 전교1등만을 도맡아 하는 어떤 사람들에겐 이게 별게 아닌듯 보이지만, 나는 그 사람들처럼 뛰어나지 못한 학생이었다.
채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때까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부모님도 전화를 받고 나서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이제 모든것이 다 순조롭게 해결돼고 있는듯 보였다.
나는 또 그렇게 11월까지 고3때와 별 다를 것 없는 생활을 이어갔다. 비록 11월까지 성적이 좀 추락하긴 했지만, 그정도면 지방 의대는 갈 수 있었다.
고3때, 의대는 거의 포기해야할 지경까지 이른 것보다 상당한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 몇일전 집으로 내려와 숨을 좀 고르고 2006학년도 수능시험장으로 들어갔다.

한번 수능을 보았기 때문에 수능장에서 긴장을 안하리라고 생각한건 완벽한 오류였다.
평소 왠만한 일에는 긴장을 잘 안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날 밤에 우황청심환까지 먹어야 할 정도로 몸이 굳어있었다.
가져간 자료는 거의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교실 안을 왔다갔다거렸다. 고등학교 아는 후배들이 같은 교실에 3명이나 있었다.
거미줄같이 머리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1교시를 시작했다.

거의 몸이 경직됄정도로 긴장했던것과는 달리, 언어영역이 술술 풀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제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언어영역을 마지막에 확인까지 하면서 '잘 봤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엔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누가 찌를 걱정도 없었다. 그러다 2교시에 문제가 생겼다.
12시20분까지인 2교시를 12시 40분으로 착각해 종료령이 치고 나서 OMR카드를 마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도 별거 아니라면서 넘겼다. 그리고 4교시까지의 시험을 또 마쳤다.

올해도 수능 끝나고 나오면서 나눠주는 1,2교시 답을 받지 못했다. 결국 집에 가서야 답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걱정되시는지 일찍 퇴근해 계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험표 뒤를 보고 하나씩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교시 언어를 매기고 나는 집에 떠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모의고사를 보면서 한번도 맞아보지 못한 언어에서 만점이 나왔다.
물론 요번 시험에서 만점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만, 그땐 진짜 부모님을 끌어안고 온 가족이 방방 뛰었었다.
수학은 92점, 좀 주춤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려웠다는 생각에 잘 했다고 봤다. 외국어는 생각지도 못했던 듣기에서 틀려 96점.
문법을 다 맞은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과학탐구과목 답이 올라오지 않았다.
1시간쯤 기다려도 답이 올라오지 않아서 친척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부모님은 계속 싱글벙글이셨다. 그래도 의대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했다.
재수학원 담임선생님한테 언수외 결과를 알려드리자 언수외가 그정도면 480점대는 나오겠구나, 수고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약간 들뜬 마음으로 과학탐구를 채점했다.

결과는 입이 벌어지게 할 정도의 낙담이었다. 과학탐구에서 30점이 넘는 점수를 깎이고야 말았다. M모 사이트에 채점해보니 전부 2등급이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건, 제일 자신있게 푼 과목에서 제일 점수가 안나왔다는것뿐.
그래도 이것저것 짜맞추기를 반복해서 몇군데 지원 예상까지 해 두고 20여일을 보냈다.
이번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정상적인 '수능 끝난 학생의 일과'를 지켜가고 있었다.
수능 성적표가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수능 성적 발표일에 예전 담임선생님한테 연락까지 드리고 당당하게 학교에 들어갔다.
벌써 몇몇 동기들중에는 삼수를 준비하러 올라갔다는 소리도 들렸다. 나랑은 별 관계 없는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처음엔 내 성적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수 동기중에 나와 동명이인이 있었는데, 그 학생의 성적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한테 다시 확인하는순간, 주민등록번호가 분명이 내 것이었다. 수학 5등급.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학교를 빠져나와서 KICE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성적 오류를 호소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는데 안심했다.
분명 이정도 숫자가 잘못됀거면 채점하는데 뭔가 오류가 있었겠지 하면서 다음날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내 OMR카드를 보기 위해.

처음에 갔을때는 OMR카드 판독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5번 이후로 객관식에서 전부 X표가 쳐 있었다.
밖에 몇몇 학생들이 모여서 얘기하고 있을때, 난 분명 수정테이프 오류라던지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OMR카드를 직접 봐야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시간정도 후에 OMR카드가 도착했다. 그 전까지 밖에 있던 학생들은 채점 오류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분명 그건 자기합리화였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생각이었을거다.\'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믿을 수가 없었다. 5번을 공란으로 비워두고 그 다음부터 답이 하나씩 밀려있었다.
눈물이 솟구쳐나왔다. 그 추위에 눈물 콧물 짜면서 계속 울었다. 이게 운명이라는건가..
명백한 내 실수였지만 나를 선택하지 않은 신을 원망했다. 이런식으로라도 당신이 선택한 아이에게만 영과을 주어야 하는겁니까...
집으로 돌아와서 축 가라앉은 분위기를 실감했다. 병무청에서는 입대 날짜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왔다.
점점 문제만 늘어가고 있었다. 잘 나왔냐고 물어보는 전화에 부모님도, 나도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틀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집이 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삼수를 권하셨다. 도무지 자신감이 없었다.
수능 공부에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이제 수학,과학은 단원 제목을 외울정도로 토악질이 나왔다.
일단 군대문제도 해결할겸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학교 이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그저 답답했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건, 나보다 아버지께서 더 힘을 내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때문이었다.
평소같으면 아침밥도 드시지 않고 출근하실분인데...그래도 상심해있는 아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시는게 눈에 보였다.
누구보다도 힘들어하실 분인데...일단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병무청에서도 스물 한살까지는 대학 재학증명서가 없어도 병역 연기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서울로 학원을 알아보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평소같으면 금방 잠이 들텐데, 도무지 자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까..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래...지금 어디쯤이냐"
"예..올라가고 있는 중이예요"
"이제 좀 괜찮은거냐.."
"......예.."
그리고 나서 아버지께서 좀 머뭇 하셨다.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신게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니가 나쁜길로 빠지든, 교도소를 가든 평생 널 옆에서 지켜줄 사람이 있다는걸 생각하라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다해서 널 지켜줄 사람이 있다는걸 생각하라고. 그리고 나서 울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난 아버지께서 그렇게 서럽게 우시는걸 처음 들었다. 그저 눈물이 났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도 엉엉 울었다. 정말 서러웠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식으로 꼬이는건지.
부모님께 정말 죄송스러웠다. 죽을 죄를 진것같이 부끄러웠다. 그래, 불효자였다.
부모님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만드는 쓸모없는 불효자였다. 목이 메어서 뭐라고 더 말씀하시는데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전화를 끊고 서울로 도착할때까지 계속 울었다.


나는 이제 삼수생이다. 현역들이 들으면 '쟤 공부 지지리도 못했나보다'하고 생각할만한, 그런 삼수생이다.
친구들한테 부끄러워서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친척들 앞에도 맘놓고 모습도 드러내지 못하는 그런 저주받은 삼수생이다.
이미 2년이나 남들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혹시라도 이걸 읽은 현역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미 전국에 나같은 사람이 수십, 아니 수백명은 넘게 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제 됐다'라고.
물론 이제 난 당신들을 자신있게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다. 언제 또다시 내 인생에 마(魔)가 낄 지 모르는 일이니까.
너희들이 힘들다고 주춤거리고 있을때, 나같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승부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오르비 회원이라면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 근처 국립대(물론 지방 기준이다)만 붙어도 좋아하는 그런 얼뜨기들고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라고 불리고 있는 사람정도라면, 언제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생활을 해라'라고 말할 정도의 입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당신들보다 2년이나 더 인생을 경험했다는 것으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당신들의 '경쟁자'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꺾어야 하는 사람 중 한명인것이다.
재수생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재수할때 처음 들었던 소리가 (우리 학교출신 4수생 서울대 의대생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물론 간접적으로.)
재수를 하면 사랑을 알고, 삼수를 하면 인생을 알고, 사수를 하면 수능 경향이보인다라는 소리였다. 그땐 코웃음을 쳤지만, 지금에 와서야 인정하게 됐다.
사실이다. 적어도 '재수'부분에서는. 재수생들에게 하는 얘기지만, 재수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은 전체 재수생중 한 20% 정도다.
나머지는 이전해 자기 성적과 비슷하게 나오거나 오히려 떨어져서 나온다.
미안한 소리지만 재수하면서 점수가 4~50점 정도 오르려면 공부 이외의 주변과는 거리를 멀리하는게 좋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다른 학생들도 다 그러는데 뭐'라고 단 한번이라도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단 1시간이라도 다른길로 빠지는 순간 작년 성적이라도 받기 위해서 노력해라.
사는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성공한 사람이 빛나는 일도 없겠지 않겠는가. 흔히 어른들이 말씀하는 '성공만 해봐라. 모든게 다 끝난다.'라는거, 진짜다.
300일 못참으면 나처럼 또 1년이 날아간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한 인생인지.
난 또다시 새해를 수능과 씨름하면서 맞기 위해 학원으로 간다. 이제 또다시 1년동안의 내 달력은 모조리 검정색일 것이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 수능'성공'후기 3편을 쓰기 위해 이자리로 올 날을 기다리면서, 다시 펜을 잡는다. 당신들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
* lacri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2-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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