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대략..GG [29281] · MS 2003 · 쪽지

2004-07-16 18:11:36
조회수 2,325

[나의 재수생활] 5/5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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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점점 고역이었다.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견딜수 없을만큼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수술 날짜는 4월 22일.

날짜상으로는 내일이 약속한..2주째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내 상태?

말도 못할 정도였다.



휠체어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못옮겼고,

화장실은, 목발에 기대어서

그것도 목발을 다른 사람이 부축해주면서,

행여나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조심해서

5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

땀 뻘뻘 흘리며 5분동안 다녀와야만 했다.

그리고 일어날때마다 느끼는 무릎의 고통.

그것은 예사 고통이 아니었다.

무릎을 굽히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무릎이 일자로 굳어버린다고 담당의사가 그랬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무릎을 굽히려고 하면

무릎안에서 허벅지뼈와 정강이 뼈가 엇갈리는 느낌이 나면서

투둑 거리며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수술 잘못된거 아닌지..그런 불안감이

시종일관 나를 괴롭혔고,

그런 불안감은 재활 의지마저 없애는데 충분하였다.


그렇게 어느때부턴가 다리 올리는 운동을 기피하였고,

그저 눈에 초점만 멍한채로..

링겔에 떨어지는 약을 쳐다보거나....

티비를 보고 있었을 뿐이다..

공부?

그런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냥..지금은 다리 아픈게..이런 상태인 내가

너무 화가 났을 뿐이고,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도 화를 내셨지만,

그런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냥 멍하니,미친사람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담당의사는 자꾸 걸어보란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 휠체어없이 목발로만 어떻게 걷느냐.

당신들이 안아파봐서 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단 한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서울에 혼자 입원해있는 내가 외로울까봐,

그리고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 되셔서,

직장이 비는 날을 골라서, 두분께서 교대로 서울에 올라오셨다.

때문에 거의 혼자 있는 날은 없었다.

말이 교대로 서울을 들락날락 한거지..

광주와 서울을 오가는데는 왕복 7시간 가량..

이 시간을 소비하면서 이런 아들의 무의미한 나날들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부모님께 짜증을 내었고,

그러다보니,부모님이나 나나 신경은 날카로워져만 갔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한 또 다른 한가지.

분명히 학원에서 나오면서, 나는 10장이 넘는 포스트잇에

내 전화번호를 돌렸고,

그리고 일부 몇명에게는 꼭 문병갈께 라는 말까지 들으며,

인기(?)라는 것을 실감하며 화려한 입원을 했다.

나름대로 나는 인간성 좋아서, 대인관계 좋은놈.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착각에 더불어, 성적까지 잘나왔으니

혹시 나는 공부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은녀석?

이라는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하였다.

하지만.......단 한명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고

단 한통의 안부전화도..

내 핸드폰을 울리지는 않았다......

눈물이 핑그르르르 돌았다.

지금까지 착각해왔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비참하게, 초라하게, 그리고 외롭게 만들었다.

콤비로 몸까지 그렇게 아프니까..

정말로 살기 싫다 라는 말이

진정으로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 믿었던 인간관계, 신뢰 같은것..

그런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면서..

사람을 믿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시기를 기점으로,

내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

사귀는 법도 많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





공부를 해야겟다는 생각도 수십차례 하였다.

하지만 이때 결정적으로 내 발목을 잡았던것이

모의고사...

그놈의 4월 17일 모의고사였다.

이따금 부모님께서 공부 안하냐고 물어보시면

\"에이, 4월에 1등났잖아~, 그정도 베이스 있으면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래도 참 다행이다^^ 그때라도 1등나서요 ㅋㅋ

그때 1등이라도 안낫으면 지금 얼마나 불안했을까?

안그래?ㅋㅋ\"


차라리..

1등을 안났더라면, 더 악에 받쳐서 공부를 했을텐데

라는 후회감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애써서

부모님을 안도시키기도 하였고..그리고 나도 그런식으로 내

내 자신을 애써서 안도시켰다...



.........................


특단의 조취가 필요했다.

의사랑 담판을 지어서라도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그리고 언제 퇴원해야할지, 언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될지를 물어봤어야했다.

그 필요성은 나나 부모님이나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5일은 휴일이라서 주치의가 출근하지 않았다.

6일...

6일을 기다렸다.

무책임한 자식들..

뭐? 2주면 된다고...?

.......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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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월로 넘어왔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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