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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_Life [18155] · 쪽지

2004-04-02 11: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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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외교학과 학생의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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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3학년 때 하지 뭐!”3학년 올라가서 공부하겠다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조금은 황당한 구석이 없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고3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나름대로 가졌던 생각이 있었다.

‘1, 2학년 때에는 좀 놀아도보고 본격적인 공부는 3학년 올라가서 해보자.’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차피 3학년 되면 죽도록 공부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여유 있을 때 노는 게 낫다!’ 이런 심정이었다. 물론 논다는 것이 마냥 시간만 흘려보내자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생활, 대학입시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정말 해보고 싶은 것들, 다양한 것들을 접하면서 좀더 의미 있는 고교시절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는 입시경쟁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중학교 때까지 그럭저럭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던 터라 ‘나중에 조금만 노력하면 되겠지……’라는 자만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학교 때의 실력만 믿고 자만했던 것이 말 그대로 허세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등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중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은 이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들어온 학생들이었기에 나름대로 어깨가 무거웠던 것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면학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은근히 공부를 강요하고 점수에 따라 학생을 평가하는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벌써부터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갔고, 학교에서는 반강제적으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시켰다. 그러나 나는 방과후에 친구들과 놀러다니거나 잡다한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특별히 예습이나 복습을 하는 일도 없었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수업시간에만 한정될 뿐이었다.그러다 첫 수능 모의고사와 중간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수능 유형의 모의고사는 처음 접하는 것이니 만큼 내 실력을 테스트하는 기분으로 보았는데, 결과는 266점이었다. 이 정도면 특별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담담하게 넘어갔지만, 중간고사 결과는 약간 당혹스러웠다. 과목 평균이 75점이었는데, 기대에 못 미친 평균 점수도 그랬지만 수학이 28점이라는 사실에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나는 그제서야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요행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부에 대한 의욕은 더 커지지 않았다. 수업 내용이 어렵다보니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공부에 흥미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와 수학의 경우, 선생님은 내용을 이해하는 몇몇에게 맞추어 수업을 하는 듯했고, 나는 도무지 이해를 못해 수업시간에 멍하게 있거나 조용히 잡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결국 1학년 내내 전체 과목 평균은 70점까지 떨어졌고, 영어는 50점대, 수학은 30점대를 맴도는 상황이 되었다.

수능 모의고사도 240점대로 떨어졌는데, 특히 수학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찍는 것이 훨씬 많아 대체로 20∼30점을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었고, 그냥 다 찍어버린 적도 있었다.이대로 가다가는 계속해서 성적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2학년에 올라가서는 나름대로 공부에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예습, 복습이야 할 턱이 없었으니, 수업이 재미없더라도 일단은 들어보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렇게 수업시간만이라도 내용을 따라가보려 노력하니 기억에 남는 것도 많아지고 어려운 부분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영어 단어도 이전처럼 한 번만 보고 넘어가기보다는 따로 메모해두고 한 번이라도 더 보니 뭔가 머릿속이 ‘채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첫 시험에서 간신히 80점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고, 생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공부에 대한 의욕도 단순히 ‘자존심’을 유지하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동기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공부를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생겨나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고민을 주고받기도 하고 관심 있는 책들을 읽으며 무언가를 찾아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쉽게 풀릴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실마리를 주지 않는 현실을 원망하기도 하였다.그렇게 혼란을 느끼면서도 한 가지 재미를 붙인 일이 있었다. 1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겨끔내기’라는 문예부 활동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시 쓰는 방법이나 배워볼까’ 하고 들어갔던 곳이었는데, 1학년 가을 축제에서 <문학의 밤>이라는 공연을 하고 나서는 써클 활동에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문예부 활동은 평소에 시나 소설, 수필 등을 쓰고 축제 때 다양한 공연을 통해 작품발표회를 하는 것으로, 그만큼 노력이 많이 들기는 하였지만 직접 쓴 글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낭송하고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데서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의 공연과 그것이 끝난 이후 무대에 남겨진 여운을 맛보기 위해 부원들과 많은 연습을 했던 시간들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왔다. 2학년 가을, 후배들과 부대끼며 공연을 멋지게 해낸 후 뒷풀이 도중 갑자기 왠지 모르게 ‘국문과에 가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이전까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일이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문예부 활동과 같은 일을 계속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든 막연하게나마 대학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찾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공부하는 것도 단순히 자존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왕 하는 것이라면 보다 ‘잘’ 하고 싶다보니 조금씩 공부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국사, 세계사 등 무엇을 안다는 것 자체로 재미있는 과목들도 생기면서 공부라는 것이 꼭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2학년 기말고사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그러나 학교 성적이 올라도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가고 싶은 학교, 가고 싶은 학과에 가기 위해서는 수능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수능 성적을 올려야 하는 것은 하나의 과제였다. 하지만 기초가 부족한 나로서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고 2학년말까지 270점대에 오르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가장 어려운 것은 수학이었다. 1학년 때는 공통수학을 거의 찍다시피하였고, 2학년 올라와서는 수학1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모의고사를 보면 언제나 20∼30점대를 맴돌았다. 다른 과목이야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 되었지만, 수학만큼은 아예 포기하거나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집안 형편상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에 그 어려운 수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과목들에 치중하기로 마음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행운이 찾아왔다.3학년 선배들의 수능 결과가 발표되던 날, 세상이 떠들썩했다. 시험이 쉬워져서 평균 30∼40점이 올랐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앞으로 어려운 수능을 지양하고 교과서만 가지고도 풀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를 조정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 ‘그렇다면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이 쉬워진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과서만 가지고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나 하는 의구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면서 낙서밖에 없는 나의 수학교과서를 집어서 훑어보았다. 확신은 없었지만 ‘나도 한번……’ 하는 모험심이 발동하였다.

결국 수학에 도전하기로 했다. 정말로 교과서만 풀어보기로 했다. 교과서조차 이해하지 못해 쩔쩔매던 나로서는 교과서만 마스터하면 무언가 길이 열릴 것만 같았다. 교육부 방침을 완전히 믿기는 어려웠지만 속는 셈치고 도전해보기로 하였다.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1997년 겨울, 겨울방학은 고스란히 공통수학과 씨름하는 데 보내야 했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수능문제를 많이 풀어봤자 실력이 쌓일 리 없다고 생각하고, 방학 동안 수학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어떤 날은 여러 장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장도 못 넘길 때도 있었다. 정석에 나와 있는대로 이렇게도 풀어보고 저렇게도 풀어보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교과서와 정석을 번갈아가면서 풀어보고 한 부분의 내용이 이해되었다고 생각되면 그 부분에 대한 문제집을 풀어보는 식으로 계속 반복해나갔다.

그렇게 하다보니 수학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는 듯했다. 이해가 되다보니 자신감이 붙었고 점차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지금까지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던 수학도 자꾸 쳐다봐주니까 내 것이 되는 듯했고, 그렇게 미워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어느덧 방학이 끝나갈 즈음, 그렇게 두꺼워 보이던 수학 교과서도 끝이 보였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홀가분했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고 나니 내친 김에 수학1도 끝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봄방학이 시작되면서 공통수학을 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교과서와 정석, 연습장과 문제집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장 한 장 넘겨나갔다. 수학1은 다행히 수업시간에 들어놓은 것이 있어서 공통수학보다는 일찍 끝낼 수 있었다.

다른 과목도 아예 안 할 수는 없어서 조금씩 하긴 했지만, 고스란히 수학공부로 보낸 방학이었다.그렇게 겨울방학과 봄방학이 끝난 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의 손길이 스쳐간 수학 교과서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그동안 수학이라면 지레 겁먹고 고개부터 휘저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막상 마음먹고 해보면 안 될 것도 없는 것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렸다면 이런 뿌듯함은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 끙끙대긴 했지만 교과서를 한 번 다 풀어보았다는 경험이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까짓 거, 교과서도 다 봤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 하면서 한번 잡은 문제는 완전히 이해가 될 때까지 놓지 않았다.그렇게 수학이라는 콤플렉스를 자신감으로 바꾸어놓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별다르게 고민할 것은 없었다. 중학교 졸업할 때부터 가졌던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남았다. 1, 2학년 때 친구들과 후회 없이 놀기도 했고,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좋은 경험을 얻기도 했다.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고 보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내키는 대로 읽기도 했다. 이제 ‘지옥 같은 고3’이 되었으니 남은 시간 동안은 다른 것을 잠시 미루고 눈 딱 감고 공부에 열중해보기로 마음을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다지 지옥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다행인지 3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300점을 넘겼다. 수학도 교과서를 본 효험이 있었는지 40점이 넘은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한결 쉬워진 모의고사에서 수학은 50∼60점대가 유지되었고, 다른 과목들 점수도 조금씩 오르는 것이 보였다.

2학년 때까지 80∼90점을 오가던 언어영역과 수탐II도 100점대를 유지하였고, 외국어영역도 전반적으로 향상되어 70점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불볕 같은 여름이 물러날 즈음, 꿈에 그리던 모의고사 360점대에 진입하는 기적 같은 일도 벌어졌다.시간은 가을로 접어들고 날씨도 점차 싸늘해져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그동안 보아왔던 내용들을 잊지 않도록 다시 한번 정리하는 데 쏟기로 하였다. 새로운 문제, 어려운 문제를 풀기보다는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긴장은 유지하되, 마음 편안하게 먹고 하루하루를 보내기로 하였다. 학교에서는 시간이 나는 대로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고 집에 와서는 교과서를 훑어보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그림 그리듯이 잡아가는 데 시간을 보냈다. 모의고사 점수가 그럭저럭 360점 안팎으로 유지되는 것을 보면서 안도감이 들기도 하였다. 수학에는 각별히 신경을 써서 시간을 조금 더 투자했다.

그 결과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수학 80점이라는 믿기지 않는 경험도 선물처럼 받게 되었다. 비록 진짜 수능에서는 60점대를 기록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수능 치는 날이 다가왔고, 전날 아무 생각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약간의 긴장감과 편안한 마음가짐 속에 수능을 무리 없이 치를 수 있었고,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애초에 나에게 대학이라는 목표를 심어주었던 국문과에는 가지 않았다. 3학년 때 ‘정치’ 과목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전부터 보아왔던 잡다한 ‘사회과학 서적’의 영향으로 또다시 막연하게 사회과학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에 목표를 수정하였다.목표라는 것은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어느 순간에는 크든 작든 적절한 목표를 잡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감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내가 수학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드는 것도 절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이 글을 읽는 후배들도 공부는 왜 하는지,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많이 질문해보기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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