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 [143] · MS 2002 · 쪽지

2003-02-08 00: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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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3. 고2 :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다 (2000.12~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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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제가 쓸 글은 이렇게 구성됩니다^^





[1. 고등학교 생활을 갈무리하며]

1. 들어가는 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번지
2. 고1 : 바보같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 (2000.2~2000.11)
3. 고2 :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다 (2000.12~2001.10)
4. 고3에 들어서며 : 신은 축복을 내릴 사람에게 고통을 예비한다 (2001.11~2002.2)
5. 고3 초기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002.3~2002.6)
6. 고3 중기 : 실패는 결코 한번만 찾아오지 않는다 (2002.7~2002.9.3)
7. 고3 후기 : 네 앞에 놓인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라 (2002.9.3~2002.11.5)
8. 수능시험장에서 :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장 제16지구 1시험장, 10시간의 전투 (2002.11.6)
9. 수능 후 : 너는 천재가 아니라 바보다 (2002.11.7~2002.12.26)
10. 새출발 : 가지 않은 길 (2002.12.27~  )




[2. 나의 수능 공부법]

1. 개관 : 무계획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2. 언어영역 : 지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3. 수리영역 : 실수도 시간도 여백도 남김없이 불태워라
4. 사회탐구영역 : 50% & 50%
5. 과학탐구영역 : 완전문돌이의 좌충우돌 과탐공부
6. 외국어영역 : 결코 쉽지 않은 외국어




[3. 남김말]

1. 공부의 가치관 : 수능공부를 왜 하는가?
2. 진로의 가치관 :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어퍽섭섭하오
3. 여러 가지 이야기 : 추억이라는 상자의 작은 열쇠꾸러미를 풀며










겨울방학이 오고 학원 스케쥴은 더 빡빡해졌다. 기본으로 잡혀 있는 종합반 수업은 물론이거니와 영어 수학 단과 (영어는 텝스 공부였고 수학은 실력정석 풀이였다. 물론 수능형과는 매우 거리가 먼 수업이었다), 국어 고전 공부, 논술, 공통과학 통합강의, 토익 등 정말 가지가지 공부를 했다. 아침 8시에 집을 나가서 밤 9시 30분에 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건질 것은 사실 거의 없었다. 수업이 잦아지다 보니 너무 지루해졌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이 무렵부터 좋아하게 된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학원에서는 수업을 제대로 받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신경쓰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이 시절에는 염색도 했었다. 뭐 평범한 밝은 갈색이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대단한 탈선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겨울방학 동안 제대로 된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매일 컴퓨터를 켜고 놀기에 바빴고 학원수업은 그야말로 시간 때우기였다. 일본 애니나 피아노, 축구 등과 같은 다양한 활동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2월에 기말고사를 보았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교등수는 한 자리 밀려나서 2등이 되었다. 반 배정 역시 우리 학교는 "2학기 과목평균점수" 만을 반배정의 기준으로 쓴다는 이상한 원칙으로 2반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때 1등을 했던 놈은 지금 옆건물인 경영관에서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문이과를 놓고도 갈등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여느 집 못지않게, 아니 여느 집보다 훨씬 더 강한 편이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님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이과에 가는 것을 강력히 바라셨고 나는 내 적성이 중요하다며 문과로 가기를 희망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고, 나는 의대가기는 죽어도 싫다고 했기 때문에 (의대 방면의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오르비와는 가장 거리가 멀었어야 할 인물일지도^^) 이 일을 가지고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결국 내 뜻대로 문과에 진학했고, 2학년이 되었다. 선행학습 상태는 엉망이었다. 언어영역은 여전히 문제집 한권 안 푼 상태였고, 외국어영역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문법, 듣기, 독해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끝내 놓은 게 없었다. 수리영역은 더 심각했다. 가장 중요하다는 도형의 방정식의 경우 나는 교과서 이상의 난이도를 풀어 본 적이 없었고, 학교에서는 삼각함수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엽기적이지 않은가? 수열, 극한의 정석문제는 계산의 압박과 귀차니즘으로 포기 일보직전이었다. 사탐 과탐은 복습 한번 제대로 해 보지 않았다. 단지 과탐은 모의고사 문제를 5~6회 정도 풀어 본 것이 다였다. 학원강사들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손주은, 이범, 이효상, 조진만, 한석현 등 고2, 고3들은 다 알고 있는 학원강사들 이름을 그 때는 전혀 몰랐다. 디딤돌이니 블랙박스니 신사고니, 다 이름만 들어봤지 한권도 사본적이 없었다-_-;;



고2때 담임은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반장에게 매우 막중한 임무를 맡기는 타입이었다. 나는 환경미화, 체육대회, 조회 종례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했고, 공부는 정말로 내신 이외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의 공부 잘 한다는 아이들이 내신에만 몰두하던 시절이었고, 정규시간표에 국어 수학 사회 같은 비중 큰 과목 대신 교련이나 상업, 한문, 독어 같은 과목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과목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체육을 죽어라고 연습했다. 덕분에 그때는 공부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시야도 아주 한정되어 있었고, 수능이 다가온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나는 건방지게도 "선행학습은 득이 아니라 독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수학도 학교 진도를 따라가는 선에서만 적절하게 마무리했다. 출제범위가 정해져 있는 다른 과목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보충 수업 같은 것은 학교에 원래부터 없었고, 거의 전교생이 전혀 수능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니고 있던 종합학원에서도 수능에 대한 대비보다는 내신 대비에 열심이었다. 그래서 내신 성적은 괜찮게 유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 나군 입시 전형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차후에 찾아오게 될 대가는 너무도 거셌다)



2학년 여름방학 때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LA에 살고 계시는 선배님들 댁을 찾아뵈는 7박 8일 코스였는데, 그 이후로 내 자세는 더욱 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공부보다는 놀러 다니기에 바빴고, 신청해 놓았던 사탐 과탐 학원 강의도 대충 때워넘기기 일쑤였다. 우연히 이 때 참가한 성균관대학교 전국고교논술대회에서 은상을 타긴 했지만, 이는 나의 돼먹지 않은 자만심만 키우는 꼴이 되었다. 2학기 때는 음악에 미쳐 살았고, CD를 열심히 사 모았다. 다른 세상이 열린 듯 했다. 내신에까지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에 공부는 더욱 더 적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고, 수능 모의고사는 여전히 370점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컴퓨터에 열중했고, 할 수 없이 숙제만 해 가는 정도였다.



그리고 2002년 수능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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