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 [143] · MS 2002 · 쪽지

2003-02-06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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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2. 바보같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 (2000.2 ~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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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글을 오늘에야 쓰게 되는군요. 사실 최근 구정과 신입생환영회의 압박으로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부담감이 심했고 그것 때문에 글이 자꾸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밑에 보니 운영자님의 수기가 올라와 있더군요. 저는 운영자님만큼 극적인 수험생활을 겪지도 못했고 운영자님만큼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은 없어서 수기를 쓰는데 지금 상당히 부담이 되는군요-_-;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아래부터는 존칭을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쓰기에도 그 편이 더 편한 것 같고 정리도 훨씬 잘 되거든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중학교를 5등으로 졸업했다. 그 당시만 해도 유난히도 못하던 체육 덕택-_-에 (고등학교 때는 죽어라고 연습해서 나름대로 점수를 땄지만 중학교 때는 그것도 귀찮아서 안했었다.) 등수가 쫙쫙 밀렸던 편이었는데, 그래서 고등학교는 8등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항상 아들은 최고여야만 한다고 여기시는 어머니는 당연히 (?) 실망하셨고, 여지껏 선행학습이라고는 성문기본영어 한 번 본 게 다였던 나는 갑작스럽게 공부를 시키는 어머니가 어지간히 싫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불안했다. 국어 영어 사회는 어떻게 하면 고등학교 공부가 커버될 것 같기도 했는데, 수학은 정말 죽어도! 하기 싫은 과목 중의 하나였다. 그나마 2월달까지 해놓은 것이라고는 공통수학의 정석 7장까지가 전부였고, 다른 과목은 손조차 대고 있지 않던 상태였다.



학원에 뒤늦게 들어갔다. 다른 과목은 어지간히 따라잡았지만 여전히 수학이 큰 문제였다. 지금 생각하면 학원 수업은 국어와 과학을 빼고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수업이었다. 영어는 성문종합영어의 무의미한 반복이었고 (엄청 졸았다. 그래도 일부러 질문거리를 만들어 가서 선생님한테 밑보이지는 않았지만...) 수학은 더했다. 느닷없이 삼각함수부터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말이 되는가! 함수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 안하고 온 학생에게 삼각함수라니...-_-) 호도법이라는 그 당시에는 정말 어마어마했던 계산법에서부터 시작해서는 사인, 코사인법칙까지 며칠만에 가르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결국 나는 공통수학의 제일 앞과 제일 뒤만 배운 꼴이 된 것이다. 그 며칠동안 정석을 죽어라 팠다. 수학은 시간이 금방금방 하기 때문에 성취감을 얻는 데는 가장 좋은 과목이다. 삼각함수를 외우고 또 외웠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무조건 외웠다. 정석을 열심히 봐서 그런지 엔간한 삼각함수 문제는 그 이후에는 풀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삼각함수를 좀 열심히 본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되었다. 즉 다른 단원은 열심히 안 했다는 얘기-_-) 이 때 하루에 수학을 5~6시간씩 5일 정도 한 기억이 난다.



3월에 입학식이 있었다. 우리 1학년 8반은 담임이 여자였는데, 당시 모교 115년 사상 첫 여자 담임 선생님이라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반으로 기록되었다. 반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양아'들부터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까지 다양했다. 또 반장으로도 선출되었는데, 이 당시의 나는 중학교 때와는 달리 (중학교 때는 꽤나 자기 중심적이었다. 그래서 욕도 참 많이 먹었다.) 학교 생활에 있어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공부했다. 생전 처음 수업을 듣는 과목이었던 생물과 지구과학은 (물리와 화학은 그나마 중간고사 범위까지 조금 예습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수업을 집중해서 들었고, 공통사회나 국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 3월부터 7월까지의 나는 '옵세' 였다. 내신 시험 준비는 기본이 한 달 전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의 시험과목은 표면적으로는 중간고사 8과목이었다. 그렇지만 국어 상 하를 진도 같이 나가고, 공통과학 4과목과 공통사회 국사 등을 한꺼번에 배우는 교과 과정은 사실 한 달 가지고도 부족했다.) 중간에 부족했던 과목인 수학은 단과학원을 들으며 보충해 나갔는데, 공교롭게도 너무 어려운 반을 들어가는 바람에 돈은 돈대로 내고 수업에서 제대로 건진 것은 거의 없는 어물쩡한 수업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나 혼자 보충을 해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수업시간에는 절대 졸지 않았고 (내 신조 중 하나가 수업시간 빼먹지 말고, 졸지 말고, 딴짓하지 말자 이다. 이게 대학까지 연결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실기는 한 가지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봤다. 뜻밖에도 전교 1등이었다. 국어에서 -8, 사회에서 -6, 평균이 98.25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때도 전교 1등을 한 번밖에 해 보지 못했던 나에게 느닷없는 (?) 고교 1등이라는 선물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어머니는 학교에 한턱을 쏜다고 난리셨고, 정작 나는 무덤덤한데 선생님들이 먼저 접근해 오기도 하셨다. 돌이켜보면 내가 고등학교를 태평스럽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의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성적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일이 참 어이가 없긴 하지만...)



5~7월까지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우리집에는 인터넷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운영체제로 쓰고 있던 것은 윈도우 95였으며, 패션이나 이성교제 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학원 친구들도 죄다 그런 아이들이었으며 (지금 생각해도 그런 아이들만 있었다는 게 참 놀랍다. 이 친구들은 이번에 나와 모두 같은 대학교의 동기가 되었다.) 내가 5월달부터 새로 들어간 학원은 학원비 영구 전액 면제였다. 공부하기에는 괜찮은 환경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결과적으로 기말고사 때까지 등수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지간히 바보(?) 였다. 무식하게 큰 검은색 가방을 메고, 감지 않은 머리와 아저씨 셔츠, 어설픈 칠부바지를 입고 전혀 fashionable과는 거리가 먼 샌들을 신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여름방학 때는 영어와 수학 수업을 특별히 따로 들었고 (그때 수2를 어설프게 한 기억이 난다.) 학원 7층을 친구들과 함께 빌려서 공부를 했다. 워낙 공부 체계가 산만해서 제대로 한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그 때는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 같은 것이 있었다. 점심 저녁을 분식으로 때우고, 머리를 이틀 사흘씩이나 안 감고 다니면서도 마냥 즐거웠다. 특히 이 때 사회를 재미있게 공부했는데, 덕분에 나중 수능 공부할 때 사회탐구에는 신경을 상대적으로 덜 써도 되었다.



2학기가 되었다. 보통 뻘쭘한 상태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로 접어들게 되면, 이제 학교 생활도 슬슬 익숙해져 가고 요령이나 농땡이칠 수 있는 법도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이 시기의 나는 괜스레 공부가 하기 싫어서 이유없이 학원 수업을 조퇴하는 일도 있었고 (그래도 학교 수업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리고 당시 나에게는 참으로 놀라웠던 인터넷 광통신의 연결식 (!) 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생활신조는 매우 바뀌었다.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빼고는 공부한다."라는 생각이, "엔간한 성적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 시간을 빼고는 폐인짓을 한다"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데는 채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 4시까지 밤새워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그 맛은 매우 중독이었다. (이 때는 채팅이 신기했다-_-) 그러면서도 학업에는 그럭저럭 신경은 쓰고 있었고, 2학기 중간고사까지 1등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모의고사 점수는 3월 1학년 모의에 371점을 기록했다. 당시 다니던 대규모의 학원에서도 1학년 전체 1등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자긍심을 느끼는 것은 매우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3번의 내신 시험 동안 1등을 유지하고, 1학년 11월 모의고사에서 원점수 383을 기록하는 기염 (?) 을 토하다 보니 나는 속된 말로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 바빴고 서클 생활도 열심히 했으며, 학원에서 한 여자아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밤에는 인터넷의 사람들과 어울려 열심히 폐인짓을 하다 보면 새벽 3~4시는 족히 넘겼다. 3시간 반쯤 자고 학교에 가서는 아침 자습시간에 고개를 처박고 잠을 자기 일쑤였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서는 2학기 기말고사를 내년 2월에 본다는 괴상한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나의 마지막 남은 내신에 대한 열의까지 앗아가 버렸다. 덕분에 더욱더 놀았다. 당시 고3 선배들이 봤다는 2001년 수능이 매우 쉬웠다는 소식도 들렸고, 학교에서 연세대와 고려대를 50명씩 보낸다는 말을 듣고서는 굉장히 안심 (?) 했다. 이대로 적당히만 공부하다가 고3때 어떻게 한다면 좋은 대학은 그냥 가겠지 같은 안일한 몽상에 젖어 있었다. 당연히 수능문제집 한번 푼 적이 없었다. 당시의 나는 '학기초에 내신 대비용 서적을 사는 것 외에 문제집을 따로 사서 푸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라는 꽤나 짜증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_-;; 그리고 겨울방학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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