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erere nobis [655081]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7-12-04 19: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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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수능 시험 본 문과 재수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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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름 자부하는 독실한 크리스쳔이고, 트와이스(특히 쯔위)의 광팬이다.

또한 내 꿈은 가톨릭 사제였다. 개신교 모태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열망만으로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가졌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자격 요견이 안된다. 

하지만 삶은 꿈을 못 이루더라도 평타, 중타라도 치려면 

정말 필사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이건 신이 나를 사랑하시든 안 하시든의 여부와 상관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중고등학교때 나는 소위 아싸였다.


유복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항상 몸이 약했고 조용히 독서만 하는 책벌레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공감대가 맞지 않아서 였다고

자기위안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중고등학교때 그 싹 없고 못돼 쳐먹기만 한 학생들이 

모두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성별불문 나를 명실공히 '은따'로 만들어 버렸다.


그와중에 인문계 고등학교 내신 2점대 초반을 유지하면서

나는 내 갈길을 걸었다. 모의고사 성적도 항상 전과목 1등급대를 유지했다.

내가 내면적인 자존감 하나는 강한데다

절대 자잘한 일가지고 마음이 흔들리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버틴 것 같다.


같이 밥 먹는 친구가 없어도 당당하게 고등학교 1,2학년 내내 혼밥생활을 '준수'했다.

팩트만 말해서, 그런거 가지고 다른 학생들처럼 슬퍼하고 원망한 적도 없다.


난 은따 신세로 지낼 때에도 모든 것을 나의 미래를 위해 참고 넘어간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지냈다.


하지만 고3이 되면서 이제 좀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공부에 있어서.

그래야 내 학업과 입시에도 더 도움이 될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고 내가 할 말은 당당하게 다 하고 살았다.


내가 그들의 주특기인 온갖 심리적 암시와 비꼼으로 그들을 대하자 

그들은 나를 슬슬 피했다. 


고3 2학기가 되면서 그들도 공부에만 집중을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9월 성적으로 정시로는 연고대를 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나 2017학년도 수능 당일 날 내가 받은 점수로는 웬만한 4년제 인서울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자만때문이었는가? 아니다. 9월 직후 공부를 안한 것도 아니다. 열심히 했다. 

하지만 수능 전날에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새벽 몇시까지 잠을 못 청했던 것같다.

그런것도 있고... 운도 잘 안 따라준 것도 있다.

시험장에서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 거려서 마지막 상평 영어를 망쳤다.

(이게 내 질병과 관련있을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 


나는 수능 다음날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12월 20일날 모 지역 메가스터디 러셀의 서울대/의치대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6,9월 성적으로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수능 성적으로는 턱도 없었다.)


러셀에서 공부를 하면서 나는 초창기에 커피를 많이 마셨다.

커피가 탈 나게 하는 원인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덕분에 3월달에 병원에 실려가고,




나는 내가 극도로 희귀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론병?

자가면역질환의 범주에 드는 질환으로 식도부터 항문까지 모든 창자라 할 수 있는 곳에 염증이 생기는 염증성 장질환의 일종이었다.

가수 윤종신씨가 걸린 병으로? 알고 있다.


완치가 완되는 병입니다.

평생 관리를 잘하셔야 되는데

몇년 주기로 관리를 잘 못하시면 장을 잘라내셔야 되요.


그러나 나는 앞에서 말했듯 몸은 약하지만 깡이 있는 편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수도 있지 뭐~"


3월달에 입원하고 나서 일주일간 푹 쉬다 왔다.

밥은 죽으로 대체되고 매일 주사를 맞고 피를 뽑는 과정이 반복됐지만.


3월 대성과 학평을 학원에서 치고


수학을 제외한 전 과목이 안정적으로 1등급이 나오는 걸 보고

그래도 내가 일찍 재수를 시작한 보람을 느꼈다.


그 뒤에도 진정한 재수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열심히, 아니 피터지게 공부했다.


병원에서 말한 것처럼 커피도 안 마시고 몸에 해가 되는 것은 되도록 피하면서.


나중에 6,9월 성적을 받아보면서 나는 연고대 낮은과 정도는 정시로 가겠네 싶었다.

수학이 6,9월에 높은 2가 뜨고 국영탐도 그냥 높은 1등급이 떴다.

작년에는 1등급도 받아본 수학이 좀 아쉽지만 수능때 성적을 상기하며 스스로 만족했다. 


그러다 병원에서 소위 '면역 치료'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내 면역체계를 일부러 약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자가면역질환의 특성상, 내 면역 체계가 내 몸을 공격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면역 치료를 시작하면서 한 동안은 괜찮았다.


그러다가... 11월 1일이 되었다.


나는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나의 강철 마인드가 한꺼번에 원망과 분노와 좌절로 바뀐 순간이었다.


끔찍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응급실에서 하루이틀 정도 보낸 것 같다.


하루종일 환한 응급실에서는 잠조차 청할 수 없었고

밤낮의 구분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1인실을 겨우 찾았다.

매우 비싼 병실이었지만

부모님이 내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나를 배려해주신 것이었다.


정말 부모님께는 감사드리고, 죄송하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


병실에서도 나는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매일 스테로이드제와 항생제 등등을 주사로 맞아가며 콧줄을 낀채 공부했다.


당시에 나는 

하루 모의고사 전과목을 2세트씩(국수영탐)을 보고

수학 기출 문제를 거의 80-100문제씩 풀어제끼고

ebs 탐구 교재를 독파(2회독,3회독 째)를 했다.


병원에 있으니 오히려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그런데 감사하려 노력했다.


부모님은 내가 시험을 잘 볼 거라고 희망을 가지셨고, 나에게 또 희망을 주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에겐 분노와 원망과 좌절의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병원에 들어온 첫 며칠 동안에는 그런 감정들을 부모님께 표출해서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스럽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감정을 숨기고 항상 밝은 얼굴로 부모님을 대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고생하시면서 병원과 집을 왔다갔다 거리시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는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60분 재고 97점 맞던 동일한 국어 모의고사를 병원에 와서 푸니 95분 동안 풀고 87점이 나오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작년 수능 영어를 60분 동안 풀고 89점이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병원에서 벌어졌다.


나는 파우스트마냥 신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내 몸을 원망했다.


그렇다고 해결될 문제는 없었다.


그냥 필사적으로, 되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이 우선이 되야만 했다.


공부도, 내 몸도, 신도, 세상도, 인생도 내가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다 붙들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이 나를 버렸다고 여겨져도 나는 그 모든 것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 될 때까지 하자.


나중에는 모든 것이 극복되었다고 느꼈다.


국어도 계속 풀다보니 제 시간 내에 90점대 원래 점수로 회복되었고, 영어는 30분 내에 다 풀고 100점을 맞는 등 안정적 모의고사 점수가 나왔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능이 대략 1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만년 2등급이었던 수학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부모님께 아직 채 보지 못한 현우진t의 '수분감'을 갖다 달라고 했다.


다 합쳐서 800문제쯤 됐다.


나는 창피한 일이지만 수학을 그때 거의 '벼락치기'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아니 믿었다기 보다는 해야한다...라고나 할까 그런 마인드였다.

물론 그전에도 수학 공부에 열을 올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에 온 뒤로 수학 역시 갑자기 점수가 안 나오기 시작해서 (안정적으로 88점 정도 나오던 오르비 사설이 60점대가 나오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수분감'이다.


하루에 80문제-100문제씩 풀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책 뒤의 해설지와 해설강의를 이해될때까지 보고 또 봤다.


탐구는 이미 2-3번씩 봐둔 수특과 수완 내용을 반복해서 독파하고 모의고사를 닥치는대로 풀었다.


그렇게 내가 수능 보기 보름전부터 풀어댄 모의고사 개수는 100개, 수학 문제는 1000문제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수능을 병원에서 치르길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과 함께 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험 볼 고등학교를 배정받고 수능 전날까지 펜을 놓지 않으며 작년 수능문제를 검토한 뒤 병원 문을 나섰다.


당시 내 건강 상태를 고려했을 때

병원 사람들은 내가 시험 중에 쓰러지지 않기만을 기원했고

주위 어른들도 무사히 수능을 완주하기만을 바랬다.

그 정도가 주변에서 바란 나의 최선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당시 내가 먹고 주사받던 약제들은 공부와 집중력에는 극악으로 작용하는 약제들이었다.



2018학년도 수능날.


1교시에 나에겐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수능 비문학 마지막 지문을 아예 못 보고 다 찍고 나온 것이다.

컴퓨터와 코드에 대한 지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또다시 좌절해야 마땅할 일이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끝까지 다 보고 나오자는 생각을 했다.


2교시 수학 시간이 되었다.

시험을 보는 내내 수분감을 푼 덕이 있었다고 느꼈다. 21번, 30번을 제외한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풀었다고 자부하고 검토까지 한뒤 21번을 풀고 시험이 종료되었다.


3교시 영어 시간과 4교시 탐구 시간은

시간이 남아서 검토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시험을 끝냈다.


5교시 제2외국어 시간에 아랍어 시험을 다 마치고

나는 기도를 올렸다.


"주님, 저의 수능 공부가 이제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까지 저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국어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교문을 나섰다.


수능 결과는 어땠느냐.


국어는 92, 수학은 문안히 2등급 컷에 걸친 2등급이었다. 국어는 찍은 4문제 중 한 문제를 맞췄지만 수학에서 27번을 실수해버렸다. 영어 탐구는 올 1등급. 한국사와 탐구는 만점이고 제2외국어는 3등급.


내가 목표한 결과는 아니었다.

노력한 만큼 받지 못한 배신감도 느꼈다.


6,9월 만큼만 나오게 해달라고 수십번을 기도드렸는데....

이게 뭐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수능 끝나고 병원에서 논술 시험(연,성,서, 경한)을 보러 갔고


퇴원을 하고 한양대와 중앙대 상경 논술까지 마쳤다.


한양대와 중앙대 논술 대비 때는 논술 학원을 자발적으로 하루에 8시간씩 다니며 끝까지 노력했다.


수능 성적도 곧 나올거다.


논술 결과도 곧 나올거고.


다 떨어질수도 혹은 하나정도 걸릴지도 모른다.


난 정시로는 경희대와 중앙대의 입결이 낮은 학과나 외대의 괜찮은 학과 정도는 갈 수 있게 됐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1년간의 파란만장한 재수생활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내가 더 단단해지고 강인해졌다는 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로 계단을 통해 다녀야 하는데 동생이 항상 힘들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요새 하는 농담은 이거다.


"형은 상관없어. 형은 붓다거든."


가끔 자신이 해탈했다고 하는 수험생들이 있다.

그건 거짓말이다.


진짜 해탈은 이런거라고 자부한다.

사람이 더 강인해지고, 단단해지는 것. 그리고 희망을 갖고 흔들리지 않는 것.


이게 진정한 수험생의 해탈, 아니 니르바나(Nirvana)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공유하고 싶은 성서 구절이 있다.

사도 바울(바오로)의 서간의 구절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개역개정)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6-7절(공동번역)


이 구절은 내가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와 또한 존경하는 목사님이 나를 위해 붙들고 기도해준 구절이다.


그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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